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들은 과학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하나는 지금과 같은 거대한 물질 문명을 구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강력한 도구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모든 것은 과학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을 유물론적 존재로 격하시키는 것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사회가 견제하지 않으면 인간을 멸망으로 몰아넣을 위험한 것으로 다루려고 하는 태도이다. 당연하게도 과학자도 인간임에 분명하므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강점과 약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회가 과학에 대해 감시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과학 그 자체는 가치중립적이어서 인간의 가치를 바탕으로 과학의 발전을 억누느려는 시도는 언제나 성공하지 못할 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과학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과학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과학을 대중들의 눈높이에서 설명해주는 과학저술가들이 필요하다. 이제 소개할 이 책의 저자 에른스트 페터 피셔는 과학자이면서 대중들에게 과학을 잘 설명해 주는 저자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과학을 어렵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물론 정치학이나 경제학, 의학 분야의 전문적 표현들 중에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 그래서 이것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이 무지하다고 부끄러워 한다. 하지만 과학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청중에 책임을 묻는 게 아니라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과학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과학은 물질계를 다루는 것이라고 생각하므로 과학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것에 대해 자괴감을 느끼지 않지만 정신의 문제를 다루는 철학이나 형이상학은 몰라도 아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과학과 철학 둘 다 모르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사변적인 주제에 대해서는 언제나 자기 주장을 한다. 인간의 문제에 대해 과도한 자기 주장을 갖는 것과 과학을 어렵다고 기피하는 것, 둘 다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제목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양자역학에서의 사고실험으로 유명한 이야기이다. 양자역학은 어렵다. 그러나 노벨상을 2개나 받은 천재 과학자 리처드 파인만조차 "양자역학을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양자역학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다"라는 선문답 같은 이야기를 할 정도이므로 대중들이 양자역학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자책할 필요는 전혀 없다.
또 다른 과학에 대한 선입견은 '과학과 예술은 별개이다'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저자가 재인용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미국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Raymond Chandler는 예술과 과학이라는 문화의 쌍이 얼마나 밀접하고 견고하게 맺어져 있는가를 1938년 2월 19 일자 일기에서 잘 표현하고 있다. "두 종류의 진리가 있다. 길을 가리키는 진리와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진리다. 첫 번째 진리는 과학이고 두 번째는 예술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무관하지 않으며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것도 아니다. 예술이 없다면 과학은 마치 매우 정교한 핀셋이 함석 세공장이의 손에 들려 있는 것처럼 쓸모가 없다. 과학이 없다면 예술도 감수성 풍부한 민요와 싸구려 노랫가락이 마구 뒤섞인 혼돈에 지나지 않는다. 예술의 진리는 과학이 비인간적으로 변하는 것을 막아 주고, 과학의 진리는 예술이 천박해지는 것을 막아준다."
현재 물질계를 주도하는 두개의 이론을 들라면 아원자(원자보다 크기가 작은) 입자들을 설명하기 위한 양자역학, 거시계를 설명하기 위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자가 양자역학이 성립되는 과정을 가장 먼저 이야기하기 위해 제목을 저처럼 붙였지만 그렇다고 양자역학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성이론을 거처 양자역학이 성립되는 과정, 전자기파 이론이 성립되는 과정, 수학에서의 발견들에 대한 이야기, 진화론이 성립되는 과정, 인간 본성을 알고자하는 심리학에서의 발견들에 관해 핵심적인 역할을 한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많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 중에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요소를 연구하면서 뵐러는 그것이 4가지 원소로 이루어졌음을 깨닫는다. 요소에는 탄소, 수소, 산소, 질소가 1 : 4 : 1 : 2의 비율로 들어 있었다. 그를 흥분시킨 것은 이와 똑같은 결합이 유기체와는 전혀 무관한 재료에서도 발견된다는 사실이었다. ………… 다음과 같은 질문도 가능하다. 두 분자에 똑같은 원자들이 들어 있다면 둘의구조를 서로 뒤바꿀 수도있을까? 뵐러는1828년 그 같은 실험을 실시하여 성공을 거둔다. ……… 뵐러의 실험이 갖는 의미는 매우 명확했다. 살아 있는 자연(유기물)과 생명이 없는 자연(무기물)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실용적인 면에서 구분될 뿐이었다. 이로써 화학은 생명력의 특별함에 대한 거창한 생각을 한순간에 진부한 것으로 만들여 버렸고 전에 없이 흥미로운 분야로 떠올랐다."
인간의 문제도 유물론으로 수렴한다는 사고의 출발점이 될 만한 발견이다. '유물론'하면 공산주의의 이념적 바탕이 유물론이었다는 것 때문에 곧바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이 다수 있다. 여기서 유물론이란 인간의 정신도 뇌의 화학작용이라는 물질적 바탕 위에 존재하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다음과 같은 구절도 있다.
"19세기 생물학자들의 결정적인 공헌은 플라톤 이래로 2천년 이상 이어져온 고정관념을 사고과정에서 과감하게 걷어낸 데 있다. 플라톤은 일상에서 관찰되는 생명체의 가변적인 모습들은 비본질적인 것이며, 그 속에 자리 잡은 불변의 이데아만이 본질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요한 것은 눈앞에 보이는 말이 아니라 말의 이데아다. 이데아는 영원히 존재한다."
서양의 철학적 전통을 정면 비판한 것이 저자가 처음은 아니다. 그리고 과학이 발전할 수록 서양의 철학적 전통은 붕괴된다. 그 점은 신학도 마찬가지다. 전통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오랜 역사를 지닌 철학 사상적 기반에 대한 부정에 대해 무의식적인 반감을 가진다.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은 오랜 역사를 지닌 사상적 기반이 오류라고 밝혀진다고 해서 그것들이 무의미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때는 인간의 지식의 한계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과학이 많은 것을 밝혀낸 지금, 여전히 그 생각들을 추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과거를 황금시대로 생각하는 것도 역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에 대한 구절도 있다.
"우리는 그 답을 진보의 관념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베이컨이 등장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모든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자기들의 이전 시대가 더 좋았다고 생각했다. ("예전의 좋던 시절에는…") 고대 그리스인들은 오래 전에 지나가 버린 황금시대를 그리워했고, 르네상스 시대에는 접두 어 '르re'가 말해주듯이 시선을 뒤로 향한 채 살았다. 베이컨은 이 같은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그에게 황금시대란 미래를 의미했다. 사람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하늘이 아닌 지상에서-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다. 그는 진보의 관념을 창조했다. '진보의 가능성'은 이때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완전히 새로운 생각이었다."
이 책은 과학의 발전사를 서술하면서 자연스럽게 과거의 철학적 전통과 단절하는데,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이는 다음과 같이 언급함으로써 철학적 사유의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현대 과학의 흐름을 고사성어 같은 표제어들로 제시한다. 지은이가 소개하는 현대과학의 흐름은 일종의 과학적 잠언과 같다. 과거의 관점에서 보면과학이 아니라 은유이며 상징이다."
"지은이의 놀라운 상상력은 과학과 예술을 결혼시킨다."
아마도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저자는 사람들이 딱딱하다고 생각하는 과학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독자로 하여금 웃게 만들 수 있는 몇 안되는 글솜씨를 지녔다. 당연히 이 책도 강력 추천 목록에 올린다. 저자의 다른 책들도 순차적으로 소개할 생각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이런 생각이 조선시대에는 없었던 것은 분명하므로 해방 이후 서양의 문물이 밀물처럼 밀고 들어올 때 따라온 것이 분명하다. 이 결혼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연하게 생물학적인 짝짓기를 연상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결혼이 짝짓기와는 무관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지가 제법된다. 결혼이 생물학적인 짝짓기와 무관하다면 이것은 사회 제도라는 뜻이고, 사회 제도는 문화의 한 부분으로 진화해 왔다는 것이 지금은 정설이다. 저자는 결혼 제도의 변천을 방대한 자료 조사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그것이 문화 진화의 일부분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글을 시작한다.
"어쨌든 사람들은 수천년 전부터 결혼제도가 위기에 봉착했다며 옛날이 더 좋았다고 주장했으니까 말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기혼 여성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로마인들은 이혼율이 높은 것을 개탄하며 과거의 안정적인 가족과 당시를 비교했다. 미국에 정착한 유럽인들은 거의 배에서 내리자마자 여자들과 아이들의 불손함과 가족의 붕괴를 개탄하기 시작했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있다. 기원전 2500년 경에 쓰여진 이집트의 상형 문자에 "요즘 젊은이들은 행동거지가 경솔하고 버릇이 없다"라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문화는 끊임없이 진화하는데 사람들은 언제나 그 변화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는 현재와 같은 결혼관이 성립된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가 어쩌다가 지금과 같은 지경에 이르렀는지 이해하려면 인류 역사상 대부분의 기간 동안 결혼의 일차적인 목표는 부부와 그 자식들의 욕구, 즉 개인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것이 아니었음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결혼은 평생의 반려자를 구하고 사랑하는 자식을 기르기 위한 일인 동시에, 좋은 가문과 사돈을 맺고 가족의 노동력을 증가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과거 수천 년 동안에도 물론 사람들은 사랑에 빠졌다. 때로는 심지어 배우자와 사랑에 빠지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결혼은 근본적으로 사랑과 관계가 없었다. 결혼은 경제적, 정치적으로 너무나 중요한 제도였기 때문에 사랑처럼 비이성적인 감정만을 근거로 실행할 수 없었다."
"18세기에 시장경제가 전파되고 계몽주의가 등장하면서 커다란 변화들이 급속히 이루어졌다. 1700년대 말에는 중매결혼 대신 개인이 직접 배우자를 선택하는 결혼이 사회적 이상으로 자리 잡았으며, 사랑을 기반으로 한 결혼이 장려되었다.5천 년 만에 처음으로 결혼이 정치적,경제적 동맹 속의 연결 고리라기보다는 두 개인의 사적인 관계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18세기에 사람들은 사랑이 결혼의 근본적인 이유가 되어야 하며, 젊은이들이 사랑을 기초로 배우자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급진적인 새 사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19세기에 사랑을 기반으로 한 결혼에 감상적인 색채가 더해지고 20세기에는 성이 강조된 것은 각각 이 새로운 결혼관의 발달이 논리적으로 거쳐야 하는 단계였다."
"하지만 1950년대에 사상 처음으로 서유럽과 북아메리카의 대다수 가정이 남자가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고 여자는 전업주부로 살림을 맡는 형태를 갖췄다. 1950년대에 새로 나타난 또 하나의 현상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결혼해야 하며, 그것도 젊은 나이에 결혼해야 한다는 문화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저자에 의하면 지금과 같은 결혼관이 성립된 것은 불과 150년 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랑이 결혼의 전제조건'이라는 이 관념이 바로 현재의 '결혼 제도'의 혼란의 원인이라고 한다.
"사랑의 결합과 평생에 걸친 친밀한 관계라는 이상이 자리를 잡자마자 사람들은 이혼할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가족이 아이들의 욕구에 부응해야 한다는 데에 사람들이 동의하자마자 사생아 출생에 대한 법적인 처벌이 비인간적이라는 주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여성들이 사랑 없는 결혼을 하지 않고도 경제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여성에게도 동등한 권리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이 감정을 자유로이 따를 수 있어야 한다면서, 동성애를 범죄에서 제외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 까지 했다."
저자에 의하면 고대로 부터 사람들이 결혼을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결혼의 사회적 역할과 의미가 이렇게나다양한데도,역사상대부분의기간동안부부간의분업은대개사회적으로인정을받았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이 결혼하는 이유 중에는 혼자 힘으로 모든 일을 다 하며 살아남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포함되어 있었다."
"역사상 대부분의 기간 동안 결혼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아무래도 여러 가문과 공동체들이 협동 관계를 맺는 데 기여한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사실 역사를 통틀어 결혼으로 정의되거나 찬양받았던 제도들이 몹시 다양한데도, 그 모든 제도들을 분명히 관통하는 유사점들이 존재한다. 결혼은 대개 성과 관련된 권리와 의무, 성역할, 사돈과의 관계, 자식의 합법적인 지위 등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사람들은 결혼을 통해 사회 안에서 구체적인 권리와 역할을 얻는다."
문화 현상을 이야기하면서 종교를 빼놓을 수는 없다. 그래서 저자는 결혼 제도에 미친 교회의 영향도 언급한다.
"초기 기독교는 이혼과 일부다처제에 단호히 반대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독교가 자리를 잡은 뒤 천 년 동안 이혼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취했다. 심지어는 일부일처제를 옹호하는 입장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
"근친상간에 대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정의는 중세 시대 결혼의 가장 홍미로운 측면 중 하나였다. 구약성서에서도 신약성서에서도 교회가 정한 근친상간 금지 조항의 근거를 찾을 수는 없었다."
"교회법은1139년에야 비로소 성직자의 결혼을 완전히 금지했다."
우리나라도 그랬지만, 현대에 들어 성도덕이 문란해지고 결혼 제도가 위험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결혼 생활을 잘 유지하는 법에 대한 조언서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학술지와 달리 대중적인 지침서들은 그 분야 전문가들의 검토를 받는 경우가 드물다. 이런 책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시험을 거친 연구 결과가 아니라, 저자들이 자신에게 효과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방법이거나, 독자들에게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하는 방법이거나, 일부 출판사 영업부가 독자들이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방법들 뿐이다. 이 방법들은 모두 "오랜 세월을 거치며 효과가 입증된 규칙"들과 뒤섞여 소개된다. 하지만 과거의 규칙들이 과거에는 효과가 있었을 지 몰라도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것은 성공서에도 같이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저자는 한편으로 혼란스러워 보이는 현대의 결혼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우리는 틀림없이 지금보다 더 건전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으며, 문제를 겪고 있는 부부들을 더 많이 구해낼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와서 혈연을 통해 정치적 동맹을 맺거나 농부와 장인들을 현대 경제의 중심으로 되돌려 놓을 수 없듯이, 결혼이 과거처럼 사람들이 서로에게서 애정과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제도라는 위치를 되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좋든 싫든 우리는 개인적인 기대와 사회적인 지원 시스템을 이 새로운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제도로서의 결혼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광범위한 문헌 고증을 통해 보여준다. 저자가 제목도 '진화하는 결혼'이라고 붙였다시피 문화 현상으로서의 결혼도 진화해 왔음이 분명해 보인다. 이 책은 방대한 문헌 조사를 통해 결혼 제도를 고찰한 학술서이다. 그런데 그 방대한 부피의 대부분을 결혼 제도가 어느 때는 어떠했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라는 에피소드의 나열로 채워두었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이라면 이 글에서 요약해 둔 것 정도로 충분할 것이다. 따라서 결혼 제도의 변천사 그 자체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이 두터운 책을 굳이 읽으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독서 추천은 중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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