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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의식의 수수께끼를 풀다 - 데니얼 데닛

thinknew 2017. 2. 5. 17:20



이 책의 번역을 감수한 서울대학교 장대익 교수는 데니얼 데닛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철학자로서는 보기 드물게 인지과학과 생물학의 영역을 넘나든 1세대였으며, 심지어 몇몇 과학적 탐구에 결정적 훈수를 두기까지 했다."

저자 자신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철학자가 안락의자 심리학이나 신경과학, 물리학 등에 탐닉한다는 (옳은) 비난을 받는 일이 종종 있고, 철학자의 확신에 찬 선험적 선언이 나중에 실험실에서 부정확한 것으로 입중되었다는 곤혹스러운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이런 불을 보듯 뻔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 철학자들이 택하는 합리적인 대응책 하나는 나중에 실증적인 발견으로 반증되거나 확증될 수 있는 일을 논할 위험이 아예 없거나 적은 분야인 개념적인 영역으로 조심스럽게 물러나는 것이다. 또 다른 합리적인 대응책은 안락의자에 앉아서 연구하는 것이다. 실험실에서 얻어낸 최고의 결과, 실증적인 학문 분야 연구자가 힘들여 얻어낸 결과를 이용하여 자기자신만의 철학을 만들어 가는것이다. 이때 철학자는 개념상의 걸림돌을 조명하고, 특정한 이론적인 아이디어가 암시하는 것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위태로운 영역까지 파고들어가기도 한다. 개념적인 문제에서 과학자라고 일반인보다 혼란을 더 잘 다루는 것은 아니다. 과학자도 여러 연구자의 실험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심할 때는 상당한 시간을 안락의자에서 보낸다. 그런 순간에는 과학자가 하는 일을 철학자가 하는 일과 구분하기 힘들다."
저자의 경우 당연히 후자의 대응이고 또 실험의 영역을 제외하면 철학자의 생각하기와 과학자의 생각하기가 다르지 않음으로 철학과 과학이 상호보완적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저자가 의식의 신비를 풀겠다고 나섰다. 저자의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17세기에 근대과학이 동튼 이후, 자아라는 것이 무엇이건 간에 현미경 아래에서도 보이지 않고, 자기성찰로도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동의가 이루어졌다. 그런 사실이 어떤 사람에게는 자아라는 것이 '비물질적인 영혼', '기계 속의 유령'이라는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자아가 형이상학적인 열띤 상상력에서 나온 산물일 뿐, 전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어떤 식이되었든 자아라는 것은일종의 관념이어서 그 존재가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공격당할 일도 없다는 생각을 갖게했다. 어떤 이는 중력의 중심도 진짜로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는 않지 않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것으로 정말 충분한가?"

왜 저자는 의식의 신비를 풀고 싶어할까? 저자의 말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신비는 흥미진진하고, 삶을 재미있게 만들어 준다. 영화를 보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 줄거리를 말해 흥을 깨는 것을 반길 이는 없다. 일단 비밀이 새버리면 그 전까지 두근두근 마음 졸이게 하던 재미가 사라져 버린다. 그러니 당신도 조심해야 한다. 의식이 무엇인지 밝히려는 나의 시도가 성공한다면 의식에 관한 기본적인 과학지식을 얻는 대가로 신비를포기해야 할 지도 모르니 말이다. 어쩌면 이것은 공정한 거래가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탈신비화를 신성모독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이 책을 지적 반달리즘vandalism, 다시 말해 인류의 마지막 성지에 대한 공격으로 봐 주기를 바란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바꾸어 놓고 싶다."
"의식의 신비를 규명하는 일이 왜 유감스러운 일이 되어야 하는가? 물론 그것은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잃어 버리는 것과 비슷할 것이고, 그 상실을 아무리 잘 만회한다 해도 상실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우리가 세상물정을 더 잘 알고난 후에 사랑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생각해 보라."


또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우려도 가지고 있다.
"의식의 개념이 '과학의 몫'이 된다면 도덕행위자이며 자유의지를 지닌 우리의 의식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만일 의식적 경험이 오로지 움직이는 사태로 '환원'된다면, 우리가 느끼는 사랑과 고통, 꿈과 즐거움에는무슨 일이 일어날까? 의식적인 인간 존재가 '단순히' 살아있는 물체라면 우리 의식이 하는 일에 어떻게 옳고 그름이 있겠는가? 그런 두려움 때문에 의식의 신비를 규명하려는 시도에는 저항과 훼방이 따른다."
그러나 저자는 긍정적인 면을 보라고 말한다.
"이제 긍정적인 쪽으로 시선을 돌려 일찍이 신비가 규명된 후에 일어났던일들을 생각해 보자. 신비가 규명되었다고 해서 경이감이 줄어들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신비를 고수하고 있을 때보다 더 심오한 아름다움과 우주의 오묘하고 눈부신 비전을 더 많이 발견했다. 과거에 간직하던 대부분의 '기적'은 엉터리 상상력에서 나온 것을 은폐하려는 것이거나, '데우스엑스마키나deus ex machina (극이나 소설에서 예기치 않게 나타나 절망적인 상황을 해결해 주는 인물 또는 사건-옮긴이)'에 감추어 둔 의미없는 속임수일 뿐이었다. 황금마차를 몰고 하늘을 가로 지르는 불의 신은 우주의 불가사의를 파헤치려는 현대의 노력에 비하면 아주 단순한 만화에 불과하며, 대대손손 내려오는 복잡한 DNA의 생명 복제기전은 슈퍼맨의 힘을 빼앗는 크립토나이트kryptonite만큼이나 흥미로운 생명의 약동이다. 우리가 의식을 파헤쳐 신비가 사라지면 의식에관한 생각은 달라지겠지만, 아름다움은 여전할 것이고, 경이감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의식의 신비를 푸는 첫발을 이원론 깨기로 부터 시작한다.
"마음이 뇌와 이런 식으로 분명히 구별되고, 특별한 재료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는 이원론은 오늘날 큰 설득력을 얻은 동시에 그만큼 심한 반박도 받고 있다. 길버트라일Gilbert Ryle이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을 '기계속 유령의 도그마Dogma of the Ghost in the Machine'라 부르며 불후의 일격을 가한 이후(1949), 이원론자들은 방어적인 태도를 취해 왔다. 이원론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생각 중 가장 지배적인 것은 유물론materialism이었다. 세상에는 오로지 한 종류의 질료, 다시 말해 물리학, 화학, 생리학에서 말하는 물질적 질료인 물질만 존재하며, 마음도 물질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마음이 뇌라는 주장이다."
"정신 질료의 가장 매력적인 특징은 그것이 너무나도 신비로워서 과학이 영원히 범접하지 못하게보장해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을 정도다. 이원론의 가장 불합리한 특징이자, 내가 이책에서 무슨 일이있더라도 이원론은 피해야 한다는 견지를 취한 이유도 이원론이 지닌 근본적으로 반과학적인 입장 때문이다."
"뇌는 생각하는 것이 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이 뇌일 수는 없다는 생각인 이원론은 여러가지 이유로 유혹적이지만, 우리는 그 유혹에 저항해야 한다. 이원론을 택하는 것은 시도도 해 보지 않고 패배를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유물론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 자체로 의식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지도 못할 뿐아니라 그 수수께끼가 뇌과학에서 직접적인 추론의 몫이 되지도 않는다. 어떤 식이 되었든 뇌는 마음일 것이다."


의식의 신비를 풀어가는 방법론으로는 타자현상학과 다중원고 모형을 동원한다. 사람들은 자의식은 너무나 주관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자의식이 너무나 주관적이어서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없다고 하면 결국 이원론에 굴복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자의식도 마치 객관적인 사물처럼 취급하여 관찰하는 것이 타자현상학이다. 그리고 다중원고모형이란, 데카르트 이원론에서 등장하는 데카르트 극장모형 즉 인간의 감각을 모아 분석, 판단하고 행동을 지휘, 명령하는 본부가있다는 모형의 대안 모형으로 뇌의 작동 방식이 마치원고 교정자가 여러개의 원고를 늘어놓고 동시에 교정을 해 나가는 것처럼 감각 정보를 처리한다는 모형이다. 즉뇌에 중앙통제장치같은 곳은 없고 모든 정보처리가 뇌 전체에 분산, 병렬처리된다는 것이다.뇌의 정보처리 방식이 병렬, 분산처리라는 것은 신경생리학에서 입증된 것이다. 이것은 또한인공지능이 의식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는것을 암시한다. 실제로 저자도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

저자가 제묵을 '의식의 수수께끼를 풀다'라고 했지만 이 책에서 그 수수께끼를 명확하게 푼 것은 아니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이원론, 뇌에 중앙통제장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 인공지능은 의식을 가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반박하는 논거를 철학적 추론으로 풀어간다. 철학적 추론이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므로 따라가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종교적 믿음까지 포함하여 '신비는 신비로 두는 것이 좋다'라고 굳게 믿는 사람이라면 모르되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는 것이 좋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수고해서 읽어볼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