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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같은 저자의 책 '이기적 유전자'의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작인 '이기적 유전자'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만큼 이 책에서 그에 대한 해명으로 시작한다.

먼저 '이기적'이라는 말에 의해 촉발된 논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비록 그 자체가 불쾌하게 여겨지거나 어쩌면 부분적으로는 부당하게 여겨지더라도, 그것을 믿고 퍼뜨리고자 하는 적극적인 소망에는 진위가 확실치 않은 것도 존재한다."
그리고 '유전자 결정론' 또한 전적으로 오해 또는 몰이해에 의한 것임을 자세하게 밝히고 있다.
"유전적 원인과 환경적 원인은 원칙적으로 서로 차이가 없다. 어떤 원인에서 오는 것이든 그 영향에는 바꾸기 힘든 것도 있고 쉽게 바꿀 수 있는 것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영향은 보통 바꾸기 힘들다 해도 적정한 작용인자를 부여받으면 쉽게 바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유전적 영향이 환경적 영향보다 더 비가역적이라고 기대할 통상적인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내용은 적응과 자연선택에 대한 엄밀한 개념 정의, 그리고 적응이 이루어지는 수준이 집단도 개체도 아닌 유전자임을 분자생물학 및 유전학의 결과를 바탕으로 깊이있게 논의한다. 저자도 책에서 밝혔지만 독자들이 분자생물학에서 주로 나오는 용어들에 대한 일정한 이해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쓰여진 책인만큼 따라가기가 만만치는 않다. 하지만 전문적인 내용을 잘 모른다고 해서 책의 주된 메시지를 이해하는데 크게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읽어보면 유전현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너무 포괄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일반 대중들 뿐만 아니라 생물학자들조차도 자연선택이 작용하는 수준이 '집단'은 아니더라도 '개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저자에 의하면 그 수준은 유전자까지 내려간다.
"선택이 작용하는 수준은 생물체가 그룹 또는 그보다 더 큰 단위가 아니라 유전자 또는 작은 유전 물질의 조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 여기에서는 유전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선택이 개체 수준에서는 외견상 불완전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인지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게다가 우리가 그냥 유전자 또는 DNA로만 알고 있는 것도 자연선택과 관련하여 좀 더 세분화된다.
"1957년에 벤저Benzer는 유전자란 이미 단 하나의 단위 개념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고 논하고, 그것을 세 개의 단위 개념으로 나누었다. 뮤톤muton은 돌연변이가 일어나는 최소단위, 레콘recon은 재조합의 최소 단위 그리고 시스트론cistron은 직접적으로는 미생물에만 들어맞는 방식으로 정의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나의 폴리웹티드 사슬의 합성을 담당한 단위와 같은 것이었다. 이에 더불어 제4의 단위로서 옵티몬optimon이라는 자연선택의 단위를 제안했다(Dawkins,1978b) 그것과는 독립적으로 마이어도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세렉톤selecton이란 용어를 만들었다. 옵티몬(또는 세렉톤)이란 우리들이 적응을 무엇인가의 '이익을 위해서'란 입장에서 말할 때에 언급하는 그 '무엇인가'이다."

그리고 유전자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진화를 분명하게 정의한다.
"진화는 대체 가능한 자기복제자의 생존력의 차이가 외부에 가시적인 모습으로 표현된 것이다(Dawkins, 1978a) 유전자는 자기복제자이며 생물체나 생물체의 집단은 아무리 보아도 자기복제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것들은 자기복제자가 그것에 타고 이리저리 여행하는 운반자인 것이다. 자기복제자 선택은 어떤 자기복제자가 다른 자기복제자를 희생시키고 살아남는 과정이며 운반자 선택은 운반자가 다른 운반자보다도 그것들의 자기복제자의 생존을 보다 성공적으로 보증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말하는 운반자가 바로 생물체 개체 또는 더 세부적으로는 세포까지 포함한다. 그리고 자기복제자는 "이 세상에서 그 사본이 만들어지는 어떤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제목에서 언급한 표현형이란 말은 "어떤 DNA분자는 단백질 합성을 거쳐 그것이 복사되는가에 따른 표현형 효과를 나타낸다."에서 알 수 있듯 유전자의 지령에 의해 실제로 만들어지는 생물체의 형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진화가 한 개체의 유전자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생(또는 공생)하는 개체의 유전자도 같이 영향을 미친다고 해서 '확장된'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동물은 마치 자신의 내부에 있는 모든 유전자의 생존 기회를 최대화하는 것처럼 행동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정리를 인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필자는 확장된 표현형이라고 하는 새로운 중심정리로 바로 잡아왔다. 즉 동물의 행동은 그 행동을 연출하는 특정한 동물의 몸에 유전가 있든 없든 그 행동을 '위한' 유전자의 생존을 최대화히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 두 개의 정리는 동물의 표현형이 항상 자신의 유전자형의 순수한 지배하에 있고, 다른 생물체의 유전자에 의해 영향받지 않는다면 결국은 같은 것이 된다."

또 문화적 진화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실로 인간의 문화가 전혀 상이한 종류의 자기복제자 선택이 진행할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을 제공한다는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이 외에도 적응에 대한 논란의 정리, 발생과 성장이 진화에서 행하는 역할의 차이, 자기복제자의 세분화 등을 깊이 있게 거론하고 있으므로, 진화론의 현대적 종합인 '신다윈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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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타주의'에 대한 검토이다.
"인간 이타주의의 진화론은 이타주의의 유형들이 대부분 궁극적으로 이기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 때문에 한층 더 복잡해진다."
"우리는 협동을 두 가지 기본 유형으로 구분해야만 한다. 먼저 이타적 충동은 타인을 향한 비합리적이고 일방적인 것일 수 있다. 즉 베푸는 자는 똑같은 보답을 바란다는 욕망을 결코 표현하지 않으며, 그런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그 어떤 무의식적 활동도 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 형태의 행동을 <맹목성 hardcore> 이타주의라고 불러 왔다....... 반면 <목적성 softcore> 이타주의는 궁극적으로 이기적이다. 이 〈이타주의자〉는 사회가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가장 가까운 친척들에게 보답해주기를 기대한다. ........ 목적성 이타주의는 인간에게서 극단까지 정교해져 왔다. 먼 친척 혹은 무관한 개인 사이에 이루어지는 보답은 인간 사회 구성의 열쇠이다. 사회 계약의 완성은 엄격한 친족 선택이 부과했던 고대 척추동물의 속박들을 깨뜨렸다. 탄력적이고 무한히 생산적인 언어 및 어구 분류의 재능과 결합된 보답의 관습을 통해, 인간은 문화와 문명을 건설할 수 있을 만큼 오래 기억되는 계약을 맺는다."
"왜냐하면 친족 선택에 바탕을 둔 순수한 맹목성 이타주의는 문명의 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검토에 대한 결론은 대략 다음과 같다.
"나는 인간 행동의 맹목성 대 목적성 이타주의의 상대적 비율을 낙관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간은 한없이 더 큰 조화와 사회적 항상성을 이룰 수 있을 만큼 계산적이고 또 충분히 이기적인 듯하다. 이 말은 자기 모순이 아니다. 포유동물 생물학의 속박에 복종하기만 한다면, 참된 이기주의는 거의 완벽한 사회 계약을 이룰 열쇠가 된다."

마지막으로 '종교'에 대한 검토이다.
"종교 신앙을 갖고자 하는 성향은 인간 정신 중 가장 복잡하고 강력한 힘이자, 아마 인간 본성 중에서 근절할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불가지론자인 에밀 뒤르캠은 종교 행위가 그 집단의 정화이자 사회의 핵심이라고 규정했다. 그것은 수렵 채집인 무리에서 사회주의 공화국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에 뚜렷이 나타나는 보편적인 사회적 행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 또한 생물학적 설명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비록 종교적 경험이 찬란하고 다면적이어서, 가장 세심한 정신분석학자들과 철학자들조차 그 미궁에서 헤멜 정도로 복잡하다고 할지라도, 나는 종교 행위들을 유전적 이득과 진화적 변화라는 이차원 상에서 측량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점에서 저자도 무신론자 대열에 끼일 법하다. 하지만 저자 자신은 무신론자라고 이야기하진 않는다.
"종교적 행동에 유물론적 근거가 있고, 그 근거가 전통 과학의 이해 범위 내에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해독하기란 쉽지 않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종교는 부인할 수 없는 인간 종 고유의 주요 행동 범주에 속한다. 기존의 집단생물학과 하등 동물의 실험 연구들로부터 이끌어낸 행동 진화의 원리들은 직접적인 방식으로는 종교에 적용할 수 없을 것 같다. 둘째, 핵심적인 학습 규칙들 및 그것들의 궁극적인 유전적 동기는 아마 자각하는 정신에게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란 무엇보다도 개인이 자신의 직접적인 사리사욕을 집단의 이익에 종속시키도록 설득당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자신이 과학자이자 무신론자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모든 존재는 외부의 그 어떤 통제도 필요 없는 물리 법칙에 복종한다고 여겨진다. 과학자들은 경제적인 설명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신성한 정신 같은 외부 관리자를 배척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가 생물학사의 중요 단계, 즉 종교 자체가 자연과학의 설명 대상이 되는 시점에 도달해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보여주고자 한 대로, 사회생물학은 유전적으로 진화하는 인간 뇌 속의 물질 구조에 작용하는 자연선택 원리를 통해, 신화의 근원 자체를 설명해 낼 수 있다."
무신론자 그룹의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리처드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에서, 오랫동안 기독교의 영향권 하에 있었던 서양 사회에서, 그리고 현대에는 특히 미국에서 무신론자들은 소수이기도 하고 많은 불이익를 받기 때문에 무신론자이면서도 무신론자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지 못한다고 한 바 있다. 저자도 그런 사회의 압력에서 자유롭지는 않은 것 같다.

마지막 장의 제목은 '희망'이라고 붙였다. 이는 인간 정신의 세 단계의 딜레마를 이야기하고 그런 딜레마를 진화론과 사회생물학을 바탕으로 극복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과학적 유물론이 인류의 마지막 대안이 될 것임을 암시한다.
"첫번째 딜레마는 전통 종교 신화와 그 세속적 대체물들, 특히 마르크스주의적 역사 해석에 바탕을 둔 주류 이데올로기들이 지닌 신화들이 숙명처럼 쇠퇴함으로써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들의 쇠퇴는 도덕적 합의의 상실, 인간 조건에 대한 심각한 무기력감, 자아와 미래에 대한 무관심 등을 낳았다. 첫번째 딜레마의 지적 해결책은 생물학의 발견들과 사회과학의 발견들이 결합된 인간 본성을 더 심층적이고 과감하게 연구함으로써 찾을 수 있다."
"이런 첫번째 딜레마의 해결책이 일부나마 옳다고 증명된다면, 그 해결책은 두번째 딜레마 즉 의식적 선택은 타고난 정신적 성향들 중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딜레마와 직결된다. 인간의 본성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란 어떤 다른 통로가 아닌 특정한 통로를 따라 발달하도록 사회적 행동을 인도하는 학습 규칙들, 감정 강화 요인들, 호르몬 되먹임 고리들이다."
"세번째이자 어쩌면 마지막이 될 정신적 딜레마 ........ 인간 종은 자신의 본성을 바꿀 수 있다. 인간 종은 무엇을 선택할까? 부분적으로 낡아버린 빙하기의 적응 양상과 통일한, 날림으로 지은 흔들거리는 토대 위에 그대로 남아 있을까? 아니면 더 많은 - 혹은 더 적은 - 감정적 반응 능력을 지닌 채 더 고도의 지성과 창조성을 향해 나아갈까?"
"진정한 프로메테우스적 과학정신은 인간에게 물리적 환경을 지배할 몇 가지 수단과 지식을 줌으로써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다른 단계, 새로운 시대에 그것은 또 과학적 유물론의 신화를 구축할 것이다."


이 책은 광범위한 논증을 하고 있어서 이 정도의 요약으로는 이 책의 내용을 전달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그러므로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반드시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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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회생물학을 제창한 에드워드 윌슨의 3부작 '곤충의 사회들', '사회생물학', '인간본성에 대하여'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 윌슨이 제시한 사회생물학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사회생물학은 대체로 사회성 생물 종들의 비교 연구를 토대로 하고 있다. 모든 생물은 진화 실험의 산물, 즉 수백만 년에 걸쳐 유전자와 환경 사이에 이루어진 상호작용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저자인데도 책 마다 정의가 조금씩 다른 것은 표현이 다른 것이지 정의 자체가 다른 것은 아니다. 서구의 학술적 전통에서는 자신의 글이라 하더라도 그대로 베끼는 것은 표절에 해당된다.

생물의 사회성을 연구함으로써 인간의 사회성도 진화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사회생물학은 남녀 간, 인종 간 차이를 선천적인 것이라고 함으로써 한동안 심각한 문제였던 차별을 정당화한다는 점 때문에 극심한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윌슨은 차별을 정당화한 것이 아니다. 근대 이후 차별의식때문에 많은 문제점이 드러남으로 해서 모든 차별은 부정되고 오직 환경의 영향 만이 중요하다고 인정되었다. 남녀의 차이도, 인종 간의 차이도 모두 부정되는 상황에서, 인간은 유전자와 환경의 영향을 같이 받는다고 이야기하기 위해서 유전자의 영향을 중요하게 거론한 것이 오해를 불러온 것이다. 저자는 이런 비판에 굴하지 않고 사회생물학을 지속적으로 주장하였으며, 진화심리학의 진전에 힘입어 신다윈주의 진화론으로 통합이 되어 가고 있다.

사회생물학 3부작 중 앞의 두 책은 생물의 사회성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에 주안점이 두어졌다면, 이 책은 인간의 본성이 생물학적으로 규명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논증을 주로 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언급은 인간도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여 인간 중심주의자들의 분노를 샀다.
"인간 본성의 일반 형질들은, 다른 모든 종들의 형질이라는 거대한 배경 앞에 놓고 보면 유한하며 특이해 보인다. 그러나 더 많은 증거들은 수많은 상투적인 형태의 인간 행동들이 일반 진화론에서 예측한 대로 포유동물의 것이며, 더 구체적으로는 영장류의 특정에 해당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구체적인 사회 생활과 정신적 특성을 볼 때, 침팬지는 이전에는 비교 자체가 부적당하다고 여겼던 영역들에서도 인간과 거의 같은 등급에 놓일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인간과 가깝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이 유전적 토대 위에 있다는 가설,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행동이 근연 관계에 있는 종들과 공유하고 있는 일부 유전자와 인간 종 고유의 유전자로 조직된다는 가설과 일치한다. 한편 이런 사실은 수 세대 동안 사회과학의 주류를 차지해 온 경쟁 관계에 있는 가설, 즉 인류가 전적으로 문화에 토대를 두는 수준까지 자신의 유전자로부터 탈출해 왔다는 가설과는 부합되지 않는다."

사유의 자연스러운 귀결이기도 하지만 인간 본성을 이야기하자면 '자유의지'라는 철학적 명제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저자도 그에 대해 명쾌하게 정리한다. 당연히 자유의지의 문제도 생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수 세기 동안 위대한 철학자와 심리학자들은 결정론 대 자유의지라는 커다란 역설을 붙잡고 씨름해 왔다. 이 역설을 생물학적 용어로 바꾸면 이렇게 될 것이다. 우리 유전자들이 유전되고, 우리의 환경이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작동하고 있었던 물리적 사건들의 인과 사슬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뇌 속에 진정한 독립 행위자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행위자 자체는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을 통해 창조된다. 그러므로 자유란 단지 자기 기만이 아닐까?"
"결정론과 자유 의지 사이의 역설은 이론적으로 해결이 가능할 뿐 아니라, 물리학과 생물학의 경험상의 문제로 환원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비록 정신의 토대가 정말로 기계론적이라고 해도 우리가 동전의 경로나 꿀벌의 비행을 한정된 범위까지만 도표화할 수 있듯이, 각 인간의 세세한 행위들을 예측해 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지성을 지닌 존재는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점을 염두에 두자. 정신은 매우 복잡한 구조이며, 인간의 다양한 사회 관계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그 정신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영향 하에 있는 개인이나 인간이 어느 한 사람의 구체적인 역사를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런 근원적인 의미에서 너와 나는 자유롭고 분별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부차적이고 더 약한 의미에서 볼 때, 우리의 행동이 부분적으로 결정되어 았다는 것도 사실이다. 행동 범주를 충분히 넓힌다면, 사건의 예측은 신뢰를 얻는다."


근친상간 금기, 의지의 문제 등도 거론하지만, 인간의 행동의 네가지 범주 즉, 공격성, , 이타주의, 종교에 각각 한 장씩을 할애하여 사회생물학적 이론의 토대위에 다시 검토한다.,

먼저 공격성에 대한 검토는 다음과 같다.
"인간의 공격성은 타고난 것일까? ……… 이 질문의 답은 <그렇다>이다."
이런 결론은 이 결론을 인정하는 집단과 인정하지 않는 집단 양방향에서 공격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저자는 신중한 논증을 전개한다.
"다른 수많은 행동이나 <본능>과 마찬가지로 명확히 정의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종의 공격성이란 사실상 신경계 내에서 각기 별도의 통제를 받는 서로 다른 반응들의 배열을 의미한다. 이 가운데 적어도 일곱 가지 범주는 구분이 가능하다. 영토의 방어와 정복, 잘 조직된 집단 내에서의 서열 찾기, 성적인 공격성, 젖을 떼기 위한 적대 행동, 먹이를 향한 공격성, 포식자에 대항하는 방어형 역공, 사회 규범을 강화하는 데 쓰이는 도덕적이고 훈육적인 공격성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개체 밀도 당 공격 행위의 빈도를 계산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비록 공격 성향이 뚜렷하다고는 해도 우리는 가장 폭력적인 동물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결론짖는다.
"인간의 공격 행동이 유전자와 환경 사이의 구조적이고 예측 가능한 상호작용 패턴이라는 관점은 진화론과 부합된다."

다음은 '인간의 성'에 관한 검토이다.
"성의 복잡성과 다의성은 성이 본래 번식용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나타난다."
"증식이 번식 행동의 유일한 목적이라면, 우리의 포유동물 조상들은 성없이 진화할 수도 있었다. 모든 인간은 성별 없이 무성 자궁의 표피 세포에서 싹렀을지도 모른다."
"쾌락은 기껏해야 동물들을 교미하게 만드는 장치이며, 다용도의 신경계를 지닌 생물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시간과 에너지 를 구혼, 성교, 양육에 대규모로 투자하도록 유인하는 수단일 뿐이다."
"더구나 성행위는 어떤 의미에서 보아도 불필요하거 낭비되는 위험한 활동이다."
"주된 해답은 성이 다양성을 창조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양성이란 부모가 예측할 수 없이 변화하는 환경을 놓고 양쪽에 돈을 거는 방법이다."
"다양성과 그 결과인 적응성은 왜 그렇게 많은 종류의 생물들이 유성생식이라는 수고를 하는지 설명해 준다. 장기적으로 보면, 직접적이고 간단한 성별이 없는 번식 방법에 의존하는 종에 비해 유성생식 종은 수적으로 크게 우세해 진다."


이상의 논증은 별로 논란 거리가 될 것이 없지만 다음과 같은 언급은 여성해방운동가들의 반발을 산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성적 상대의 교체가 대부분 수컷 주도로 이루어지는 온건한 일부다처제형이다."
"대체로 여성들은 남자들에 의해 한정된 자원 따라서 가치는 소유물로 취급되기 때문에, 상승혼, 즉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는 혼인 풍습의 수혜자가 된다. 일부다처제와 상승혼은 본질적으로 상보적인 전략이다. 다양한 사회에서 남성들은 추구하고 획득하는 반면 여성들은 보호되고 교환된다. 아들들은 난봉꾼이 되고 딸들은 유린당할 위험에 처한다. 성이 매매될 때 대개 구매자는 남성이 된다. 매춘부는 당연히 사회의 멸시 대상이 되기 쉽다."
"또 평균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기질에 차이가 있다는 것은 포유동물 생물학의 일반 원칙과도 부합된다. 집단으로서의 여성은 덜 단호하고 신체적으로도 공격성이 덜하다. 그 차이의 정도는 문화마다 다르다. 평등주의자들이 설정하는 사회처럼 단지 미미한 통계적인 차이만 있는 사회가 있는가 하면, 극단적인 일부다처제 사회처럼 여성이 사실상 노예 상태에 있는 사회도 있다. 그러나 그 차이가 어느 정도 있는가 보다는 여성들이 성격 면에서 이렇게 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 자체가 훨씬 더 중요하다."
"즉, 성별에 따른 적당한 유전적 차이가 존재하며, 행동 유전자들은 기존의 거의 모든 환경과 상호작용하여 심리 발달의 초기에 뚜렷한 분화를 낳고, 그 분화는 그 뒤의 심리 발달 과정에서 문화적 제재와 교육을 통해 거의 대부분 확대된다고 말이다."

그동안 남녀 차별이 문제가 되어 왔으므로 차별을 용인해서는 안되겠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남녀의 차이가 없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현명한 대응이 아니다. 그보다는 차별이 발생하는 구조적 요인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그것이 차별로 기능하지 않도록 억제책을 강구하는 것이 현명한 대응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인간의 성에 대한 검토의 결론은 대략 다음과 같다.
"유달리 빈번하게 행해지는 남녀의 성행위는 남녀의 결합을 확고하게 하는 주된 장치 역할을 했다. 또한 그것은 남성끼리의 공격성을 약화시켰다."
"이것들(인간의 성적 쾌락)은 번식과 거의 관련이 없다. 그것들은 모두 결속과 관련이 있다."


다음 글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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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회생물학 교과서라고 할 만하다. 다양한 동물들의 사회성에 대한 방대한 연구 결과들을 이 책에 포함시켜 놓아서 그렇다. 따라서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의 사고의 출발점을 사회생물학으로 잡으려는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에 의하면 사회생물학이란, "모든 사회행동의 생물학적 기초에 관해서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생물들의 사회성을 연구함으로써 인간이라는 생물종의 사회성도 진화의 결과로써 설명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인간의 사회성마저도 유전자 결정론에 종속시킨다는 우려때문에 대중들로 부터, 그리고 동료 진화론자로 부터도 극심한 비판을 받았다.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이 히틀러에 의해 크게 오용된 이래 유전자 결정론은 인간의 악이 선천적이라고 확인하는 것이라고 해서 기피 대상이었던 시기에 나온 것이어서 그렇다.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면 그런 오해를 살 만도 하다.
"사회는 무리bands에서 부족tribe을 거쳐 수장사회chiefdom와 국가 state로 발전해 감에 따라 결합의 일부 양식은 혈연 관계를 넘어 다른 종류의 동맹 내지는 경제적 협약에 까지 확장된다. 그것으로 조직망은 더욱 커지고 의사소통의 거리는 더욱 벌어지고 상호작용은 더 다양해짐으로써 모든 시스템은 엄청나게 훨씬 복잡해진다. 그러나 이 모든 배치의 바탕이 되는 도덕적 규범마저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즉, 보통 개개인들은 수렵채취사회 구성원을 지배하는 규범보다 별로 더 정교하지 않은 형식 규범 밑에서 여전히 행동하는 것이다."

아무튼 저자는 인간의 사회성도 결국은 자연선택, 혈연선택, 집단선택 등에 의해 진화해 온 특성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집단선택 모델은 저자가 제시한 것인데 현재의 진화론에서는 크게 지지를 받고 있지는 못하다.

책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자를 많이 사용하고 있어서 한자를 배운 세대인 나도 군데군데 한자때문에 막히는 경우가 있었는데 한자를 배우지 못한 세대들에게는 더욱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역자들이 모두 유럽에서 유학한 경력의 소유자들인데도 한자 사용을 고집했다는 점은 좀 의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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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들의 의도는 '생물학적 결정론'과 환원론을 비판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저자들의 비판의 촛점이 오락가락하기 때문이다. 주된 비판이 생물학적 결정론 비판에 할애되어 있는 만큼 곁다리로 끼어있는 환원론에 대한 이야기부터 먼저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환원론이란 어떤 복잡한 대상이 있을 때 그것을 부분으로 나눈 다음, 부분들에 대한 이해를 합하면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는 방법론이다. 과학적 방법론이란 기본적으로 이 환원론에 바탕하고 있다. 인간이라는 유기체를 이해하기 위해 환원론적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 가끔 비판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때문이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환원론적 방법론을 적용하더라도 그 수준이 단일한 것이 아니고 다수준으로 되어야 한다. 인간 집단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 구성 요소인 개체로서의 인간을 이해해야 하고, 그 개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뇌 또는 더 아래로 내려가면 호르몬의 작용을 이해해야 하고, 그 보다 더 아래로 내려가면 유전자를 이해해야 하고, 더 아래로 내려가면 화학 반응을 이해해야 하고, 결국은 물리법칙을 이해해야 한다. 이런 과정이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극단적인 환원론, 즉 인간 집단의 이해하는 데에도 물리 법칙을 적용할 수 있다고 하거나, 좀 더 올라가서 유전자만 이해하면 된다는 생각들이다. 이런 극단적인 환원론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저자들의 문제 의식은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다음은 이 책의 주 목적인 생물학적 결정론에 대한 이야기해 보자. 저자들은 환원론에 바탕한 생물학적 결정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인간의 사회현상은 개인들 행동의 직접적 귀결이고 개인의 행동은 타고난 육체적 특성의 직접적 귀결이라는 두 가지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생물학결정론은 인과관계의 화살이 유전자로부터 인간으로 그리고 인간으로부터 인간성으로 달려간다는 인간의 삶에 대한 환원론적 설명이다."

그리고 그런 생물학적 결정론에 대한 저자들의 우려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생물학결정론의 관념들은 우리 사회의 불평동을 보존하고, 그들이 지니고 있는 심상에 따라 인간의 본성을 형성하려는 기도 가운데 하나다. 그러한 관념들의 오류와 정치적 내용의 폭로는 그러한 불평둥을 제거하고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투쟁의 일부이다. 그 투쟁 안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본성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생물학결정론은 직접적으로 이러한 불평둥을 변호하고, 그것을 자연스럽거나 혹은 공정하거나 또는 양자 모두에 속한다고 정당화한다."
"유전의 두 가지 의미-사회적인 것과 생물학적인 것-의 수렴은 세대에서 세대로의 사회 권력의 통로를 정당화한다."

이런 저자들의 문제 의식도 타당하다. 그런데 문제는 비판받아 마땅한 생물학적 결정론과 극단적 환원주의의 원흉으로 저자들은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과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로 들고 있다는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 즉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가설과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가설은 여러 사람들에 의해 심각하게 오용되어 온 역사가 있다. 저자들은 그 오용된 사례들을 다양하게 들고 있다. 20세기 초에 진행되었던 IQ 유전 문제, 우생학 문제, 정신병에 대한 처방 문제 등 다양한 사례를 든 다음, 그 사례의 핵심 멤버들이 윌슨의 사회생물학과 도킨스의 유전자론을 자신들의 사상적 근거로 삼았다며 윌슨과 도킨스를 생물학적 결정론자이자 극단적 환원론자로 규정하고 그들에게 비판의 화살을 날리고 있다. 다음과 같은 언급을 보자.
"정신분열증 연구에서 프란츠 칼만의 역할과 IQ 연구에서 시릴 버트의 역할 사이에는 많은 유사성이 존재한다. 두 사람 각각은 인간 행동의 유전적 결정을 정열적으로 믿었다."
이들은 유전자 결정론자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사상적 배경은 사회생물학이고 그것은 생물학적 결정론이기 때문에 사회생물학은 나쁘다라는 식으로 논리가 전개된다. 물론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이들도 악을 구현하기 위해서 생물학적 결정론을 믿었던 것은 아니다.
"윌슨의 '사회생물학: 새로운 종합', 혹은 리처드 도킨즈의 책 '이기적 유전자'와 같은 생물학결정론 저술들에 의해 표현된 통합된 환원론적 세계관들은 명백히 유전자가 개인들보다 그리고 개인들이 사회보다 존재론적으로 우선한다는 주장"
이렇게 '사회생물학'과 '이기적 유전자'를 생물학결정론과 극단적 환원주의의 바이블로 일방적으로 규정한다.


나도 위의 책들을 다 읽어 보았지만 그들을 생물학적 결정론자로 또는 극단적 환원론자로 규정할 근거가 없다. 오히려 이 책의 저자들이 우려하는 것들을 윌슨과 도킨스도 같이 우려하고 있어서 자세한 해설을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도킨스는 자신의 책 '확장된 표현형'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금세기 이전에는 개인의 일생 동안의 경험이나 기타 획득물은 유전 물질에 새겨져 아이에게 전달된다고 믿었다. 이 신념을 포기하고 생식질의 연속성이라는 바이스만Weisman의 교의에 의해 그 신념을 뒤바꾸어 놓은 것과 그것의 분자적 대안인 '중심 교조'는 현대 생물학의 위대한 업적 중 하나이다."
"단계적 환원주의자는 복잡한 전체를 설명할 때, 처음 단계에서 단지 한 단계 낮은 부품들의 입장에서 설명한다."
"환원주의란 사물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해하고 싶은 솔직한 욕망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윌슨도 '인간 본성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신은 매우 복잡한 구조이며, 인간의 다양한 사회 관계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그 정신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영향 하에 있는 개인이나 인간이 어느 한 사람의 구체적인 역사를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런 근원적인 의미에서 너와 나는 자유롭고 분별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부차적이고 더 약한 의미에서 볼 때, 우리의 행동이 부분적으로 결정되어 았다는 것도 사실이다. 행동 범주를 충분히 넓힌다면, 사건의 예측은 신뢰를 얻는다."


‘사회생물학’에서는 이런 언급도 했다.
"사실상 우리는 카스트의 차이가 유전적으로 고정되는 것을 막는 강력한 힘이 과연 무엇인가를 알아낼 수 있다. ....... 즉, 사회 내부에는 유전적 다양성이 크게 유지되고 있고 또 일부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특성들이 성공과는 매우 느슨한 관계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런 언급들을 통해 윌슨이 유전적 요인을 강조하기 했지만 결정론이라고 까지 할 수는 없다.

저자들은 생물학적 결정론의 대척점에 있는 문화결정론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언급한다. 인간의 본성이 유전자에 의해(서만) 결정되다는 것이 유전자 결정론(생물학적 결정론)이라면 유전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오직 환경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는 것이 문화결정론이다. 둘 다 비판 받아야 마땅한 것이고 그것을 비판하고자 하는 저자들의 문제 의식 또한 타당하다. 그러면서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우리는 인간의 상태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생물학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통합을 요구한다고 추장해야 한다."

생물학 결정론과 문화결정론을 공히 넘어서야 한다는 말인데, 저자들의 선언이 틀린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저자들이 생물학 결정론이라고 비난하는 도킨스와 윌슨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킨스는 '확장된 표현형'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전적 원인과 환경적 원인은 원칙적으로 서로 차이가 없다. 어떤 원인에서 오는 것이든 그 영향에는 바꾸기 힘든 것도 있고 쉽게 바꿀 수 있는 것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영향은 보통 바꾸기 힘들다 해도 적정한 작용인자를 부여받으면 쉽게 바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유전적 영향이 환경적 영향보다 더 비가역적이라고 기대할 통상적인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윌슨도 '인간 본성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의 사회적 진화는 유전의 쌍궤도, 즉 문화적 궤도와 생물학적 궤도를 따라 나아간다. 문화적 진화는 라마르크적이고 매우 빠른 반면, 생물학적 진화는 다윈적이고 대체로 매우 느리다."

저자들은 윌슨, 도킨스 같은 사람들은 생물학적 결정론자들로서 '나쁜 과학'을 하는 사람, 자신들은 '좋은 과학'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구도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선언적으로 이야기한다.
"결국 지식의 두 형태의 통합만이-환원론이 부정하는 것은 필요하고 결정론이 부정하는 것은 가능한 그런 통합과 같은-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생물학결정론이든 문화결정론이든 혹은 몇몇 종류의 이원론적 불가지론이든 그러한 이론을 발전시키는 과업에는 적당치가 않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생물학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사이의 관계에 대한 더욱 변증법적인 이해에 기대를 걸어야 한다."

생물학적 결정론이든 문화결정론이든 그것은 가설로서 등장했다가 신다윈주의 진화론에 의해 반박되어 거의 폐기되어 가고 있는데, 저자들은 자신들이 그것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가설이 없다. 그런데 '사회생물학'과 '이기적 유전자' 가설은 생물학적 결정론이기 때문에 안된다고 한다.

이런 판단을 하는 것이 저자들이 윌슨이나 도킨스의 주장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들의 다음과 같은 언급들을 보면 그런 것 같지 않다.
"’사회생물학’에서 윌슨은 통속 행동학을 "옹호에 대한 연구들"이라고 부르면서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멀어지게 하려고 추구했지만,"
"도킨즈가 그의 가장 최근의 책 ‘확장된 표현형The Extended Phenotype’에서, 환경을 파악하려 노력한 것은 흥미롭다."


과학자들이라고 명성에 대한 욕심이 없을까 만은 이 책의 저자들은 사회생물학을 내건 사람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윌슨, 도킨즈, 트라이버스(Trivers)가 사회생물학에 대해 쓴 것은 그들 자신의 사회적 입장을 높이려는 그들의 이해를 반영한다. 우리가 쓰는 것은 우리를 반영하는 것이다."
저자들이 비판의 표적으로 삼고 있는 윌슨, 도킨스 같은 과학자들은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저자들과 추구하는 바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생물학적 결정론과 극단적 환원론은 비판받아 마땅할 뿐더러 그 점에 대해서도 윌슨과 도킨스는 기꺼이 동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생물학'과 '이기적 유전자' 가설을 억지로 생물학적 결정론으로 단정하고 자신들이 통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학문적으로 무지하거나 아니면 통합의 주도권을 자신들이 쥐어야 한다는 야심의 발로라고 밖에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내 생각에는 후자의 요인이 더 큰 것 같다.

다음과 같은 저자들의 결론을 감상해 보자.
"생물학결정론자에 대해 이야기하면, 우리는 우리의 삶이 내적 원인들, 특수한 행동을 지배하는 또는 이들 행동의 경향을 지배하는 유전자들의 비교적 적은 숫자에 의해 강력하게 구속되기 때문에 우리는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생물학과 다른 유기체에 관한 생물학 사이의 차이의 정수를 놓치고 있다. 우리의 뇌, 손, 혀는 외적 세계의 많은 단일한 주요 면모들과 우리를 독립되게 한다. 우리의 생물학적 상태는 우리를 우리의 정신적 환경과 물질적 환경을 계속적으로 재창조하는 생명체가 되게 해왔고, 우리의 개인적 삶은 교차되어 있는 인과적 경로들의 특별한 다중성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우리의 생물학적 상태이다."
이 결론이 이해가 안된다면 그 이유는 두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하나는 저자들이 횡설수설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설명이 부족해서 일 수가 있다. 나는 전자라고 생각하지만 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책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내가 이해를 잘못해서 일 수도 있으므로 이 내용을 이해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을 공유했으면 좋겠다.

이 책은 도킨스가 ‘눈 먼 시계공’에서 다윈의 입을 빌어 한 다음과 같은 말, "다윈이 지적했듯이, '개인적인 불신에서 비롯된 주장'은 극히 빈약한 주장이다."의 전형적인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식의 주장이 고약한 것은 '문제 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싸우게 만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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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극단적 환원론, 문화 결정론, 유전자 결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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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어떻게 오작동 작동하는가 - 카루나 케이턴

독서 2017. 5. 1. 17:00


명상은 종교적 수련에서 출발했지만 현대인들의 마음의 평안을 얻는 방법 중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수행자들이 경험적으로 알게 된 지식을 신경생리학은 확인해 준다. 매튜 리버먼의 '사회적 뇌 - 인류 성공의 비밀'에서 "명상을 통해 얻는 마음의 평온은 뇌와 신체에서 일어나는 생화학적이고 신경인지적인 과정들의 결과이다."라고 밝혀 놓고 있다.

과학은 명상의 효과를 확인시켜 주지만, 실제로 명상을 수행하는 수련자들은 '인간의 본성의 추구'라는 증명되지 않은 무언가를 향해 있다. 그리고 불교와 힌두교 계통의 신비주의 종교에서 득도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종교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명상을 권유하는 사람들이 그 효과의 근원을 종교에서 찾는 경우가 흔히 있다. 바로 여기에 옆길로 샐 가능성이 존재한다.

수행자들이 하는 만큼, 명상을 고도로 수련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 답은 명상 상태가 보편적으로 되었을 때 어떤 상태가 될 것인지를 추론해 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모든 사람이 명상 수련을 고도로 행하면 개개인은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사회성을 바탕으로 한 인류의 문명은 붕괴될 것이고, 그 끝은 인류라는 생물종의 멸망이다. 불교에서는 세속의 인연을 끊어내는 것을 수행의 목표로 삼지만 그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수행자가 수련하는 동안 누군가는 밥을 해 주어야 한다. 생리 현상도 해결해야 한다. 사회성을 완전 차단한 상태라면 들판에서 홀로 살아가는 어떤 동물을 가정할 수 있지만, 사람이 그런 상태에 놓이면 명상 수련 자체를 할 수가 없다. 그러니 명상이란 정신 건강에 좋은 것임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알 수 없는 무엇인가를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은 오류다. 다음 책은 바로 이 과정을 보여준다.


저자는 심리상담사이다. 명상 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람이기도 하다. 물론 그 깨달음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다. 그런 저자도 명상 효과의 근원을 불교로 보고 있다.
"불교가 마음의 본질에 대해 보편적 진실을 밝혀냈기 때문일 겁니다."
"불교에서는 자아가 왜곡된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데 가장 큰 가치를 둡니다. 이로써 지혜가 구현되고, 지혜야말로 불편한 정서와 건강하지 못한 마음을 해독할 열쇠니까요."


저자가 명상을 통해 경험적으로 알게 된, 다음과 같은 내용은 크게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가 현실의 본성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이나 사물, 사건 심지어 사고와 감정까지 모두 제각기 독립적이라고 여긴다는 겁니다. 거듭 말하지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고통의 원인이 되는 세 가지 파괴적인 정서를 설명했습니다. 반감, 집착, 무지가 그 세 가지죠. 이 세 가지 정서는 다시 … 세 가지 조건 즉, 육체적인 고통은 피할 수 없다는 것, 삶은 변화의 연속이며 예측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현실의 진짜 본성을 모른다는 것과 연결됩니다."


현대 심리학은 과학의 한 분과로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심리학을 언급하면서도 과학 이전의 심리학에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심신이원론'에 의존해서 설명을 시도한다.
"즉, 생명체는 '형체 또는 몸'과 '마음'이라는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졌을 뿐이라는 것이지요. 마음은 비원자적, 비물질적이 어서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으며 냄새를 맡거나 만지거나 맛을 볼 수도 없습니다. 또한 마음은 정서, 느낌, 생각, 환상, 꿈, 심사숙고, 기분, 그리고 의식과 무의식 전부를 포함합니다. 우리는 수많은 의식적 생각을 갖고 있고 그 생각들이 흔히 우리의 '자아'를 이룹니다. 그러나 지각 아래에 있는 무의식의 영역에도 무수한 인상과 평가가 존재하며, 이것들 역시 통제할 수는 없지만 의식과 마찬가지로 '마음 속에' 있습니다. 감각은 끊임없이 인상을 만들어내며, 우리가 의식하는 것은 그중 일부입니다. 이런 '마음'을 규정하는 방법 중 하나는 마음을 '모든 경험의 주체'라고 보는 것입니다." "'내면 어딘가' 또는 '온몸에 걸쳐서'라는 흔한 말 빼고는 마음의 위치를 정확히 가리킬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형체없는 인식을 몸과 동일시할 수는 더욱 없습니다."

저자는 가끔 과학적 심리학의 연구 결과를 언급하기도 한다.
"최근의 연구에서는 뇌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유연하며, 실제로 뇌의 신경회로가 새로 연결되기도 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 말은 마음 훈련을 신경회로의 변경 및 재배치라는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게 합니다."
"윤리와 도덕은 자연스레 정신 건강과 함께 갑니다. 이 말은 '옳은' 행동인지에 대한 확신은 자신의 심리에 대한 이해에서 옵니다. 윤리적인 행동이라면 자신과 다른 사람의 정신 건강에 보템이 되기 마련이니까요."


명상 효과를 심리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저자의 시도는 '정신은 육체와는 별개'라는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그다지 유용하지는 않지만, 명상 효과는 분명한 것이므로 저자가 제시한 다음과 같은 방법론은 관심을 가진 만하다.
언제 어디서나 하루 10분 마음 훈련
1. 하루 일과 시작하기 전에: 하나부터 열까지 숫자 세기
2. 내 마음 구경하기: 아이가 초원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듯이
3. 차 안에서: 신호대기 때마다 대상 관찰하기
4. 메모하기: 한 시간 동안 내가 느낀 모든 것
5. 꽉 막힌 도로에서: 눈앞의 현실 '해체'하기
6. 실험: 스스로 불편해짐으로 '정신 근육' 단련하기
7. 여유로운 시간에: 나는 어디서 왔나?
8. 잠자리 들기 전에: 하루의 내 모습들에 이름표 붙이기
9. 동요하는 마음에 숨은 것: 사소한 것을 좇는 마음 깨닫기.
10. 측은지심 기르기: 시선을 타인과 세상으로


종교는 믿는 자들에게 위안을 준다는 분명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게 절대화되면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마음의 평안을 얻는데 명상이 유용하긴 하지만, 저자는 그 효과의 근원을 불교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로 하여금 명상을 수련의 수단으로 오도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이 책의 독서 추천은 중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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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성이 답이다 - 전중환

독서 2017. 4. 27. 18:01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정신도 과학적 분석의 대상이 된다고 보고, 과학적 방법론, 즉 실험과 검증을 통해 정신의 생물학적 바탕을 규명하는 학문들의 집합체이다. 거기에는 진화생물학, 신경생리학, 고인류학 등이 포함된다. 이 진화심리학의 가장 본질적인 전제는 심신일원론, 즉 정신과 육체가 별개가 아니며, 정신은 물리적 뇌의 물리화학적 작용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더욱 깊이있게 분석되면 될수록, 심신이원론에 바탕한 철학과 종교는 설자리를 잃어간다. 다수의 대중들도 이 점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직관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은 사람들의 이 직관도 이미 분석해 두었다. 아무튼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정신, 마음, 또는 본성이라고 불리는 것을 과학적으로 규명한 것이어서 사회심리학으로도 쉽사리 확장된다. 여기에 한국인 진화심리학자에 의해 한국 상황을 진화심리학적으로 분석한 책이 있다.


저자는 진화심리학자이다. 그래서 한국의 사회 현상을 진화심리학에 바탕하여 설명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사실 아주 특별한 시대를 살고 있다. 진화심리학을 필두로 인간 본성의 과학들이 인간 삶과 사회에 대해 심도 있는 통찰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현상을 설명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진보, 보수와 같은 이데올로기와 관련된 것도 다루게 된다. 그러다 보면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과학을 공격하는 불상사가 흔히 발생한다. 그에 대해 저자는 과학의 입장을 명확하게 한다.
"과학은 어떤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설명할 뿐이다. 결코, 그 현상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려 함이 아니다."

저자는 한국의 다양한 사회 현상을 분석하지만 일화를 요약하기는 어려우므로 저자가 분석을 위해 동원한 진화심리학적 발견을 중심으로 요약해 본다.
"왜 보수와 진보라는 개인차가 생기는가에 대해 두 가지 경쟁 가설이 있다. 첫 번째 가설을 따르면, 보수적 성향의 일부분은 전염성 병원체에 대한 방어로 진화했다. 참고로 보수적인 성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전통과 규범을 강조하고 외부 집단을 경계하는 사회적 보수, 그리고 자유 시장을 강조하는 경제적 보수다. 이 중에서 특히 사회적 보수 성향이 당사자가 병원체에 감염되는 것을 막아 준다는 주장이다."
"(두번째 가설) 일부일처제적인 성 전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개인의 성적 자유를 제한하는 규칙이 확립된 보수적인 사회에서 사는 것이 이득이다 마찬가지로, 문란한 성 전략을 주구하는 이들은 개인의 성적 자유를 허용하는 진보적인 사회에서 사는 것이 이득이다."


"왜 말하기는 쉬운데 읽고 쓰기는 어려울까? 답은 수백만 년에 걸친 인류의 진화 역사에 있다. 말로써 이웃들과 정확하게 의사소통했던 사람들이 그렇지 못했던 이들을 제치고 우리의 직계 조상이 되었다. 영유아들이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모국어를 습득하게 해 주는 심리적 도구가 진화한 것이다. 반면에 문자는 고작 8000년 전에 만들어졌다. 게다가 오랫 동안 문자는 특권층의 전유물이었고 다수 대중의 삶과는 무관했다. 즉, 문자를 잘 배우게끔 설계된 심리적 도구가 진화할 시간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읽기와 쓰기를 학교에서 끙끙대며 배운다."

"같은 정보라면 낯설고 부자연스러운 형식보다는 친숙하고 자연스러운 형식으로 포장했을 때 우리의 오래된 뇌는 더 잘 학습한다."
"청각이나 후각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와 달리, 우리는 시각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를 마치 내가 그 자리에서 체험한 것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많은 문화권에서 청결한 신체를 도덕적, 영적인 순결과 동일시하며, 불결한 육체를 도덕적 타락과 동일시한다."
"음식에 대해 미리 품은 기대나 지식은 지금 먹는 음식의 맛을 정말로 높이거나 떨어뜨린다."
"어느 사회에서나, 자기가 속한 동아리 내에서 인정을 받으려 애를 더 쓰는 쪽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다."
"최근의 연구들은 십대 남성들이 또래가 보는 앞에서는 더 난폭하게 운전하거나, 약물에 더 탐닉하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어른들이 볼 때는 이러한 경향이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흔히 옛날이 더 좋았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적어도 인권 유린이 일싱사였던 고대나 중세에 비하면 18세기 후반에 들어서 커다란 진보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진전이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민을 느끼는 감성적인 측면, 그리고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일반적인 행동 원리를 남들에게만 강요하는 것은 모순임을 파악하는 이성적인 측면의 두 갈래에서 이루어졌다는 핑커의 통찰은 우리 사회에도 적지 않은 울림을 준다."

"진화 심리학자 마틴 데일리와 마고 월슨은 복수심은 상대방의 공격을 사전에 억제한다는 뚜렷한 기능을 수행하고자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학교 폭력은 가해 학생이 피해 학생을 끈덕지게 괴롭힐 만큼 강하고 억센 사람임을 널리 광고하여 결국 또래 집단 내에서 가해 학생의 지위를 높여 주는 기능을 한다."
"이론적으로, 계부모는 친부모와 다르리라고 예상된다. <신데 렐라의 진실>을 쓴 진화 심리학자 마틴 데일리와 마고 월슨은 부모가 자신의 유전적 자식이 아닌 아이에 대해서는 투자를 적게 하게끔 진화했으리라고 제안했다."


"네덜란드의 진화 심리학자 마크 판 퓌흐트(Mark van Vugt)는 저서 <빅맨>에서 다음 가설을 내놓았다. 사람들은 풍족한 자원의 배분을 둘러싼 집단 내 갈등이 심할 때에는 여성 지도자를 더 선호하지만, 세계 경제가 불황이거나 전쟁 때처럼 집단 간 경쟁이 심할 때에는 남성 지도자를 더 선호할 것이다. 이 가설은, 남녀 심리의 진화적 차이에서 근거한다. 수백 만 년의 진화 역사를 통해서 여성은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합쳐 자녀를 성공적으로 길러 내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남성보다 타인과 공감하고 배려, 소통하는 능력이 뛰어나게 되었다. 반면에 남성은 짝짓기 기회를 되도록 늘리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다른 집단과의 전투나 자연 재해 같은 위협이 닥쳤을 때 두려움 없이 자신을 내던지게 되었다."
"요컨대, 집단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서 구성원 전체의 안위가 경각에 달린 상황일수록 강인하고 결단력 있는 남성 지도자 가 선호될 것이다. 반면에 자원은 이미 풍족한 상태이고 집단 구성원들 간의 화목한 관계 유지와 갈등 조정이 더 중요한 상황일수록 세심하고 배려심 깊은 여성 지도자가 더 선호될 것이다."


사회 복지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좀 자세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충분하다.
"정치학자들을 따르면, 어떤 복지 정책에 대한 개개인의 찬반은 복지부가 발행한 자료집을 꼼꼼히 검토한 끝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 찬성 혹은 반대는 다음과 같은 간단한 질문을 던져서 순식간에 결정된다. "그 수혜자가 혜택을 받아 마땅한 사람인가?" 즉, 사람들은 수혜자의 노력 여하에 따라 수혜자를 '불운한 개미' 또는 '게으른 베짱이'로 분류한다. 열심히 일했지만 어쩔 수 없는 외부 사정 때문에 어려움에 부닥친 개미는 마땅히 복지 혜택을 받아야 한다. 반면에 빈둥빈둥 놀면서 남들에게 기생하는 베짱이는 혜택을 받아선 안 된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예를 들어, 노년층의 지하철 무임승차에 대한 찬반을 물을 때 노인들이 산업화를 일군 주역이었음을 슬쩍 언급하면 찬성표가 많아진다."
"진화정치심리학자 미카엘 페테르센(Michael Petersen)은 현대인이 국가의 복지 정책을 판단할 때, 석기시대의 조상들이 어려움에 처한 이웃과 도움을 주고받을 때 작동하던 심리가 그대로 쓰인다고 제안했다. 즉, 어떤 복지 정책을 판단할 때 국민들이 수혜자의 노력 여부에 유독 초점을 맞추는 까닭은 인류의 진화 역사에서 이웃 간에 자원을 나눌 때 도움을 되갚으려 노력하지 않는 사기꾼을 가려내는 일이 아주 중요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이 국가 차원의 대규모 복지를 마치 이웃 간의 소소한 도움 주고받기인 양 인식한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컨대,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를 생각해 보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만 선별적으로 복지 혜택을 주자는 주장은 작은 공동체에 맞추어진 인간 본성에 착 감긴다("왜 재벌의 손자에게도 공짜로 밥을 줘야 합니까?"). 그러나 여러 연구는 보편적 복지가 선별적 복지보다 부의 재분배에 더 효과적임을 입증했다. 선거에 큰 영향을 끼치는 중산층 자신이 복지의 수혜를 받으면, 이들은 보편적 복지를 계속 유지, 강화하려는 정당에 표를 던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혜택을 못 받으면, 중산층은 복지 수준을 낮추자고 주장하는 정당에 쉽게 동조하게 된다. 수십 명의 작은 공동체에 맞춰 진화한 인간 본성이 자칫 수천만 국민들의 삶을 좌우하는 현대 국가의 복지를 엉뚱하게 망치는 일이 없게끔 각별히 신경쓰자."


다음은 정치 행위에 대한 저자의 설명의 요약이다.
"정치 심리학자들의 연구를 따르면, 나에게 얼마나 이득이 되는가가 실제 투표 행동에 끼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짜 원동력은 무엇일까? 후보자의 키, 외모, 성별, 나이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있다. 특히 중요한 요인은 도덕이다. 경제적 이해관계를 거스르면서 투표하는 유권자들은 자신의 도덕적 가치를 실천해 줄 후보에게 투표한다."
"유권자들은 경제적 이득이 아니라 도덕적 가치에 따라 투표 한다는 것, 그리고 여기서 보수와 진보가 이해하는 도덕은 사뭇 다르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유용한 시사점을 준다."


다음과 같은 사실들도 알아두면 좋을 것들이다.
"유아와 밀착해서 시간을 보낸 아버지의 몸속에서는 뚜렷한 생리적 변화가 일어난다. 황제 펭권이나 산비둘기 같은 동물에서 자식에 대한 수컷의 보살핌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프로락틴 호르몬이 아버지의 혈류에서 증가한다. 반면에, 외간 여성과 바람을 피우게 하는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은 감소하여 부부 간의 금실이 더 도타워진다. 한 연구에서는 유아를 단 15분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버지 몸속의 프로락틴 호르몬이 유의미하게 증가함이 관찰되었다. 아이와 직접적인 상호 작용음 더 오래 할수록, 과거에 아이를 키워 본 경험이 더 많을수록, 아버지 체내의 프로락틴 호르몬은 그만큼 더 증가한다."
"남성들은 성교에 대한 대가로 매춘부에게 돈을 주지 않는다 정교만 하는 대가로, 즉 끝나고 사라지라는 뜻으로 매춘부에게 돈을 준다."


이 책은 한국인 진화심리학자가 쓴, 한국 사회 분석서라고 할 만하다. 문장도 간결하고, 내용도 학문적으로 깊이 들어가지 않아 부피도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런데 학문적으로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이 읽기에는 편할 수 있어도 분석을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독서 추천은 '일독을 권함'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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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간인가? - 마이클 가자니가

독서 2017. 4. 24. 16:59



인간의 존재는 동물과의 연장선 상에서 보는 견해와 인간이 특별한 존재라는 관점에서 보는 견해가 공존하고 있다. 이 책은 인간이 동물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전자의 견해가 진화론에서 시작된 만큼 다윈과 그의 동시대 사람인 헉슬리의 말을 먼저 인용한다.
"사람과 고등동물의 차이는 지금도 크지만, 분명 "정도의 차이지 종의 차이는 아니다"라고 기록한 찰스 다윈의 시각이었고, 인간의 뇌에 크기 외의 독특한 특징은 없다고 주장한 그의 동료이자 신경해부학자인 혁슬리T. H. Huxley의 시각이었다."

이어서 저자는 인간이 동물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생리학적 요인의 설명에서 출발한다.
"뇌 크기를 조절하는 마이크로세팔린microcephalin과 ASPM(the Abnormal Spindle-like MicrocephalyAssociated-gene)이라는 두 유전자가 새롭게 발견되었다."
"이는 두 유전자가 우리 조상의 뇌 크기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킨 원인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신피질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새롭게 발견된 대뇌 피질의 한 영역으로 감각적 인식, 운동신경 명령 생성, 공간추리, 의식적 사고 그리고 우리 호모 사피엔스의 경우 언어 작용이 일어나는 곳이다. 신피질은 해부학적으로 네 개의 엽(葉)으로 나누어진다. 하나의 전두엽과 세 개의 후엽(두정엽, 측두엽, 후두엽)이 그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는 신피질이 유난히 크다는 데는 대부분이 동의한다. 고슴도치의 신피질은 전체 뇌 무게의 16%를 차지하고 갤라고(작은 원숭이의 일종)는 46%, 침팬지는 76%를 차지한다. 사람의 신피질은 훨씬 더 크다."


그러나, 인간이 특별한 것이 모든 점에서 동물들과 구별되기 때문이 아니라 생물학적으로는 동물들의 연장선 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동물보다 특별한 점을 강조한다.
"인간의 뇌는 오직 한가지 목적을 위해, 다시 말해 더 많은 자손을 생산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 자연선택을 통해 안착한 기묘한 장치라는 점이다. 이 간단한 사실이 많은 결과를 낳았고 아직도 진화론적 생물학의 중심에 서 있다."
"인간의 뇌가 독특한 이유는 독특한 DNA 배열때문이다."
"우리 앞에 놓인 자료를 냉정하게 바라보면 인간의 뇌만이 지난 독특한 특징이 많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인간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바로 유전자이고, 이 유전자를 지정하는 DNA가 겨우 1.5%만 밝혀진 상태에서, 유전학자들은 인간과 침팬지가 이 1.5% 가운데 98.6%가 동일하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아니다. 달리 말하면, 어떻게 단 1.4%의 유전자가 그렇게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저마다의 다양한 욕구, 의도, 신념, 정신 상태가 있다는 것을 선천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이러한 욕구, 의도, 신념, 정신 상태가 무엇인지에 관해 어느 정도 정확성을 가지고 이론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다. 데이비드 프리맥과 그의 동료 가이 우드러프Guy Wodruff가 1978년 처음으로 이를 '마음 이론Theory of Mind, TOM'이라 불렀다."


물론 동물들도 기초적인 마음 이론이 존재한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 이론이 더 고도화되어 있다.그리고 마음의 여러가지 측면이 인간을 특별하게 만든다고 한다.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능력, 언어를 통하여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 등이 있으며, 이들은 사회화와 관련이 있다.
"모든 것은 사회적 과정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사람과 동물과 사물을 분류하는 데는 뛰어난 솜씨를 발휘하지만 삼각형과 사각형, 빨간색과 파란색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뺏속까지 사회적이다.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우리의 큰 뇌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문제를 다루기 위해 있는 것이지, 보거나 느끼거나 열역학의 제2법칙을 생각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생존과 번영을 위해 우리는 사회적이어야만 했다는 것이다."


인간이 사회적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기적인 개인들로 이루어진 사회 집단에서 나타나는 이타주의의 문제를 설명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러트거스대학 인류학 교수 로버트 트리버스Robert Trivers가 밝혀냈다.
"개체가 혈연이 아닌 다른 개체를 도와주고 차후 확실하게 보답을 받을 경우 그러한 행동이 생존에 유리해질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우선 개체가 다른 개체를 구체적으로 인지하고 그 개체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두 개체는 보답을 주고받을 수 있는 상황이 오리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접촉하며 지내야 한다. 그뿐 아니라 도움을 줌으로써 발생한 비용을 평가하여 차후 통일한 가치의 보답을 받게 될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상호 이타주의'라는 것으로, 동물의 세계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현상이다."
인간 집단에서 상호 이타주의가 작용하는 이유가 있다.
"상호 이타주의를 행하는 종은 은혜를 갚지 않는 개체를 식별하는 메커니즘이 있다.""자연선택(에 의해 가지게 된 큰 뇌), 자웅선택, 자라는 뇌의 영양 공급을 위한 더 많은 음식의 필요라는 세 가지 요소가 서로 얽히면서 우리는 사회적 기질을 갖게 되었다.""이 가설은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 대학의 리처드 바이른Richard Byrne 과 앤드루 휘튼이 처음 주장한 것으로, 그들은 영장류와 비영장류의 차이점은 사회적 기술의 복잡성이라고 주장했다. …… 오늘날에는 이 이론을 '사회적 뇌 가설social brain hypothesis'이라고 부른다."

저자는 인간이 대집단을 이루면서 살아갈 수 있었던 요인을 다양하게 설명한다.
"리버풀 대학의 명석한 인류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의 주장 …..  던바는 사회집단의 크기를 제한할 수 있는 다섯 가지 인지 능력을 제안한다. 시각 정보를 해석하여 상대방을 인식하는 능력, 누가 누구와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기억하는 능력, 감정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 일단의 관계에 대한 정보를 교묘하게 다루는 능력,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적 문제를 처리하는 인지 기술로서 집단 크기의 한도를 결정하는 능력이 그것이다."
"코스미데스는 또한 인간의 정신 속에 사회적 교환 상황에서 속임수를 쓰는 개체를 가려낼 수 있는 특수한 요소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을 하였다. …… 사기꾼 가려내기가 이른 나이에 발달하여 경험이나 친밀함에 관계없이 작용하며, 속이기는 하되 고의는 없는 위반을 가려내는 행동임을 추가로 알아냈다."
"토론토대학 심리학자 댄 치아프Dan Chiappe가 밝혀낸 바에 따르면 ……… 사회 계약 상황에 놓인 사람은 협력자보다 사기꾼을 더 중요하게 기억할 인물로 평가하고 더 오래 관찰하며, 사기꾼에 관한 사회 계약 정보를 더 잘 기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우리는 상대방에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거짓말을 한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속고 속이는 것은 도덕과 관계가 있다. 그래서 도덕 감정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설명한다.
"'도덕적 책임감'이 더 큰 사람이 '도덕적 정직함'도 더 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도덕적 책임감이 큰 사람이 더 위선자였다. 그들은 더 도덕적으로 보일 뿐이지 '실제로' 도덕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다른 사람의 거짓말을 잘 감지하지 못한다."
"인간은 형제자매를 자동적으로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근친상간을 억제하는 선천적인 메커니즘이 발전되었다는 게 웨스터마크의 주장이다. 이 메커니즘은 어린 시절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과 성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흥미를 느끼지 않게 하거나 거부감을 갖게 한다. 이것이 바로 근친상간을 막는 기능을 한다."


이 외에도 다른 동물들과 구분되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또는 보다 고도화된 상태로 가지고 있는 특성들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얼굴을 붉히는 유일한 동물이다. 감정을 보여주는 또 다른 시각적 신호는 눈물이다. 인간은 유일하게 우는 동물이다.""하이트가 자의식적 감정이라고 일컬은 수치심, 창피, 죄책감 등을 동물이 느끼려면 눈에 보이는 몸을 인식하는 것을 넘어선 자기 인식이 있어야 하고, 이 자기 인식을 의식해야 한다. … 이러한 확대된 자기 인식의 존재 여부가 다른 동물에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감정에 의해 생겨난 반응을 억제할 수 있다.""모방 능력은 타고 난 것이 분명하다."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것은 학습과 사회화에 매우 중요한 메커니즘인 것이다.""불쾌감은 인간만이 지닌 독특한 감정" "동물도 감정전이, 모방, 관점 수용 그리고 어느 정도의 자의식 억제가 가능하다. 동물에게도 거울뉴런 신경계가 있다. 하지만 인간의 능력은 훨씬 위대하고 광범위하다. 인간은 자발적으로 복잡한 움직임을 흉내낸다. 다른 영장류에게는 없는 능력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과학을 할 수 있다.
"입증할 수 있는 것과 입증할 수 없는 것을 분리하는 일은 '의식적'이고 지루한 과정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켜 하지 않거나 제대로 해 내지 못한다. 거기에는 노력과 인내와 훈련이 필요하다. 직관에 반할 수도 있고, 분석적 사고도 필요하다. 공통적인 특성이 없어 어렵기도 하다. 게다가 비용이 많이 들 수도 있다. 그게 과학이란 거다. 과학은 인간에게만 있다."

또한, 저자는 종교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설명한다.
"종교는 강한 연합으로 이루어지고, 대개는 계층 구조가 있으며, 몸, 마음 또는 몸과 마음 모두의 청결이라는 관념을 기반으로 상호 관계가 유지되는 거대 사회집단으로 생각할 수 있다. 거대 사회집단은 종교에 기반을 둔 사회든 아니든 생존에 유리한 점이 있다.""마크하우저가 저서인 <와일드 마인드Wild Minds>에 썼듯이 끝을 인식하지 못하는 동물은 사물의 영속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언급들이 의미하는 것은 인간은 종교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적 성향이 있다는 것이 종교가 타당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저자는 종교도 문화의 일부로 보고 있다.

저자는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뇌 생리학에 대한 설명도 상당한 비중을 할애하여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인간은 진화론적으로 자연선택에 의해 환경에 적응해 온 생물의 연장선 상에 있으며, 뇌의 진화와 함께 거대 집단을 이루고 문화를 창출함으로써 특별한 존재가 된 것이다. 인간이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은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점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신을 등에 업고 인류가 범했던 오류를 반복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생물의 한 부분이라는 점도 같이 강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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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 뇌 - 마이클 가자니가

독서 2017. 4. 20. 21:19


이 책의 저자는 신경생리학자이다. 저자에 의하면 그들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신경과학자들은 우리를 독자적 인간으로 만드는 기관, 즉 인간의 의식적 삶을 가능케 하는 뇌를 연구한다."

뇌에 대한 연구 그리고 인간 생명의 연구는 흔히 도덕적 저항에 부딪힌다. 그에 대한 저자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나는 과학적 발견이 '비윤리적인' 행위들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생각할 때 느껴지는(과학에 대한) 공포가 과학을 더 나은 연구로 이끌기보다는 방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아 왔다."
"도덕적 논변이 생물학적 내용과 섞이면 열정, 믿음, 그리고 완강하고 비논리적인 견해들이 구분되지 않게 된다."
"결과가 우리 입맛대로 안된다는 것이 분명해질 때까지는 그 호기심을 억눌러서는 안된다."
"모든 것은 남용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분별있는 행동을 한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중에 뉴스에서 유전자 변형 기술에서 파생된 윤리 논쟁의 대두에 대해 나온다. '착상 전 유전자 검사'라는 기술이 있다. 그 기술이 더 발전하여 단지 검사하는 것에서 유전자를 변형시키는 기술이 되어 맞춤형 아기가 태어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것이 윤리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지 논란이 있다는 뉴스였다. 저자는 당연히 허용되어야 한다는 쪽이다.
"우리는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무엇이든 하는 데 자유로워야 한다. 이것이 과학적 탐구의 본성이다. 타고난 도덕-윤리 체계를 강화해서 우리 자신을 너무 멀리 나아가지 않게끔 하자. 지금까지 우리는 결코 우리들 자신을 전멸시키는 데까지는 가지 않았다. 나는 무엇이 궁극적으로 우리 인간 종을 위해 좋 은 것이고 나쁜 것인지를 우리가 항상 알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렇지만 과학자로서의 겸손함도 잊지 않는다.
"신경과학에서 행해져 온 선구자적인 연구와 뇌 기능에 대한 계속된 발견들에도 불구하고, 의식을 가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아직 모르고 있다."

신경생리학에서의 연구 결과와 더불어 진화심리학에서의 연구 결과들의 지원을 받아 저자는 우리의 윤리 의식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다.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므로 저자의 언급을 인용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리라 판단된다. 물론 요약이므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느끼는 사람이든 아니든 이 책을 직접 책을 읽어 보길 권한다. 부피도 읽기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다.
"배아는 인간 존엄성이란 개념을 만들어 내고, 유지하고, 변경하기 위해 세계를 지탱하고 해석하는 생물학적 구조인 신경체계를 14일까지는 발달시키지 않는다."
"윤리를 이끄는 원리처럼 보이는 의도는 우리 뇌에 고정되어 있는가? '마음 이론 theory of mind'에 대한 연구는 그렇다는 것을 보여 준다. 사실, 의도는 인간 종을 규정하는 특징들 중 하나일 수 있다. 인간이 된다는 것의 중요한 부분은 타인의 의도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는 이론을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 구축하는 것이다."
"한 인간을 만드는 것은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 작용이다."
"노화 연구는 사람들이 죽음을 맞을 때까지 건강한 정신적, 신체적 삶을 영위하려는 욕구가 동기가 될 때 가장 바람직하다. 단순히 신체적 삶을 연장하려는 욕구는 바람직한 동기가 아니다."
"오늘날 세계 각국의 의사들은 뇌사라는 것이 뇌 줄기가 죽었을 때, 즉 신경체계가 더 이상 독자적인 순환 기능을 유지할 수 없을 때를 의미한다는 데에 동의한다."
"우리는 '의식consciousness'을 종종 '자각awareness'으로 해석한다."


"1만 쌍 이상의 쌍둥이를 대상으로 한 30편의 연구를 포함해서, 지능지수의 가족적 유사성에 관한 111개 이상의 유전 연구들은 지능지수의 유전 가능성이 50퍼센트 가량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개성과 관련된 다섯 가지 행동 특성 (개방성openness, 성실성conscientiousness, 외향성extroversion, 우호성 agreeableness, 예민성neuroticism)은 한데 뭉뚱그려 OCEAN으로 지칭되는데, 그중 50퍼센트는 유전적 요인들의 영향을 받는다."
"어떤 특질들이 유전 가능한 요소를 가진다는 것은 유전자가 뇌 발달 및 개인의 기질을 관리하는 두뇌 시스템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타고난 능력과 연습은 어떤 식으로든 둘 다 필요하다."
"절대음감의 환상적 특징은 그것이 유전적 기반을 가지면서도 발달적이라는 점이다. 절대음감은 주요 시기에 발달한다. 초기(7세 이전)에 음악 교육을 시작하지 않으면 절대음감은 발달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때 조기 교육 열풍이 불었다. 아마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 싶다. 조기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나 어떤 분야를 조기 교육시킬 것인지에 이르면 모두 시킬 수는 없고 어느 재능이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결국 운이 개입한다.
"뇌는 처음에는 한 작업을 수행하는 데 많은 두뇌 세포(뉴런)를 사용하지만, 기술을 익히는 동안 그 기술을 처리하는 데 필요한 뉴런의 수는 점점 감소한다는 것이다."

"2002년 7월, 스탠포드 대학교의 제롬 예서베이지와 그의 동료들은 알츠하이머 환자의 기억 상실을 늦추기 위해 사용되는 식품의약국의 승인을 받은 도네페질 donepezil이 정상인들의 기억력도 향상시킨다는 것을 발견했다."

"유전학은 개성이나 지능 같은 추상적 특성조차도 유전적 설계도에서 부호화된다는 사실을 최근 발견했다."
"최근의 뇌 지도그리기 연구는 뇌 부피의 94퍼센트가 유전적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전두엽, 감각 운동, 그리고 전측두엽 영역 같은 뇌 부위들은 유전적으로 통제 가능하며, 중간의 전두엽 영역은 90 퍼센트에서 95퍼센트까지 유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일종의 지문 역할을 하는 대뇌이랑gyri이라는 불룩 올라온 뇌의 패턴은 유전자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해마(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는 데 관련된 부위)도 유전자보다는 환경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인지 기능 향상 약물은 개발될 것이고, 그것은 잘 사용되거나 잘못 사용되기도 할 것이다. ……… 모든 사람이 프로작을 복용해서 기분을 바꾸지는 않듯이, 그리고 정상성에 대한 개념을 바꿀 기회가 있어도 우리 인생을 스스로 다잡듯이, 우리는 각자의 인생관과 자아감에 따라 기억 향상 약물을 다르게 받아들이고 스스로 규제할 것이다. 변화를 원하는 몇몇 사람들은 약물을 찾을 것이고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약물의 유효성도 무시할 것이다."

"뇌는 자동적이고 규칙 지배적이고 결정적 도구인 반면, 사람들은 결정하는 데 있어 자유롭고 개인적으로 책임있는 행위자이다. 교통 상황이 물리적으로 결정된 자동차들이 상호 작용할 때 발생하는 것처럼, 책임은 사람들이 상호 작용할 때 발생하는 것이다. 개인적 책임이란 공적 개념이다. 개인적 책임이란 집단 안에 있는 것이지 개인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1954년 앨프레드 줄스 에이어는 '연성 결정론soft determinism'을 내놓았다. 데이비드 흄 같은 철학자들이 그렇듯, 그는 결정론이 맞더라도 사람은 여전히 자유롭게 행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에이어는 외부의 충동이나 제약이 없는 욕구, 의도 그리고 결정으로부터 자유 행위가 나온다고 단정한다. 그는(야기되지 않은 행위와 야기된 행위 간의 구분이 아니라) 자유 행위와 제약된 행위를 구분한다. 자유 행위는 자기 자신이 근원이 되어 의지를 하는 행위이고(장애를 겪지 않는다면), 반면 제약된 행위는 외부 원인에 의해 야기되는 행위이다(예컨대 최면 중이거나 도벽 같은 장애 때문에 어떤 것이 당신을 물리적으로 혹은 심적으로 행동을 수행하게 함으로써)."

"뇌는 자동적이지만 사람들은 자유롭다. 자유라는 것은 사회의 상호 작용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신경과학은 뇌를 읽는 것이지, 마음을 읽는 것이 아니다. 마음은 뇌에 의해 완전히 가능하게 되지만, 전적으로 다른 실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완벽한 기억을 가지는 것은 필연적이지 않다. …… 경험의 중요한 부분을 저장하는 것은 복잡한 세부사항들보다 사건 들의 핵심을 더 잘 기억하도록 우리 기억이 진화한 이유일 수 있다."

"우리는 공리주의적 윤리학자이고 극단적으로는 상황 의존적이다." 

"우리의 뇌는 극단적인 효율성에 적응한다. 이 때문에 뇌는 유입 되는 정보를 우리가 현재 세계에 대해 갖고 있는 믿음에 잘 맞게끔 왜곡한다. 고정관념 편견은 들어오는 정보를 특정한 저장 범주에 맞추려고 할 때 발생한다. 범주들은 종종 특정한 느낌이나 믿음과 연관되며, 이 연관으로부터 고정관념이 형성된다. 고정관념 이론은 1954년 <편견의 본성>이라는 책에서 고든 앨퍼트가 처음 제시하였고, 심리학 분야에서 널리 받아들여져 왔다."
"자연은 좌뇌를 해석하는 작업을 하도록 만들었고, 좌뇌는 주변세계를 해석하기 위해 과거와 현재의 지식을 조화시킨다."

"기억은 근본적으로 오류가 있는 시스템이며, 이 점을 더 많이 알 때까지 우리가 가져야 할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입장은 기억이 정확하다는 생각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의 자서전적 기억은 지금 우리가 품고 있는 자아 개념에 최대한 맞추는 방식으로 매일 새롭게 기억된다. 대니얼 데넷의 표현에 따르면, "기억의 기본적 의미는 유용한 정보를 저장하고 정확하게 그것을 복구하는 능력이며, 현재의 순간에서 우리에게 유용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자아에 대한 개념은 우리 자신에 대한 현재의 느낌과 믿음을 가장 정확히 표상하는, 계속 변하는 개념이다."

"믿음을 가지는 방법들은 많다. 종교를 가진 이들이 의존하는 규칙들과 규약들은 그것에 서명하고 가입할 때 설명되고 전달되는 믿음들이다. 과학적 규칙과 규약은 과학자들이 특정한 과학 공동체에 합류하기 위해 유지해야 하는 믿음들이다. 실용주의자들은 삶의 도전에 대한 사회의 결정을 믿음으로 삼는다. 전반적으로 이것이 믿음의 본성에 대한 나의 견해이다. 인간은 사건에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특정한 뇌 시스템이 그 반응을 해석한다. 이 해석으로부터 그에 따라 살아갈 규칙에 대한 믿음이 발생한다."
"우리는 좌뇌- 세상으로부터 들어오는 정보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부분 -가 믿음들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 믿음의 강도가 조작될 수 있는 방식들도 안다. 이것은 해결이 필요하고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다. 믿음은 강화, 반복될 수 있고, 정서적 꼬리표가 붙을 수도 있고, 경쟁하는 생각에 밀려 약화될 수도 있다."
"해석자가 만들어 낸 믿음들 중 우리가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종교적 믿음이라는 문화 현상이다."
"우리의 인지적, 사회적 틀에 가장 잘 맞는 종교적 개념들이 생존하기가 가장 쉽다는 것이다."
"인간은 믿음을 형성하는 기계이다. 우리는 빠르고 견고하게 믿음을 형성하고 심화시킨다. 우리는 믿음의 기원이나 빈번하게 나타나는 이상한 측면들은 잊어버리고 믿음을 우리 삶에서 의미 있는 지도적 존재로 생각한다. 우리는 믿음에 의존하고 그와 모순된 정보가 있어도 그 믿음을 고수한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뇌가 하는 일인 것이다. …… 윤리적 체계들은 수백 수천 년에 걸쳐 진화한 믿음 체계로부터 생겨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풍부하고, 은유적이고. 매력적인 생각들- 철학적이든, 과학적이든, 혹은 종교적이든 -이 모두 나름의 강력한 증거를 가진다고 해도 그것들이 결국 꾸며낸 이야기라는 점은 가혹하고 냉담한 사실이다."

"고정된 특성들과 상황들로 표현되는 인간 본성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고정된 심리적 특성들은 아기 때부터 존재하고, 인간은 다른 동물들에게는 없는 기술들과 능력들을 소유하며, 이 모든 것들이 인간 조건을 구성한다는 것도 안다. 또 우리가 진화 과정의 산물이라는 것도 안다. 우리는 커다란 동물이다. 인간의 기원에 대한 나머지 이야기들은 안락하고 감언이설이고 자극적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며낸 이야기들이다."
"도덕적 인지에 대한 연구는 세 가지 주요 주제들을 다룬다. 도덕 감정, 마음 이론, 그리고 추상적인 도덕적 추론이다. 행동의 동기가 되는 도덕 감정은 섹스, 음식, 목마름 등과 같은 기본 충동을 조절하는 뇌 줄기와 대뇌변연계 축에 의해 주로 움직인다. 마음 이론은 타인의 생각을 판단하는 능력을 가리키는 용어로, 이 마음 이론을 근거로 우리는 적절한 행동을 취할 수 있다. 즉 마음 이론은 사회적 행동을 지도하기 때문에 도덕적 추론에 본질적이다. …… '거울 뉴런', 안와전두피질, 편도의 내측 구조, 그리고 위관자 고랑이 마음 이론을 처리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추상적인 도덕적 추론은 여러 뇌 시스템들을 사용한다는 것이 뇌 영상에서 밝혀졌다."
"대부분의 도덕적 판단은 직관적이다. 우리는 한 상황이나 의견에 반응을 하고 왜 우리가 그런 방식으로 느끼는지를 설명한다. 즉 우리는 어떤 상황에 대해 자동적 반응을, 즉 두뇌 도출적인 반응을 한다. 우리는 그런 반응이 절대적 진리에 대한 반응이라고 믿는다. 나의 제안은 그런 생각이 해석자인 뇌에 의해 만들어지며, 그것이 절대적인 '옳음'에 대한 이론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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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도덕감정의 생물학적 바탕, 신경생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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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경제학 - 토드 부크홀츠

독서 2017. 4. 19. 16:39


유시민이 경제학 저술가로 활동할 때 한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경제학과는 인문계라서 수학을 못해도 될 줄 알았는데 막상 대학에 가 보니 이공계 못지 않게 수학을 잘 해야 하더라." 경제학이 출발점은 시장의 관찰이었지만 중간에 수학적 모델을 구축하는데 몰두하느라 경제학에 내재된 모순을 깨닫지 못하여 경제학이 경제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는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그래도 영향력은 여전하다. 왜냐하면 국가든 사회든 가정이든 경제 계획은 필수이고, 그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불완전하다 하더라도 경제학 모델에 의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행동경제학이 본격적으로 등장하여 주류 경제학의 오류를 분명하게 지적하기 전에도 경제학 내부에서 문제점을 지적하는 활동이 꾸준하게 있었다. 그것을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평이한 서술로 설명한 것이 바로 다음에 요약할 책이다.


이 책의 원 제목은 'From here to economics('여기'에서 '경제학'으로)'이다. '여기'는 경제학이 어렵고 따분하다고 인식되는 현재의 위치를 말한다. 그리고 경제학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겠다는 것이 저자의 의도이다. 그래서 번역 제목을 '유쾌한'이라고 붙였겠지만 책의 내용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는 점에서 제목이 좀 선정적이다. 아무튼 저자는 주류 경제학이 딱딱했음을 지적한다.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 영국의 역사가, 수필가)은 1800년대에 이미 경제학자들을 '우울한 과학자들(dismal scientists)'이라 불렀다. 이러한 유형의 모욕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현대의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모욕을 받을 만하다. 분명히 그들은 사물의 한 측면 만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제학이 우울한 과학이 된 이유를 설명한다.
"생물학자와 달리 경제학자는 통제된 환경에서 실험을 할 수 없다. 따라서 경제적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수학적 모델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경제학의 대가들은 스스로를 강건한 과학자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교육자들에 대해서는 기껏해야 절름발이로 묘사한다. 사실 경제학의 입장에서 볼 때 교육 시스템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절름발이다."


그러나 저자는 경제학을 설명하면서 수학을 전혀 동원하지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주류 경제학의 문제는 많다. 다음에 요약한 내용은 주류 경제학에서 풀지 못했던 것들의 일부를 보여준다.
"우리는 영원한 호황도, 무한한 침체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런 현상이 불가능하다고 증명할 수도 없다. 마치 아직까지 영생한 사람이 없지만 의사는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는 이치와 마찬가지다."
"현직 정치가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흔히 발표된 낮은 실업률에 코웃음을 치며 낙심한 노동자들(discouraged workers)도 실업률 산정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문제는 낙심한 사람들과 일하기 싫어서 노는 사람들을 구분할 도리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이다. 경제학 이론들은 때때로 단순한 것을 심오하게 만들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위대한 경제학자인 하이에크(Friedrich von Hayek)는 사람들이 모든 사실을 다 알지 못해도 과감히 행동해 나갈 수 있을 때 문명이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시장도 마찬가지다. 시장에서는 관련 정보를 모두 다 끌어모으는 불가능한 작업을 하지 않고도 사람들이 의사 결정을 내리고 행동을 할 수 있다. 어떻게 가능할까? …… 하이에크의 이 '무지해도 된다는 주장(ignorance argument)'은 정부가 경제에 개입해야 한다는 논리에 대한 정면 공격이다."
"물론 자유 시장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생산자들이 담합하여 소비자의 돈을 빼앗는 경우가 있다. 노벨상 수상자인 내시(John Nash)같은 '게임 이론가들(game theorists)'이 우리에게 알려 준 것처럼 때때로 생산자들끼리 경쟁을 제한하기도 한다. 마치 사자들이 한 우리를 공유하는 것처럼 생산자들은 서로에 대한 공격을 자제한다. 그러나 정부의 개입은 종종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경제 교과서에서는 잘 알려진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소비재 상품들의 경우 거의 무적이며 난폭하게 가격을 조정할 수 있다고 가르쳐 왔다. 그러나 그 기록은 허점 투성이다."
"그러나 한 사회의 경제적 발전은 경제학자들이 늘상 강조하는 기계나 토지 따위에 못지않게 교육에도 의존하고 있음을 경험적 연구들은 보여 주고 있다. 국가 역시 교육 시스템의 발전이 없다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
"경제학자들은 환경 문제를 다루면서 '공익'과 '사익'의 균형 이라는 문제에 부딪친다."
"경제학자들은 우리에게 불확실성 uncertainty)을 깨뜨리는 쉬운 방법은 없다고 가르친다. 완고한 옛 본위제를 이용하든, 아니면 고정환율을 이용하든 그 결과는 마찬가지다. 불확실성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가 몇 가지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해도 어차피 우리는 각본을 알 수 없는 드라마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통화 정책, 재정 정책, 부채 문제, 인플레이션 문제, 미시경제학, 독점 문제, 마케팅 이론, 환경에서의 외부 효과 등을 잘 설명한다. 그렇다고 쉽다는 뜻은 아니다.

경제학자들 중 돈을 많이 번 사람은 리카도와 케인즈 두 사람뿐이라고 한다. 돈의 흐름을 추적하는 경제학자들 중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없다는 것은 주류 경제학의 아이러니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도 주류 경제학에서 금융을 잘 다루지 않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대부분의 경제학 교과서들을 보면 투자와 금융 시장에 대한 주제가 항상 빠져 있다.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 교수들이 자신들의 약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예를 들어 더 많은 경제학자들이 주식 시장을 연구할수록 그들 자신들을 포함하여 어느 누구도 시장에서 궁극적으로 승리할 수 없다는 회의적 경향이 더 많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효율적 시장 가설을 요약하면, 주식 시장은 공개된 모든 정보가 끊임없이 주식의 가격에 반영되어 아주 빠르게, 심지어 빛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변화한다는 가설이다."
"따라서 효율적 시장 가설의 옹호자들은 제아무리 잘난 사람들도 시장 평균 수익률 이상을 올릴 수 없다는 그들의 주장을 완강히 고수하고 있다. '어떤 주식을 선택할까'를 놓고 신중히 검토하는 일은 분명히 쓸데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주식 시장의 연구와 분석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환락가의 밴드 연주자들이나 마찬가지다. 항상 화끈한(?) 장면 주변에서 연주를 하고 있지만 정작 그 화끈함을 맛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글을 마무리한다.
"일찍이 슘페터(Joseph Schumpeter)는 기업가들의 의욕이야말로 성장의 원동력이라고 가르쳤다. 기업가들은 혁신하고 창조하고자 하는, 특별하면서도 '심리적인 의욕'에 휩싸여 현재의 상태를 뒤흔들어 놓는다. …… 마찬가지로 케인스는 이른바 '동물적 활력(animal spirits)'이 자본주의에 동력을 부여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물적 활력이란 투자가들을 자극하여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도록 만드는 적극적인 힘이라고 케인스는 생각했다.
  이 모든 신비스런 힘들은 정상적인 경제학자들의 이론으로는 분석되기가 힘들다. 그러나 우리는 이 힘들이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환경에서 크게 번성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 책이 출판된 1990년대에는 행동경제학이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저자는 주류 경제학의 문제점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으나, 경제 현상의 설명은 주류 경제학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주류 경제학의 문제를 시장의 관찰을 통해 드러냈다는 점에서 행동경제학으로 가는 길을 닦는데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경제현상을 매끄러운 문장을 잘 설명하고 있어서 한번 읽어볼 가치는 충분하다. 그래서 독서 추천은 '일독을 권함'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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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경제학, 금융시장, 효율적 시장 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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