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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진화론의 유혹 - 데이비드 슬론 윌슨

thinknew 2017. 5. 15. 17:03


러시아의 생물학자 도브잔스키는 "생물학에서는 진화론적 설명만이 이치에 맞다"라고 했다. 이때 생물학의 범위 안에 인간의 문제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런데 데이비드 슬론 윌슨은 인간의 문제(여기에는 종교를 포괄하는 문화도 포함된다)를 포함한 생물종 전체를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진화론을 물리학에서의 중력의 법칙과 같은 하나의 법칙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윌슨은 자신을 진화생물학자가 아닌 진화론자로 자처한다. 진화론이라는 이론에 입각하면 인간의 문화,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종교 등도 설명 가능하다는 것을 윌슨은 이 책에서 분명하게 보여준다. 먼저 이론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이론이란 세상을 이해하는 사고를 체계화하는 방법일 뿐이다. 그리고 과학적 방법은 그러한 이론에서 비롯된 주장을 거부하거나 옹호하는 수단일 뿐이다."

이론이 가설의 형태로 제시되고 검증되어서 이론으로 정립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은 비유로 표현한다.
"벽돌 한 장은 초라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는 거의 쓸모가 없는 물건이지만 다른 벽돌들과 합쳐지면 내구성이 강하고 매우 유용한 물건이 된다. 사실 또한 과학적 방법을 통해 증거가 쌓이면 이와 같이 된다."
당연히 여기서 비유로 표현한 벽돌은 개별 연구자들이 연구한 결과들을 의미한다.

진화론이 이론으로 정립되는 과정에서 오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윌슨은 그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진화론을 바라보는 균형잡힌 시각을 제공한다.
"이 문제의 핵심은 적응이라는 진화론적 개념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적응은 종국에 모든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근시안적인 이기심의 축소판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사실은 세상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 것도 아닐뿐더러 결코 그렇게 될 수도 없음을, 따라서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단지 위안거리에 불과한 망상임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매우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든 중요한 것은 진화론적 성공으로 가는 길에는 매우 상이한 두 개의 경로가 있다는 점이다. 하나는 이웃을 이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동의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이웃과 서로 협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경로가 진화론에서 선의 여지를 제공한다."


윌슨은 또 유전자의 영향과 환경의 영향에 관한 논쟁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정리한다.
"요컨대 환경은 생물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만 학습과 연관된 방식이 아니라 환경과 관련된 매우 구체적인 특징들(특정 화학물질의 유무)이 유전적으로 결정된 전략들을 작동시키는 스위치가 된다."

윌슨은 미학도 진화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공통점이라고 찾아보기 힘든 이러한 미에 대한 인식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것은 아름답다고도 여겨진다는 점이다."

그런 다음 선과 악이라는 도덕 감정, 사회성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을 제시한다.
"'선'과 연관된 특징들은 집단이 단일체로서 제 기능을 할 수 있게 기여하는 반면에 '악'과 연관된 특징들은 집단을 희생시키고 개별 구성원들의 이익에 기여한다."
"사회적 삶은 집단의 일부로서 원활하게 제 기능을 다하는 '건실한 이웃'과 집단 내부에서 건실한 이웃의 희생으로 자기 이득을 취하는 '사기꾼' 사이의 싸움과 다름없다."


윌슨은 또 인간의 진화가 생물학적 진화에서 점차 벗어나 문화적 진화로 이행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인간의 적응은 주로 유전자로부터 획득되는 행동 양식은 줄어들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획득되는 행동 양식은 늘어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바로 상징적 사고의 남다른 점이다. 파블로프 조건에서 정신적 연상 작용은 그 환경에 실제로 존재하는 연상물과 일치하지만 상징적 사고에서는 환경적 연상물과 분리됨으로써 그 자체의 생명력을 획득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없다. 윌슨은 이 책에 앞서 '종교는 진화한다'라는 책을 출판했다. 나의 독서 목록에도 포함되어 있는 그 책에서 윌슨은 기독교적 세계관은 진화론에 의해 붕괴되었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표현했지만 그래도 종교 일반의 유용성을 빌어 은연 중에 기독교를 옹호한다. 이 책에서도 종교에 대해 다른 부분보다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설명하는데 그 책에서 주장하는 것보다 많이 약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종교를 옹호하고자 하는 자신의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윌슨은 종교의 수평적 측면과 수직적 측면을 이야기한다. 수평적 측면은 종교인들의 상호간에 형성되는 집단 형성 기제를 의미하고, 수직적 측면은 신과 인간의 관계를 의미한다. 그런 다음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이야기하는데 이게 좀 묘하다.
"다시 말해서 종교적 믿음이 사람들의 행동을 유발한다는 점(궁극적 설명에 해당하는 종교의 수평적 측면)에서 보면 종교의 목표가 현실적인 이득이라는 내 주장이 맞을 수 있고, 그들의 종교적 경험이 자신이나 타인의 이득보다는 신과의 관계에 더 치중되어 있다는 점(근접적 설명에 해당하는 종교의 수직적 측면)에서 보면 그들의 주장이 맞을 수 있다."
집단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는 수평적 측면은 진화심리학에서 이미 인정되고 있다. 문제는 종교의 수직적 측면인데 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문제삼는 것이 바로 이 수직적 측면이다. 종교적 근본주의가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이 수직적 측면에 의해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윌슨은 수평적 측면에 대한 것과 수직적 측면에 대한 것을 등가로 비교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언급도 애매하긴 마찬가지다.
"혹시 사실적 현실주의에서 출발하면 수직적 측면만 강해지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바로 나의 딜레마이다. 종교적 믿음이 사실적 측면이 아니라 실용적 측면에서만 현실적일지 모른다는 가능성에 직면한 종교인들처럼 나에게는 바로 이 딜레마가 강하다."
신과의 수직적 관계가 강조되면 근본주의가 나타난다는 것을 윌슨도 인식은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모호한 언급을 통해 자신이 여전히 종교를 옹호하는 입장에 있음을 밝힌다.
"종교를 비판하는 사람과 도용된 종교에 대해 훨씬 더 심각하게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실패를 인정했고, 이는 올바른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실수를 지적하기만 하면 올바른 정신의 소유자들이 광명을 찾게 될 것이고 이로써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종교적 논의를 벗어나면 다시 과학자 본연의 자세로 돌아온다. 과학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를 다음과 같이 한다.
"사실적 지식은 최소한 세 가지 특성 때문에 좋은 것이 될 수도 있고 나쁜 것이 될 수도 있다. 첫 번째 문제점은 결과를 예측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은 처음 발명됐을때 명백하게 좋은 발명품 같았으며 누구도 플라스틱에서 유해한 호르몬이 나올지는 예측하지 못했다. 두 번째 문제점은 비윤리적인 사용이다. 실질적으로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발명품은 선한 목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지만 타인을 해치는 무기로 사용될 수도 있다. 세 번째 문제점은 도덕적 가치의 약화이다. 말라리아의 원인이 도덕성 부족이라는 주장은 비웃어도 무방하지만 앞에서 살펴봤듯이 도덕성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문제들도 있다."
"결과를 예측하기 불가능하다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알고 있는 지식을 과신하지 말고 새로운 기술을 신중하게 사용하고, 예즉 불가능한 결과를 추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식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보다 더 완벽한 지식을 얻는 것이다."
"비윤리적인 사용을 막으려면 다른 사람들에 의해 어떤 부분이 이기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방지하는 윤리적 사회 시스템을 만들면 된다. 사실적 지식은 그 자체로는 윤리적인 사용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윤리적 사회 시스템만 수립되면 사실적 지식을 한층 더 선한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도덕적 가치의 약화를 막으려면 실용적 현실주의와 사실적 현실주의의 관계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마지막 50여 페이지에서는 '누구나 과학자가 될 수 있다'라는 제목 하에 자신이 과학자가 되기 까지의 이력을 자서전 형식으로 서술한다. 자신의 자서전을 뜬금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어색하긴 하지만 저자의 글쏨씨가 그 어색함을 덮고도 남아서 읽기에 불편하지는 않다. 진화론이 자연법칙이라는 윌슨의 주장이 처음에는 지나치게 과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그 주장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 책은 강력 추천 목록에 올려도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