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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존 메이너드 스미스는 진화생물학자로서, 주저인 '진화와 게임이론'에서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학자로 유명하다. '진화와 게임이론'을 읽으려고 했으나 유감스럽게도 국내에는 번역본이 아직 없어서 대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발생유전학의 진전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가 개체로서의 생물체를 이야기할 때 그 생물체는 발생과 성장이라는 두 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발생은 단세포인 난자에서 개체의 형태를 갖추기까지의 과정을 말하며, 성장은 그 이후에 어른 개체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말한다. 진화론은 어른 개체의 형태가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어떻게 환경에 적응해 왔는가를 다루는 분야여서 발생학은 상대적으로 관심권에서 멀었다. 그러나 저자에 의하면 발생 또한 진화 과정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하나의 수정란이 성체가 되는 발생적 변화와, 훨씬 장구한 시간의 차원에서 단순한 단세포성 조상이 현재의 다세포성 동물과 식물로 전환되는 진화적 변화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다고 오랫동안 인정되어왔다 ."

발생 과정에 대한 관심은 유전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발생유전학으로 자리잡게 된다. 저자는 이런 발생유전학에서의 진전과 더불어 유전학과 진화론 모두에서 일어나는 '유전자 결정론'과 '환원주의'에 대한 비판도 곁들였다.
"이러한 진보는 유전학의 발상과 기법을 발생 과정에 적용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이러한 접근법의 이면에 놓인 철학은, 유전자가 디지털 형태로 하나의 생명체를 만드는 지시사항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은 오스트리아의 생물학자 그레고르 요한 멘델(1822~1884)로 거슬러 올라가, 수정란 안에는 특정한 신체 부위나 기관의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인자들이 있다는 생각까지 이르게 된다. 이 책의 주요한 목적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혁명에 대해 간결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또 하나의 전통도 언급하고자 하는데, 이는 발생을 전일론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전통의 뿌리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749-1832)의 자연철학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날 이런 전통은 '자기조직화'라는 개념으로 대표되며, 역동계에서 특정 부위의 발달을 조절하는 특정한 지시사항이 없더라도 복잡한 패턴이 갑자기 나타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을 통해 뒷받침된다."
"나는 이제까지 발생을 연구하는 두 가지 접근 방법을 설명했다. 하나는 전체적이고 전일적이며 역동적이다. 다른 하나는 국부적이고, 환원론적이며, 정보 조절 제어라는 개념에 의존한다. ……… '프로그램 지향' 학파와 '역동계' 학파 사이에……….. 프로그램 지향 학파는 뇌가 작동하는 방식과 컴퓨터 프로그램이 작성되는 방식 사이에 존재하는 필연적인 유사성을 본다. 동물이나 로봇의 적응적인 행동은 세상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일어날 수 있다. ……... 반면 역동계 학파는 컴퓨터의 신경 회로망neural nets이 프로그래머에게는 확실하지 않은 방식으로 문제 해결 방법을 '배우며', 회로망에서 특정한 결정으로 이어지는 특정한 연결들을 찾아내기가 어렵다는 사실에 커다란 감명을 받는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적응적인 행동은 세상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의 자극에 대한 적절한 반응의 집합들만을 필요로 한다."


환원론과 전체론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번역자인 조세형의 요약에서 더 잘 표현되어 있다고 생각되어 그 부분을 인용한다.
"1970년대부터 일단의 과학자들은 현대 문명을 지배하고 있는 '데카르트-뉴턴의 패러다임'이라는 기계론적이고 환원론적이며 결정론적인 세계관을 비판하면서, 여기에 대한 대안으로 유기체적이고 전일론적이며 비결정론적인 세계관과 과학이론을 제시해 왔다. 생명 현상을 분자 수준에서 설명하고 그 기전을 규명하고자 시도하는 분자생물학(발생유전학)은 유전자 결정론과 환원론에 경도되기 쉽다. 메이너드 스미스가 지적하듯, 분자생물학의 놀라운 성공은 생물학자들을 환원론자로 이끌었으며, 생물학의 다른 대안(메이너드 스미스에 따르면 괴테의 자연철학에서 비롯된 전일론적 전통)을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메이너드 스미스는 시스템으로서의 과정, 다시 말해 유전자의 지시사항이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역동적인 과정dynamic process으로서의 '자기조직화self organization'에 주목해야 한다고(보다 정확하게는 생물학자들이 두 가지 접근 방법 모두를 사용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80여 쪽의 짧은 분량에다가 발생유전학에 대한 내용을 압축해서 서술해 두었으므로 깊은 논의가 이루어지는 책임에도 읽기가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다. 게다가 발생유전학 이외의 내용에도 얻을 것이 많은 만큼 한번 읽어보길 적극 권할 만한 책이다.

참고로 저자의 핵심 개념인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에 관해 번역자가 아주 유용한 주를 첨부해 두었으므로 여기에 인용한다.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이란 어떤 한 집단이 특정한 행동 전략을 사용하고 있을 때 다른 어떤 돌연변이 전략도 침투할 수 없는 전략을 말한다. 메이너드 스미스는 매-비둘기 게임 모델을 통해 어떤 하나의 순수 전략만을 고집하는 경우에는 진화적으로 안정되어 있지 않음을 보인 반면, 혼합 전략을 사용하는 경우 진화적으로 안정되어 있음을 보인 것이다. 이를 간단히 말로 설명해보면 이렇다. 한정된 자원(먹이, 배우자, 영토 등)을 놓고 대치하게 되었을 때 매파와 비둘기파의 전략이 가능하다고 생각해보자. 매파는 상대방이 도망치거나 자신이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때까지 자원을 독점하기 위해 싸우는 반면, 비둘기파는 자원을 균등하게 나누지만 상대방이 도발하면 무조건 회피의 전략을 사용한다. 이 중 어떤 전략이 진화적으로 안정되어 있을까? 매파일까, 비둘기파일까? 어느 한 집단이 매파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돌연변이 전략 비둘기파가 침투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집단 내에 매파가 대부분이므로 매파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개체는 매파를 만날 확률이 높고, 매파 간의 다툼은 각 개체에게 평균적인 손실(자원 획득 가능성을 통한 이득보다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가능성에 의한 손실이 더 크다는 뜻)을 가져오게 된다. 이때 집단 내에 돌연변이 전략 비둘기파가 등장하면, 극소수의 비둘기파는 절대 다수인 매파를 만날 가능성이 높은데, 이때 비둘기파는 회피의 전략만을 구사하므로 그 평균적인 손익은 0 이고(자원을 획득할 가능성도 없지만,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가능성도 없다는 뜻), 평균적인 손실을 입는 매파보다 유리하다. 따라서 시간이 흐르면 집단 내에 오히려 비둘기파가 점차 많아지게 된다. 그러나 비둘기파가 점차 많아지게 되면 소수가 된 매파가 비둘기파와 대치하게 될 가능정이 높아지고, 이 경우 매파가 얻는 이득이 크므로(매파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가능성 없이 무조건 자원올 획득하므로 자원을 균등하게 나누는 비둘지파보다 이득이 두 배가 된다) 다시 매파가 많아진다. 따라서 매파와 비둘기파 모두 진화적으로 안정되어 있지 않다. 이렇듯 한 동물이 매파나 비둘기파라는 순수 전략만을 고집하는 경우에 안정되어 있지 않지만, 그 동물이 매파와 비둘기파의 전략올 혼합하여 구사하는 경우 진화적으로 안정되어 있음을 간단한 수식으로 입증할 수 있었다. 더구나 메이너드 스미스는 매-비둘기 게임에 '부르주아 전략'이라는 비대칭적 소유권 전략(자원에 먼저 도달한 개체는 그 자원의 소유자로서 매파의 전략을 구사하고, 늦게 도달한 개체는 비둘기파의 전략을 구사하는 전략)이 진화적으로 안정되어 있음을 입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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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은 이제 이론이 아니라 사실이다. 물론 그 이야기에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창조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여러 과학자들이 창조론을 적나라하게 논파하였지만 아무튼 믿음이란 사실에 앞서는 것이어서 달리 도리가 없다. 진화론을 거부하는 다양한 집단의 사람들이 시비를 붙는 또 다른 요인이 있다. 진화론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진화론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은 과학자들도 흔쾌히 인정하는 바다. 문제는 그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 진화론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부적인 설명에서 논란이 있다는 것뿐이다. 다양한 가설들이 진화론 내부에 존재하고, 그것들은 검증과 반증을 거쳐 결국은 하나의 가설이 살아남을 것이다. 이것이 과학이 발전하는 방식이다. 논란이 있는 가설 중에 하나는 이런 것이다. 한동안 약 1만년 전 농경이 시작되면서 인간의 진화는 멈추었다는 주장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간의 진화가 멈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속되고 있다는 가설이 있다. 이런 가설들이 논란이 되던 것은 지금부터 10여년 전이고 지금은 가속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의 진화는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진화가 계속되고 있다는 주장의 초창기 버전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책 '진화의 미래'이다.



지금은 유전자-문화 공진화가 주류 학설이다. 저자는 이 학설의 초기 주장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진화생물학, 생태심리학, 고생물학 등에서의 발견들을 종합하여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가 미래에 서로를 가속적으로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이 주장이 전개되는 과정은 앞서 소개한 포스트에서 대부분 요약된 내용들이라 이 책을 새삼스럽게 요약할 필요는 없겠다. 이전 포스트들에서 빠진 부분들을 중심으로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의 유전자 풀은 빈도가 증가와 감소를 반복하면서 매 세대마다 재조합되는 대립유전자들의 복잡하고도 동역학적인 집합이라 할 수 있다."

"선택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선택은 어떤 종류의 변화들은 가속시키지만, 어떤 변화들은 지연시킨다. 신체와 마음의 진화에서 우리는 혁명주의자였다. 그러나 미토콘드리아 DNA의 이 조각에서는 우리는 극단적인 보수주의자였던 것처럼 보인다."

"생태학자들은 동식물종들을 스페셜리스트(specialist)와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로 나눈다. ... 고릴라와 같은 스페셜리스트들은 좁은 생태적 적소에 제한돼 살아간다. 만약 우연히 고릴라들을 다른 대륙이나 아프리카의 다른 지방으로 옮겼을 때, 그들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번식해서 많은 고릴라들을 양산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다른 많은 동식물종들(제너럴리스트들)은 실제로 그러한 모습을 보여준다. …… 제너럴리스트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종은 아마도 인간일 것이다."

"어떤 유전자들이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것들은 특정 행동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아니다."

"우리의 두뇌는 정말로 훌륭한 기관이지만, 우리 주위의 환경은 두뇌가 그 잠재력을 완전히 펼칠 수 없도록 방해하는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구절로 글을 마무리짓는다.
"우리는 유전자 엘리트가 아니라 방대한 유전자 민주주의에 의해 모양이 빚어져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다."

과학은 끊임없이 발전하므로 한 때는 가설로 존재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른 가설로 바뀌거나 정설로 굳어지곤 한다. 이 책에서 주장된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은 지금은 훨씬 정교한 형태로 가다듬어졌으며 정설로 되어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독서 추천은 '일독을 권함'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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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은 이제 자연법칙이 되었다. 물론 어느 순간 갑자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다윈이 그때까지 존재했던 진화론에 자연선택과 성선택 개념을 추가하여 법칙으로서의 기반을 닦은 후, 멘델이 다윈과 동시대에 발견하였으나 묻혀 있었던 유전 법칙이 새롭게 발굴되어 통합된 신다윈주의 통합이 이루어진다. 이어서 조지 윌리엄스, 윌리엄 해밀턴, 로버트 트리버스 등이 중요한 개념들을 추가하고,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 등이 등장하면서 거의 법칙으로 굳어진 것이다. 이들 중 일반 대중들에게 가장 적게 알려진 인물이 조지 윌리엄스일 것이다. 이제는 고전이 되었다는 그의 책이 바로 '적응과 자연선택'이고, 여기 소개하는 '진화의 미스터리'는 원제목이 '주둥치의 발광'인 책이다.

저자는 진화가 진행되는데 중요한 기여를 하는 '적응'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한다.

"적응이란, 오래도록 지속된 자연선택의 작용으로 생겨난, 기능 면에서 효과적인 무엇으로 정의된다."

저자의 중요한 기여 중의 하나가 노화가 진화적 적응임을 밝힌 것이다.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적응이 비가역적으로 감소하기 때문에, 여러 원인들에 의한 죽음의 가능성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욱 커지는 것이다. 죽음의 메커니즘이나 객관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수명 같은 것은 없다. 누구나 무엇인가에 의해 죽음을 당할 때까지 살 뿐이다."

"인간 종에 고유한 수명이나 프로그램된 '자연적 사망'은 없다. 연령 분포에 따른 사망률은 진화된 노화 속도와 살아가는 환경의 혹독함 사이의 상호 연관에 의해 결정된다."

"노인병 문제가 오늘날 이렇게 커진 이유는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청년기와 중년기의 비정상적으로 낮은 사망률 때문이다. 노년의 고통은 유년기나 성년기에 사자나 폐렴균에 의해 죽음을 당하지 않은 데 대하여 치르는 대가인 셈이다."

우리가 오랫동안 질병의 증상이라고 알고 있던 것도 진화적 적응일 수 있음도 보인다.

"두통은 쉬면서 스트레스를 피하고 싶게 만드는, 병의 회복을 촉진하는 좋은 방법이다. 목 아픔은 소리를 지르거나 말을 너무 많이 하지 않게 하고 음식을 삼킬 때 조심하게 한다. 고열과 빈혈은 여러분이 박테리아에게 하는 일이지 박테리아가 여러분에게 하는 일이 아니다. 높은 체온은 면역 반응을 촉진하고 도우며, 빈혈은 박테리아가 필요로 하는 영양분을 얻지 못하게 한다. 빈혈 증상을 보이더라도 환자는 몸의 필수적인 과정에 필요한 철분 정도는 갖고 있다. 단지 혈액에서 정상적으로 순환되고 있는 철분을 많은 양 수거하여 간에 저장해 두기 때문에(연쇄상 구균이 여기까지 쫓아와서 철분을사용하지는 못한다.) 어지럼증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진화적 적응을 바탕으로 공중 보건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한 숙주에서 다른 숙주로 병원균이 확산되는 것을 억제하는 조치를 취하면 병원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자연 선택이 강화될 것이다. …… 그러므로 공중위생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질병에 걸린 개체 내에서 감염성이 약화된 병원균이 자연선택되도록 하기 위해서도, 한 숙주에서 다른 숙주로 병원균이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는 의료 및 위생 조치는 무엇이든지 바람직하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특히 초창기 진화론자들이 직면한 어려움은 종교의 저항이었다. 그래서 진화론자들의 저술에는 종교에 대한 비판이 빠지지 않는다. 저자라고 예외는 아니다. "수 많은 전통 종교들이 지난 세기 동안 축적된 생물학적 지식으로 인해 진작 사라졌어야 할 사고방식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다음과 같은 저자의 결론은 우리가 유의할 필요가 있다.

"진화 생물학의 발달과 적용은 의학과 환경 문제와 가장 관련이 깊을 테지만 사실 인간 생활의 어떤 부분도 진화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지 않은 곳이 없다."

이 책은 학술서여서 대중적인 과학책들보다 읽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나 부피가 적음이 그것을 덮고도 남음이 있다. 그래서 이 책도 강력 추천 목록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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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 이어서 생물학적 발견들이 어떻게 '정신의 신비'에 접근했는지 알아보자.


"인간 도덕성에 관한 이론만큼이나 1859년의 다윈 혁명으로부터 큰 충격을 받은 것도 없을 것이다. 다윈 이전에는 "인간 도덕성의 근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전통적인 대답은 "신이 주신 것이다"였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스피노자와 칸트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철학자들은 모두 이 문제에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해왔다. "도덕성의 본질은 무엇인가?", "어떤 도덕성이 인류에게 가장 타당한가?" 다윈은 이 같은 심오한 질문들에 대한 그들의 결론에 도전하지 않았다. 다만 인간의 도덕성이 신에게서 부여 받은 것이라는 주장이 근거없음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자연주의적 인간윤리학에 주어진 가장 중요한 문제는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개체들로부터 어떻게 이타적인 행동이 나타나는가 하는 수수께끼를 푸는 일이다."

"즉 개인은 세 가지 상황에서 선택의 단위가 될 수 있다. 개체, 가족의 성원(보다 정확히 말하면 번식자), 그리고 사회집단의 성원이 그들이다. 개인이 단위인 경우에는 헉슬리가 생각한 대로 오로지 이기적인 성향만이 자연선택의 보상을 받는다. 그러나 다른 두 경우에는 집단의 다른 성원들에 대한 배려, 즉 이타주의가 선택된다."

"자식돌보기는 포괄적응도를 높이는 종류의 이타주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이다. 문제의 행동이 이타주의자의 유전자형에 이득이 되는 한,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이타적 행동이라기보다 이기적 행동이다. 사회생물학 문헌에는 이타적인 행위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포괄적응도 를 높여주는, 즉 유전자형의 관점에서 볼 때 궁극적으로 이기적인 행위들에 대한 예들이 엄청나게 많다."

호혜성 이타주의는 간단히 말해서 서로 이득을 주고받는 행위 또는 신세의 상호교환이다.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동물과 선택능력을 지닌 인간 간의 차이가 윤리의 존재를 가르는 선이다. 죄의식, 양심의 가책, 후회, 공포, 또는 동정심이나 고마움 등 도덕적인 판단과 관련있는 행동들에 따라오는 감정들이 인간의 비윤리적이거나 윤리적인 행동에 대한 의식적인 본성을 나타낸다."

"다윈 이전에는 도덕규범들이 신에게서 부여받았거나 아니면 순전히 인간 사고(그 자체도 신에게서 부여받은 것으로 여겼지만)의 결과라는 두 가지 대답이 보편적이었다."

"실제로 만일 모든 인간집단들이 다 똑같은 규범을 가지고 있다면 이롭지 못할 수도 있다. 영아사망률이 높은 원시종족에서는 높은 출생률이 윤리적일 것이다. 한편 과밀국가에서는 자식을 하나 또는 둘 만 가지기로 하는 것이 집단 전체는 물론 각 가족에게도 큰 이득이 될 것이다. 시골 마을에서는 대가족이 함께 모여 사는 것이 가장 유리하겠지만, 복잡한 도회에서는 끊임없는 분쟁을 몰고 올지도 모른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축적된 증거들은 인간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선천적인 성향과 학습 모두의 결과임을 보여준다. 절대적으로 큰 부분은 같은 문화집단의 다른 성원들을 관찰하거나 그들로부터 교육받아 형성된다. 그러나 자기 집단의 도덕규범을 수용하는 능력은 개인 간에 큰 차이가 있다."

"한 아이가 자기 문화의 윤리체계를 존중하며 성장하려면 그 문화의 규범들을 습득할 수 있는 선천적 윤리 성향과 일련의 윤리 규범들을 접할 수 있는 경험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


약 300여년에 이르는 과학적 발견에 의해, 그리고 20세기 후반의 분자생물학의 폭발적인 성장에 의해 철학자들이 수천년 동안 고심했던 인간 도덕성의 생물학적 기초가 밝혀졌다. 이제 과학자들은 도덕성의 기원이 신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저자는 서구의 전통적인 규범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선언한다.
"서구의 전통적인 규범들이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은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경직성이 그 첫 번째 이유이다. 인간윤리의 가장 중심에는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하여 상반되는 요소들을 평가하고 선택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윤리규범들이 우리 문화의 일부인 만큼 그들을 적용하는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 규범들이 너무 경직되어 있으 면 개인으로 하여금 따르지 않아야 할 선택을 하게 만들 수 있다. 또한 진화과정의 본질이 변이와 변화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윤리 규범도 적당히 유동적이어야만 상태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 …… 두 번째 이유는 인류가 진정 급격하고 급변하는 상태 변화를 경험해 왔다는 점이다. 3000년도 더 이전에 동아시아에 살던 유목민들이 채택한 윤리규범들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모여 사는 현대사회에는 적합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철학자들이 심오한 통찰력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제자리를 맴돌았던 이유는 '정신과 육체가 별개의 존재'라는 잘못된 전제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알 수 없는 어떤 것을 '진리', '신', '절대자', 또는 '도'라는 이름으로 설정한 뒤 그것을 바탕으로 역시 알 수 없는 어떤 것을 추론했다. 과학도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 그래서 과학자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을 이야기할 때는 철학자들과 비슷해진다.
"나의 가치관은 헉슬리의 진화적 인본주 의와 어느 정도 비슷하다. "그것은 인류에 대한 믿음, 동료애, 그리고 헌신이다."

그래도 이 정도는 보아줄 수 있겠다. 과학이 '가치'의 문제도 생물학적 기초부터 분석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건하게 가지고 있는 만큼 저자가 다시 이원론으로 되돌아 갈 일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에릭 캠벨의 '기억을 찾아서'에서 내린 결론과 거의 유사하면서 시간적으로 10년 정도 앞서기 때문에 그 책을 읽었다면 내용이 상당 부분 중복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일한 결론을 위한 설명이 같진 않고, 서로 보완이 될 수 있는 내용들도 제법되기 때문에 강력 추천은 아니더라도 일독을 권장할 만하다. 어쩌면 이 책을 먼저 읽고 에릭 캠벨을 '기억을 찾어서'를 이어서 읽으면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더욱 명료해 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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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아하자 2016.06.07 22: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건 당연한데 당연하게 생각하기가 쉽지않죠. 흔히 주위에 병걸리는 사람만 봐도 육체적인 질병에 걸리면 정신도 피폐해지는 경우가 흔하니까요.

진화론은 거의 항상 보수와 진보 양측의 공격을 받는다. 보수가 진화론을 공격하는 지점은 인간을 동물과 동급으로 놓았다는 점이다. 한편 진보가 진화론을 공격하는 지점은 유전자 결정론이다. 진보적 여성주의자들이 진화론적 결론을 거부할 것으로 '모성 본능'이 있다. 우리가 직관적으로, 그리고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고정 관념, 즉 어미는 자식을 돌보는데 헌신한다는 '모성 본능'이다. 워낙 강하게 박혀있는 고정관념이어서 이를 부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여기에 여성 진화생물학자가 도전한다. 바로 사라 블래퍼 허디의 '어머니의 탄생'이다.

저자는 '모성 본능'이 허구임을 이야기한다.

"모성 본능이 무엇이건 간에, 본능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을 의미하는 것처럼 자동적인 것은 아니다."
"사회 생물학자 메리 제인 웨스트-에버하드(Mary Jane West-Everhard) 다음과 같이 강경하게 말할 있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오직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의미에서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특정한 상황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유전자도 발현되지 않는다. …… 유전자는 특정한 단백질을 위한 것이다. 이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은 기본도 모르는 사람이다.""

'모성 본능'을 인정하면 무엇보다도 어미에 의한 영아 살해, 그리고 현대에서의 낙태를 설명할 수가 없다. 어미에 의한 영아 살해는 동물들의 세계에서는 드문 일이 아닐 뿐더러 수컷에 의한 영아 살해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어 있기 까지 하다. 인간 종도 생물학적으로는 우리가 동물이라고 칭하는 존재들과 다를 바가 없으므로 동물들 뿐만 아니라 인간 종에서도 나타나는 영아 살해 현상을 통합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미가 새끼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성향을 선천적으로 타고 난다는 '모성 본능' 관념을 버려야만 가능하다.

저자는 모성 본능이라는 관념이 정치적임을 지적한다.
"임신 중절에 대한 격렬한 논쟁은 어떤 통치 체제나 가부장제, 혹은 기록이 남아 있는 역사 보다도 훨씬 오래된, 여성의 번식을 통제하려는 동기로부터 유래한다."
"여성이 자신의 번식 기회에 대한 통제력과 처지를 개선할 기회 모두를 갖는 곳이면 여성들은 어디서나 많은 아이보다는 삶의 질과 경제적 안정을 선택한다."

'모성 본능'이라는 관념이 대중들에게, 그리고 여성들에게 별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진 것은 스테파니 쿤츠가 '진화하는 결혼'에서 지적한 것처럼 산업혁명 이후 남자는 가계를 책임지고 여자는 가정을 책임지는 구조가 정착하면서 부터일 것이다. 그 이전,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 인간 종의 진화가 멈추었다고 주장되는 홍적세에서의 여성들은 생존을 위해 번식을 관리했다. '모성 본능'이라는 관념을 걷어내고 생물로서의 어미가 어떤 존재인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성선택은 전형적으로 개의 구성 소를 포함한다. 요소는 암컷에 접근하기 위한 수컷 경쟁(male-male competition), 그리고 암컷 선택(female choice)이다."
"각각의 어미에게 삶의 과정은 길고 짧고의 여부를 떠나 주로 가장 좋은 자원 분배 방식에 관련된 결정과 분기점의 연속이다."
"어미의 자기희생은 고도로 근친 번식적인 집단, 또는 번식 경력을 끝낼 시점이 가까워진 어미들에게서 발견되는 것이 전형적이다."
"어머니가 진화적 시간 속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손을 낳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살아남아 번성할 있는 자손을 낳아야만 한다."
"영장류와 같은 종에게는 어미가 바로 환경이거나, 최소한 모든 개체의 실존에서 가장 위험한 생애 단계의 가장 중요한 환경 요소다. 어미의 , 그리고 여기에 보태 어미가 자신의 세계(희소 자원, 포식자, 병원체, 그리고 함께 사는 동종 개체들) 얼마나 다룰 것인가가, 번의 수정이 의미가 있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요소가 된다."
"갓난아기에 대한 어머니의 헌신(사람의 경우 '모성애'라는 말로 표현하는 ) 신화도 아니고 문화적 구성물도 아니다. 갓난아기에 대한 인간 어머니의 정서적 헌신은 다른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생태학적,역사적으로 생겨난 상황에 깊게 영향받는다."

이런 주장이 가능한 것은 과학이 한두개의 발견을 바탕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연구 결과들이 종합된 것이기 때문이다. 즉, 모성 행동이 발현되게 하는 호르몬의 영향, 어미와 새끼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본성과 양육의 상호작용, 남녀 성비의 문제, 임신 중의 태아도 어미와 자원 경쟁을 벌인다는 점, 젖을 먹이는 것과 젖 떼기가 어미와 새끼에게 미치는 영향, 아기들이 포동포동하게 태어나는 이유, 아이들의 애착 행동에 관한 연구 결과 등을 종합하여 해석한 결과이다.

저자가 이런 위험해 보이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 많은 진화론적 발견들이 그러하듯 여성을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으로 형성된 '모성 본능'이라는 관념이, 저자 자신도 일하는 어머니로서 많은 어머니들에게 구속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대단한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삶을 자신의 방식으로 계획하려는 단순한 목표를 갖고 있는 평범한 여성이라면, 개인이기보다는 아기의 필요에 매여 있는 보모로서, 아기의 애착이 어머니의 구속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하게 된다."
또 여성을 '모성 본능'으로 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다양한 차별을 무력화시키는 수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국 '에리세 선언' 서명자들은 "진실을 억압하려고 시도하면" 좋은 것보다는 해가 되는 것이 많다고 결론을 내렸다. 1998 무렵의 의사들 역시 어머니의 양가적 성향과 영아 살해에 대해 보다 열린 토론을 요청하고 있었다. 영아 살해에 대한 보고를 억압하려는 시도가 빚어내는 아이러니 하나는 우리가 어머니 행동의 전체 반경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될수록 자민족 중심적인 도덕 평가의 근거, '문명화 ' 사람과 '야만적인' 사람을,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을, 그리고 기타 등등을 구분하는 근거가 약해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진화생물학적으로 어머니를 해체한 후 '모성 본능'의 구속으로부터 여성을 해방한다. 그래서 이 책은 여성주의자들에게는 필독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남성들은 이런 내용에 대해 무심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인간 종이 양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 책은 850여 페이지로 부피도 크고 학술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사변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사실들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어서 읽기가 어렵지는 않다. 다만 시간이 좀 걸릴 뿐이다. 아무튼 이 책은 강력 추천 목록에 올려야 마땅하다.


Posted by thinknew
TAG 모성 본능, 진화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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