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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의 현대적 종합이라는 신다윈주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 <확장된 표현형> - 그리고 이 책 <눈 먼 시계공> 순으로 읽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은 18세기 윌리엄 페일리가 진화론에 반대하는 논거로 시계공의 예로 들면서 "시계와 같이 정교한 장치가 설계자도 없이 우연히 만들어질 수 없다"라고 한 말에 대한 반론의 형식으로 붙인 것이다. 페일리의 그 주장은 그 뒤 오랫동안 신에 의한 지적 셜계론의 바탕이 된다. 아무튼 도킨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연선택은 마음도, 마음의 눈도 갖고 있지 않으며 미래를 내다보며 계획하지 않는다. 전망을 갖고 있지 않으며 통찰력도 없고 전혀 앞을 보지 못한다. 만약 자연선택이 자연의 시계공 노릇을 한다면, 그것은 '눈 먼' 시계공이다."

도킨스는 크게 두가지 부분에서 공격을 받았다. 하나는 '이기적'이라는 비유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눈 먼 시계공'이라는 비유가 의미하는 것, 즉 자연계에서 '신의 역할은 없다'는 것 때문이다. 둘 다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진화론의 주장, 그리고 도킨스의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아예 이해할 생각도 없이 일방적으로 공격하기 때문이다. 다윈의 입을 빌어 도킨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윈이 지적했듯이, '개인적인 불신에서 비롯된 주장'은 극히 빈약한 주장이다."
도킨스의 주장에 대해 제대로 반박하지 못한다면 진화론에 대한 반박은 대단히 힘들다고 할 수 있다. 종교계의 부당한 공격에 시달리던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을 통해 아예 무신론을 주장해 버린다. 그리고 무신론의 최전선에서 아직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이다.

도킨스는 다음과 같은 말한다.
"진화의 궁극적인 목표가 우리 인간이라는 믿음은 터무니없는 인간 허영심의 산물에 불과하다. 실제 상황에서 선택의 기준은 항상 단기적인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개체의 생존이거나 아니면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성공적인 번식이다. 수백만 년이 흐른 뒤에 뒤돌아 보았을 때 그 과정이 어떤 머나먼 목표를 향해 조금씩 앞으로 나간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은 언제나 단기간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여러 세대에 걸친 우연적인 결과이다. '시계공', 즉 '누적적인 자연선택'은 미래를 알지 못하며 장기적인 목표 따위는 갖고 있지 않다."
이 말이 타당하다면 신이 들어설 자리는 아예 없다. 다윈 이전에도 유일신 신앙인 기독교에 대한 비판은 있었다.
"다윈 이전의 무신론자라면 흄과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을 것이다. "나는 생물의 복잡한 형태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할 수 없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단지 신이 그 해답이 아니며 따라서 우리는 누군가가 더 좋은 설명을 제시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뿐이다.""
불행하게도 흄은 진화론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등장하기 전에 이런 말을 함으로써 별로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이 책은 단지 분자 생물학 차원에서의 진화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론을 비판자들에게 좀 더 분명하게 설득시키겠다는 의도로 쓰였다. 그래서 책의 후반부는 비판 가설에 대한 반박 내지 해설에 할애하고 있다. 다윈주의 진화론은 세 요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변이, 유전, 선택'이 그것이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하던 그 시기에 이미 멘델은 유전에 관한 초기 이론을 세워두었다. 그러나 다윈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에 유전 현상이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꽤 오랫동안 멘델을 추종하는 사람들도 다윈주의 진화론에 반대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R.A. 피셔에 의해 멘델의 유전론이 다윈주의 진화론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요소라는 것이 밝혀졌다. 따라서 피셔 이후의 진화론을 신다윈주의라고 한다.

그 외에도 라마르크의 '용불용설'과 '획득 형질의 유전' 가설을 거의 폐기 처분하고, 고생물학자 굴드에 의해 주장된 '단속 평형설'도 신다윈주의 진화론의 대립 가설이 아니라 그 일부로 포함될 수 있는 것임을 보였다.

진화론에서 도킨스가 차지하는 위치는 다윈과 거의 비슷한 반열이라고 볼 수 있으며, 어떻게든 종교를 옹호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도킨스가 넘기 힘들 장벽으로 느껴질 그런 인물이다. 진화론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도킨스의 저작들은 꼭 읽어보아야 할 필요가 있는 그런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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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포스트에서는 진화심리학의 목표, 발전 과정, 전통 철학의 오류에 대해 요약했다. 이어서 진화론, 진화생물학 그리고 진화심리학에 대한 여러 분야로부터의 도전에 대한 것을 요약한다.
“그들(사회생물학을 반대한 학자들)의 확신은 선천적 인간 본성이란 개념에 함축된 것처럼 보이는 세 가지 의미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나온다. 첫째, 마음에 선천적 구조가 있다면 각 사람(혹은 각기 다른 계급, 성, 인종)은 각기 다른 선천적 구조를 가질 수 있다. 그것은 차별과 억압을 정당화할 수 있다. 둘째, 공격성, 전쟁, 강간, 배타성, 지위와 부에 대한 탐욕 같은 밉살스런 행동이 선천적이라면, 그것들은 '자연적'이고 따라서 좋은 것이 된다. 우리는 그런 행동에 반대할 수는 있지만 그것들은 결국 유전자 속에 있고 바꿀 수 없으므로 사회적 개혁의 시도는 무익해 진다. 셋째, 유전자가 행동을 초래한다면 개인은 자신의 행동을 책임지지 않게 된다. 강간범이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라는 생물학적 명령을 따른 것이라면 그의 잘못이 아니다.”
“내 요점은, 과학자는 도덕적, 정치적 사상에 영향을 받지 않고 상아탑 안에서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존재와 관련된 모든 인간 행동은 심리학의 주제인 동시에 도덕철학의 주제이며, 둘 다 중요한 주제다. 그러나 그 둘은 같은 것이 아니다. 인간 본성에 대한 논쟁은 지적 게으름, 즉 도덕적 쟁점이 부상했을 때 도덕적 논의를 피하는 게으름 때문에 혼란에 빠지곤 했다. 권리와 가치의 원칙으로부터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이미 포장된 도덕적 재고(대개 신좌파나 마르크시즘)를 구입하거나 도덕적 토론을 면제시켜 줄 인간 본성에 대한 행복한 이론을 통과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였다.”
“인간 본성에 대한 부정은 그에 대한 강조 못지않게 쉽게 왜곡되어 해로운 목적에 봉사할 수 있다. 우리는 해로운 목적과 그릇된 이론을 모두 밝혀야 하고, 그와 동시에 양자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과학의 진보와 함께 행동에 대한 설명이 공상에서 멀어짐에 따라 데닛이 명명한 이른바 '비루한 변론의 망령Specter of Creeping Exculpation'은 더욱 불안한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지금보다 분명한 도덕철학이 없으면 행동에 대한 '그 어떤' 원인이라도 자유의지와 도덕적 책임을 훼손할 것이다. 과학적 설명 방식은 의지의 기초에는 원인이 없는 인과관계가 놓여 있다는 신비주의적 개념을 수용하지 않기 때문에, 과학은 어떤 사실을 밝혀내든 분명 의지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동성애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주장은 게이 유전자나 게이 뇌가 아니라, 개인들이 합의를 통해 사적인 행동을 했다면 차별이나 괴롭힘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인간의 권리에 근거해야 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도덕적 감정들은 장기적으로 개인의 이익과 궁극적으로 유전자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설계되었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여기에서도 나는,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와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면 좋을까를 혼동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은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남자들이 여성을 객관화하고 억압하기 위해 꾸며 낸 공모가 아니다. 정말로 성을 차별하는 사회에서는 여자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차도르로 감싼다. 역사상 모든 시대에 아름다움에 대한 비판은 권력을 가진 남자, 종교 지도자, 때때로 나이 많은 여자, 의사들처럼 최근의 미용 열풍 때문에 여자들의 건강이 위험해졌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의 몫이었다.”
“만일 그 차이들(성 전략의 진화론적 해석을 통해 본 남녀의 차이)을 통해 남자들이 여자를 대상으로 몇몇 범죄를 저지르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면, 그것은 그런 범죄들이 덜 가증스럽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확실하고 엄격한 억제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미다.”
“진화심리학이 도전하는 대상은 페미니즘의 이상과 목표가 아니라 페미니즘 이론이 채택해 온 현대의 정통적인 마음 이론이다. 한 이론에서는 사람은 그들 자신의 믿음과 욕구에 따라 행동하기보다는 자신의 계급과 성의 이익을 수행하도록 설계되었다고 본다. 다른 이론에서는 아이들의 마음은 부모에 의해 형성되고, 성인의 마음은 언어와 대중매체의 이미지에 의해 형성된다고 본다. 세 번째 이론은 우리의 선천적인 성향은 좋은 것이고 무시할 만한 동기들은 사회로부터 형성된다는 낭만적인 학설이다. …… 이런 종류의 주장에는 엉터리 생물학(자연은 좋은 것이다), 엉터리 심리학(마음은 사회에 의해 창조된다), 엉터리 윤리학(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이 결합되어 있다. 그것들을 포기해도 페미니즘은 전혀 손해를보지 않는다.”


그리고 과학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규명된 진화론에 대해 보충 설명을 요약한다.
“과학의 시대에 '이해한다'는 것은, 행동을 설명할 때 그 행동을 (1) 유전자, (2) 뇌의 구조, (3) 뇌의 생화학적 상태, (4) 개인의 양육 환경, (5) 사회가 개인을 다루는 방식, (6) 그 개인에게 영향을 준 자극들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선택이 과학에서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은, 생명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해 주는 유일한 이론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매력은 그 '적응적 복잡성' 또는 '복잡한 설계'에서 나온다.”
“자연선택이 시간에 따라 유기체를 변화시키는 유일한 과정은 아니다. 그러나 자연선택은 시간에 따라 유기체를 '설계'하는 것처럼 보이는 유일한 과정이다.”
“유기체는 일종의 기계라서 유기체의 '복잡성'은 기능적, 적응적 설계, 즉 어떤 흥미로운 결과를 이뤄내기 위한 복잡성이다. …… 따라서 자연선택은 그냥 평범하고 낡은 복잡성이 아니라 '적응' 복잡성이 어떻게 출현할 수 있는가를 설명하는 유일한 이론으로 남는다. 왜냐하면 '어떤 것이 얼마나 잘 작동하는가'가 '그것이 어떻게 생겨났는가'에 원인 역할을 하는 이론으로서 유일하게 기적에 의존하지 않는 순방향 이론은 자연선택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연선택에는 인간 설계자와 같은 예측력이 없지만, 여기에는 나쁜 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선택에는 정신적 한계나 상상력의 부르주아적 감성과 지배 계급의 이익에 순응하려는 경향 따위가 없다. 자연선택은 유용성에 의해서만 지배되므로 결국 영리하고 창의적인 해결책에 도달한다.”
“진정한 과학은 막연히 비슷하다는 느낌을 초월하고 기저에 깔린 법칙에 도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물체가 어떻게 구르고 뛸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는 소박한 물리적 이론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지를 예측할 수 있는 심리학과, 진리들로부터 다른 진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논리학과, 합계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산수와, 생물과 그것들의 능력에 대해 추론할 수 있는 생물학과, 혈연과 유전성에 대 해 추론할 수 있는 친족 이론과, 다양한 사회적, 법률적 규칙 체계를 갖고 있다. 이 장의 대부분에서는 이런 직관 이론들을 탐구할 것이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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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생물학자 도브잔스키는 "생물학에서는 진화론적 설명만이 이치에 맞다"라고 했다. 이때 생물학의 범위 안에 인간의 문제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런데 데이비드 슬론 윌슨은 인간의 문제(여기에는 종교를 포괄하는 문화도 포함된다)를 포함한 생물종 전체를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진화론을 물리학에서의 중력의 법칙과 같은 하나의 법칙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윌슨은 자신을 진화생물학자가 아닌 진화론자로 자처한다. 진화론이라는 이론에 입각하면 인간의 문화,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종교 등도 설명 가능하다는 것을 윌슨은 이 책에서 분명하게 보여준다. 먼저 이론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이론이란 세상을 이해하는 사고를 체계화하는 방법일 뿐이다. 그리고 과학적 방법은 그러한 이론에서 비롯된 주장을 거부하거나 옹호하는 수단일 뿐이다."

이론이 가설의 형태로 제시되고 검증되어서 이론으로 정립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은 비유로 표현한다.
"벽돌 한 장은 초라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는 거의 쓸모가 없는 물건이지만 다른 벽돌들과 합쳐지면 내구성이 강하고 매우 유용한 물건이 된다. 사실 또한 과학적 방법을 통해 증거가 쌓이면 이와 같이 된다."
당연히 여기서 비유로 표현한 벽돌은 개별 연구자들이 연구한 결과들을 의미한다.

진화론이 이론으로 정립되는 과정에서 오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윌슨은 그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진화론을 바라보는 균형잡힌 시각을 제공한다.
"이 문제의 핵심은 적응이라는 진화론적 개념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적응은 종국에 모든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근시안적인 이기심의 축소판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사실은 세상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 것도 아닐뿐더러 결코 그렇게 될 수도 없음을, 따라서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단지 위안거리에 불과한 망상임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매우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든 중요한 것은 진화론적 성공으로 가는 길에는 매우 상이한 두 개의 경로가 있다는 점이다. 하나는 이웃을 이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동의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이웃과 서로 협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경로가 진화론에서 선의 여지를 제공한다."


윌슨은 또 유전자의 영향과 환경의 영향에 관한 논쟁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정리한다.
"요컨대 환경은 생물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만 학습과 연관된 방식이 아니라 환경과 관련된 매우 구체적인 특징들(특정 화학물질의 유무)이 유전적으로 결정된 전략들을 작동시키는 스위치가 된다."

윌슨은 미학도 진화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공통점이라고 찾아보기 힘든 이러한 미에 대한 인식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것은 아름답다고도 여겨진다는 점이다."

그런 다음 선과 악이라는 도덕 감정, 사회성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을 제시한다.
"'선'과 연관된 특징들은 집단이 단일체로서 제 기능을 할 수 있게 기여하는 반면에 '악'과 연관된 특징들은 집단을 희생시키고 개별 구성원들의 이익에 기여한다."
"사회적 삶은 집단의 일부로서 원활하게 제 기능을 다하는 '건실한 이웃'과 집단 내부에서 건실한 이웃의 희생으로 자기 이득을 취하는 '사기꾼' 사이의 싸움과 다름없다."


윌슨은 또 인간의 진화가 생물학적 진화에서 점차 벗어나 문화적 진화로 이행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인간의 적응은 주로 유전자로부터 획득되는 행동 양식은 줄어들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획득되는 행동 양식은 늘어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바로 상징적 사고의 남다른 점이다. 파블로프 조건에서 정신적 연상 작용은 그 환경에 실제로 존재하는 연상물과 일치하지만 상징적 사고에서는 환경적 연상물과 분리됨으로써 그 자체의 생명력을 획득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없다. 윌슨은 이 책에 앞서 '종교는 진화한다'라는 책을 출판했다. 나의 독서 목록에도 포함되어 있는 그 책에서 윌슨은 기독교적 세계관은 진화론에 의해 붕괴되었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표현했지만 그래도 종교 일반의 유용성을 빌어 은연 중에 기독교를 옹호한다. 이 책에서도 종교에 대해 다른 부분보다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설명하는데 그 책에서 주장하는 것보다 많이 약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종교를 옹호하고자 하는 자신의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윌슨은 종교의 수평적 측면과 수직적 측면을 이야기한다. 수평적 측면은 종교인들의 상호간에 형성되는 집단 형성 기제를 의미하고, 수직적 측면은 신과 인간의 관계를 의미한다. 그런 다음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이야기하는데 이게 좀 묘하다.
"다시 말해서 종교적 믿음이 사람들의 행동을 유발한다는 점(궁극적 설명에 해당하는 종교의 수평적 측면)에서 보면 종교의 목표가 현실적인 이득이라는 내 주장이 맞을 수 있고, 그들의 종교적 경험이 자신이나 타인의 이득보다는 신과의 관계에 더 치중되어 있다는 점(근접적 설명에 해당하는 종교의 수직적 측면)에서 보면 그들의 주장이 맞을 수 있다."
집단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는 수평적 측면은 진화심리학에서 이미 인정되고 있다. 문제는 종교의 수직적 측면인데 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문제삼는 것이 바로 이 수직적 측면이다. 종교적 근본주의가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이 수직적 측면에 의해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윌슨은 수평적 측면에 대한 것과 수직적 측면에 대한 것을 등가로 비교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언급도 애매하긴 마찬가지다.
"혹시 사실적 현실주의에서 출발하면 수직적 측면만 강해지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바로 나의 딜레마이다. 종교적 믿음이 사실적 측면이 아니라 실용적 측면에서만 현실적일지 모른다는 가능성에 직면한 종교인들처럼 나에게는 바로 이 딜레마가 강하다."
신과의 수직적 관계가 강조되면 근본주의가 나타난다는 것을 윌슨도 인식은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모호한 언급을 통해 자신이 여전히 종교를 옹호하는 입장에 있음을 밝힌다.
"종교를 비판하는 사람과 도용된 종교에 대해 훨씬 더 심각하게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실패를 인정했고, 이는 올바른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실수를 지적하기만 하면 올바른 정신의 소유자들이 광명을 찾게 될 것이고 이로써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종교적 논의를 벗어나면 다시 과학자 본연의 자세로 돌아온다. 과학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를 다음과 같이 한다.
"사실적 지식은 최소한 세 가지 특성 때문에 좋은 것이 될 수도 있고 나쁜 것이 될 수도 있다. 첫 번째 문제점은 결과를 예측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은 처음 발명됐을때 명백하게 좋은 발명품 같았으며 누구도 플라스틱에서 유해한 호르몬이 나올지는 예측하지 못했다. 두 번째 문제점은 비윤리적인 사용이다. 실질적으로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발명품은 선한 목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지만 타인을 해치는 무기로 사용될 수도 있다. 세 번째 문제점은 도덕적 가치의 약화이다. 말라리아의 원인이 도덕성 부족이라는 주장은 비웃어도 무방하지만 앞에서 살펴봤듯이 도덕성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문제들도 있다."
"결과를 예측하기 불가능하다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알고 있는 지식을 과신하지 말고 새로운 기술을 신중하게 사용하고, 예즉 불가능한 결과를 추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식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보다 더 완벽한 지식을 얻는 것이다."
"비윤리적인 사용을 막으려면 다른 사람들에 의해 어떤 부분이 이기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방지하는 윤리적 사회 시스템을 만들면 된다. 사실적 지식은 그 자체로는 윤리적인 사용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윤리적 사회 시스템만 수립되면 사실적 지식을 한층 더 선한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도덕적 가치의 약화를 막으려면 실용적 현실주의와 사실적 현실주의의 관계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마지막 50여 페이지에서는 '누구나 과학자가 될 수 있다'라는 제목 하에 자신이 과학자가 되기 까지의 이력을 자서전 형식으로 서술한다. 자신의 자서전을 뜬금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어색하긴 하지만 저자의 글쏨씨가 그 어색함을 덮고도 남아서 읽기에 불편하지는 않다. 진화론이 자연법칙이라는 윌슨의 주장이 처음에는 지나치게 과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그 주장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 책은 강력 추천 목록에 올려도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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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4년, 로버트 체임버스가 ‘창조의 자연사가 남긴 흔적들’을 펴냈을 때에는 전문 과학 공동체에 속한 거의 어느 누구도 그 책의 중심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을 펴냈을 때에는 생물 기원에 관심을 가졌던 과학자들이 재빨리 진화론으로 마음을 돌렸다.”
“1859년, 영국의 이름 높은 자연사학자 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이 쓴 책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 또는 생존경쟁에서 유리한 종족의 보존에 관하여’가 나왔다.”

이 책은 저자가 위와 같이 언급한 것처럼, 그 시기 전후로 진화론이 정립되어 가는 과정에 영향을 미친 철학적, 종교적, 사회적 영향을 추적한 과학사이다.

다윈은 학문적 경력의 시작을 생물학에서 한 것이 아니라 지질학에서였다. 그리고 또 다윈은 진화론에 지대한 공을 세운 것이 아니라 앞선 세대의 진화론적인 생각에 ‘자연선택’을 도입하여 진화론이 체계적인 과학으로 자리잡는데 큰 공을 세움으로써 진화론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게 된 것이다.
“다윈은 자기 이론을 '변형이 따르는 유래descent with modification'라는 말로 쓰는 편이었으며 책의 맨 마지막 낱말이 진화되었다evolved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진화evolution'라는 낱말을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최초의 진화론자는 우리가 용불용설의 제창자로 알고 있는 라마르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가설들 즉, 용불용설과 획득 형질의 유전 가설은 이제는 완전히 폐기되었다.

다윈의 이력을 간략하게 보면 다음과 같다.
"찰스 다윈(1809-1882)은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친가 쪽 할아버지 이래즈머즈 다윈은 유명한 내과 의사였고, 미들랜즈 지방에서 손꼽히는 과학자였으며, 산업가들과 친구이기도 했고 생물 진화를 사색한 유명한(아마 악명 높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산문과 운문을 지은 사람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유명한 도공인 조사이어 웨지우드Josiah Wedgwood로, 깜짝 놀랄 만큼 성공을 거둔 신기술을 잉글랜드 도자기 업계에 소개한 사람이었다. 다윈의 어머니는 다윈이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 아버지 로버트 다윈은 할아버지 세대의 영광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잉글랜드의 농업 중심지 슈롭셔의 슈루즈베리에서 큰 성공을 거둔 의사였다.”
“1809년에 태어난 찰스 다윈은 처음에 에든버러 대학교를 다니다가 나중에 (1828년부터 1831년까지)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다녔고, 1831년부터 1836년까지는 자연사학자로 H.M.S. 비글호를 타고 전 세계를 주유하면서 보냈다. 영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금방- 아마 1837년 이른 봄이었을 것이다- 다윈은 진화론자가 되었고 1838년에는 생존경쟁에 의해 일어나는 자연선택 메커니즘을 생각해 냈다. 1842년에는 그 이론을 35쪽짜리 초안으로 작성했고, 1844 년에는 분량을 늘려 230쪽짜리 시론을 썼다”
“1844년, 로버트 체임버스가 ‘창조의 자연사가 남긴 흔적들’을 펴냈을 때에는 전문 과학 공동체에 속한 거의 어느 누구도 그 책의 중심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을 펴냈을 때에는 생물 기원에 관심을 가졌던 과학자들이 재빨리 진화론으로 마음을 돌렸다.”
“1859년, 영국의 이름 높은 자연사학자 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이 쓴 책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 또는 생존경쟁에서 유리한 종족의 보존에 관하여’가 나왔다.”


다윈주의 진화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가설은 자연선택인데 <종의 기원>에서 다윈이 직접 서술한 것은 다음과 같다.
“이렇게 유리한 변이는 보존하고 해로운 변이는 버리는 것을 일러 나는 자연선택이라 부른다(종의 기원, 1859. pp.80-81).”

다윈은 자연선택 개념을 정립하였으나 그 시대의 종교적 압력을 우려하여 발표를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독자적으로 자연선택 개념을 채택한 글을 적어 다윈에게 보인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였다. 월리스의 <시론>을 받아 본 다윈은 그 내용을 공동 명의로 린네학회에 발표하고 난 후, 서둘러서 자기 생각의 '개요'를 썼다.
“이 개요, 곧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 또는 생존경쟁에서 유리한 종족의 보존에 관하여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of Life)>가 1859년 11월에 출간되었다.”

진화론이 점점 세력을 넓혀가고 있던 시절에 성공회 주교인 윌버포스와 ‘다윈의 불독’이라 불린 헉슬리 사이에 벌어진 재미있는 논쟁이 있다. 1860년 옥스퍼드 대학에서 열린 <종의 기원> 찬반 토론에서 “그 원숭이는 할아버지 쪽인가, 할머니 쪽 조상인가”라는 옥스퍼드 주교 새뮤얼 윌버포스의 말에 헉슬리는 다음과 같이 응수했다고 이야기한다.
"불쌍한 유인원을 할아버지로 두겠느냐, 아니면 천부적으로 높은 자질을 타고 났으며 대단한 수완과 영향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중대한 과학 논의에서 고작 이 재능과 영향력을 비웃음이나 던질 요량으로 쓰는 자를 할아버지로 둘 것이냐는 물음을 받는다면, 저는 주저없이 유인원 쪽이 더 낫겠다고 말하겠습니다."

진화론에 관한 논란에서 스펜스가 주창한 사회진화론을 뺄 수가 없다.
“진화, 나아가 선택의 요소들까지 각별히 저잣거리 사람들 마음에 들게 했던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진화론적 시각을 가지면 사회의 본성과 발달에 대한 다양하고 서로 자주 충돌하기도 하는 논제들을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이 논제들은 '사회다윈주의social Darwinism'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을 수 있다.(Himmelfarb 1968, p535) 그래서 진화론을 반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왜냐하면 인간 사회가 발달한다는 뜻으로 읽어 내고 싶었던 일반적인 진보적 경향을 뒷받침해 주는 면을 진화에서 찾아냈기 때문이다. 또 같은 종에 속하는 것들끼리 벌이는 생존경쟁에 기초한 자연선택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왜냐하면 극단적인 자유방임 경제를 정당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조금도 제재를 받지 않고 치열하게 벌이는 장삿일이 생물학적으로 허용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다른 종들끼리 벌이는 생존 경쟁에 기초한 자연선택을 좋아한 사람도 있었다. 왜냐하면 다른 민족들을 군사력을 써서 제국주의적으로 밀어내는 것 같은 국가 차원의 통제를 옹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마다 생물학적 학설을 가진 진화론자들, 생물학으로 뒷받침된다고들 생각한 다양한 학설들, 이 둘의 실제 관계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일부 생물학자들을 비롯하여 사람들이 저마다 좋아하는 갖가지 사회 학설들을 뒷받침하려고 생물학을 쓰려 했다는 것이다.”
“다윈은 틈날 때마다 사회다윈주의적인 시각을 똑똑히 부정했다("힘이 곧 정의"임을 다윈이 증명했다면서, 따라서 나폴레옹은 정의로웠고, 사기치는 장사꾼도 모두 정의롭다는 단언을 듣고 다윈은 분통을 터뜨렸다.(F. Darwin 1887. 2:262) ….. 그리고 삶이 끝나갈 즈음 다윈은 자연선택이 문명의 진보를 거든다고 적었다. ….. 따라서 생물다윈주의와 사회다윈주의 사이는 결코 뚜렷하게 갈라지지 않는다. 스펜서가 가진 시각, 그리고 그 시각을 써서 뒷받침한 모든 사회적 학설들 사이도 마찬가지로 명확히 가를 수 없다.”


또, 1970년대에 에드워드 윌슨이 되살리려고 했던 집단선택 가설에 대해서도 다윈은 분명하게 개체 선택을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사람 아닌 것들의 세계를 말할 때에 다윈이 집단선택보다는 개체 선택을 단호하게 선호했음을 보았다. ……. 그럼에도 사람의 도덕 문제에 있어서 다윈은 일종의 집단 선택이 필요하리라 생각할 때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생물학에서의 다윈의 위치를 물리학에서의 뉴턴의 위치와 동급으로 보고 있다.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 그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16세기 폴란드 성직자였던 이 사람이 태양이 중심에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한 사람은 아니었다-그 영예는 기원전 3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사모스의 아리스타르코스에게 돌아간다. 코페르니쿠스가 세세한 것까지 다 맞았던 것은 아니다. 그 일은 후계자인 티코 브라헤(하늘 지도를 정확하게 그렸다)와 요하네스 케플러(행성 공전 궤도가 타원임을 알아냈다), 그리고 갈릴레오 갈릴레이 (망원경을 사용했다)의 몫이었다. 마지막으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쓴 코페르니쿠스는 자기 이론의 바탕에 깔린 인과적 메커니즘을 내놓지 않았다. 그 일은 아이작 뉴턴과 중력법칙의 몫이었다. 이 전체 과정은 족히 100년은 넘게 걸렸다(Kuhn 1957). 그래도 우리가 코페르니쿠스의 공을 존중하는 것은 정당하다. 코페르니쿠스는 참으로 위대한 과학자였으며, 그 연구는 그가 했던 연구를 까마득히 넘어선 의미를 담고 있었다. 다윈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연선택을 발견한 덕분에, 코페르니쿠스에게 뉴턴 같은 사람이 바로 다윈이었다.”

여기서 다 요약할 수는 없었지만 이 책에는 <종의 기원>이 발표되던 시점 전후의 약 50여년 동안 진행되었던 철학적, 종교적 논의들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는 만큼 진화과학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 볼 필요가 충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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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주제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을 때 논증하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신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헛점을 찾아 부정함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강화하는 방법이다. 진화론과 창조론 사이의 논쟁에서 창조론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 후자의 방법이다. 유감스럽게도 창조론자들은 자신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옹호할 수가 없다. 근거가 오직 성경 뿐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진화론은 두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 캐머런 스미스와 찰스 설리번이 지은 책 '진화에 관한 열가지 신화'는 진화론을 비판하는 논리의 허점을 추적했다는 점에서, 진화론자의 입장에서 후자의 방법을 사용할 예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진화론을 적극적으로 변론할 수 있다.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한 에른스트 마이어가 그 역할을 맡았다.

마이어는 다음과 같은 말로 진화론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진화에 대한 지식은 250년에 걸친 철저한 과학적 연구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물리학에서 우주의 기원을 추적하는 것에는 거시적으로 접근하는 천체 물리학와 미시적으로 접근하는 소립자 물리학이 있다. 생명의 기원을 추적하는 진화론도 분자 수준에서의 진화의 증거를 찾는 분자 생물학을 소립자 물리학에 대비한다면, 고생물학이나 인류학 등 역사적인 진화의 증거를 찾는 것은 천체 물리학에 대비시킬 수 있다. 마이어는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진화론을 설명한다. 
"진화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어나는 개체군의 특성 변화이다. 다시 말해 개체군이 진화의 단위라는 의미이다. 유전자, 개체, 종 역시 일정 역할을 수행하지만 생물의 진화를 규정하는 것은 바로 개체군의 변화이다."
"다윈은 또한 진화에는 두 가지 종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나는 조상에서 후손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점차적으로 계통발생 줄기의 '위쪽으로' 움직이는 진화이다. 이것이 바로 향상 진화(anagenesis)이다. 또 다른 종류의 진화는 진화의 계통을 여럿으로 쪼개는, 좀 더 폭넓게 말해서 계통 발생 나무에서 새로운 가지 (계통 분기군(clade, 공통의 선조에서 진화한 생물군 - 옮긴이))를 만들어 내는 진화이다. 다양성의 원천인 이러한 진화를 분기 진화(cladogenesis)라고 한다."


"가장 단순한 세균을 포함해서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의 형태들은 모두 하나의 기원으로부터 파생된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는 가장 단순한 생물까지 포함하여 모든 생물의 유전 암호가 동일하다는 사실로 미루어, 그리고 세포의 수 많은 특성들이 미생물을 포함해서 모든 생물들에서 동일하다는 사실로 미루어 명백하다."

"이 다섯 이론 가운데 두가지, 즉 진화의 기초적 정의와 공통 유래 이론은 종의 기원이 출간된 이후 몇 년 안에 생물학자들사이에서 널리 받아들여졌다. 이것이 바로 첫번째 다윈주의 혁명이다. 특히 혁명적이었던 부분은 바로 인간이 동물계 안의 영장류에 포함된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머지 세 이론, 즉 점진주의, 종 분화, 자연선택 이론은 강한 저항에 직면했고 진화의 종합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진화의 종합이 바로 두번째 다윈주의 혁명이다. 획득 형질이 유전된다는 개념을 거부하는 바이즈만과 월리스가 주도했던 다윈주의는 조지 존 로메인즈(George John Romanes)에 의해 신다윈주의(Neodarwinism)라고 불렸다. 그 후 진화의 종합 이후에 수용된 다윈주의는 단순하게 '다윈주의(Darwinism)'라고 부르는 편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유성 생식을하는 개체군에서는 두 종류의 변이의 원천이 존재하며 이 둘은 서로 겹쳐져 있다. 유전자형의 변이(유성생식을 하는 종의 경우 어떤 개체도 다른 개체와 유전적으로 동일할 수 없다.)와 표현형의 변이(각 유전자형은 고유의 반응 양태를가지고 있다.)가 바로 그것이다."
"자연선택 이론의 반대자들은 대부분 자연선택이 두 단계로 이루어진 과정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 사실을깨닫지 못한 일부 반대자들은 선택이 우연과 기회가 작용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한편 다른 반대자들은 선택이 결정론적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진실은 두 가지 측면을 모두 아우른다."

"그런데 우리가 '연성 집단선택'과 '경성 집단 선택'을 구분하면 이 문제가 명료해진다(Mayr, 1986). 연성 집단선택은 편의적 집단의 선택을 가리키고 경성 집단선택은 응집력 있는 사회적 집단의 선택을 가리킨다. 연성 집단선택의 경우 집단의 적합성은 구성원들의 적합성 값의 산술적 총합에 해당된다. 이 평균적 값은 집단을 구성하는 개체들의 적합성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다."

"그러나 특정 종의 경우 사회적 집단이라는 특별한 종류의 집단이 생겨날수 있고 이것은 실제로 선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집단은 구성원들의 사회적 협동으로 인해, 단순한 구성원 각자의 적합성의 산술적 총합보다 더 큰 적합성 값을 갖는다. 이를 경성 집단선택이라고 부른다."
"신체 구조든, 생리적 특징이든, 행동이든, 기타 속성이든 그것을 가진 개체를 생존경쟁에서 유리하게 만들어 주는 생물의 성질이 바로 적응이다."
"이제 종의 의미는 상당히 분명해진다. 종의 격리 기작은 균형 잡힌 조화로운 유전자형을 그 상태 그대로 보전하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개체와 개체군을 종이라는 단위로 조직화하는 것은 균형 잡힌 성공적인 유전자형이 합치되지 않는 외부의 유전자형과의 교배를 통해 훼손되는 것을 막아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격리 기작은 열등하거나 생식력 없는 잡종이 생겨나는 것을 막는다. 따라서 종의 보전을 자연선택이 유지시킨다고 볼 수 있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인간의 뇌가 15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처음 출현한 이래로 조금도 변화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원시적인 수렵-채집 사회에서 농업 사회로의 진보, 이어서 일어난 도시화와 같은 인류의 문화 진보는 그에 상응하는 뇌 크기의 증가없이 일어났다."
"인간은 실제로 매우 독특한 존재이며 신학자들이나 철학자들이 전통적으로 주장해 온 바와 같이 어떤 동물들과도 다르다. 이는 인간에게 긍지이기도하고 부담이기도 하다."
"이타적 행동의 전통적 정의는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지만 행동의 주체에게 비용을 치르도록 하는 행동이다. 이러한 정의는 별 다른 비용 없이 주어지는 모든 친절이나 도움 등을 제외한다. 사회 집단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행동들은 별다른 비용 없이 수행되는 친절과 배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러한 종류의 행동들은사회 집단을 뭉치게 하는 데 매우 중요할 뿐만 아니라, 엄격한 의미에서의 이타적 행동으로 건너가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저자는 진화론이 흔히 악용되는 인종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인종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인종에 대해 그릇된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바로 유형론자들이다. 유형론자들은 어느 인종의 실질적, 또는 허구적 형질들을 그 인종에 속한 모든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자는 다음과 같은 간단한 한 문장으로 진화론을 정의한다.
"진화는 더 이상 이론이 아니라 엄연한 사실이다."

저자가 서두에도 언급했다시피 250여년에 걸친 과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진화는 이론의 단계를 넘어 사실이 되었다. 저자가 이것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두었다. 당연히 독서 추천은 '강력 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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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에 관한 열 가지 신화 - 캐머런 스미스 & 찰스 설리번

독서 2016. 6. 26. 12:09

사람들은 여전히 진화론을 창조론과 대립하는 이론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이는 종교, 특히 기독교의 집요한 방해 공작의 영향 탓이다. 그러나 진화론은 이미 하나의 이론이 아니고 자연법칙이 되어 있다. 생물학에서 부터 출발하여 현대 심리학을 거쳐 진화심리학에 이르기까지 진화를 바탕으로 인간의 본성을 규명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우주의 기원을 추적하는 천체 물리학과 더불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도 자연법칙으로서의 위치를 이미 확보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한 작업은 두 갈래로 이루어 진다. 진화를 사람들이 알아 듣게 설명하는 것과 진화를 부정하는 논리를 반박하는 것이다. 여기 소개하는 이 책은 후자의 경우에 해당된다.
 


저자는 진화를 부정하는 논리를 10개의 항목으로 분류한 다음 그 각각을 적절하게 반박한다.

신화 1 적자 생존
"그렇다, 살아 남는 것은 적자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변하는 선택압으로 가득한 엄청나게 복잡한 세계에서, 어떤 한 가지 특징- 야수 같은 힘 -이 모든 상황에서 생존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적합'해 진다는 것은 당신이 누구이며, 어디에 있으며, 언제 거기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신화 2 그저 이론일 뿐이다
"일상 대화에서 사용하는 이론이라는 단어는 다른 모든 추즉이나 직감과 별 다를 바 없는 추측이나 직감을 의미한다. …… 그러나 과학자가 이론이라는 단어를 쓸 때는 매우 다양한 사실에 대한 논리적이며 검증된 근거가 충분한 설명을 말하는 것이다. 과학 이론은 추측이 아니다."

신화 3 진보의 사다리
진화론도 초창기에는 하등 동물에서부터 인간이라는 고등 동물로의 직선적 진화라는 목적론적 사고의 지배를 받았으나 지금은 목적론적 사고는 이미 설 자리를 잃었다. 인간도 제멋대로 자라난 나무 가지 중의 하나와 마찬가지로 진화의 가지 중 하나일 뿐이다.

신화 4 잃어버린 고리
"우리가 잃어버린 고리보다는 우리 자신과 나머지 영장류 사이의 어떤 음영을 찾아 왔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며, 우리 조상을 찾는 가슴 두근거리는 탐구는 단순히 어느 잃어버린 고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세월을 통해 다른 모든 생물과 우리를 잇는 생명의 스펙트럼 전체를 찾는 것이다."

신화 5 진화는 무작위적이다.
"선택은 어느 올챙이가 살고 죽을지를 무작위로 결정하지 않는다. 선택은 단순히 각 개체의 적응도를 평가함으로써 번식을 허용하거나 방해한다. 선택은 더 적합한 개체를 고르고 덜 적합한 개체를 솎아 내며, 그 효과는 분명히 무작위적이 아니다. 선택은 환경에 더 적합한 몸을 만드는 유전자를 보존한다."

신화 6 사람은 원숭이에게서 유래한다.
"영장류가 되고 싶은지 혹은 침팬지와 친척이 되고 싶은지 누구든 자유롭게 주장을 펼칠 수 있지만, 그것이 쟁점은 아니다. 쟁점은 우리가 원숭이의 후손인가의 여부이며 증거는 명백하다. 우리는 원숭이의 후손이 아니라 친척이다."

신화 7 자연의 완벽한 균형
"기원전 5세기에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자연이 포식자와 먹이 집단에 서로 다른 출생률을 부여함으로써 균형을 유지한다고 경탄한 이래로, 과학에서의 주된 오류 중 하나는 자연에 의도를 부여하고 더 나아가 생태계와 종- 밀림 전체 부터 거미에 이르기까지 -에 균형을 유지하는 특정한 기능까지 부여함으로써 자연을 인격화하는 것이었다." "비록 평형(안정성이라고도 한다)이 일반적으로 교란되었을 때 재구성하는 계의 능력을 가리키지만, 그 단어는 복원성(계의 일부가 안정 상태로 돌아오는 속도), 지속성(계의 안정 상태가 지속되는 기간), 저항성(교란이 안정에 미치는 영향의 크기)이라는 서로 다른 의미로도 쓰인다."

신화 8 창조론은 진화를 반증한다.
기독교인들이 주로 내세우는 논리가 바로 이것이다. 진화론의 문제점을 찾아낸 다음 그것을 창조론의 증거로 삼으려 한다. 하나 이는 대단히 부적절한 논리이다. 기독교인들이 이처럼 궁색한 논리에 기댈 수 밖에 없는 것은 광범위한 검증 자료를 가지고 있는 진화론과는 달리 창조론을 검증할 수 있는 자료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과장이 아니고 정말 하나도 없다.

신화 9 지적 설계는 과학이다.
"진화학에 해결되지 않은 의문이 많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그저 세균의 편모같은 복잡한 특징의 단계적인 진화의 모든 세세한 사항을 우리가 아직 다 파악하지 못했다는 의미일 뿐이다. 과학자들은 대부분 이것을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신호로 여길 것이다."

신화 10 진화는 부도덕하다.
"문화 덕분에 인류는 다소 유연하고 적응성이 있으며, 우리는 진화적 토대를 지닐 수도 있는 많은 비윤리적 행동 성향에 저항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도덕이 신과 무관하기 때문에 우리는 비록 우리의 생각이 분명히 더 느릴지라도 신이 인식하는 살인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말라는 바로 그 이유를 인식할 수 있다. 우리는 살인이 빚어 내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살인하지 않을 이유로 인식하며, 도둑질의 불공정함을 도둑질하지 말라는 이유로 인식한다. 도덕이 신과 무관하기 때문에, 신자와 비신자는 둘 다 도덕적 선택을 할 때 같은 처지이다. 따라서 우리는 진정으로 도덕적인 인간이 되려고 굳이 신을 믿을 필요가 없음을 알수 있다."

이 책은 진화론을 반대하는 논리를 10가지로 정리하여 쳬계적으로 반박한 것으로, 부피도 적어서 당연히 강력 추천 목록에 올라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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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레딩거의 고양이 - 에른스트 페터 피셔

독서 2016. 4. 25. 20:59

대중들은 과학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하나는 지금과 같은 거대한 물질 문명을 구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강력한 도구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모든 것은 과학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을 유물론적 존재로 격하시키는 것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사회가 견제하지 않으면 인간을 멸망으로 몰아넣을 위험한 것으로 다루려고 하는 태도이다. 당연하게도 과학자도 인간임에 분명하므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강점과 약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회가 과학에 대해 감시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과학 그 자체는 가치중립적이어서 인간의 가치를 바탕으로 과학의 발전을 억누느려는 시도는 언제나 성공하지 못할 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과학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과학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과학을 대중들의 눈높이에서 설명해주는 과학저술가들이 필요하다. 이제 소개할 이 책의 저자 에른스트 페터 피셔는 과학자이면서 대중들에게 과학을 잘 설명해 주는 저자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과학을 어렵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물론 정치학이나 경제학, 의학 분야의 전문적 표현들 중에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 그래서 이것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이 무지하다고 부끄러워 한다. 하지만 과학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청중에 책임을 묻는 아니라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과학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과학은 물질계를 다루는 것이라고 생각하므로 과학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것에 대해 자괴감을 느끼지 않지만 정신의 문제를 다루는 철학이나 형이상학은 몰라도 아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과학과 철학 둘 다 모르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사변적인 주제에 대해서는 언제나 자기 주장을 한다. 인간의 문제에 대해 과도한 자기 주장을 갖는 것과 과학을 어렵다고 기피하는 것, 둘 다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제목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양자역학에서의 사고실험으로 유명한 이야기이다. 양자역학은 어렵다. 그러나 노벨상을 2개나 받은 천재 과학자 리처드 파인만조차 "양자역학을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양자역학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다"라는 선문답 같은 이야기를 할 정도이므로 대중들이 양자역학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자책할 필요는 전혀 없다.

또 다른 과학에 대한 선입견은 '과학과 예술은 별개이다'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저자가 재인용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미국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Raymond Chandler 예술과 과학이라는 문화의 쌍이 얼마나 밀접하고 견고하게 맺어져 있는가를 1938 2 19 일자 일기에서 표현하고 있다. " 종류의 진리가 있다. 길을 가리키는 진리와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진리다. 번째 진리는 과학이고 번째는 예술이다. 가지는 서로 무관하지 않으며 어느 것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예술이 없다면 과학은 마치 매우 정교한 핀셋이 함석 세공장이의 손에 들려 있는 것처럼 쓸모가 없다. 과학이 없다면 예술도 감수성 풍부한 민요와 싸구려 노랫가락이 마구 뒤섞인 혼돈에 지나지 않는다. 예술의 진리는 과학이 비인간적으로 변하는 것을 막아 주고, 과학의 진리는 예술이 천박해지는 것을 막아준다."

현재 물질계를 주도하는 두개의 이론을 들라면 아원자(원자보다 크기가 작은) 입자들을 설명하기 위한 양자역학, 거시계를 설명하기 위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자가 양자역학이 성립되는 과정을 가장 먼저 이야기하기 위해 제목을 저처럼 붙였지만 그렇다고 양자역학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성이론을 거처 양자역학이 성립되는 과정, 전자기파 이론이 성립되는 과정, 수학에서의 발견들에 대한 이야기, 진화론이 성립되는 과정, 인간 본성을 알고자하는 심리학에서의 발견들에 관해 핵심적인 역할을 한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많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 중에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요소를 연구하면서 뵐러는 그것이 4가지 원소로 이루어졌음을 깨닫는다. 요소에는 탄소, 수소, 산소, 질소가 1 : 4 : 1 : 2 비율로 들어 있었다. 그를 흥분시킨 것은 이와 똑같은 결합이 유기체와는 전혀 무관한 재료에서도 발견된다는 사실이었다. ………… 다음과 같은 질문도 가능하다. 분자에 똑같은 원자들이 들어 있다면 둘의구조를 서로 뒤바꿀 수도있을까? 뵐러는1828 같은 실험을 실시하여 성공을 거둔다. ……… 뵐러의 실험이 갖는 의미는 매우 명확했다. 살아 있는 자연(유기물) 생명이 없는 자연(무기물)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실용적인 면에서 구분될 뿐이었다. 이로써 화학은 생명력의 특별함에 대한 거창한 생각을 한순간에 진부한 것으로 만들여 버렸고 전에 없이 흥미로운 분야로 떠올랐다."
인간의 문제도 유물론으로 수렴한다는 사고의 출발점이 될 만한 발견이다. '유물론'하면 공산주의의 이념적 바탕이 유물론이었다는 것 때문에 곧바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이 다수 있다. 여기서 유물론이란 인간의 정신도 뇌의 화학작용이라는 물질적 바탕 위에 존재하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다음과 같은 구절도 있다.
"19세기 생물학자들의 결정적인 공헌은 플라톤 이래로 2천년 이상 이어져온 고정관념을 사고과정에서 과감하게 걷어낸 있다. 플라톤은 일상에서 관찰되는 생명체의 가변적인 모습들은 비본질적인 것이며, 속에 자리 잡은 불변의 이데아만이 본질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요한 것은 눈앞에 보이는 말이 아니라 말의 이데아다. 이데아는 영원히 존재한다."
서양의 철학적 전통을 정면 비판한 것이 저자가 처음은 아니다. 그리고 과학이 발전할 수록 서양의 철학적 전통은 붕괴된다. 그 점은 신학도 마찬가지다. 전통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오랜 역사를 지닌 철학 사상적 기반에 대한 부정에 대해 무의식적인 반감을 가진다.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은 오랜 역사를 지닌 사상적 기반이 오류라고 밝혀진다고 해서 그것들이 무의미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때는 인간의 지식의 한계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과학이 많은 것을 밝혀낸 지금, 여전히 그 생각들을 추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과거를 황금시대로 생각하는 것도 역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에 대한 구절도 있다.
"우리는 답을 진보의 관념 속에서 찾을 있다. 베이컨이 등장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모든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자기들의 이전 시대가 좋았다고 생각했다. ("예전의 좋던 시절에는…") 고대 그리스인들은 오래 전에 지나가 버린 황금시대를 그리워했고, 르네상스 시대에는 접두 're' 말해주듯이 시선을 뒤로 향한 살았다. 베이컨은 같은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그에게 황금시대란 미래를 의미했다. 사람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하늘이 아닌 지상에서- 나은 삶을 누릴 있다. 그는 진보의 관념을 창조했다. '진보의 가능성' 이때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완전히 새로운 생각이었다."

이 책은 과학의 발전사를 서술하면서 자연스럽게 과거의 철학적 전통과 단절하는데,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이는 다음과 같이 언급함으로써 철학적 사유의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지은이는 책에서 현대 과학의 흐름을 고사성어 같은 표제어들로 제시한다. 지은이가 소개하는 현대과학의 흐름은 일종의 과학적 잠언과 같다. 과거의 관점에서 보면과학이 아니라 은유이며 상징이다."
"지은이의 놀라운 상상력은 과학과 예술을 결혼시킨다."
아마도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저자는 사람들이 딱딱하다고 생각하는 과학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독자로 하여금 웃게 만들 수 있는 몇 안되는 글솜씨를 지녔다. 당연히 이 책도 강력 추천 목록에 올린다. 저자의 다른 책들도 순차적으로 소개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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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결혼 - 스테파니 쿤츠

독서 2016. 4. 4. 16:52

우리는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이런 생각이 조선시대에는 없었던 것은 분명하므로 해방 이후 서양의 문물이 밀물처럼 밀고 들어올 때 따라온 것이 분명하다. 이 결혼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연하게 생물학적인 짝짓기를 연상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결혼이 짝짓기와는 무관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지가 제법된다. 결혼이 생물학적인 짝짓기와 무관하다면 이것은 사회 제도라는 뜻이고, 사회 제도는 문화의 한 부분으로 진화해 왔다는 것이 지금은 정설이다. 저자는 결혼 제도의 변천을 방대한 자료 조사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그것이 문화 진화의 일부분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글을 시작한다.
"어쨌든 사람들은 수천전부터 결혼제도가 위기에 봉착했다며 옛날이 좋았다고 주장했으니까 말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기혼 여성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로마인들은 이혼율이 높은 것을 개탄하며 과거의 안정적인 가족과 당시를 비교했다. 미국에 정착한 유럽인들은 거의 배에서 내리자마자 여자들과 아이들의 불손함과 가족의 붕괴를 개탄하기 시작했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있다. 기원전 2500년 경에 쓰여진 이집트의 상형 문자에 "요즘 젊은이들은 행동거지가 경솔하고 버릇이 없다"라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문화는 끊임없이 진화하는데 사람들은 언제나 그 변화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는 현재와 같은 결혼관이 성립된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가 어쩌다가 지금과 같은 지경에 이르렀는지 이해하려면 인류 역사상 대부분의 기간 동안 결혼의 일차적인 목표는 부부와 자식들의 욕구, 개인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것이 아니었음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결혼은 평생의 반려자를 구하고 사랑하는 자식을 기르기 위한 일인 동시에, 좋은 가문과 사돈을 맺고 가족의 노동력을 증가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과거 수천 동안에도 물론 사람들은 사랑에 빠졌다. 때로는 심지어 배우자와 사랑에 빠지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결혼은 근본적으로 사랑과 관계가 없었다. 결혼은 경제적, 정치적으로 너무나 중요한 제도였기 때문에 사랑처럼 비이성적인 감정만을 근거로 실행할 없었다."
"18세기에 시장경제가 전파되고 계몽주의가 등장하면서 커다란 변화들이 급속히 이루어졌다. 1700년대 말에는 중매결혼 대신 개인이 직접 배우자를 선택하는 결혼이 사회적 이상으로 자리 잡았으며, 사랑을 기반으로 결혼이 장려되었다.5 만에 처음으로 결혼이 정치적,경제적 동맹 속의 연결 고리라기보다는 개인의 사적인 관계로 여겨지게 것이다."
"18세기에 사람들은 사랑이 결혼의 근본적인 이유가 되어야 하며, 젊은이들이 사랑을 기초로 배우자를 자유로이 선택할 있어야 한다는 급진적인 사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19세기에 사랑을 기반으로 결혼에 감상적인 색채가 더해지고 20세기에는 성이 강조된 것은 각각 새로운 결혼관의 발달이 논리적으로 거쳐야 하는 단계였다."
"하지만 1950년대에 사상 처음으로 서유럽과 북아메리카의 대다수 가정이 남자가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고 여자는 전업주부로 살림을 맡는 형태를 갖췄다. 1950년대에 새로 나타난 하나의 현상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결혼해야 하며, 그것도 젊은 나이에 결혼해야 한다는 문화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저자에 의하면 지금과 같은 결혼관이 성립된 것은 불과 150년 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랑이 결혼의 전제조건'이라는 이 관념이 바로 현재의 '결혼 제도'의 혼란의 원인이라고 한다.
"사랑의 결합과 평생에 걸친 친밀한 관계라는 이상이 자리를 잡자마자 사람들은 이혼할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가족이 아이들의 욕구에 부응해야 한다는 데에 사람들이 동의하자마자 사생아 출생에 대한 법적인 처벌이 비인간적이라는 주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여성들이 사랑 없는 결혼을 하지 않고도 경제적으로 살아남을 있도록 여성에게도 동등한 권리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이 감정을 자유로이 따를 있어야 한다면서, 동성애를 범죄에서 제외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 까지 했다."

저자에 의하면 고대로 부터 사람들이 결혼을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결혼의 사회적 역할과 의미가 이렇게나다양한데도,역사상대부분의기간동안부부간의분업은대개사회적으로인정을받았다."
"수천 동안 사람들이 결혼하는 이유 중에는 혼자 힘으로 모든 일을 하며 살아남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포함되어 있었다."
"역사상 대부분의 기간 동안 결혼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아무래도 여러 가문과 공동체들이 협동 관계를 맺는 기여한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사실 역사를 통틀어 결혼으로 정의되거나 찬양받았던 제도들이 몹시 다양한데도, 모든 제도들을 분명히 관통하는 유사점들이 존재한다. 결혼은 대개 성과 관련된 권리와 의무, 성역할, 사돈과의 관계, 자식의 합법적인 지위 등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사람들은 결혼을 통해 사회 안에서 구체적인 권리와 역할을 얻는다."

문화 현상을 이야기하면서 종교를 빼놓을 수는 없다. 그래서 저자는 결혼 제도에 미친 교회의 영향도 언급한다.
"초기 기독교는 이혼과 일부다처제에 단호히 반대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독교가 자리를 잡은 동안 이혼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취했다. 심지어는 일부일처제를 옹호하는 입장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
"근친상간에 대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정의는 중세 시대 결혼의 가장 홍미로운 측면 하나였다. 구약성서에서도 신약성서에서도 교회가 정한 근친상간 금지 조항의 근거를 찾을 수는 없었다."
"교회법은1139년에야 비로소 성직자의 결혼을 완전히 금지했다."

우리나라도 그랬지만, 현대에 들어 성도덕이 문란해지고 결혼 제도가 위험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결혼 생활을 잘 유지하는 법에 대한 조언서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학술지와 달리 대중적인 지침서들은 분야 전문가들의 검토를 받는 경우가 드물다. 이런 책에서 우리가 얻을 있는 것은 시험을 거친 연구 결과가 아니라, 저자들이 자신에게 효과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방법이거나, 독자들에게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하는 방법이거나, 일부 출판사 영업부가 독자들이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방법들 뿐이다. 방법들은 모두 "오랜 세월을 거치며 효과가 입증된 규칙"들과 뒤섞여 소개된다. 하지만 과거의 규칙들이 과거에는 효과가 있었을 몰라도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것은 성공서에도 같이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저자는 한편으로 혼란스러워 보이는 현대의 결혼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우리는 틀림없이 지금보다 건전한 결혼 생활을 있으며, 문제를 겪고 있는 부부들을 많이 구해낼 있다. 하지만 이제 와서 혈연을 통해 정치적 동맹을 맺거나 농부와 장인들을 현대 경제의 중심으로 되돌려 놓을 없듯이, 결혼이 과거처럼 사람들이 서로에게서 애정과 보살핌을 받을 있는 최고의 제도라는 위치를 되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좋든 싫든 우리는 개인적인 기대와 사회적인 지원 시스템을 새로운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제도로서의 결혼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광범위한 문헌 고증을 통해 보여준다. 저자가 제목도 '진화하는 결혼'이라고 붙였다시피 문화 현상으로서의 결혼도 진화해 왔음이 분명해 보인다. 이 책은 방대한 문헌 조사를 통해 결혼 제도를 고찰한 학술서이다. 그런데 그 방대한 부피의 대부분을 결혼 제도가 어느 때는 어떠했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라는 에피소드의 나열로 채워두었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이라면 이 글에서 요약해 둔 것 정도로 충분할 것이다. 따라서 결혼 제도의 변천사 그 자체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이 두터운 책을 굳이 읽으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독서 추천은 중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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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물학 논쟁 - 프란츠 부케티츠

독서 2016. 1. 10. 20:15


사회생물학은 1970년대 중반 에드워드 윌슨이 곤충들의 집단 행태의 연구를 바탕으로 인간도 생물계의 일원이라는 주장을 해서 큰 반향을 일으킨 학문 분과이다. 저자가 언급하는 사회생물학이란 다음과 같다.
"총괄하면 다음과 같이 간추릴 수 있다. 사회생물학은 '호혜적이타주의'와 '유전자의이기주의'를 모델로 하여 사회적 행동의 많은 현상들을 명쾌히 설명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말은 사회생물학이 절대적인 설명을 제시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지는 않다. 진화 내지 선택이라는 관점에서 사회적 행동을 연구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할 뿐아니라 발견의 기법이라는 측면에서도 대단히 의미가 깊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생물학과 뜻을 같이하면서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사회적 행동과 여러 양태들은 진화를 거치면서 생성되었고 생물은 일반적으로 집단을 형성함으로써 선택에 있어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그리고 계속 점하고 있다). 또한 집단 내에서의 (사회적) 행동에 수반되는 다양한 전략들(가령 이타적 행위 따위)은 개인과 집단 모두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일종의 생존 전략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저자는 사회생물학을 지지하면서 사회생물학이 불러일으킨 반향에 대한 쟁점들을 명쾌하게 정리한다.

사회생물학은 문화의 진화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전에 먼저 대두된 논쟁이다. 그래서 진화론 진영 내에서도 문화진화론자들과 환경주의자들로부터 유전자 결정론에 너무 경도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런 비판들에 대해 저자는 그 이후 이루어진 연구 결과들을 종합하여 결론을 내린다.
"동일한 근거를 가진 두개의 선택지 사이에서 하나를 택해야하는 어려움을우리는 딜레마라고 한다. 인간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우리에게는 하나의 딜레마다. 한편으로는 다른 생물들과 다를 바 없는 본능과 충동을 부여받고 있으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본능적 삶을 초월하여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사려할 줄 알뿐아니라, 자기 자신의 근본에 대해 묻기도하고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의식적으로) 반성하는 능력도 갖춘 존재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가장 간단한 그래서 우리의 느낌에 딱 맞아 떨어지는 대답은 이렇다. 인간의 도움없이 생겨나서인간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이 있기 전부터 존재해 온 모든 것이 자연에 포함될 수 있는 반면, 인간이 창출한 것, 인간의 모든 신체 외적인 표현물들을 전부 포괄하는 것이 문화다. 그러나 인간이 다른 생물과 다름없이 (생물학적) 진화를 거쳐 생성되었고 이 진화의 조건에서 신체적 발달을 이룩해 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문제는 명확하게 드러난다. 문화를 발달시키는 능력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생물학적 요인들에 의해서 결정되는가 하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생물학주의는 (주로 사회/문화적 영역에서 나타나는)제반 현상들을 생물학적 사실, 이론, 모델을 가지고 해석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에 반해 문화주의를 지탱하고 있는 신념은 이러하다. 사회적, 문화적 여러 현상은 생물적 요인들과 무관하며 인간은, 다 그런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대체적으로 사회문화적 요인들에 조건지어져 있기 때문에 생물학은 사회과학 내지 문화과학의 영역으로부터 배제되어 마땅하다."
"생물학주의와 문화주의가 제 나름대로 야기했던 실제적(정치적) 결과에 대해서는 일단 생각하지말자. 우리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유전인자/환경’, ‘생물학적 결정/사회문화적결정’을 둘러싼 논쟁의 결말은 결국 인간상의 분열일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자연이냐 아니면 문화냐, 이것이 문제였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둘 중의 하나만을 배타적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같다. 그러나 이러한 확신은 경험적 연구 결과보다는 이데올로기가 낳은 조급한 결론과 더 잘 어울린다.
  물론 인간상의 분열이란 것은 서구정신사가 자연과 정신, 몸과 마음, 그리고 자연과학과 인문과학 사이에 곧잘 그어놓던 경계선의 한 양상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구획 지음의 여파는 매우 심각한 것이었다. 이것 때문에 두개의 '하위문화'가 형성되었고, 이들 '하위문화'들은 결국 종합대학을 각 단과대학들로 정연히 구분하는 작업에 반영되었다. 세계는 이제 두 부분으로 나누어졌다.(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자연현상에 대한 진술은 자연과학이 담당했고,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은 인문과학의 몫으로 돌려지게 되었다”
"나는 포겔Vogel(1986)이 생명발생적 진화와 전통발생적 진화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생물체의 진화와 (사회) 문화적 진화 사이의 차이를 정말 명쾌하게 구별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포겔은 생물체의 진화나 사회문화적 진화나 다 같이 정보의 획득 및 저장과 전달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전제에서출발하면서도, 각각의 정보 전달방식에 따른 차이점만큼은 분명히 부각시키고 있다(Oeser1987, Wuketits 1988c, 1990 참조). 생명체 진화의 경우, DNA 형태의 유전자로 코드화된 정보는 생식과정을 통해 세대에서 세대로, 항상 한쪽 방향으로만(부모로부터자식에게) 전달된다(생명발생적 정보 전달). 사회문화적 진화의 경우에 정보는 사상이나 지식의 형태를 지니고 개인적으로 수집되어뇌 속에 저장되거나 어떤 물질적인 전달매체(토기나 책 등)에 기록됨으로써 다른 개인에게 전해지는 것이다(전통발생적 정보 전달). 따라서 사회문화적 진화에 있어서의 정보 전달은 생명체 진화의 경우보다 신속하게 이루어 질 수 있다. 왜냐하면 그때그때의 정보가 언어나 문자를 통해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개인에게 전달될 수 있기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영역에 있어서의 정보는 다방향으로 전달될 수 있는데, 그것은 매번 신세대가 구세대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이고배우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될 수 있기때문이다(Diettrich 1989)."


저자는 사회생물학이 논쟁의 한가운데 서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비판의 대상이 되는 논증들을 이데올로기적 배경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실에 근거를 두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생물학적으로 주어져 있는 조건을 고려하지 않는 윤리학은 따라서 공중누각에 불과하든지, 아니면 결국 자연에 대한 폭력을 초래할 것이라는 이유에서 매우 위험한 것일뿐이다."
"특정한 학문분과에서 얻어들인 우리의 본질에 관한 특정한 시각들이 무시되어서는 안되며 '절반의 진리'를 유일무이한 진리로 생각하고 그 위에 이데올로기를 구축해서도 안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저자는 사회생물학에 대해 윌슨이 사회생물학을 처음 주장할 때보다 훨씬 세련된 결론을 내린다.
"진화가 우연과 필연, 자유와 계획의 복합적인 교차 양상으로 나타난다는것이며(Riedl 1976, Wuketits1988c), 인간의 발전에 있어서 대략적으로나마 정해져 있는 것은 생물학적 한정조건일 뿐, 그 세부적인 발달 양상들은 아니라는 점이다. 자유라는 오래고 존귀한 이념이 다소라도 지켜질 가망이 있다면 바로 이런 이유때문일 것이다."
"유전자의 생존만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욕구의 다양성이 우리 삶을 특징짓는다면, 그럴수록 우리는 인간 존재의 어떤 속성들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물어보아야 한다. ………… 사회생물학은 이러한 생물학적 지식, 말하자면 우리 자신에 대한 생물학적 지식의 폭을 넓혀왔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확장해 나갈 것이다. 이러한 지식들은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의 본성 대신 유전자만을 그려 보여주는 환원주의적 인간상의 차원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사회생물학을 통해 생명발생적 진화와 전통발생적진화,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 사이와 상호관계를 밝히려고 노력한다면, 유전자를 퍼뜨리는 기계적 원리 '이상의것'이 있다는 사실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설사 인간의 특성이 유비를 통해서든 메타포를 통해서든 유전 기계로 그려질 수 있다 하더라도, 인간이 오로지 유전기계에 불과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 항상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인간은 복잡한 문화를 창조해 낸 존재다. 그것은 생물학적 토대 위에서만 가능한 일이었지만 인간을 생물계에서 유일무이한 존재로 만들기도 했다. 인간의 이러한 고유성과 독자성을 규명하는 작업은, 애초부터 인간 존재를 한 가지 측면으로만 환원시키기로 마음을 굳히는 것보다 확실히 더 중요하고 더 합목적적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사회생물학의 결론 뿐 아니라 인간의 진화의 문제에 대한 결론을 다음과 같이 내린다.
"호모사피엔스가 반드시 살아 남아야만 될 이유는 진화의 그 어느 곳에도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들 앞에 존재했던 수 많은 다른 종들처럼 그들 역시 얼마든지 멸종해버릴 수 있겠지만, 설사 그렇게 된다 해도 진화의 역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진화과정을 스스로 조정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은 비범하며 인간에게만 고유하게 주어져 있다. 결단은 우리 자신의 몫이다."

여기에 내가 인용한 것은 책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따라서 이 요약에 의존해서는 저자의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의 다른 책 '자유의지 - 그 환상의 진화'와 '도덕의 두 얼굴'과 함께 반드시 읽어보야할 책이다. 강력 추천 목록에 올려야 마땅한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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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아하자 2016.01.10 22: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솔직히 어려운 책일 것 같아요... ㅠㅠ

    • thinknew 2016.01.11 06: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과학 분야의 학술 서적이어서 진화론에 관한 예비 지식이 없으면 어렵습니다. 그래도 진화론에서 부터 출발하여 사회생물학 논쟁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틀을 근본적으로 바꾼 논쟁이어서 차근차근 따라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책을 직접 접하기가 어렵다면 다음 사이트에 이 글과 비슷한 방식으로 여러 책을 요약해 두었으므로 그걸 보고 책을 직접 읽어볼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http://www.egloos.com/think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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