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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859에 출판되었으니 19세기 판 ‘성공/자기계발’에 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시대의 주류 사조였던 청교도 윤리, 즉 근면, 성실, 정직, 금욕, 소명으로서의 직업 등을 바탕으로 청년들에게 성공적인 삶에 이르는 길잡이로써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문제는 이 또한 안내일 뿐이지 해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 자신도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기는 하다.
“인간은 성공을 자기 마음대로 거둘 수 없다. 그러나 더 노력하면 성공할 자격을 갖출 수는 있다."

옳든 그르든 인간에게는 희망이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한번 읽어 볼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하지만 나처럼 좋은 쪽이 되었든 나쁜 쪽이 되었든 정확한 사실 또는 현실을 알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결과로서의 성공 사례들을 길게 서술해 놓은 거의 600 페이지에 이르는 이 책을 굳이 읽어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건성으로 읽었긴 하지만 이왕지사 읽었으니 몇가지 생각해 볼 만한 구절들을 중심으로 나의 생각을 전개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처음에는 굳이 읽어 볼 생각이 없었지만 나의 해석을 보고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읽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한 나라의 정부는 국민 개개인의 수준을 반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보다 앞서가는 정부는 국민의 수준에 맞게 끌어내려지고, 국민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정부는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국민의 수준에 걸맞게 끌어올려진다."
성공과는 별 상관이 없는 구절이긴 하지만 현재의 한국 정치 상황과 관련하여 생각할 거리가 있다. 노무현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배척받았던 것을 보면 ‘국민보다 앞서가는 정부는 국민의 수준에 맞게 끌어내려진다’는 말은 맞는 말 같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는 국민의 수준보다 앞서가는 정부일까? 뒤쳐지는 정부일까? 내 생각에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것 같다. 따라서 위의 서술이 맞다 하더라도 박근혜 정부가 끌어올려질 가능성은 없는 것 같다.

"인생 행로에 극복하기 불가능한 장애물은 없다. 노력과 인내의 힘을 모아 활용되지 않았다면 휴면 상태에 있을 생명력을 역경이 자극함으로써 최상의 조력자가 된 경우도 많으며, 장애물을 극복하고 승리를 쟁취한 사례가 실로 많다. "의지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속담은 옳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의지가 충만하다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더라.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맨손이나 지식만 가지고는 많은 일을 할 수 없다. 일을 하려면 도구와 남의 도움이 있어야 하고, 남의 손도 필요하고, 남의 지식도 필요하다. – 베이컨"
이 말은 시대를 초월하여 염두에 두어야 할 잠언일 것이다.

"가치 있는 목적을 확고한 각오로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위대한 인격의 기초를 닦는 데 가장 중요한 일이다. 힘은 지루하고 고된 일과 무미건조한 일상사를 참고 견뎌내게 해주며, 인생의 여정에서 한 단계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게 해준다. 목표를 성취하려면 천부적인 재능보다 좌절하지 않고 위험을 마다하지 않으며 힘차게 전진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자기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거나 목적을 달성하려면 힘만 가지고는 안되며, 활기차게 끊임없이 노력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의지력은 바로 인격의 중심적인 힘, 즉 인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의지력은 참된 희망의 기반이 되고, 삶에 진정한 향기를 불어넣는 것은 희망이다."
저자 자신도 희망이 중요하다고 했으니 청년들에게 희망을 불어 넣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희망의 기반이 되는 의지력을 어떻게 가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 있어서 희망 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공허하다.

"논리학자들이 자유로운 의지에 관해 이론적으로 어떤 결론을 내리든 상관없이 개개인은 실제로 선과 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인간은 물에 내던져져 물이 흘러가는 대로 떠내려가는 미약한 존재가 아니며 헤엄을 칠 수 있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 수족을 움직여서 파도와 싸우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크게 방향을 바꿀 수도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의지력을 절대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이 정립되기 전의 생각이어서 이 자체를 문제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행동심리학이나 진화심리학 같은 분야에서 과학적으로 규명한 것에 의하면 ‘자유로운 의지’라는 것의 존재 자체가 거의 부정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결국 믿고 싶은 사람들만 믿는 그런 이야기가 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진부하게 들릴지 몰라도 이 속담은 진리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것은 분명하나 길이 있다는 것과 실제로 성공에 이른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어서 듣기에는 좋으나 반쪽짜리 서술이다.

"돈을 인생의 주목적으로 여겨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하찮게 생각해도 안된다. 육체적 안락과 사회적 복지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절약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욕구를 참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런 측면에서, 절약은 동물적 본능에 대한 이성의 지배를 의미한다. 절약은 인색함과 전혀 다르다. 항상 남에게 아낌없이 베풀 수 있는 여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돈을 우상으로 받들지 않고 유용한 수단으로 생각한다.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 조나단 스위프트는 이렇게 말했다.
"돈은 머리에 넣고 다녀라. 절대로 가슴에 품지 마라."
절약은 분별력의 딸이고 절제의 누이이며 자유의 어머니다."

위의 두 구절은 돈에 대한 관념에 대한 것이다. 돈을 무조건 멀리 하라는 우리의 가르침보다는 점 더 현명한 것 같다.

""공부에 대한 인내심 결여는 현 세대가 가진 정신질환이다" 이 말은 오늘날에도 적용된다. 배움에는 왕도가 없다고 믿으면서도 쉬운 길은 있을 거라고 굳게 믿는 것 같다."
젊은이들이 열심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저 때나 지금이나 별 다를 바 없다.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졌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떤 목표와 목적을 위해 그 지식을 소유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지식의 목적은 지혜를 원숙하게 완성하고 인격을 향상시켜 더 나은 사람, 더 행복한 사람, 더 유능한 사람이 되어 높은 인생의 목표를 더욱 활기차고 효율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지식을 이렇게만 사용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지식을 오용하는 인간들이 너무 많다.

"아무리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현재나 과거의 위대한 사상가를 누추한 자기 집에 맞아들여 함께 앉아 말동무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올바른 지향점을 가지고 독서하는 습관을 들이면 커다란 기쁨과 자기 개선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원천을 확보할 수 있으며, 인격과 행동의 방향에 적절한 억제력을 행사해 매우 유익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자기 수양이 부귀를 가져다 주지 않더라도 언제나 한층 차원 높은 사상을 인생의 동반자로 삼을 수 있게 된다. 어느 귀족이 한 현자에게 경멸하는 말투로 물은 적이 있다.
"그렇게 심오한 철학을 깨달아서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현자의 대답은 이러했다.
"적어도 내 마음 속에 상류 사회를 건설하게 되었지요.""

나도 이런 마음으로 책을 읽는다. 다른 사람들도 이런 마음을 가져주기를 바라기도 하고.

"인간의 삶과 이 세상에는 불멸의 요소가 있다. 어느 누구도 우주에서 혼자 살 수 없으며 상호 의존 체제의 구성원이 된다. 개개인의 행동에 따라 인류의 복지가 영원히 개선되거나 악화될 수 있다. 현재는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고 선조들의 생애와 모범이 우리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과 같이 우리의 일상 활동도 미래 사회의 조건과 성격 형성에 이바지하게 된다."
오랫동안 철학자들은 저렇게 믿었으며 그 불멸의 요소를 알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근대의 과학은 불멸의 요소란 없다라고 이야기한다. 단지 이야기하는 것만이 아니고 많은 증거를 제시한다.

"수학자 겸 발명가 찰스 배비지Charles Babbage가 이러한 생각을 그의 저서에서 멋진 문장으로 표현했으니 그의 글을 여기 인용해 본다.
“모든 원자는 선 또는 악이라고 표시되어 있으며 갖가지 운동성을 갖추고 있다. 철학자들과 현인들이 수만 가지 방법을 혼합하고 결합해 이 운동성을 정의했으나 그 정의는 모두 가치가 없는 엉터리다.""

철학자들이 추론만으로 운동성을 알려고 한 것이 엉터리였듯 원자에 선과 악이 표시되었다는 생각도 엉터리다.

"전기집의 주요 용도는 그 속에 풍부하게 담겨 있는 고결한 인격을 본받기 위한 것이다. 위대한 선조들은 생애의 기록과 그들이 행한 업적을 통해 우리 가운데 늘 살아 있다. 선조들은 지금도 탁자에서 우리 곁에 앉아서 우리의 손을 잡고 우리가 공부하고 존경하고 본받아야 할 모범을 보여 주고 있다. 고결한 삶의 기록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선조들은 모두 후손에게 영원한 선행의 원천을 유산으로 물려준 것이다. 이 기록은 다가올 미래 언제든지 인격을 도야하는 데 모범이 될 것이다."
위인들의 삶을 모범으로 삼아 우리의 삶을 조절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이다. 문제는 그 인물이 진정으로 모범으로 삼을 만한 인물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바로 이러한 점에서 좋은 습관을 기르면 인격을 강화하고 지탱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습관의 묶음’이라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습관은 제2의 천성이다. 이탈리아 시인 메타스타시오Metastasio는 행동과 생각을 반복할 때 생기는 힘에 대해 강력하게 주장했다.
“인류의 모든 것은 습관이다. 심지어 미덕도 습관일 뿐이다.""
"브로엄은 청년 시절에는 본보기에 따라 훈련하는 것이 극히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신의 가호 아래 모든 것을 습관에 맡긴다. 어느 시대든지 학교 교사나 입법가들은 주로 습관에 의지해 일을 처리한다. 습관은 모든 일을 쉽게 만들고 익숙해진 관례에서 벗어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위의 두 구절은 습관에 관한 언급으로 현대 심리학이 밝혀낸 바와 일치한다. 어느 시대에나 관찰을 바탕으로 하여 올바른 추론을 해 내는 사람들이 있다. 문제는 사전, 사후를 막론하고 현실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추론에만 의존하는 사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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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론은 자기 계발서에 흔히 등장하는 주제이다. 그리고 리더는 주로 일반적인 대중들은 보일 수 없는 정신적 능력을 보임으로써 리더로 추앙받는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의문을 던질 수 있다. 세상에는 리더도 있고 팔로워도 있는데, 왜 유독 리더만 부각될까? 그건 아마도 리더가 된다는 것과 '성공'이라는 것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리더일 수는 없을테니 리더와 팔로워란 '성공'과 '성공하지 못함'의 상태라기 보다는 사회 조직에서의 역할 분담이라는 것이 타당한 추론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리더가 되고 싶다'라든가 '성공하고 싶다'라는 인간의 욕망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기 때문에 팔로워들에게는 별로 위안이 되지 못할 것이다.

한편,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정신도 생물 일반 그리고 육체적인 현상의 연장선 상에 있는 현상이라는 것을 밝혀놓았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것의 진화적 원인도 역시 밝혀 놓았다. 사회가 리더와 팔로워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리더가 된다는 것과 팔로워가 된다는 것의 진화적 원인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 진화적 원인을 규명한 것이 바로 다음에 요약을 올릴 책이다.




이 책의 원제목은 'Selected: Why Some People Lead, Why Others Follow, and Why It Matter(선택된 것: 왜 어떤 사람은 리더가 되고 어떤 사람은 추종자가 되고, 왜 그게 중요한가)'이다. 그런데 왜 번역 제목은 원제와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빅 맨'인가? 그것은 책의 내용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빅 맨'이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진화 리더십 이론'이라고 명명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이 큰 그림에 걸맞은 이름이 있다. 바로 진화 리더십 이론Evolutionary Leadership Theory: ELT이다. 이 이름은 리더십과 팔로워십이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생겨났고 그 토대가 인간이 진화하기 훨씬 전부터 갖춰졌다는 우리의 논점을 반영한다. 우리는 이를 적응 행동adaptive behavior이라고 부른다. 과학자들이 어떤 행동을 표현하는 데 ‘적응’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이는 진화 과정에서 생물이 환경에 적합하도록 변화함으로써 번식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그 특정한 행동이 생겨났음을 의미한다. 진화 과정을 통해 인간 사회에 리더와 팔로워가 자리 잡았고, 결국 그러한 행동의 원형原型이 인간 두뇌에 '내장'되었다."
즉 리더가 된다는 것, 그리고 팔로워가 된다는 것이 둘 다 진화적 원인이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입증하기 위한 도구로 진화심리학을 동원한다.
"진화는 도덕적으로 선한 행동과 악한 행동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명심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진화에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유기체가 번식을 할 때까지 산다는 사실뿐이다(그러나 진화는 우연하게도 적절하게 발전된 선악의 개념을 우리에게 주입해왔으며, 우리는 이러한 션악의 개념을 사용하며 '선한' 집단 구성원에게 상을 주고 불충하거나 이기적인 구성원에게 벌을 주어 집단의 결속을 다진다는 사실을 보게 될 것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육체에 적용되는 것이 정신에도 적용된다고 가정한다(그리고 이 책은 진화심리학을 세부적으로 파고 들지는 않지만 분명히 진화심리학을 일종의 도약대로 사용한다.). …… 우리의 정신이 진화에 의해 다듬어졌다는 생각은 (주로 학계 밖에서)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었지만, 뇌가 신체의 일부라는 점을 받아들이면 오히려 인간의 몸은 환경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뇌는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떨어진다."


자기 계발서에 흔히 등장하는 리더십 이론을 잘 정리한 구절도 있어 여기에 인용한다.
"리더십 분석에 관한 한 파이를 자르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 듯하다. 인물의 자질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고 행동 방식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으며, 주어진 상황이나 리더-팔로워의 관계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 대체로 말해서 이런 다양한 관점을 통합하면 10여 가지의 리더십 이론이 나오며, 각각의 측면을 이리저리 짜 맞추면 특정한 리더를 설명할 수 있다(각각의 이론은서로 배타적이지 않다). 이 10가지 이론은 위인론(리더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고나는 것이라는 이론. 릭 레스콜라처럼 '필수적 자질'을 갖춘 사람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가장 근접한 개념이다), 특성 이론(위인론에서 파생한 것으로, 리더는 그들이 보여주는 청렴이나 신뢰성 등의 특성 또는 속성으로 구분된다고 가정하는 이론), 정신분석 이론(모든 사회 집단은 가족을 대신한다는 프로이트의 사상), 카리스마적 리더십(리더는 그 성격만으로 팔로워들을 끌어당긴다는 이론), 행동 이론(효과적인 리더십은 특정한 행동들에서 나온다는 이론), 상황 이론(리더십이 발휘되는 방식이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이론), 상황 적응 이론(상황 이론을 확장한 것으로, 상황과 더불어 리더십이 요구되는 직무의 종류와 리더가 가진 힘의 수준 같은 변수들까지 고려하는 이론), 거래적 리더십 대 변혁적 리더십 이론(인습적인 유형의 리더십을 비전과 영감을 주는 유형의 리더십과 대조하는 이론), 리더십 이론(엄격한 계층제를 피하고 리더십 역할을 공식적으로 지정하기보디는 자연스럽게 공유하는, 좀 더 유동적인 모델을 취하는 이론), 마지막으로 섬김 리더십 이론(리더십은 리더 자신의 희생을 감내하더라도 오직 집단에 이익이 되는 쪽으로 실행되어야 한다는 이론)이다."

이 '진화 리더십 이론'에 의하면 리더십과 팔로워십이 진화의 산물로서 인간 본성에 모두 내재되어 있다. 다만 상황에 따라 리더십이 발현되기도 하고 팔로워십이 발현되기도 할 뿐이다. 이는 도덕성의 개입없이도 사회적 협동이 자연 발생한다는 것을 보인 게임 이론에 의해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
"리더십은 사회적 협동에 대한 요구만 있으면 어김없이 나타난다"
"진화 리더십 이론이 우리에게 알려주듯이 인간은 무리를 따르는 본성을 타고난다. 팔로워십은 인간 정신에 내재한 일종의 디폴트 세팅이다."
"이렇듯 인간이 타고난 팔로워인 이유는, 첫째, 집단의 결속을 위해서이고, 둘째, 단독으로 움직이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것이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 이유는, 리더를 따름으로써 자신이 언젠가 리더가 되고자 할 때 필요한 자질들을 익히고 습득하기 위해서이다."


'빅 맨'에 대한 설명이 없을 수 없다.
"빅맨의 개념을 발전시키는 데 많은 기여를 한 인류학자 마셜 살린스Marshall Sahlins는 이렇게 말했다 “빅맨은 자유경제 활동을 하는 강인한 개인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공익에 대한 표면적인 관심, 자기 이익을 위한 노련하고 경제적인 계산이라는 좀 더 심오한 기준, 이 두 가지를 결합시킨다.” 살린스의 활약에 힘입어 빅맨이라는 용어는 인류학에 편입되었다. 살린스는 빅맨이라는 용어가 다양한 문화권의 ‘리더’를 나타내는 넓은 의미로 쓰인다고 밝혔다."
"분명 사람들은 좋은 평판을 얻으려고 기부를 했다. 실제로 우리가 참가자들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 그들은 아낌없이 기부하는 사람을 가장 존경했고 그런 사람을 그룹 리더로 선출하기를 원했다. 또 다른 연구에서 우리는 사람들이 그룹 리더의 자리를 맡게 되면 공적으로 더 많은 아량을 베풀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실험은 현대인들도 (빅맨처럼) 자애롭고 공평하게 행동하는 사람으로 비치기를 원하며 이기심만을 추구하는 탐욕스러운 인간으로 보이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현대 사회에서 정치적 리더는 중요하고, 유권자들도 팔로워로써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정치 시스템의 진화론적 전개 과정을 요약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발생 시점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렇듯 오랫동안 이어져온 평등주의 시대는 대략 1만 3000년 전 농업이 확산될 때까지 아마 지속 되었을 것이다. … 농업이 확산되자 개인들 간에 부와 지위의 차이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무리 사회는 빅맨이 이끄는 부족사회로, 이는 추후에 지정된 리더가 이끄는 군장 사회로 발전했다. 분명 민주주의는 인류 역사에서 여러 번 등장했으며, 이 책을 읽는 독자 대부분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는 행운을 누리 고 있을 것이다(그래도 아직 세계의 많은 이가 이러한 특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근대 민주주의의 기원을 기원전 5세기 무렵의 아테네나 로마로 돌리는 것은 잘못이다[그렇지만 ‘민주주의Democrac/의 어원은 그리스어 ‘Demos(민중)’와 ‘Kratos(지배)’의 합성어로, ‘민중의 지배’를 의미한다]. 근대 민주주의는 (우리가 나무에서 사바나로 내려온 이후) 최소 200만 년 동안 인류와 함께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평등주의와 민주주의 성향이 발현된 것뿐이다."
"이처럼 처음에는 지배적인 영장류, 그 다음에는 민주적 성향의 인간, 마지막으로 농업의 도래와 함께 독재적 성향의 인간이 나타나기 까지 오랜 진화 역사를 거친 우리는 마침내 리더십 지형을 형성하는 마지막 단계에 도달했다. 이는 250년 전에 일어난 산업혁명의 시작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문화권 출신에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다양한 사람이 모여 있는 근대 국민국가가 등장했다. 노동 분업은 정점에 달했고, 혈연관계나 부족에 대한 충성심 (군장사회와 초기 국가에서의 선발 기준)이 아닌 능력과 기술을 바탕으로 전문가가 선택되었다. 노예 신분이었던 조상들과 달리 근대 국민국가의 국민들은(그리고 노동자들은)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선택권을 가졌으므로 횡포한 리더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이러한 자유는 힘의 균형을 리더들로부터 이동시켰고 민주주의에 힘을 보탰다. 리더들은 이제 팔로워들을 존중하지 않고는 통치할 수 없게 되었다. 팔로워들을 고려하지 않고 통치하는 자들은 심각한 손실을 경험하게 되었다."


저자는 팔로워 본성을 타고난 인간의 ‘권력자에게 맞서기 위한 전략Stratege To Overcome the Power, STOP'도 이야기하고, 리더 본성을 타고난 권력자들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Strategy To Enhance Power, 즉 STEP'도 설명한다. 그러면서 이 양자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이론으로서의 '진화 리더십 이론'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통치자가 극한의 선과 극한의 악 모두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은 인간 본성이 복잡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우리 내면의 영장류는 권력과 지배를 열망한다. 권력을 갖고 지배하는 것이 유전자를 퍼뜨리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편 식량을 찾아 돌아다니던 원시시대에 우리는 협동이 이롭다는 점을 깨달았고 평등주의 정신을 갖게 되었다. 진화 리더십 이론은 이러한 인간의 모순적인 양면성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틀이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리더와 팔로워의 갈등은 늘 있어 왔다. 그리고 진화 리더십 이론은 리더와 팔로워들이 상호 협동하는 쪽으로 진화해 왔다는 것을, 그리고 리더십의 부작용인 독재의 출현에 대한 경계심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갈등 상황에서 상당한 자기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영장류와 크게 다르다. 상호 의존적이고 평등적인 집단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결과, 그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은 합의를 통해 갈등과 충돌을 해결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또한 이것은 서열에 의한 지배보다는 리더십을 발휘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힘의 균형을 변화시켰다. 리더란 단순히 서열상의 알파메일이 아니라 '평등한 동료들 중 제1인자'이다."
"우리는 때때로 지배와 조종에 능한 리더를 목격한다. 이들은 대개 ‘3대 악'이라고 불리는 사악한 특성을 갖고 있다. 즉, 인위적 리더는 대개 자기애가 과도하게 높고, 마키아벨리적 성향이 있으며, 사이코패스적 증세를 숨기고 있다. 이 세 가지 중에 어느 하나의 특성이라도 강한 사람은 권력을 쟁취하기가 더 쉽다. 그러나 그 권력은 오래 유지하기 힘들며, 결국에는 부하들이 그들의 본 모습을 발견하게 되므로 이들 3대 악을 겸비한 리더는 결국 리더의 자리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다. 때때로 이런 리더는 커다란 충돌이 발생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재빨리 이 조직에서 다른 조직으로 옮겨 간다."


이 책은 도덕 철학에서 오랫동안 고심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럽게 설명하지 못했던 리더십의 문제와 더불어 완전히 소외되어 있던 팔로워십의 문제를 한꺼번에 명쾌하게 설명한 진화심리학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강력 추천' 목록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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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과학이 정립되면서 의학도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그런데 의학은 먼저 증상을 다스려야 하는 기술의 속성 상 질병의 직접 원인을 찾는 것에 주력했다. 그러는 동안 생물학에서는 진화론과 다윈의 자연선택론이 정착되면서 "생물학은 진화론에 근거해야 이치에 맞다"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설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문제는 인간은 생물이면서도 여전히 차원이 다른 존재로 취급되고 있었기 때문에 정신 뿐만 아니라 인간의 몸과 질병을 다루는 의학도 다윈의 진화론에서 일정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이 인간의 정신도 뇌의 활동에 의해 드러난다는 점을 점점 더 분명하게 입증해 감에 따라 인간도 생물종의 확연한 일부임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말은 그 인간을 다루는 의학도 진화론적 고려를 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질병의 직접 원인 뿐만 아니라 진화론적 원인까지를 다루는 의학의 새로운 조류를 '다윈 의학'이라고 한다. 다음에 보일 책은 바로 이 다윈 의학의 필요성을 대중들에게 뿐만 아니라 의사들에게 강조한다.



저자 중 네스는 정신 의학자이고, 윌리엄스는 적응 이론으로 유명한 진화생물학자이다. 이 두사람이 협력하여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질병들과 여러 증상들에 대한 진화론적 해석을 전개한다.

저자들에 의하면 인간에게 질병이 존재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자연선택은 오랫 동안 건강하게 사는 생명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진화적 적응도를 극대화하는 생명체를 만들 뿐이다. 우리는 고통을 준다는 사실만으로 엄연한 방어 메커니즘을 결함으로 잘못 생각해 왔다."
이런 주장은 사람들의 오랜 직관에 반하기 때문에 수용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다윈 의학'은 질병의 직접 원인들만 다루는 전통 의학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을 설명하기 때문에 결국은 의학의 주류로 자리잡을 것이 분명하다.

저자들은 먼저 근접 원인과 진화적 원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근접 설명은 해부학적, 생리학적, 생화학적 특성들과 수정란 내의 DNA 정보에 의해 유전적으로 유도되어 성체로 발달하는 과정의 특성들을 설명한다. 진화적 설명이란 우선 왜 그 DNA가 그런 특성을 발현하는가, 또 왜 우리는 그 구조로만 발현하는 DNA를 가지게 되었는가에 관한 것이다."
"근접 설명이 구조와 메커니즘에 대한 '무엇이?'와 '어떻게?'라는 질문의 답이라면, 진화적 설명은 기원과 기능에 대한 '왜?'라는 질문의 답이다."


다윈 의학의 바탕이 되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은 지금까지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을 요구한다.
"우선 생존은 그 자체만으로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자연선택이 연어나 1년생 식물들과 같이 단 한 번 번식하고 죽어버리는 일부 생물들을 만들어낸 까닭도 바로 이것이다. 생존은 오직 번식을 증진시키는 한에서만 개체의 적응도를 높인다. 번식을 증진시키는 유전자는 설사 그것이 개체의 수명을 단축한다 할지라도 선택될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번식을 감소시켜는 유전자는 아무리 개체의 생존을 높인다 할지라도 자연선택을 통해 틀림없이 제거될 것이다."
"<이기적인 유전자Selfish Gene>의 저자인 영국의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개체란 단제 유전자 복제를 위해 만들어지고, 유전자가 더 이상 관계를 가질 필요가 없을 때는 버려지는 매체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견해는 진화가 건전하고, 조화롭고, 안정된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는 일반적인 관점을 뿌리째 뒤흔든다. 자연선택은 그런 세상을 창조하지 않는다. 우리는 삶이 당연히 행복하고 건강하리라고 생각하고 싶어하지만, 자연선택은 우리의 행복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다. 그리고 자연선택은 건강조차도 유전자에게 이득이 될 때만 북돋워준다."
"인간의 몸은 하나의 전체로서 어떤 복잡한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그(아리스토텔레스)의 확신은 옳았다. 고작 몇 십 년 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복잡한 활동이 바로 번식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뿐이다."


저자들은 일반 대중들을 향해서도 과학적 사고를 할 것을 요구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왜'라는 질문을 할 때, 그럴듯한 이야기에 쉽게 현혹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왜 인간의 코는 우뚝 솟아 있을까? 틀림없이 안경을 걸치기 위해서이다. 왜 아기들은 뚜렷한 아유도 없이 울어대는가? 틀림없이 허파를 단련시키기 위해서이다. 왜 우리는 100살쯤 되면 거의 다 죽게 되는가? 틀림없이 새로운 사람들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서이다. 거의 무엇이든지 이런 식으로 추측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쯤되면 그것은 과학이 아니다. 문제는 그런 질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제시된 해답을 적절히 탐구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러면서 인간의 신체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증상들의 진화론적 원인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저자들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병에 걸렸을 때 열이 나는 것, 인간의 심리 안에 고통과 공포가 존재하는 것, 임산부의 입덧, 노화 등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다. 그 중에서도 암에 대한 설명도 있다.
"처음에는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따로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재는 비정상적인 DNA 구조를 탐지하여 수정시키는 기능을 하는 정상 유전자가 손상되기 때문에 암이 유발된다고 생각한다."
"다른 많은 질병들처럼 암에 걸릴 가능성은 유전적이다."
"암이란 모든 종류의 비적응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조직 성장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암은 성장과 분열 능력을 잃지 않은 어떠한 세포에서도 일어날 수 있으며, 각 세포의 암은 갖가지 개시 요인들과 억제 메커니즘의 실패 등에 의해 일어난다."


그리고 의학에서도 진화론적 관점이 받아들여져야 함을 강조하면서 글을 맺는다.
"인간들은 바로 우리에게 해로운 것들을 원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환경에서 건강에 좋은 식생활을 한다는 것은 결코 자연스레 되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자신의 원초적인 갈망을 이겨내도록 머리와 의지를 사용해야 합니다."
"적어도 도브잔스키Dobzhansky가 깨달았던 종류의 의미까지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진화의 관점을 떠나서는 의학의 어떤 것도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이 책은 1994년에 출판되었다. 그 뒤로 지금까지 진화심리학에서는 큰 진전이 있었지만 다윈 의학은 그만큼 활발하게 연구된 것 같진 않다. 진화심리학이 그랬듯 다윈 의학도 의학의 주류로 등장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 책은 '강력 추천' 목록에 올려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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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은 우리에게는 아주 먼 나라이다. 그리고 우리보다 더 늦게, 1970년대에 전쟁으로 나라가 피폐해진 경험을 한 나라이다. 그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미국인인 저자가 전쟁 전후의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삶에 대해 빼어난 글쏨씨로 써내려간 소설이 '연을 쫒는 아이들'을 시작으로 다음의 '천 개의 찬란한 태양'과 '그리고 산이 울렸다'이다.

     

작가의 첫 작품이었던 '연을 쫒는 아이들'은 전쟁 전후의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하지만 계급이 다른 두 소년의 내면을 주로 파고들었다면 두번째 작품인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그 시절을 온전히 살아내는 두 여인 마리암과 라일라를 중심으로 전쟁 전후의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생활상을 좀 더 세밀하게 묘사한다. 일부다처제의 이슬람 문화에다 전쟁까지 겹친 시대에 여자들의 삶이란 그저 시대를 따라가는 것 외엔 달리 도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라일라의 입을 빌어 하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에 저자의 의도가 압축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일라는 아프간에 관련된 이야기마다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이 죽음, 상실, 상상할 수 없는 슬픔으로 가득 차 있는지 놀라며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살아남아 계속 살아가는 모습을 본다."

세번째 작품인 '그리고 산이 울렸다'는 아프가니스탄의 구전 이야기를 뼈대로 하여 이야기는 전개된다. 옛날 어느 때 악마가 아이들을 제물로 잡아갔다. 제물을 바치도록 선택된 집의 가장은 제비뽑기로 한 아이를 악마에게 바친다. 그러나 그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 아이의 아버지는 다시 악마를 찾아간다. 악마의 시험을 통과한 아버지는 아이의 현재의 삶을 엿보게 되는데 생각과는 달리 아이의 삶은 행복하기 그지없다. 악마는 아버지에게 선택권을 준다. 아이를 다시 데려가든지, 아니면 지금의 삶을 계속 살게 하든지. 고심 끝에 아버지는 결국 아이를 남겨두기로 한다. 그리고 악마는 아버지에게 그 과정을 모두 잊게 하는 약을 선물로 준다. 그 약을 먹은 아버지는 아이를 찾으러 갔다는 사실 마저도 잊은 채로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압둘라와 파리 남매는 생활고로 인해 헤어지게 된다. 부잣집에 입양되어간 여동생 파리는 오빠에 비해 무난한 삶을 살아 가다 중년에 이르러 오빠의 존재를 다시 인식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찾아간 오빠는 이미 죽고 없다. 이 소설에서도 몇가지 인상적인 구절이 있었다.
"세상은 사람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지 않으며, 살과 뼈에 가려진 희망과 꿈과 슬픔에 대해서는 조금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걸 배우게 되었다. 그것은 그처럼 단순하고 불합리하고 잔인했다."
"내가 카불에서 배운 게 있다면, 인간의 행동은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으며, 편리한 좌우 대칭에는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이 책들도 재미있다라고 표현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술술 읽힌다. 그건 아마도 저자가 독자들의 정서와 교감하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이 책들도 읽을지 말지는 온전히 독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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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에 대한 논의에서 큰 틀에서의 윤곽은 서서히 잡혀 가는 듯하다. 인간 지능을 초월하는 '초지능'이 등장할 것이라는 것과 인공지능과 인간과의 관계는 인간에 의해서가 아니라 초지능에 의해서 설정될 것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유익할 것인지, 유해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무성하고, 긍적적인 관점보다는 부정적인 관점이 조금 더 우세한 듯하다. 이는 진화심리학에 비추어 보면 이해가 가는 현상이다. 인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생물들은 다른 것을 경계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인간은 대뇌 피질의 진화로 추론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것은 무조건 회피하고 보는 반사적 반응에서 상당한 정도로 벗어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와 다른 외계인들에 대해 우호적인 관점보다는 적대적인 관점이 더 우세한 것도 마찬가지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얼마 전에 요약을 올린 '슈퍼인텔리전스'는 인간을 능가하는 초지능의 영향에 대해 부정적인 관점이 좀 더 우세한 책이었다면 이 포스트에 요약을 올릴 다음 책은 긍정적인 관점이 좀 더 우세하다.


저자는 기술 혁신이 초기에는 인간 사회에 고통을 주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들어 인공지능의 등장도 마찬가지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앞으로 전례 없는 경제적 번영과 여가의 시대를 맞이할 공산이 커졌지만, 그 변화 과정은 상당히 길고 잔혹할지도 모른다."

일반 대중들 뿐만 아니라 학자들 중에도 인공지능과 로봇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고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지만 저자는 그 둘을 명확하게 분리하여 언급한다.
"개개인의 대리인 노릇을 하는 인조지능과 인조노동자의 등장은 수많은 현실적인 문제들을 몰고 올 것이다."
그러면서도 인간에게 전혀 새로운 기술이라는 점에서 그 둘의 영향을 같이 이야기하기도 한다.
"마르크스는 경제학자로서 산업 자동화로 자본이 노동을 대체하리라고 예견했지만, 인조노동자들에까지 생각이 미치지는 못했다 그래서 저급 노동자와 높은 급료를 받는 관리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인간 대 인간의 갈등이라는 그의 논리는 잘못된 길로 들어선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노동자들이 적응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므로, 교육 방식에 대대적인 변화를 주지 않으면 노동자들이 기술 발전을 따라잡지 못한다. 먼저 학교에 다니고 그 다음 일을 찾는, 교육에서 노동으로 이어지는 순차적인 시스템은 일생을 거의 똑 같은 일을 하면서 보낼 것으로 예측했던 시절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런 기대를 품을 수가 없다. 일의 종류가 너무 빨리 바뀌어서, 겨우 한 분야에서 선두에 섰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시대에 뒤떨어진 기술이 되어버린다."


저자는 인공지능과 함께 할 가까운 미래 상황을 추론하지만 사변적 논의로 빠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의 저술 목적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내가 이 책에서 목표하는 바는, 이 모든 어려움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독자들이 지적인 도구, 윤리적 기초, 심리적 토대로 갖출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의 역사를 언급하는 과정에서 일반인들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용어들이 등장한다. '구조화 프로그래밍', '기호 체계 접근법', '발견적 프로그래밍', '전문가 시스템' '신경망' '기계학습' 등의 용어들은 이 책을 통해서는 구체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전은 다음의 4 가지 기술의 융합에 의해 급격하게 이루어진다. 첫째, 컴퓨터 능력의 놀라운 성장, 둘째, 기계학습 기술의 발전, 셋째, 경량 소재와 정교한 제어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예기치 못한 장애물(예를 들면 사람의 신체 일부)과 맞닥뜨렸을 때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서 오작동으로 인해 인간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을 현저하게 감소시킨 로봇의 디자인 그리고 기계 인지의 발전이다. 이러한 기술의 융합에 의해 창조된 인조지능과 로봇의 결합체가 유용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려면 특정 자원과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때 필요한 자원은, 일을 수행할 ‘에너지’, 관련된 측면을 감지하는 능력인 ‘인식', 계획을 세우고 수정하기 위한 ‘추론’, 예를 들면 양손으로 물체를 드는 것처럼 목표한 바를 실제로 실행할 ‘수단’의 네 가지 영역으로 크게 분류된다. 원칙적으로는 이 자원들이 한 장소에 모여 있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모든 자원이 한데 있으면 유용한 경우가 많다. 우리 인간이 그 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진화의 정점은 아니어서 추가적인 진화가 이루어지는데에는 기계들이 더 효율적임을 지적한다.
"인간들은 서서히 진화하는 생물학적 존재이기 때문에 그 새로운 영역을 탐구할 최적의 존재가 되지는 못한다. 가장 적합한 존재는 바로 기계들이다."

저자도 인조지능과 공존해야 하는 미래를 다음과 같이 예측하기는 한다.
"문제는 이 시스템을 우리 이익에 맞게 설계할 기회가 단 한 번밖에 없을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다시 해볼 기회는 없을 가능성이 크다. 한번 망치면 고치기가 굉장히 어렵거나 아예 불가능하다. 결국에는 허용되는 것과 허용되지 않는 것, 따라야 할 규칙을 결정하는 주체가 인조지능이 될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인간보다 우월한 인조지능이 결국은 인간을 보호해 줄 것이라는 희망적인 결론을 내린다.
"인간들이 스스로를 해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인조지능이 개입하고 나서면, 그제야 인조 지능의 존재가 명확히 드러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진실을 알게 된다. 누가 사육사이고 누가 사육당하는 처지에 있는지 말이다. 지구는 햇빛과 고독만이 존재하는 유리 사육장에, 모두의 이익을 위해 우리가 맞아들였던 기계 경호원들이 가끔씩 끼어들어 모두 순조롭게 돌아가는지 살피는, 벽과 담장없는 동물원이 될지 모른다."

이 책은 인공지능과 공존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긴 하지만 사변적 논의가 아닌 인공지능과 로봇의 역할에 대한 분석을 주로 하고, 서술도 매끄럽기 때문에 독서 추천은 '일독을 권함'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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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게 바로 나야 - 더글라스 호프스테드 & 데니얼 데닛

독서 2017. 7. 8. 17:43



이 책은 번역 제목만 보면 '자아'에 관한 가벼운 읽을거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은 가볍지 않다. 원 제목은 'The Mind's I'이다. 이에 대한 저자들의 설명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 책의 원제인 <마인즈 아이 Mind' s I>는 소유격으로 간주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Who am I?(나는 누구인가)>와 <Who is me?(누가 나인가)>라는 두 가지 물음에 대한 답변을 한 마디로 축약시킨 것에 해당할 수도 있다."

85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여러 철학자들, SF 소설가들, 그리고 과학자들의 마음에 관한 논의들에 대해 공동 저자인 더글라스 호프스테드와 데니얼 데닛이 해설 또는 반론을 깊이 있게 전개하는 꽤 무거운 주제를 다룬 책이다.

저자들의 의문은 다음과 같은 서문의 구절에 잘 나타나 있다.
"나는 지금, 이 책의 11쪽을 읽고 있다. 나는 살아 있고, 나는 눈을 뜨고 있고, 나는 이 11쪽의 단어 하나하나를 내 눈으로 보고 있다. 나는, 지금 내가 이 책을 손에 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내게는 두 개의 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손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보 같은 질문이다. 내 두 손은 나의 팔에 단단히 붙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나의 신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은 내가 내 신체를 제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신체를 소유하고 있는 것일까?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다. 그것은 내 것이어서 내 맘대로 다룰 수 있다. 적어도 내가 타인을 해치지 않는 한에서는 말이다. 이것은 일종의 법률상 소유권이기도 하다. 즉 내가 살아 있는 한 내 신체를 합법적으로 타인에게 판매할 수 없지만, 일단 죽은 다음에는 내 신체의 소유권을 합법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의과대학에 기증할 수 있다.
    만약 내가 이 신체를 소유하고 있다면, 나는 이 신체 이외의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는 내 신체를 '소유하고' 있다I own my body>라고 말할 때, 그것은 〈그 신체가 스스로를 소유하고 있다〉라는 뜻의 의미 없는 주장은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타인에 의해 소유되지 않는 모든 것은 그 자신을 소유하고 있다는 말인가? 과연 달은 누군가에게 소속되어 있는 것인가,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달 자신에게 속해 있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모든 것의 소유자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모든 것의 소유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내 신체는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 중 하나에 불과하다. 어쨌든 나와 나의 신체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둘은 서로 별개의 것이다. 나는 제어자이며, 나의 신체는 제어 받는 대상이다.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다."


마음에 대한 과학적 접근은 생물학에서 마음에 관한 설명을 시도함으로써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19세기 이전에 데카르트Descartes 철학의 중심이었던 심신이원론(심신二元論)은 사람의 마음을 생물학의 영역 밖에 두려는 경향을 띠었다. 그 후 진화론자들이 우리에게 <원숭이의 특징 apeness>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인간은 생물학의 연구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심리학이 마음을 다루는 과학으로 자리잡기까지 물리학과 생물학 사이에서의 관점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생물학과 물리학 사이에서 벌어진 역할 역전 때문에 오늘날의 심리학자들은 모호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생물학의 관점에 따르면, 심리학자란 원자나 분자로 이루어진 초현미경적 세계라는 객관적 확실성의 중심에서 훨씬 떨어진 현상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물리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본질적이면서 동시에 불가해하고 아직까지 정의내려지지 않은 <마음>이라는 개념을 다루는 것이 심리학자이다. 분명한 사실은 어느 쪽 견해도 얼마간의 진리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행동과학의 토대를 넓히고 확충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과제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이제 심리학, 생물학, 물리학이라는 세 가지 큰 분야의 관점을 하나로 통합할 시간이 되었다. 각기 다른 관점의 대변인들인 세이건, 크릭, 그리고 위그너의 입장을 결합함으로써 우리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전체상을 얻게 된다.
    첫째, 의식과 반성적 사고를 포함하는 사람의 마음은 중추 신경계의 활동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중추 신경의 활동은 생물학적인 구조와 생리학적인 체계의 기능으로 환원할 수 있다. 둘째, 모든 수준에서의 생물학적 현상은 원자물리학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탄소와 질소 산소 등의 구성 원소에 의한 작용과 상호 작용에 의해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오늘날 양자역학에 의해 충분히 이해된 원자물리학은 그 체계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인 마음으로 공식화되지 않으면 안된다."

또한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
"개체들로 이루어지는 체계의 집합적인 행동이 수많은 놀라운 성질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위와 같은 특성들 때문에 의식은 뇌라는 물리적 실체와는 별개라는 생각들이 현대에도 여전히 통용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다양한 집합체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풍경에서도, 의식을 가진 가상의 개미 군집에서도, 뇌에서도 조직은 계층화되어 있다. 풍경에서의 수준은 다른 가지에 매달려 있는 가지의 다양한 수준에 상응하고, 최고 수준의 가지의 공간적 배열은 풍경 상태의 전체적 특성의 간결하고 추상적인 개요를 표상한다. 또한 수천(수만?) 개나 되는 흔들리는 개별적인 방울들의 성질은 완전히 혼란스럽고 반직관적이지만, 그 풍경 상태의 구체적이고 국소적인 기술을 제공한다. 개미 군집의 경우에는 개미, 팀, 그리고 신호라는 다양한 수준이 있으며, 마지막에 카스트 분포 또는 <군집 상태>라고 불리는 것이 있다. 여기에서도 이 <군집 상태>가 군집에 대한 가장 통찰력 있는, 그러나 추상적인 관점을 제공한다. 아킬레스가 놀랐듯이 그것은 너무도 추상적이어서 개미 한 마리 한 마리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을 정도이다! 뇌의 경우 우리는 아직 뇌 속에 쌓인 신념을 우리말로 표현하는 식의 고차 수준 구조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뇌의 주인에게 그 또는 그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묻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단지 우리는 이러한 사상이 어디에 어떻게 코드화되어 있는지를 물리적으로 결정할 방법을 알지 못할 뿐이다.
    이 세 가지 체계 속에는 다양한 반(半)자율적인 하위 체계가 존재한다. 그 각각의 하위 체계는 하나의 개념을 표상하고 있으며, 다양한 입력 자극이 특정 개념 또는 심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이러한 견해에서 모든 활동을 감시하교 그 체계를 <느끼는> 이른바 <내면의 눈inner eye>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 대신 체계 상태 자체가 이러한 <느낌>을 표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동 저자 중 한명인 데닛은 '철학자란 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철학자로서 아직은 완전하게 답할 수 없는 마음의 본질에 대해서, 다양한 논증을 통해 그 본질을 밝히려고 시도한다. 그리고 그 논증은 생각만으로 구성된 그동안의 철학적 논증과는 다르게 과학적 실증을 바탕으로 한 논증을 전개하므로 우리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에 대해 보다 사실에 가까운 그림을 그려볼 수 있게 해 준다. 가볍지 않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수고를 해서 읽어볼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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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떠오름 - 존 메이너드 스미스

독서 2017. 7. 5. 17:09



저자인 존 메이너드 스미스는 진화생물학자로서, 주저인 '진화와 게임이론'에서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학자로 유명하다. '진화와 게임이론'을 읽으려고 했으나 유감스럽게도 국내에는 번역본이 아직 없어서 대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발생유전학의 진전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가 개체로서의 생물체를 이야기할 때 그 생물체는 발생과 성장이라는 두 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발생은 단세포인 난자에서 개체의 형태를 갖추기까지의 과정을 말하며, 성장은 그 이후에 어른 개체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말한다. 진화론은 어른 개체의 형태가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어떻게 환경에 적응해 왔는가를 다루는 분야여서 발생학은 상대적으로 관심권에서 멀었다. 그러나 저자에 의하면 발생 또한 진화 과정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하나의 수정란이 성체가 되는 발생적 변화와, 훨씬 장구한 시간의 차원에서 단순한 단세포성 조상이 현재의 다세포성 동물과 식물로 전환되는 진화적 변화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다고 오랫동안 인정되어왔다 ."

발생 과정에 대한 관심은 유전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발생유전학으로 자리잡게 된다. 저자는 이런 발생유전학에서의 진전과 더불어 유전학과 진화론 모두에서 일어나는 '유전자 결정론'과 '환원주의'에 대한 비판도 곁들였다.
"이러한 진보는 유전학의 발상과 기법을 발생 과정에 적용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이러한 접근법의 이면에 놓인 철학은, 유전자가 디지털 형태로 하나의 생명체를 만드는 지시사항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은 오스트리아의 생물학자 그레고르 요한 멘델(1822~1884)로 거슬러 올라가, 수정란 안에는 특정한 신체 부위나 기관의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인자들이 있다는 생각까지 이르게 된다. 이 책의 주요한 목적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혁명에 대해 간결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또 하나의 전통도 언급하고자 하는데, 이는 발생을 전일론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전통의 뿌리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749-1832)의 자연철학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날 이런 전통은 '자기조직화'라는 개념으로 대표되며, 역동계에서 특정 부위의 발달을 조절하는 특정한 지시사항이 없더라도 복잡한 패턴이 갑자기 나타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을 통해 뒷받침된다."
"나는 이제까지 발생을 연구하는 두 가지 접근 방법을 설명했다. 하나는 전체적이고 전일적이며 역동적이다. 다른 하나는 국부적이고, 환원론적이며, 정보 조절 제어라는 개념에 의존한다. ……… '프로그램 지향' 학파와 '역동계' 학파 사이에……….. 프로그램 지향 학파는 뇌가 작동하는 방식과 컴퓨터 프로그램이 작성되는 방식 사이에 존재하는 필연적인 유사성을 본다. 동물이나 로봇의 적응적인 행동은 세상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일어날 수 있다. ……... 반면 역동계 학파는 컴퓨터의 신경 회로망neural nets이 프로그래머에게는 확실하지 않은 방식으로 문제 해결 방법을 '배우며', 회로망에서 특정한 결정으로 이어지는 특정한 연결들을 찾아내기가 어렵다는 사실에 커다란 감명을 받는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적응적인 행동은 세상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의 자극에 대한 적절한 반응의 집합들만을 필요로 한다."


환원론과 전체론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번역자인 조세형의 요약에서 더 잘 표현되어 있다고 생각되어 그 부분을 인용한다.
"1970년대부터 일단의 과학자들은 현대 문명을 지배하고 있는 '데카르트-뉴턴의 패러다임'이라는 기계론적이고 환원론적이며 결정론적인 세계관을 비판하면서, 여기에 대한 대안으로 유기체적이고 전일론적이며 비결정론적인 세계관과 과학이론을 제시해 왔다. 생명 현상을 분자 수준에서 설명하고 그 기전을 규명하고자 시도하는 분자생물학(발생유전학)은 유전자 결정론과 환원론에 경도되기 쉽다. 메이너드 스미스가 지적하듯, 분자생물학의 놀라운 성공은 생물학자들을 환원론자로 이끌었으며, 생물학의 다른 대안(메이너드 스미스에 따르면 괴테의 자연철학에서 비롯된 전일론적 전통)을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메이너드 스미스는 시스템으로서의 과정, 다시 말해 유전자의 지시사항이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역동적인 과정dynamic process으로서의 '자기조직화self organization'에 주목해야 한다고(보다 정확하게는 생물학자들이 두 가지 접근 방법 모두를 사용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80여 쪽의 짧은 분량에다가 발생유전학에 대한 내용을 압축해서 서술해 두었으므로 깊은 논의가 이루어지는 책임에도 읽기가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다. 게다가 발생유전학 이외의 내용에도 얻을 것이 많은 만큼 한번 읽어보길 적극 권할 만한 책이다.

참고로 저자의 핵심 개념인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에 관해 번역자가 아주 유용한 주를 첨부해 두었으므로 여기에 인용한다.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이란 어떤 한 집단이 특정한 행동 전략을 사용하고 있을 때 다른 어떤 돌연변이 전략도 침투할 수 없는 전략을 말한다. 메이너드 스미스는 매-비둘기 게임 모델을 통해 어떤 하나의 순수 전략만을 고집하는 경우에는 진화적으로 안정되어 있지 않음을 보인 반면, 혼합 전략을 사용하는 경우 진화적으로 안정되어 있음을 보인 것이다. 이를 간단히 말로 설명해보면 이렇다. 한정된 자원(먹이, 배우자, 영토 등)을 놓고 대치하게 되었을 때 매파와 비둘기파의 전략이 가능하다고 생각해보자. 매파는 상대방이 도망치거나 자신이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때까지 자원을 독점하기 위해 싸우는 반면, 비둘기파는 자원을 균등하게 나누지만 상대방이 도발하면 무조건 회피의 전략을 사용한다. 이 중 어떤 전략이 진화적으로 안정되어 있을까? 매파일까, 비둘기파일까? 어느 한 집단이 매파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돌연변이 전략 비둘기파가 침투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집단 내에 매파가 대부분이므로 매파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개체는 매파를 만날 확률이 높고, 매파 간의 다툼은 각 개체에게 평균적인 손실(자원 획득 가능성을 통한 이득보다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가능성에 의한 손실이 더 크다는 뜻)을 가져오게 된다. 이때 집단 내에 돌연변이 전략 비둘기파가 등장하면, 극소수의 비둘기파는 절대 다수인 매파를 만날 가능성이 높은데, 이때 비둘기파는 회피의 전략만을 구사하므로 그 평균적인 손익은 0 이고(자원을 획득할 가능성도 없지만,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가능성도 없다는 뜻), 평균적인 손실을 입는 매파보다 유리하다. 따라서 시간이 흐르면 집단 내에 오히려 비둘기파가 점차 많아지게 된다. 그러나 비둘기파가 점차 많아지게 되면 소수가 된 매파가 비둘기파와 대치하게 될 가능정이 높아지고, 이 경우 매파가 얻는 이득이 크므로(매파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가능성 없이 무조건 자원올 획득하므로 자원을 균등하게 나누는 비둘지파보다 이득이 두 배가 된다) 다시 매파가 많아진다. 따라서 매파와 비둘기파 모두 진화적으로 안정되어 있지 않다. 이렇듯 한 동물이 매파나 비둘기파라는 순수 전략만을 고집하는 경우에 안정되어 있지 않지만, 그 동물이 매파와 비둘기파의 전략올 혼합하여 구사하는 경우 진화적으로 안정되어 있음을 간단한 수식으로 입증할 수 있었다. 더구나 메이너드 스미스는 매-비둘기 게임에 '부르주아 전략'이라는 비대칭적 소유권 전략(자원에 먼저 도달한 개체는 그 자원의 소유자로서 매파의 전략을 구사하고, 늦게 도달한 개체는 비둘기파의 전략을 구사하는 전략)이 진화적으로 안정되어 있음을 입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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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발생유전학, 진화생물학,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 환원론과 전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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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인텔리전스: 경로, 위험, 전략 - 닉 보스트롬

독서 2017. 7. 1. 16:48

알파고의 등장 이래 '인공지능'이라는 화두는 이미 일상이 되어서 오히려 주목을 덜 받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공지능'에 관해서는 생각해야 할 것들이 아직 많다. 그래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닮은 범용 지능이 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라든가 "인공지능과 공존해야 하는 상황은 어떨 것인가?" 등에 대한 논의가 학계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그 중에는 인간이 지적 호기심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가지게 되는 의문인 "인간을 보호하는 인공지능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도 포함되어 있다. 이는 예측 불가의 미래학의 영역이다 보니 철학적 논의들이 개입하기 딱 좋다. 인지심리학자인 스티븐 핑거는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미래학에서 확실하게 옳은 예언 중 하나는 미래에도 그 시대의 미래학자들은 어리석게 보일 거라는 것이다.” 이처럼 미래를 유추하여 현재의 진행 상황을 조정하겠다는 철학적 담론은 거의 탁상공론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음에 인용하는 책도 그런 류의 것이다.


저자는 철학자이면서 인지심리학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과학적 철학자 그룹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서양의 지적 전통에 기대지 않고 과학적 논의로 출발은 한다. 그리고 논의는 시작부터 비관론으로 기울어 있다.
"미래의 어느 날 우리가 인간의 일반 지능을 능가하는 기계 두뇌(machine brain)를 만들게 된다면, 이 새로운 슈퍼인텔리전스(superintelligence, 초지능)는 매우 강력한 존재가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치 지금의 고릴라들의 운명이 그들 스스로가 아니라 우리 인간에게 달린 것처럼, 인류의 운명도 기계 초지능의 행동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고릴라보다) 우리가 유리한 점이 딱 하나 있다. 바로 우리는 우리 손으로 초지능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론상으로, 우리는 인간 가치를 수호하는 초지능을 만들 수도 있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할 만한 강한 동기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초지능을 통제하는 문제는 상당히 까다로워 보인다. 또한 초지능을 통제하기 위한 기회는 단 한번 뿐일 것이다. 일단 인류에게 비우호적인 초지능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대체하거나 변경하려는 시도는 그 비우호적인 초지능에 의해서 가로막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운명은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초지능의 탄생에 대부분 동의한다. 그리고 그 초지능이 어떤 형태가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데에도 동의한다. 그 점은 저자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비우호적인 초지능'의 존재를 가정한 논의는 부질없는 것이 되어 버리는데 저자는 철학자이기 때문이어서 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한다.

저자는 철저하게 과학적 접근을 하고 있어서 현재의 인공지능의 범주를 명확하게 구분해 준다.
"현재 설명하고 있는 내용에 맞는, 더 의미있는 구분(이것이 '인공지능’이라는 용어로 불리든 말든)은 제한적인 범위의 인지능력을 가진 시스템과 일반적인 문제 해결능력을 갖춘 시스템을 구분하는 것이다. 현재 사용 중인 거의 모든 시스템들은 사실 매우 제한적인 범위의 인지능력을 가진 시스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알파고를 포함하여 전문가 시스템을 포괄하는, 인간의 사고 능력을 보조하는 용도의 '약한 인공지능(weak AI)과 인간 수준의 범용 기계지능인 '강한 인공지능(strong AI)'으로 나눈다.

저자는 철학자이면서도 과학적 접근을 하는 학자이어서 전통 철학의 문제를 언급한다.
"철학에서의 "영원한 문제들(etenal problems: 철학의 근본 문재들 중의 한 유형, 영구적이며 보편적인 답을 구하는 것이 불가능한 문계들/옮긴이)을 해결하는 데에 시간이 계속 걸리고 해답이 명확하지 않은 이유는 인간의 뇌가 철학적인 사고를 하는 일에는 적당하지 않기 매문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인류 역사상 가장 찬사를 받는 철학자들이라고 할지라도 마치 일어서서 뒷다리로 걷는 개와 다를 바가 없다고 하겠다. 즉 특정 행위를 하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능력을 간신히 갖춘 정도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윤리학에서 이상적 관찰자 이론(ideal observer theory)은 '선(good)'과 '참(right)' 등의 규범적 개념을 가상의 이상적 관찰자가 내릴 결정에 따라서 분석하는 것이다(여기서 '이상적 관찰자'란 규범적인 사실이 아닌 사안에 대해서 전지적이고, 논리적으로 통찰하며, 공정하고 여러 종류의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 등으로 정의된다)."
"MR(Moral Realism, 도덕적 실재론)은 '도덕적으로 옳은'이라는 개념에 의존하는데, 이것은 고대부터 철학자들이 분석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합의에 이르지 못한 지독하게 어려운 개념이다."


지능은 생각의 영역이어서 도덕 철학에 관한 논의도 곁들인다. 그런데 도덕 철학의 딜레마였던 '이기적인 인간들의 집합인 인간 사회에서 어떻게 이타주의 또는 협력이 생기는가?'하는 문제는 게임이론에서 '협력이 도덕성의 개입없이도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해소되었다. 그렇다면 초지능이 존재하는 사회에서의 윤리란 초지능끼리의 경쟁을 통해 그들 나름의 도덕률을 만들어 낼 것이며, 그것이 인간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어쨎거나 이건 추론일 뿐이지 실제로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므로 그걸 가정한 논의도 무의미하긴 마찬가지다.

그래서 논의의 시작은 과학적 바탕 위에 했지만 결론은 다음과 같이 애매모호한 구절로 맺어 놓았다.
"이 책에서 우리는 이와 같은 시도를 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비교적 정형화되어 있지 않고 부정적으로 정의되어 있었을 수도 있는, 미래에 대한 견해를 조금이라도 더 파악하려고 시도했다. 이것은 (개인적이고 세속적인 것은 배제한 견해에서 보았을 때) 우리의 주된 도덕적 우선 순위로서, 존재적 위험을 줄이려고 하고, 인류가 가진 우주의 무한한 자산을 온정적이고 즐겁게 사용하도록 이끌어서 성숙한 문명을 성취하려고 하는 인류의 미래의 꿈일 것이다."

이 책의 표지에는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빌 게이츠가 했다는 말 "인공지능에 관해 반드시 읽어야 할 두 권 중 하나"라는 선전 문구가 붙어 있는데 내 생각에 이는 타당하지 않다. 서두에 스티븐 핑거의 말대로 어떻게 전개될 지 모르는 미래를 가정한 논의는 어차피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의 독서 추천은 '중립'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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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 할레드 호세이니

독서 2017. 6. 28. 17:00

문학작품, 그 중에서도 소설이 독자들에게 전해 주는 것은 삶의 다양한 단면들을 이야기로 들려 줌으로서 간접 경험을 확대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간접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들은 읽는 사람들마다 다 다를 것이다.


이 소설은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기 몇 년 전에 12살을 맞은 두 아이 아미르와 하산에 대한 배신과 속죄와 용서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미르는 하산이 위기에 처했을 때 두려움때문에 그것을 외면한 사실에 대해 평생 죄의식을 가지고 산다. 성인이 될 때까지 그것을 잊었다고 생각했으나 어떤 계기로 그 죄의식이 되살아나고 그에 대한 속죄 의식으로 하산의 아들을 찾으러 탈레반이 지배하는 아프간으로 간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를 찾아서 데리고 미국으로 오지만 아이는 충격 속에 자폐아 비슷한 상태가 되나, 아미르와 하산이 어릴 때 같이 놀았던 연놀이를 통해 아이를 다시 회복시킨다.

긴 이야기 중간 중간에 나에게 와닿은 몇 구절들이 있다.
"나는 그해 여름, 선생님이 이란인들에 관해서 했던 얘기를 떠올렸다. 선생님은 그들이 실실 웃으며 부드럽게 얘기를 하면서 한 손으로는 등을 두드려주고 다른 손으로는 호주머니를 턴다고 했다."
차별을 할 때 특수한 상황을 일반화시켜 그 차별을 합리화하는 과정은 세계 공통이라고 봐도 되겠다.

다음과 같은 구절들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은 선이, 진짜 선이 네 아버지의 죄책감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때때로 나는 그가 했던 일을 생각해 본다. 네 아버지는 거리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고아원을 세우고 어려운 친구들에게 돈을 줬다. 그 모든 것이 속죄하고자 하는 그 나름의 방식이었다. 내 생각에는 그게 진짜 구원이다. 죄책감이 선으로 이어지는 것 말이다."
"라힘 칸의 말이 머릿속에서 멤을 돌았다. “아미르, 너는 그가 물려받은 재산과 죄를 짓고도 무사할 수 있는 특권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머리가 온갖 상념으로 끝없이 복잡할 때, 그 상황을 크고 넓게 보는 것은 사치에 불과했다."
"결국 인생은 인도 영화가 아니다. 아프간 사람들은 ‘젠다기 미그자라'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인생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시작과 끝, 캄야브(행)와 나캄(불행), 위기 혹은 카타르시스에 상관없이 인생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용서는 그렇게 싹트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서는 화려한 깨달음이 아니라 고통이 자기 물건들을 챙기고 짐을 꾸려 한밤중에 예고 없이 빠져나가는 것과 함께 시작되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서두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소설은 읽는 사람마다 깨닫는 부분들이 다 다를 것이므로 내용이 '좋다 또는 나쁘다'는 내가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무거운 이야기여서 재미있다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한번 잡으면 끝까지 읽게 된다. 그러니 읽을 것인지 말것인지는 스스로 판단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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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아프가니스탄, 죄의식과 용서와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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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심리학 - 마이클 맥클러프

독서 2017. 6. 24. 16:37

복수심이라는 감정은 사랑, 질투, 용서와 화해 등의 감정과 함께 문학 작품의 마르지 않는 소재들이다. 그 말은 그 감정들이 인간의 삶에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들이란 뜻이다. '복수와 용서'라는 주제는 도덕 철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이기도 하고, 종교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관념 철학에서든 종교에서든, '복수'는 '악'과 연결되며, '용서'는 '선'과 연결된다. 그래서 수천년 동안의 논의에도 불구하고 '복수는 어리석은 것이고, 죄는 용서해야 한다'라는 격언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심정적으로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실천하기는 결코 쉽지 않는 채로. 과학적 심리학에서는 인간은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선한 모습도 보이고 악한 모습도 보이는 존재라고 규명했다. 그렇다면 '복수와 용서'라는 것은 심리학에서 어떻게 규명될까?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다음 책이다.

이 책의 원 제목은 'Beyond Revenge: The Evolution of the Forgiveness Instinct (복수를 넘어서: 용서 본능의 진화)'이다. 그래서 번역 제목은 저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반쪽만 언급한 셈이 되었다. 

오랫동안 종교와 철학에서는, 복수는 비정상적인 감정으로, 그리고 그것을 해소하는 것은 '화해와 용서'라는 것으로 가르쳐 왔다. 그러나 저자는 복수와 용서가 개개인의 특성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진화적 적응'으로서 인간의 본성에 내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용서와 복수에 관한 세 가지 단순한 진실
첫 번째 진실: 복수심은 인간 본성에 내재한다.
두번째 진실: 용서하는 능력은 인간 본성에 내재한다.
세 번째 진실: 용서가 활개치고 복수는 사라져가는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인간을 변화시키려 하지 마라. 세상을 바꿔라!"

이 주장의 근거가 사변적 추론에 의한 것이 아니라 과학적 검증을 거쳐서 나온 것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참고로 옮긴이가 후기에서 언급한 과학적 검증에 관한 서술을 보면 다음과 같다.
"다양한 동물 실험과 관찰 결과, 컴퓨터 시뮬레이션, 생물학, 사회학, 인류학, 근대 역사, 인간의 머릿속 뉴런에서부터 개인과 공동체를 넘어 국가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우리들의 오랜 직관에 반하는 주장을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물론 세상을 이해하는 것과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두 가지 목표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 본성이 특정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해서 그 행동이 도덕적으로 정당하거나 그 경향을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행동 패턴이 자연 선택에 의해 결정되었다 하더라도 인간은 본능의 노예가 아니다. 자연 선택의 관점에서 인간의 최고 관심사는 먹는 것이다. 하지만 훌륭한 생각이나 절대미에 대한 충성심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죽음을 갈구하기도 한다. 이와 비슷하게, 진화론적으로 인간의 가장 큰 관심은 양육이지만, 양육에 필요한 에너지를 다른 목적에 쏟기 위해 자발적으로 자식을 낳지 않는 길을 선택하는 부부도 많다. 인간의 커다란 뇌는 자신이 처한 조건을 반영하여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볼 수도, 자신과 타인의 행동의 원인에 대해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도, 더 높은 이상을 위해 감정과 욕구를 통제할 수도, 타인을 자신과 동화시키기 위해 영감을 주고 설득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복수가 아닌 용서를 촉진하는 사회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우리의 오랜 믿음을 형성한 종교, 철학적 논의가 공허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언급한다.
"인간 본성의 진정한 모습을 무시하고 인류의 운명을 개선할 수는 없다."

관념은 뇌의 작용이고, 복수와 용서라는 정서가 관념이라면 그런 관념이 생기는데 개입하는 뇌의 생리학적 작용이 있다.
"결론은 이렇다. 사람들이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았을 때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그 사람과의 관계가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론 바로 이것이 우리가 죄수의 딜레마, 30여 년의 영장류 연구, 용서에 대한 적응주의 사고에서 기대하는 결론이다. 인간의 포괄적 적응도를 향상시키고 협력 상대와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용서와 화해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이때 복수와 용서는 ‘잠정적인’ 적응이며, 이 둘은 모두 정황에 달려 있다. 우리가 용서를 선택할지 복수를 선택할지는 이 둘의 장점과 단점뿐 아니라 '가해자가 누구인지’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었을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반응은 분노나 아픔 등의 부정적 감정이다. 그리고 그것이 물러가고 나면 추구 시스템이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추구 시스템은 사람들이 고통이나 위협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욕구를 기쁨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돌려 놓는다."
"문화는 우리가 무엇을 하고, 다른 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그리고 이전 시대에는 유용했던 어떤 행동을 환경적 우연성으로부터 불안정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다. 문화는 어떤 행동을 적응으로 만든 환경 요인이 사라진 뒤에도 문화접단 내에 남아서 그 행동을 유지하게 한다. 적대적이고 불안정한 사회 환경에서 살고 있다면 복수 성향이 유용할 것이다."


용서가 본능으로 진화한 데에는 '협력을 통한 거대 사회의 형성'이 있다. 이 협력의 진화를 잘 설명하는 것으로는 게임이론에서 나온 '죄수의 딜레마'와 그것을 반복적으로 시행했을 때의 최선의 결과인 'tit-for-tat' 전략이다. 이를 잘 설명하고 있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과학 분야 논픽션 작가인 월리엄 파운드스톤(William Poundstone) 은 죄수의 딜레마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20세기 최고의 아이디어 중 하나이며, 근본적으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의 사회적 행동에 관한 놀라운 진실들을 밝혀내는 이 개념의 무한한 능력을 빗대어, 정치 과학자 로버트 액설로드(Robert Axelrod) 는 이것을 ‘사회과학의 대장균’이라고 불렀다. 죄수의 딜레마는 속임수, 신뢰, 이기심,합리적 행동, 그리고 용서에 관한 많은 교훈을 담고 있다. 특히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들끼리 협력하여 이익을 얻도록 돕는 용서 능력의 진화 과정을 보여준다."
"팃포탯이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전략적 특성 때문이다. 첫째, 팃포탯은 ‘친절’ 전략이다. 팃포탯은 언제나 게임을 협력으로 시작한다. 따라서 상대방이 같은 태도로 게임에 임한다면 팃포탯은 항상 상호 협력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둘째, 팃포탯은 ‘보복' 전략이다. 만약 상대방이 어떤 라운드에서 변절한다면 팃포탯은 반사적으로 다음 라운드에서 보복한다. 이로써 비열한 전략이 자신의 친절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셋째, 팃포탯은 ‘용서’ 전략이다. 상대방이 변절 후에 다시 협력으로 돌아서면 팃포탯 역시 다음 라운드에서 협력으로 돌아온다. 넷째, 팃포탯은 ‘명쾌한’ 전략이다. 친절함으로 시작해 이전 라운드에서 상대방이 쓴 전략을 반복한다. 즉 상대가 친절하게 게임에 임하면 릿포탯도 친절하고, 비열하게 행동하면 보복하며, 다시 친절로 돌아오면 용서한다. 이것이 전부다. 팃포탯은 과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호혜주의 규범에 따르 는 황금 법칙만 따를 뿐이다."


저자는 앞에서 복수를 억누르고, 용서를 확산하기 위해서는 본능을 변화시키야 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필요성과 실천에 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용서는 개개인의 마음속에서 일어난다. 마음 속에 용서할 준비가 되면 가해자가 염려해줄 만하고, 가치 있고, 안전한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마음속에 복수심을 품는다 해도 가해자가 처벌을 받거나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복수심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용서할 준비가 된다. 용서받고 싶은 사람은 사과하고, 자기 비하 제스처를 표현하며, 보상하려고 노력하는 등 심리적 조건을 만들려고 애쓴다."
"국가가 효과적으로 복수를 통제하는 수단은 법 집행, 악행으로부터 시민 보호, 효과적인 가해자 처벌 등이다. 앞서 보았듯이 자연 선택은 사람들이 위해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명예를 지키며, 속임수를 쓰는 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복수심을 설계했다. 국가가 그런 역할을 믿음직하게 수행해준다면 국민들은 자신을 스스로 보호해야 하는 짐을 어느 정도 덜 수 있다."
"전쟁을 치렀던 두 국가가 화해할 때 극복해야 할 기본적인 장애물은 응집력있는 집단을 재설립하는 것(내란 이후 화해하려고 할 때 흔히 있는 일이다)이 아니다. 오히려 국가 간에 서로 평화를 원한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협력은 세 가지 사회심리학적 현상- 탈범주화, 재범주화, 상호 집단 간 차별화 -을 활성화시키면서 집단이 갈등을 용서로 전환하도록 돕는다."
"집단 간 우정이 집단 간 용서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만약 우리가 그런 우정을 형성하기가 더욱 수월한 사회를 만든다면 집단 간 용서도 더 쉽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암시한다. 비록 그들을 친구로 삼을 수는 없다 할지라도 말이다."
"적대적인 두 집단이 서로를 용서하기 바란다면, 올바른 방식으로 접촉하게 해야 한다."
"우리는 가족, 친구, 협력적인 모험을 함께하는 사람을 용서하는 경향이 있다. 용서 본능은 범죄자가 안전하고, 가치있으며, 염려해 줄 만하다는 것을 경험할 때 생긴다. 사람들은 가해자가 사과, 자기 비하 같은 적절한 신호나 보상을 해줄 때 기꺼이 용서한다. 사람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향하면 진화의 자연스러운 결과로서 용서가 싹튼다. 사람이 정의를 경험하게 하고, 이전의 적과 (경쟁이 아닌) 협력할 때 인센티브를 얻도록 사회를 설계하면 가능하다."


그리고 저자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는다.
"이제 이런 신화를 쉬게 할 때이다. 우리의 복수 성향과 용서 능력은 둘 다 인간 본성이고, 둘 다 훌륭한 적응 논리에 지배를 받는다. 둘 다 우리 사회와 생태학적 환경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수용하며, 둘 다 특정한 환경 투입으로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둘 다 문화적 압력에 민감하고, 둘 다 친인간적이다."

이 책은 과학적 심리학이 밝혀낸, '인간은 선한 존재이가도 하고 악한 존재이기도 하다'는 결론과 유사하게 복수와 용서가 인간의 본성에 내재하는 것임을 밝힌 것이다. 복수심이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용서와 화해가 확산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있다고 볼 때, 과학적 결론을 바탕으로 그것의 실천 방향을 제대로 제시하는 이 책은 '강력 추천' 목록에 올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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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hinknew
TAG 복수와 용서, 사회심리학, 진화적 적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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