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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 차이'가 진화론에 의해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진화론적 규명의 한 부분인 셈이다. 그러나, '성 특성'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인간의 본성을 진화론적으로 해명하려는 노력은 항상 사회의 여러 세력들로 부터 공격을 받았다. 저자도 그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
"일부 사회생물학 비판가들은 인간의 행동과 정신을 자연선택의 산물로 보려는 자연과학자들의 개인적인 믿음과는 무관하게, 그러한 시도가 반동적인 정치적 결과를 초래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착상은 아마도 입증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사회다윈주의의 역사는 이러한 생각에 자양분을 공급한다. 하지만 흔히 언급되는 것처럼 오직 인간의 본성과 사회생활에 대한 진화생물학적 시각만이 반동적인 정치적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들어 인간 사회가 통합적이며, 조화로운 시스템이라고 주장하는 견해는 '사회시스템' 또는 더욱 커다란 선을 위해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견해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한다고 일컬어져 왔다."

그러나 저자는 '성 차이'를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성 차별'을 극복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성 특성에 대한 진화론적 접근은 빈번하게 언급되거나 시사되는 견해, 즉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하나의 성이 상대방의 성에 비해 열등하거나 결함을 갖는다는 생각을 효과적으로 반박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저자는 인간의 본성이나 성 특성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지금까지 인류가 구축해 놓은 도덕 체계를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뒤르켄이 통찰한 것처럼, 인간의 욕구는 무한정하고, 오직 인간의 상상력이라는 경계에 의해서만 제약을 받는다. 욕구의 충족은 대체로 기회와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다. 권력가와 전문가가 선행을 촉구한다고 해서 평등주의 사회가 도래하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는 권력가들이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데 유용한 수단이라면 무엇이든 활용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 …… 촘스키가 지적한 것처럼, 인간 정신에 대한 백지 상태 이론은 전체주의적 몽상이다. 평등주의적 사회 질서는 어떠한 개인이나 집단이 획득할 수 있는 정치적, 경제적 힘을 제한하고 견제하려는 집합적인 노력이 있어야만 달성될 수 있다."

그리고 '성 차이'가 '성 차별'로 인식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남성과 여성이 본성적으로 다르다는 주장은 규범적 문제들에 대해 함축하는 바가 전혀 없다. 사람들은 유사한 과학적 견해를 견지하면서 반대되는 정치적 견해를 견지할 수 있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흔히 있을 수 있다."

결국 진정한 양성 평등은 '성 특성'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사회운동이 성공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경우는 그것이 인간조건에 대한 실질적인 평가에 기반을 두고 있을 때다."

진화론적 설명에 의하면 남, 여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생식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남성은 정자를 통해 생식에 기여하고, 여성은 난자를 통해 생식에 기여하는데 이 정자와 난자라는 것이 생식 기여도가 반반인 것과 달리 효율성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남성은 한번 사정에 수억마리의 정자를 방출하는데 비해 여성은 일생 동안 번식에 성공할 수 있는 난자를 수십개 생산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정자는 투입 만으로 생식에 기여할 수 있지만 난자는 생식에 성공한 이후에도 근 10개월 동안 모성의 보호를 필요로 한다. 이런 특성때문에 남성은 자신의 유전자를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가급적 많은 여성과 섹스를 하려는 경향이 생기고 그에 반해 여성은 다수의 남성과의 섹스보다는 건강한 유전자를 가잔 남성과의 섹스가 더 중요해 진다.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통념들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고 그것이 진화론적 설명에 의해 지지를 받는다.
"'남성은 바람둥이고, 여성은 현실주의자'라는 오든(CW. H. Auden)의 통찰"
"피부 상태에 상당히 관심을 두려는 경향 그리고 맑고 깨끗한 안색에 끌리는 것은 인간의 '선천적' 성향이다."
"건강한 사람에 대한 식별 능력과 젊은 여성을 매력적으로 파악하는 성향은 비교적 '선천적'이다."
"일반적으로 남성들이 성매매의 대가를 지불하는 주체인 동시에 선물을 주는 존재라는 사실이 우연의 일치는 아니다."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외모 지상주의를 생각해 보더라도 위의 언급들이 직관에 부합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사실들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저자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열심히 일하는 것이 유전적 우연성보다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민주적이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필자가 보기에 육체적 매력의 기준은 언뜻 보기와는 달리 다양하지도 임의적이지도 않다. 필자는육체적 매력 자체가 사회과학에서 무시되어 온 이유와 동일한 역사적, 이데올로기적 이유 때문에 다양성과 임의성이 지나치게 강조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육체적 매력은 유전자에 가깝고,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분배되어 있다."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 저자는 인간에게 있어 결혼이라는 것이 동물들에게서 볼 수 있는 번식 목적의 결합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번식과 무관한 성관계가 개체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인간 아닌영장류에 관한 문헌에 이미 암시되어 있다."
"그런데 영민하고, 책임있고, 경험이 풍부한 일부 학자들은 인간이 긴팔원숭이와 유사하며, 결혼이라는 것이 성적 결속에 기초한다고 믿는 듯하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언급은 젊은이들이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결혼관이 별로 근거없음을 이야기한다.
"대다수의 인간에게 –그리고 아마도 현대 이전의 모든 인간에게- 결혼은 두사람 간의 결연이라기 보다 가족들과의 결연이며, 사람들 사이에 더욱 커다란 연결망을 구성하는 것이다."
"약 1세기 전에 골턴(Galton. 1883)은 수많은 개인의 얼굴 사진으로 합성사진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는데, …… 골턴은 뉴질랜드의 오스틴(A. L. Austin)이 다윈에게 보낸 편지도 인용했다. 오스틴은여성들의 초상화를 전형적인 모습으로 혼합했으며, "모든 경우에 분명히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이런 언급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다음과 같은 내용 즉 '사람들이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얼굴 형이 어떤 집단의 평균적인 얼굴 형'이라는 것이 근거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직관적으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반대의 경우도 있다.
"버시드와 월스터는 평균(대략 178 센티미터)보다 키가 큰남성이 키가 작은 남성들보다 성적으로 매력적인 남성으로 판단된다는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저자도 성 차이가 진화론적으로 완전하게 설명된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진화론적 설명이 타당함을 주장한다.
"필자 생각에, 성 차가 존재한다는 주장을 옹호하는 가장 설득력있는 증거는 비록 측정하기에 모호하고 어렵긴하지만, 남녀가 각기 상대방에게서 나타나는 성 차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는 사실 자체다."

양성의 차이 문제는 사회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성매매 문제, 강간에 대한 인식과 처벌의 문제, 동성애 문제 등이 그러하며 '성 차이'를 보다 완전하게 이해하게 될 때 그런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해결책을 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연구는 의미가 있으며, 그러므로 이 책 또한 읽힐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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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은 물리학을 천재들의 놀이터 정도로 알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물리학에 대해 듣는 이야기는 거의 대부분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기 때문이다. 물리 현상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겪는 것들이지만 그것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그 이면에 깔린 법칙성을 이해해야 하고, 그 과정은 고도의 추상적 사고를 요하기 때문에 천재들이 주로 등장한다. 그렇긴 하나 물리학을 천재들만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고도의 추상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과학자들이 밝혀낸 물리학에서의 발견들을 일반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설명하는 일을 하는 것도 역시 물리학자의 몫임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근대 과학의 초기에는 물리학은 하늘 너머 우주로 향하는 천체 물리학과 물질의 본질을 탐구하는 원자론으로 양분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우주의 탄생 기원을 추적하기 위해 원자보다 작은 소립자들을 연구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 소립자에 대한 연구를 대중들에게 소개하는 것이 다음 책이다.


제목에는 재밌다고 했지만, 그리고 대중들에게 소립자를 소개하는 책이라고 했지만 몇가지 소립자들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것 외에는 그다지 재밌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저자도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몰라도 상관없는 사람은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이 현대 소립자론의 세계다."
그러면서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렇게 냉정하게 분석하면 소립자 물리학이란 꽤 애물단지다. 그런데도 신기한 매력이 있어 우리를 꿈꾸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물의 본질을 알고 싶어하는 인간의 호기심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라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영원히 알 수 없을' 수도 있고, 또 사람에 따라 알 수 있는 정도도 다를 것이기 때문에 이 책이 재밌을지 어떨지는 온전히 독자 개개인들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소립자들에 대한 지식을 엉성하게 나마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소립자는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입자다."
"물리학자가 '이론 물리학자(이론쟁이)', '실험 물리학자(실험쟁이)'로 분류되듯, 소립자의 세계도 두 부족으로 나뉜다. 하나는 '물질을 만드는 부족', 또 하나는 '힘을 전달하는 부족'이다. 물질을 만드는 소립자는 페르미온(fermion)이라고 부른다. 페르미온은 쿼크와 렙톤(lepton)으로 나눌 수 있다."
"쿼크란 양성자와 중성자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소립자다."
"힘을 전달하는 소립자에는 글루온(ghion), 광자 그리고 두 종류의 위크 보손(weak boson)으로 총 4종류가 있다."
"물질을 만드는 소립자(쿼크와 렙톤) 12종류가 소립자(보손) 4종류의 힘을 매개로 서로 연결되어 물질을 구성한다."
"거기에 앞에서 다룬 물질을 만드는 소립자 12종류까지 합해 총 16종류의 소립자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발견한 17번째 소립자가 바로 '힉스 입자'다. …… 힉스 입자는 '질량을 부여하는' 소립자다."
"물질을 물질답게 하는 최소한의 성질, 즉 궁극적인 성질이 바로 질량, 스핀, 전하다."
"1900년대 전반, 인류의 문화는 두 가지 비약적인 진화를 이루었다. 첫 번째 진화는 '양자'라는 개념이 생긴 것이다. 양자라는 개념이 나온 후 양자장이라는 형태로 완성되었다. 두 번째 진화는 독일 태생의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1879~1955)의 상대성 이론의 등장이다."
"양자론과 상대성 이론을 조합한 것이 바로 소립자론이다. 그래서 소립자론 속에는 상대성 이론도 포함되어 있다. 상대성 이론은 기존의 뉴턴 역학과 어떻게 달랐을까?
  두 개념의 차이점은 '빛과 가까운 속도'일 때 나타난다. 즉, 뉴턴 방정식이 틀린 것이 아니라 '천천히 움직이는 물체일 때는 맞지만 물체가 광속에 가깝게 움직일 때는 그 오차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 수정 부분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다."
"소립자파는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 중에서도 가장 작은 소립자를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한편 상대론파는 그와 반대로 우주라는 초거대한 대상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일반상대성 이론은 초거대한 대상에 적합한 이론이며, 중력만 유효하다. 반면 양자역학은 중력이 없을 때 유효한 이론이다."
"이제는 기본적으로 우주론과 소립자론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다만 아직 완전한 통일이론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의 통일이론이 필요하다. 그리고 통일이론으로는 초끈이론이 가장 유력하다."
"리숀, 서브쿼크, 초대칭성, 초끈 등은 전부 가설이고, 딱 잘라 말하면 이러한 개념들은 전부 이론 물리학자의 머릿속에 존재할 뿐이다. 다만, 픽션과 다른 점은 이 가설들이 수학적으로 타당하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부피도 적고, 근본적인 이해는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현대 물리학에 관한 많은 흥미로운 설명들을 담고 있어서 독서 추천은 '일독을 권함'으로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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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진화경제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진화경제학은 경제학을 진화, 발달하는 복잡한 적응 시스템으로 보고, 구석기 시대에 생존을 위해 무리 생활을 하는 영장류의 길을 택했던 인간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경제학 연구의 한 갈래다."
이는 진화심리학의 전제를 이루는 생각과 같으므로 진화심리학의 하위 분과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책의 상당 부분은 진화심리학적 논의를 전개한다.

진화심리학적 논의를 전개하므로 진화심리학이 강한 비판에 직면했던 사실을 언급하면서 그것이 타당한 비판이 아니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은 1970년대 후반 <사회생물학(Sociobiology)>이라는 책을 펴낸 후 극렬한 공격을 받았다. 1990년대에 진화심리학이 첫발을 디뎠을 때 역시 똑같은 보복 공격이 연구자들에게 가해졌다. 이런 공격들의 기원은 바로 두려움이었다.과학이 인간에게서 자유와 존엄성을 빼앗아 갈지도 모른다는 공포였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진실보다 앞에 설 수 없다. 실제로 지금까지 나온 최고의 연구 결과들을 보면, 인간의 어떤 기질이 유전적 혹은 생물학적으로결정되는 비율은 기껏해야 50퍼센트 정도다."

이 책을 통해서 저자가 반대 입장을 밝히려는 관점은 세가지이다.
"첫째, 다윈과 그의 진화론이 사회과학 내에서는 특히 인간의 사회경제적 행태 연구 분야에서는 설 자리가 없다는 믿음, 둘째,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이론. 이는 ‘경제적 인간(economic man)'이라는 담론이 합리성, 자기 이익, 자유의지라는 관념을 배태했으며 그 결과 인간은 이기적으로 되었고, 자신의 영역만을 최대한 확장하려고 하며, 우리가 내리는 결정과 선택은 언제나 효율성을 띠고 있다는 생각이다. 셋째, 1849년에 영국의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Tomas Carlyle)이 내놓은 것으로, 경제학은 ‘암울한 과학(dismal science)’이라는 생각."
"진화론과 자유시장경제반대론에서 발견되는 가장 보편적인 신화가 있다면 그것은 동물이나 인간이 본래 이기적이며 경제는 테니슨(tennyson)이 자연을 두고 쓴 유명한 묘사에 나오는 것처럼 “피로 물든 이빨과 발톱”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 위에 성립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관점이 옳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영장류는 ‘정의의 감각(sense of justice)’을 발달시켜왔다는 것이며, 이 도덕적인 감정은 어떤 교환 행위를 할 때마다 그게 공정한 것인지 불공정한 것인지를 당사자에게 고지하는 신호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증거틀은 공정성이 일종의 전략, 즉 우리 조상들이 이루고 살았던 소규모 집단 사회의 조회를 유지 하는 안정화 전략으로 진화, 발달된 것임을 보여준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인간은 유전자와 환경의 영향을 공히 받는다고만 이야기한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의 본성에는 선한 요소가 더 많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삶과 경제 모두, 그 안에는 상호 투쟁과 상호 협조가 공존한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우리의 천성은 악보다는 선에 더 많이 가울어져 있다. 저녁뉴스를 장식히는 돌발적인 폭력 행위가 한 건이라면, 매일매일 기록되지 않고 넘어가는, 양식에 근거한 선행은 1만건이나 된다."
이런 단호함이 경제학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는데 바탕이 됨은 말할 필요도 없다.

경제를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려는 저자의 견해는 다음 구절에 압축되어 있다.
"삶과 경제는 지적으로 설계되어 위로부터 내려온 것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자발적으로 보다 단순한 시스템에서, 아래로부터 발전한 것이다. 이에 관한 설명은 출현 이론이나 복잡성 이론을 다루는 과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이론들에 따르면 복잡계(complex system)는 단순계(simple system)에서 나왔다. 삶과 경제는 언어나 글쓰기, 법률, 문명, 문화같은 것과 마찬가지로 모두 자발적으로, 어떤 전지한 공학자의 청사진 설계도 없이 자가조직화되어 스스로의 시스템 안에서 솟아난 것들이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는 신도 정부도 필요치 않다. 대신에 자연선택과 보이지 않는 손이 어떻게 개별 유기체와 사람들이 생계 유지와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복잡한 생태와 경제라는 (자가)발현적인 특질들을 생성해내는지 정확하게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생물의 진화와 경제의 진화가 유사함을 이야기한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와 사회적 조화가 어떻게 해서 국민들의 개인적 경쟁의 결과로 나타나는지 보여주었다. 찰스 다윈은 자연의 복잡한 설계와 생태적 균형이 어떻게 해서 유기체들 내부의 개체 경쟁의 결과로 나타나는지 보여주었다. 인간의 경제는 자연의 경제를 반영한다."

이런 경향이 진화론과 마찬가지로 경제도 이기적인 인간의 집단 행동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었다. 하지만 인간은 이기적 본성만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진화심리학적 설명을 더한다. "우리는 미덕과 악덕 둘 다 가지고 있으며 양자는 서로 교통하고 상호작용하며, 그것들이 어떤 비율로 어떻게 구성되는지는 당대의 사회적 환경과 맥락에 달려 있다."
이기적 본성과 더불어 이타적 본성도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길게 서술하고 있다.
"진화론과 경제학에서 자연선택(도태)과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은 누군가가 믿기로 서약한 종교적 교리도 아닐 뿐더러 믿음의 대상 자체도 될 수 없다. 그것들은 경험적 세계의 사실적 진실(factual realities)일 뿐이다. 누군가가 "나는 중력을 믿는다”라고 말할 수 없다면 "나는 시장을 믿는다”라는 말도 할 수 없어야 한다.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거부는 특정한 사회심리적 요인과 연관되어 있다."
”이는 인간들이 수렵채집공동체 내에서 적게는 수십 명, 크게는 수백 명 단위의 소집단을 이루어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공동체 내의 모든 구성원은 유전적으로 연결되어 있거나 사적으로 서로를 잘 알았고, 대부분의 물자를 공유했기 때문에 부는 거의 축적되는 게 없었으며, 과도한 탐욕은 징벌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남보다 월등한 부가 성공의 표지가 되는 자유시장 시스템에 대해 우리가 질시와 분노의 감정을 실어 반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탐욕스러운 개인보다 더 강력한 권력을 갖춘 어떤 사람이나 기구가 이 '불공정함'을 바로 잡아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를 '진화적 평등주의(evolutionaryegalitarianism)'라고 부른다.
   더 나아가 문명사가 시작된 이래 경제적인 불평등은 대부분 사회 구성원들이 성공을 도모할 권리를 평등하게 가지고 있었던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재능이나 추진력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소수의 족장, 귀족, 성직자들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탐하기 위해 불공정하고 부정한 사회 시스탬을 만들어내 악용한 것이었으며 다수의 빈곤화라는 희생 위에 그들만의 영달을 꾀한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는 우리가 경제적 불평등을 일종의 불법 취득물 같은 것으로 생각하도록 이끌었고 한 개인이 축적할수 있는 부의 크기에 대해 위로부터의 강력한 규제를 요구하게 만들었다. 누군가가 "저들이 뭔가를 해줘야 해"라고 말할 때 저들은 바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사회적 기구를 암시하는데 대개 그것은 '정부'가 된다."


정치와 경제는 별개의 것이 아닌 것인만큼 경제에 대한 설명에 정치적인 요인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고 정치영역에서 문제가 되는 큰 요인 중의 하나는 전쟁을 포함한 집단 간의 분쟁이다.
"집단 간의 폭력을 야기했던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는 부족한 자원을 둘러싼 경쟁이었다."
이에 대해 진화론적 설명 과정에서 교역을 하나의 중요한 대책으로 제시한다.
"집단 간 분쟁의 도화선을 제거하고자 하는 이면에 있는 심리는 잠재적으로 위험한 역외인들을 장차 유익한 친구로 바꾸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 과정은 신뢰를 낳는 긍정적인 사회적 소통을 장려하고, 가능케 하고. 심지어는 강제하기까지 하는 사회 제도의 수립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 이런 소통의 방식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 중 하나가 바로 교역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선언으로 글을 맺는다.
"느리지만 확고하게,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시장자본주의를 확산시키고, 개인 간 그리고 국가 간에 신뢰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며, 정치 및 경제 권력의 투명성을 유지하고, 어디에서든 누구나 모든 지식에 접근할 수 있고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하며 정치적, 경제적 국경을 개방해야 한다."

이 책은 진화심리학적으로 경제를 해명하는 것인만큼 진화심리학에서의 연구 결과들을 광범위하게 차용한다. 그래서 여기서는 다 요약하지 못했지만 도덕감정, 자유의지, 신뢰, 이타주의 등과 같은 의식의 문제, 그리고 신경생리학에서 밝혀낸 행동과 뇌의 상호작용, 신경전달물질들과 행동 및 의식의 상호작용, 이런 주제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읽어보면 배울 것이 많은 그런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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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두 포스트에서는 진화심리학이 전통 철학의 전제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과 장애물들에 관해 요약했다면 이 마지막 포스트에서는 구체적인 연구 결과들을 요약한다. 하지만 이 책은 학술서에 준할 정도로 깊은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 모두 요약할 수는 없고 주요 키워드를 제시함과 더불어 몇몇 주제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요약도 곁들인다.

학술적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은 키워드들을 거친다. 뇌의 시각 인지 시스템, 자동연산망, 의식, 진화론과 돌연변이, 학습, 시각의 작동 원리(입체로 보이는 평면 패턴인 매직 아이의 원리 포함), 범주와 추론, 직관이론, 추상적인 사고, 성격 특성, 감정, 가족 제도, 프로이트 심리학의 오류, 제도로서의 결혼, 포르노, 일부일처 제도, 예술, 유머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할 이어간다.

그 중에서도 진화생물학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실생활의 지식들도 있다.
“우리가 사는 동네의 건강식품 판매원이 뭐라고 선전을 하든, 자연식품이라고 해서 특별히 건강에 좋은 것은 없다. 진화의 창조물인 양배추도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 먹히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지는 않다. 양배추는 행동을 통해 자기 자신을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없기 때문에 생화학전에 의존한다. 대부분의 식물들은 세포조직 안에 수십 가지의 독성 물질을 진화시켰다. 살충제, 벌레퇴치제, 자극제, 마비 물질, 독성 물질을 포함해 초식동물의 톱니바퀴에 뿌려댈 다양한 모래를 준비한 것이다. 반면에 초식동물들은 대응책으로서 독성을 제거하는 간과 유독한 식물을 더 이상 먹지 못하게 만드는, 이른바 쓴맛이라고 하는 미각을 진화시켰다.”
“첫 번째 결과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성격 차이의 상당 부분- 약 50퍼센트 -이 유전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 한 가정에서 자랐는지 서로 다른 가정에서 자랐는지는 기껏해야 성격 차이의 5퍼센트를 설명해 준다. …… 어느 누구도 나머지 45퍼센트의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알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이 내 재산을 어깨에 짊어지고 갈 수 있기 때문에 위협에 신속하게 반응하는 것이 필수적일 때 명예의 문화가 출현한다. 그런 문화는 고정된 토지에 농사를 짓는 농경민보다는 가축을 쉽게 도난당할 수 있는 유목민 사이에서 더 많이 발달한다. 유목민 외에도 부가 현금이나 마약처럼 유동적 형태로 존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발달한다.”
“남성성, 젊음, 빈곤, 절망, 무정부 상태가 결합하면 젊은 남자들은 평판을 지키는 일에 극도로 부주의해진다.”


생각에 대한 고려에는 지능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그에 대한 생물학적 바탕을 규명하는 것은 인공지능을 구현하는데 참고가 된다.
“그러므로 지능이란 이성적인(진리에 종속된) 규칙에 기초한 판단을 이용해 장애물을 극복하고 목표를 획득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컴퓨터과학자 앨런 뉴웰과 허버트 사이먼은 이 개념에 좀 더 살을 붙였다. 그들에 따르면 지능이란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가 현 상황과 어떻게 다른 지를 파악하기 위해 현상을 평가하고, 현 상황과 목표의 차이를 줄여 나가는 일련의 과제를 수행하는 능력이다.”
“지능이 진화의 숭고한 야망이라는 잘못된 생각은 지능을 신의 본질이나 경이로운 세포조직이나 만물을 포용하는 수학적 원리로 보는 오류와 맥락이 같다. 마음은 하나의 기관, 즉 생물학적 도구다. 우리에게 마음이 있는 것은 플라이오 플라이스토세(신생대 홍적세 4기)에 마음의 설계가 아프리카 영장류의 삶에 비용보다 더 큰 이익을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진화론에 의하면 진화의 미래 예측은 불가능하다. 생물의 삶도 진화에 종속되므로 결국 개별적이든 종 집단이든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 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언급이 의미를 가진다.
“미래학에서 확실하게 옳은 예언 중 하나는 미래에도 그 시대의 미래학자들은 어리석게 보일 거라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 안에는 행복 추구를 위한 여러 고려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에 대한 진화심리학의 발견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삶은 도박판에서의 선택이다. 우리는 갈림길에서 오른 쪽으로 갈 수도 있고 왼쪽으로 갈 수도 있으며, 릭과 남을 수도 있고 빅터와 떠날 수도 있지만 어떤 선택도 행운이나 행복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결국 최선의 선택은 확률에 거는 것이다.”
“행복의 기능은 다윈주의적 적응의 열쇠들을 찾도록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불행할 때 우리는 행복으로 인도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행복할 때 우리는 현재 상태를 지속시킨다.” “문제는 이것이다. 노력을 통해 얻을 만한 가치가 있는 적응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합리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 우선 다른 사람들이 이미 획득한 것이 좋은 정보원일 수 있다. 그들이 그것을 얻을 수 있다면 나 역시 그럴 수 있다. 여러 시대에 걸쳐 인간의 조건을 관찰했던 사람은 다음과 같은 비극을 지적해 왔다. 사람들은 이웃들보다 낫다고 느낄 때 행복하고, 그들보다 못하다고 느낄 때 불행하다.”
“다양한 계층과 국가에 소속된 사람들은 그들 자신을 더 풍요로운 집단과 비교하기 전까지는 종종 만족감을 느낀다. 한 사회에서 폭력의 수위는 그 사회의 가난보다는 불평등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
“획득 가능한 것을 알 수있는 또 다른 주요 단서는현재 당신이 얼마나 부유한가다.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은 정의상 획득 가능한 것이므로, 당신은 최소한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산업 국가에서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은 약간에 불과하다. 부와 만족의 상관성은 실재하지만 낮다.”
“마이어스와 디너는 부는 건강과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부유하지 않으면 비참해지지만, 부유함이 행복을 보장하진 않는다는 점에서다."
“행복의 비극은 3막까지 있다. 부정적인 감정(두려움, 슬픔, 불안 등)이 긍정적인 감정보다 두 배나 많으며, 손실이 같은 양의 이득보다 더 강렬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결혼 생활은 행복을 주지만 또 한편으로 행복은 결혼과 결혼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캠벨이 내린 다음의 결론에는 수천 년의 역사 속에 존재했던 현명한 사람들의 생각이 녹아 있다. "직접적인 행복 추구는 불행한 삶을 만들어 내는 조리법이다."


저자는 광범위한 내용을 다루는 학술 서적답게 결론에 해당하는 언급도 길게 적어 놓았다.
"유전학자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는, 생물학에서는 그 어떤 것도 진화에 비추어 보지 않으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우리는 여기에, 문화에서는 그 어떤 것도 심리학에 비추어 보지 않으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일 수 있다. 진화는 마음을 창조했고, 심리학은 문화를 설명한다. 초기 인간이 남긴 가장 중요한 유물은 현대의 마음이다.”
"경쟁하지 않으면 죽는 것은 유기체가 아니라 유전자다. 때때로 유전자의 가장 좋은 전략은 협조하는 유기체, 형제에게 미소를 짓고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 유기체를 설계하는 것이다. 자연선택은 협조와 관대함을 금지하지 않고, 입체시처럼 단지 공학적인 난제로 만든다. 입체로 보는 유기체를 만드는 어려움 때문에 자연선택이 인간에게 입체시를 설치해 주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만일 두 눈만 있으면 저절로 입체시를 갖는다고 생각하고 입체시를 위한 정교한 신경 프로그램을 찾아보지 않았다면 우리는 결코 입체시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협조적이고 관대한 유기체를 만드는 것이 어렵다고 해서 자연선택이 우리에게 협조와 관대함을 설치해 주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만일 그것들이 집단 생활로부터 저절로 생겨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결코 그 능력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사회적 유기체, 특히 인간의 내장형 컴퓨터는 당면한 기회와 위험을 평가하고 그에 따라 경쟁과 협조를 선택하는 정교한 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한다.”
“내 목표는 사람들이 항상 서로가 잘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당신에게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 그리고 왜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의 과제는 인간의 본성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일은 다른 분야의 몫이다. 전화심리학의 과제는 과학만이 제공할 수 있는 납득할 수 있는 통찰을 추가하는 것, 우리가 인간 본성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세계의 작동 방식에 대한 나머지 지식과 연결시키고, 최소의 전제로 최대한 많은 사실들을 설명히는 것이다. 이마 우리가 가진 사회심리의 대부분은 실험실과 현장에서 제공한 훌륭한 증거들을 통해, 친족선택, 부모 투자, 호혜적 이타주의, 계산주의 마음 이론에 대한 몇몇 전제들로부터 형성되었음이 입증되었다.”
“갈등은 인간의 보편특성이지만 갈등을 해소하려는 노력 또한 인간의 보편특성이다. 인간의 마음은 때때로, 대적자들이 무력을 포기함으로써 창출되는 잉여를 나눠 가지면 양쪽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차가운 경제적 진리를 깨닫곤 한다.”
“철학적 문제들이 어려운 것은 아마도, 그것들이 신성하거나 환원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하거나 현실적인 과학이기 때문이 아니라, 호모사피엔스의 마음에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인지적 장비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천사가 아니라 유기체이고, 우리의 마음은 진리로 통하는 파이프라인이 아니라 생물학적 기관이다. 우리의 마음은 조상들의 생사를 좌우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했지, 정확함을 벗 삼기 위해서나 온갖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니다.”
“의식의 계산주의적 측면(어떤 정보가 어느 과정에 이용되는가), 신경학적 측면(뇌 속의 무엇이 의식과 상관성이 있 는가), 진화론적 측면(언제, 그리고 왜 신경 계산주의적 측면이 출현했는가)은 끝까지 추적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이 책은 학술서에 준하는 책 답게 분량이 850여 쪽에 이른다. 그러면서도 분석은 논리정연하고 설명은 쉬운 말로 되어 있어서 시간이 많이 드는 것을 제외하면 읽기에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이 책이 출판된 년도가 1997년인데 그 후 인간의 생각에 관한 진화심리학적 종합이 더욱 정교해진 책들이 출판되어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독서 추천은 '일독의 권함'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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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킨스 2017.05.24 1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에 언급하신 진화심리학적 종합이 더욱 정교해진 책들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특히 전통철학의 오류나 무용성을 잘 설명해주는 책이 있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 thinknew 2017.05.24 15: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진화심리학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데이비드 버스의 '진화심리학'을 추천합니다. 이 책에는 서양의 지적 전통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오직 과학적 발견 만으로 진화심리학을 종합하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서양의 지적 전통의 오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으로는 1세대 과학적 철학자로 평가받는 데니얼 데닛의 '마음의 진화'라는 책을 추천합니다. 앞의 책은 부피가 큽니다만 뒤의 책은 문고판이어서 읽기가 편합니다.



지난 포스트에서는 진화심리학의 목표, 발전 과정, 전통 철학의 오류에 대해 요약했다. 이어서 진화론, 진화생물학 그리고 진화심리학에 대한 여러 분야로부터의 도전에 대한 것을 요약한다.
“그들(사회생물학을 반대한 학자들)의 확신은 선천적 인간 본성이란 개념에 함축된 것처럼 보이는 세 가지 의미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나온다. 첫째, 마음에 선천적 구조가 있다면 각 사람(혹은 각기 다른 계급, 성, 인종)은 각기 다른 선천적 구조를 가질 수 있다. 그것은 차별과 억압을 정당화할 수 있다. 둘째, 공격성, 전쟁, 강간, 배타성, 지위와 부에 대한 탐욕 같은 밉살스런 행동이 선천적이라면, 그것들은 '자연적'이고 따라서 좋은 것이 된다. 우리는 그런 행동에 반대할 수는 있지만 그것들은 결국 유전자 속에 있고 바꿀 수 없으므로 사회적 개혁의 시도는 무익해 진다. 셋째, 유전자가 행동을 초래한다면 개인은 자신의 행동을 책임지지 않게 된다. 강간범이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라는 생물학적 명령을 따른 것이라면 그의 잘못이 아니다.”
“내 요점은, 과학자는 도덕적, 정치적 사상에 영향을 받지 않고 상아탑 안에서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존재와 관련된 모든 인간 행동은 심리학의 주제인 동시에 도덕철학의 주제이며, 둘 다 중요한 주제다. 그러나 그 둘은 같은 것이 아니다. 인간 본성에 대한 논쟁은 지적 게으름, 즉 도덕적 쟁점이 부상했을 때 도덕적 논의를 피하는 게으름 때문에 혼란에 빠지곤 했다. 권리와 가치의 원칙으로부터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이미 포장된 도덕적 재고(대개 신좌파나 마르크시즘)를 구입하거나 도덕적 토론을 면제시켜 줄 인간 본성에 대한 행복한 이론을 통과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였다.”
“인간 본성에 대한 부정은 그에 대한 강조 못지않게 쉽게 왜곡되어 해로운 목적에 봉사할 수 있다. 우리는 해로운 목적과 그릇된 이론을 모두 밝혀야 하고, 그와 동시에 양자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과학의 진보와 함께 행동에 대한 설명이 공상에서 멀어짐에 따라 데닛이 명명한 이른바 '비루한 변론의 망령Specter of Creeping Exculpation'은 더욱 불안한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지금보다 분명한 도덕철학이 없으면 행동에 대한 '그 어떤' 원인이라도 자유의지와 도덕적 책임을 훼손할 것이다. 과학적 설명 방식은 의지의 기초에는 원인이 없는 인과관계가 놓여 있다는 신비주의적 개념을 수용하지 않기 때문에, 과학은 어떤 사실을 밝혀내든 분명 의지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동성애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주장은 게이 유전자나 게이 뇌가 아니라, 개인들이 합의를 통해 사적인 행동을 했다면 차별이나 괴롭힘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인간의 권리에 근거해야 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도덕적 감정들은 장기적으로 개인의 이익과 궁극적으로 유전자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설계되었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여기에서도 나는,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와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면 좋을까를 혼동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은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남자들이 여성을 객관화하고 억압하기 위해 꾸며 낸 공모가 아니다. 정말로 성을 차별하는 사회에서는 여자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차도르로 감싼다. 역사상 모든 시대에 아름다움에 대한 비판은 권력을 가진 남자, 종교 지도자, 때때로 나이 많은 여자, 의사들처럼 최근의 미용 열풍 때문에 여자들의 건강이 위험해졌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의 몫이었다.”
“만일 그 차이들(성 전략의 진화론적 해석을 통해 본 남녀의 차이)을 통해 남자들이 여자를 대상으로 몇몇 범죄를 저지르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면, 그것은 그런 범죄들이 덜 가증스럽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확실하고 엄격한 억제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미다.”
“진화심리학이 도전하는 대상은 페미니즘의 이상과 목표가 아니라 페미니즘 이론이 채택해 온 현대의 정통적인 마음 이론이다. 한 이론에서는 사람은 그들 자신의 믿음과 욕구에 따라 행동하기보다는 자신의 계급과 성의 이익을 수행하도록 설계되었다고 본다. 다른 이론에서는 아이들의 마음은 부모에 의해 형성되고, 성인의 마음은 언어와 대중매체의 이미지에 의해 형성된다고 본다. 세 번째 이론은 우리의 선천적인 성향은 좋은 것이고 무시할 만한 동기들은 사회로부터 형성된다는 낭만적인 학설이다. …… 이런 종류의 주장에는 엉터리 생물학(자연은 좋은 것이다), 엉터리 심리학(마음은 사회에 의해 창조된다), 엉터리 윤리학(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이 결합되어 있다. 그것들을 포기해도 페미니즘은 전혀 손해를보지 않는다.”


그리고 과학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규명된 진화론에 대해 보충 설명을 요약한다.
“과학의 시대에 '이해한다'는 것은, 행동을 설명할 때 그 행동을 (1) 유전자, (2) 뇌의 구조, (3) 뇌의 생화학적 상태, (4) 개인의 양육 환경, (5) 사회가 개인을 다루는 방식, (6) 그 개인에게 영향을 준 자극들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선택이 과학에서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은, 생명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해 주는 유일한 이론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매력은 그 '적응적 복잡성' 또는 '복잡한 설계'에서 나온다.”
“자연선택이 시간에 따라 유기체를 변화시키는 유일한 과정은 아니다. 그러나 자연선택은 시간에 따라 유기체를 '설계'하는 것처럼 보이는 유일한 과정이다.”
“유기체는 일종의 기계라서 유기체의 '복잡성'은 기능적, 적응적 설계, 즉 어떤 흥미로운 결과를 이뤄내기 위한 복잡성이다. …… 따라서 자연선택은 그냥 평범하고 낡은 복잡성이 아니라 '적응' 복잡성이 어떻게 출현할 수 있는가를 설명하는 유일한 이론으로 남는다. 왜냐하면 '어떤 것이 얼마나 잘 작동하는가'가 '그것이 어떻게 생겨났는가'에 원인 역할을 하는 이론으로서 유일하게 기적에 의존하지 않는 순방향 이론은 자연선택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연선택에는 인간 설계자와 같은 예측력이 없지만, 여기에는 나쁜 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선택에는 정신적 한계나 상상력의 부르주아적 감성과 지배 계급의 이익에 순응하려는 경향 따위가 없다. 자연선택은 유용성에 의해서만 지배되므로 결국 영리하고 창의적인 해결책에 도달한다.”
“진정한 과학은 막연히 비슷하다는 느낌을 초월하고 기저에 깔린 법칙에 도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물체가 어떻게 구르고 뛸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는 소박한 물리적 이론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지를 예측할 수 있는 심리학과, 진리들로부터 다른 진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논리학과, 합계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산수와, 생물과 그것들의 능력에 대해 추론할 수 있는 생물학과, 혈연과 유전성에 대 해 추론할 수 있는 친족 이론과, 다양한 사회적, 법률적 규칙 체계를 갖고 있다. 이 장의 대부분에서는 이런 직관 이론들을 탐구할 것이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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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스티븐 핑거 I

독서 2017. 5. 17. 17:00


오랫동안 육체와 구분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정신이 사실은 물리적 뇌에서 나타나는 창발적 특성이라는 것을 밝혀내는 작업이 진화심리학에서 이루어 진다. 거기에는 뇌의 작동 메카니즘을 규명하는 신경생리학, 진화론을 구성하는 고인류학과 고생물학, 자연선택을 바탕으로 인간 심리가 적응 특성임을 밝혀내는 인지심리학 등이 포함된다. 그리고 진화심리학은 인공지능을 구현하기 위한 바탕 이론으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데이비드 슬론 윌슨은 '진화론의 유혹'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과학 이론은 벽돌로 쌓아진 건축물로 비유한 적이 있다. 개별 과학자들이 검증한 사실들을 체계적으로 쌓으면 과학적 이론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진화심리학은 물리적 신체의 연장선상에 있는 정신에 대한 종합적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종합의 초기 버전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다음에 요약할 책이다.




이 책은 준학술서라고 해도 될 정도로 진화심리학에 관한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먼저 저자는 심신일원론의 종합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진화심리학의 결론부터 언급한다.
"우리 조상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식량을 채집하는 과정에서 특히 사물, 동물, 식물, 그리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정복하는 과정에서 직면했던 문제들을 해결해 주기 위해 설계한 기관들의 연산 체계다. 이 요약된 문장을 풀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주장이 나온다. 마음은 뇌의 활동인데, 엄밀하게 말해 뇌는 정보를 처리하는 기관이며 사고는 일종의 연산이다. 마음은 여러 개의 모듈 즉 마음 기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모듈은 이 체계와의 특정한 상호작용을 전담하도록 진화한 특별한 설계를 가지고 있다. 모듈의 기본 논리는 우리의 유전자 프로그램에 의해 지정된다. 이러한 모듈들의 작용은 인간의 진화사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렵채집 시기에 자연선택이 우리 조상들이 직면했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발전시킨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진화심리학의 발전 과정도 두루 언급한다.
“다윈의 도전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으로, 인류학자 존 투비와 심리학자 레다 코즈미디스가 '진화심리학'이라 명명한 새로운 접근법에 의해서다. 진화심리학은 두 과학혁명을 하나로 결합했다. 하나는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인지혁명으로, 사고와 감정의 동역학을 정보와 연산 개념으로 설명했다. 다른 하나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진화생물학 분야에서 일어난 혁명으로, 생물체의 복잡 적응 설계를 복제자들 사이의 선택이란 개념으로 설명했다. 두 이론은 강력한 짝을 이룬다. 인지과학은 마음이란 것이 어떻게 가능하며, 우리는 어떤 종류의 마음을 갖고 있는가를 이해하게 해준다. 진화생물학은 '왜' 우리가 그런 종류의 마음을 갖게 되었는가를 이해하게 해준다.”
“과학적 심리학이 인간과 같은 물질 덩어리가 어떻게 믿음과 욕구를 가질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믿음과 욕구가 그렇게 훌륭하게 기능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한 사건을 설명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어떤 것은 다른 것보다 더 낫다. 언젠가 신경학자들이 뇌의 전체 배선도를 해독한다고 해도 인간의 행동은 볼트와 그램 단위로 설명하기보다는 믿음과 욕구로 설명할 때 가장 설득력이 있다. 물리학은 교활한 변호사의 음모에 대해 어떤 통찰도 제공하지 않으며 때로는 생물체들의 아주 단순한 행동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지 못한다.”
“많은 인지과학자들이 마음에는 선천적인 직관 이론들, 즉 세계를 이해하는 주요 방법들을 위한 모듈이 구비되어 있다고 믿는다. 사물과 힘을 위한 모듈이 있고, 살아 숨쉬는 존재들을 위한 모듈이 있고, 인공물을 위한 모듈이 있고, 마음을 위한 모듈이 있고, 동식물과 광물 같은 자연 물을위한 모듈이 있다. 이론이란 용어를 말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 앞에서도 보았듯이 사람들은 사실 과학자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또한 '모듈' 비유를 너무 진지하게 받이들이지 말라. 사람들은 앎의 방법들을 혼합하고 짝지운다.”
“이 장에서 나는 낭만주의와 명백히 반대되는 감정 이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 속에는 정신의 원동력은 에너지가 아니라 정보라고 말하는 계산주의 마음 이론과, 생물체의 복잡한 구조를 역설계를 통해 설명하려는 현대적인 전화 이론이 결합되어 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감정이란 일종의 적응특성이고, 지성과 조화를 이루는 동시에 마음 전체의 작동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잘 설계된 소프트웨어 모듈임을보여 줄 것이다. 감정의 문제는 그것이 길들여지지 않은 힘이나 먼 과거의 흔적이라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문제는 감정이 행복, 지혜, 도덕적 가치관을 증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감정을 만들어 내는 유전자들의 사본을 증식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라는 점이다.”
“감정은 뇌의 최상위 목표를 설정하는 메커니즘이다. 적절한 순간에 촉발된 감정은 우리가 생각과 행동이라 부르는 하위 목표들과 하위-하위 목표들을 단계적으로 촉발한다. 그 목표들과 수단들은 하위 목표 안에 하위 목표가 겹겹이 싸여 있는 복합적 제어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생각과 감정을 날카롭게 구분하는 선은 없으며, (닭과 달걀에 대해 한 세기 동안 계속된 심리학 논쟁에도 불구하고) 생각이 감정을 앞서거나 감정이 생각을 앞서는 경우도 없다.”
“유전자는 서로에게 소리를 치거나 행동의 끈을 직접 당기지 못한다. 따라서 인간의 경우에 '친족 이타주의'와 '유전자의 이익'은 두 심리적 장치인 인지 장치와 감정 장치를 간단히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심신일원론을 규명한 진화심리학은 전통 철학의 토대를 붕괴시킨 위에 성립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저자는 전통 철학의 오류도 광범위하게 지적한다.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호주의 한 언어에 존재하는 불명료한 문법적 범주로부터 제목을 붙인 저서 <여자, 불, 그리고 위험한 것들Woman, Fire, and Dangerous Thinks>에서, 순수한 범주란 허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물려받았고 이제는 폐기되어야 할 나쁜 습관, 즉 정의定義를 추구하는 습관에서 나온 인위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과학계에서 본질주의는 창조론과 동의어로 쓰인다. 인문학에서 본질주의적인 사람은 예를 들어 성은 사회적으로 고안된 것이 아니고, 인간의 감정은 보편적이며, 세계는 실제로 존재한다는 등의 몰상식한 믿음에 친동하는 사람을의미한다. 그리고 사회과학에서 '본질주의'는 '환원주의', '결정론', '물화'와 결합되어,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설명하려는 사람을 향해 퍼붓는 모욕적인 용어가 되었다. 나는 '본질주의'가 모멸적인 말이 된 것을 불행하게 생각한다. 사실 그것은 자연물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고자 하는 보통사람의 호기심이기 때문이다. 본질주의는 화학, 생리학, 유전학의 성공을 뒷받침 한 힘이고, 오늘날에도 생물학자들은 인간 게놈 프로젝트(하지만 인간의 게놈은 제각기 다르다!)에 종사하거나 <그레이 해부학>(사람의 몸도 제각기 다르다!)의 책장을 펼칠 때마다 일상적으로 본질주의의 유산을 채택한다.”
“철학과 문학과 예술에서 낭만주의는약 200년 전에 시작되었으며 그 후로 감정과 지성은 각기 다른 영역으로 분류되었다. 감정은 자연으로부터 생겨나고 몸속에 거주한다. 감정은 뜨겁고 비합리적인 충동이자 직관이고, 생물학적 명령을 따른다. 지성은 문명으로부터 생겨나고 마음 속에 거주한다. 지성은 감정을 억제함으로써 자신과 사회의 이익을 추구하는 냉철한 사색가다. 낭만주의자들은 감정은 지혜, 순수함, 진정성, 창조성의 원천이고 따라서 개인이나 사회에 의해 억압되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들은 종종 어두운 면을 인정한다. 그것이 예술적 위대함을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라는 것이다.”
“어떤 동물이든 모든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진 못한다. 우화 속의 당나귀(뷰리단의 당나귀)는 두 짚단의 중간에서 굶어 죽었지만, 배가 고픈 동시에 목이 마르다고 해서 딸기나무와 호수의 중간에서 고민하는 동물은 없다.”
“가족은 파괴적인 조직이라는 것 또한 혈연 유대가 낳은 놀라운 결론이다. 이 결론은 교회와 국가는 언제나 일관되게 가족을 지지해 왔다고 보는 우익의 견해와, 가족이란 여성을 억압하고 계급 연대를 약화시키고 온순한 소비자를 양산하는 부르주아적이고 가부장적인 제도라고 보는 좌익의 견해에 정면으로 대립한다. 저널리스트인 퍼디낸드 마운트는 역사상 모든 정치적, 종교적 운동들이 어떤 이유로 가족을 말살하려고 노력해 왔는지를 기록했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가족은 개인의 충성심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적대적인 연합체일 뿐 아니라, 불공평한 이점- 친족들 간의 타 고난 애정이 동지들 간의 애정보다 크다는 사실 -을 누리는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철학적 문제들은 신성한 느낌을 던져 준다. 그 결과 대부분의 시대와 장소에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해답은 신비주의와 종교다. 의식은 각자의 마음에서 발생하는 신의 불꽃이다. 자아는 영혼, 즉 물리적 세계 위를 떠다니는 비물질의 유령이다. 영혼은 그냥 존재하거나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 신은 각각의 영혼에 도덕적 가치와 선택 능력을 부여했다. 신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지정했고, 모든 영혼의 선악을 생명의 책에 기록하고, 영혼이 육체를 떠난 후에 그에 따라 상이나 벌을 준다. 지식은 신이 예언자나 선지자에게 부여하거나, 신의 정직함과 전지全知함이 우리 모두에게 부여한다.”
“맹켄은 종교적 해답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신학은 알 가치가 없는 것들을 빌려 알 수 없는 것들을 설명하려는 노력이다". 끊임 없는 지적 호기심을 가진 사람에게 종교적 설명들은 알 가치가 없다. 원래의 수수께끼들 위에 똑같이 난해한 수수께끼들을 쌓아 놓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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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진화한다 - 데이비드 슬론 윌슨

독서 2017. 5. 16. 17:00


저자는 에드워드 윌슨과 함께 진화론에서 1960년대에 거의 폐기된 집단 선택 이론을 되살리려고 애쓰는 진화론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런 저자가 종교를 옹호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자도 종교 옹호론이 오락가락 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양자역학으로 신의 존재를 입증했다고 하는 논리만큼 황당하지는 않아서 끝까지 읽어보기는 했다.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 책의 목적은 종교 집단을 유기체로 보는 개념을 중요한 과학적 가설로 다루는 데 있다. 유기체는 자연선택(자연도태)의 산물이다."
이 말만 보면 저자가 종교를 과학적으로 검증하겠구나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이어지는 언급을 보면 저자의 의도가 드러난다.
"사람의 행동에 관한 진화 이론은 종종 상아탑 안팎에서 커다란 회의와 적의를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와 다양한 회의론자들 간에는 보통 정중하면서도 생산적인 대화가 오갔다."
여기서 회의론자들이란 진화론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 즉 종교를 옹호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나는, 순수한 이타주의와 도덕은 환상이므로 인간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이라는 주장을 믿지 않는다. 더불어 나는 석기시대에 돌에 새겨진 문양과 같이 인간의 본성이 유전적 진화를 거쳐 유전자에 새겨진 특성들로 모두 설명 될 수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 나는 문화라고 느슨하게 지칭되는 메커니즘을 통해서 급격하면서도 계속 진행되는 과정을 인간 진화로 간주한다. 여기서 문화란 좋은 뜻이든 나쁜 뜻이든 인간의 본성이 돌에 새겨진 것처럼 고정불변이 아님을 가리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헉슬리(1863)에서 도킨스(1998)에 이르기까지 많은 진화론자가 종교에 퍼부었던 적의에 공감하지 않는다."
즉 진화론적 무신론자들이 마땅찮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 사회가 자기 이익을 추구하기에 여념이 없는 개인들의 집합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그 자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여길 수 있는지 묻는 것이다."

저자는 신의 존재를 입증하겠다고 나서지는 않는다. 그러나 저자는 위의 언급에서 두가지를 동시에 노리고 있다. 문단의 앞 부분은 종교 옹호론자들이 우려하는 부분으로 인간이 이기적인 개인들의 집합체라고 진화론이 이야기한다는 것을 바로 잡겠다는 것이다. 또 뒷 부분은 인간 집단을 유기체로 봄으로써 집단 선택 가설을 되살리겠다는 뜻이다. 진화론의 가장 현대 버전인 진화심리학에서는 진화론이 인간 집단을 이기적 개인의 집합체로 보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해 두었을 뿐만 아니라 문화도 진화한다는 점도 밝혀 두었으므로 저자는 시작부터 이중의 오류를 바탕으로 출발하는 셈이다.

어쨎든 저자의 추론의 흐름은 이렇다. 인간 집단은 유기체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집단 선택이 작용할 것이다. 자연 선택은 적응(도태되지 않고 살아남는)의 문제이며 종교가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은 적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적응은 개체 차원의 적응이 아니라 집단 차원의 적응이다. 종교가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집단을 이롭게 하는 이타적 요인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므로 집단 선택으로 보아야 한다. 이 흐름만 보면 종교도 문화와 마찬가지로 진화한다는 것이어서 제목과 일치한다. 그런데 저자는 종교가 적응했다는 점을 들어 종교의 존재 이유가 있고 존재 이유가 있다면 종교를 비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라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종교를 옹호한다.

문제는 진화론적 무신론자들이 종교에는 아예 존재 의미가 없다거나 효용이 없기 때문에 종교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의 다음과 같은 언급을 보면 저자도 여타 종교 옹호론자들과 마찬가지로 비판론자들의 비판의 요지를 슬쩍 비켜감을 알 수 있다.
"종교는 부분적으로 영성을 존중하는 신념과 관습의 집합이다. 이러한 정의를 지지하는 과학적 이론이 종교에 완전히 적대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어온 여러 가지 가증스러운 일들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종교의 여러 모습들에 대해 솔직히 경탄을 금치 못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논증하는 내내 과학적 관점과 신학적 관점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종교는 모든 존재의 목적과 질서에 대한 신학적 설명으로서가 아니라, 종교 그 자체가 집단들에게 최소한 어느 정도까지는 적응 단위로 기능하게 만드는 진화의 산물로서 논의의 중심 무대로 돌아왔다."
"사회적 집단을 유기체로 보는 개념은 여러 면에서 다층선택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변화시켰다. 첫째로, 낮은 수준의 선택에 비해 높은수준의 선택이 언제나 미약하다는 논리가 사라져 버렸다. …… 둘째로, 높은 수준의 선택은 자기희생적인 이타주의와 연계되어 있으므로 항상 일어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져왔다. 그런데 사회적 통제 메커니즘은 집단의 이익과 개체의 희생 간의 교환을 부분적으로 늦추어 이러한 난점에 대한 인식을 제거해 버렸다. …... 셋째로, 높은 수준의 선택이 개개의 유기체들로 알려진 현재 수준에서 멈춘다고 가정할 수 없다. 사회적 집단 수준의 선택은 수천 종의 생물에서 진화의 지배적 요인이 될 수 없을지 모르나 적어도 중요한 원동력은 되는 듯하다."

이러다가 논의가 좀 더 진전되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함으로써 과학적 관점에서 완전히 벗어나 버린다.
"열린 마음으로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이라면, 종교 집단 내의 자유방임 (자기의지에 관한) 문제가 다른 집단과 연관된 집단 의지의 해명이라는 훨씬 더 큰 문제와 맞물려 있음을 명확하게 깨닫게 된다."
"어쩌다 잘못되어 버린 듯한 복잡한 세상을 사람들이 이해하려는 시도를 종교라 한다면 종교는 소박한 과학적 이론으로 치부될 수도 있을 것이다. ….... 무엇보다도 먼저 언급할 것은 가장 '원시적인' 문화를 비롯하여 모든 문화를 일궈낸 사람들은 과학적 사고의 기반 위에 서 있다는 점이다. …….... 다음으로 현대 문화에서 과학의 해명이 종교의 신념을 대치시켰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다. ……….. 과학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신(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종교 의식에 참여 한다(Stark and Finke, 2000)." "내가 이런 사실들을 언급하는 까닭은 현대 과학에 동원되는 정교한 장치나 특수한 질문 없이도 종교라는 주제에 관한 커다란 과학적 진보가 이룩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초기의 박물학자들이 진화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도 문제가 되지 않았듯이 종교학자들이 진화론의 관점을 반영하지 않았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십계명과 산상수훈(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마태복음 7:12)의 친숙한 훈계들은 너무나 명백해서 더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것처럼 비칠 것이나, 우리는 그런 친숙함에 파묻혀서는 안 된다. 내가 검증해보려는 가셜은 종교가 인간 집단을 적응 단위로 기능하게 한다는 점을 제시한다."
"우리가 다루는 문제의 경우, 종교는 믿는 사람들이 그들 집단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게 가르친다고 예측할 수 있는데, 이런 주장은 우리가 잘 아는 십계명과 산상수훈으로 뒷받침된다." "회의론자들은 흔히 위와 같은 구절로 표명된 흔들리지 않는 종교적 신념(신앙)을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신앙의 모든 내용을 증거의 불빛 아래서 살펴보려고 애쓰는 과학적 방법과 비교하면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종교적 신념 체계가 진화론적 관점에서 연구될 수 없다면, 그 체계들은 다른 적절한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만일 종교적 신념(신앙)이 <표 3.1>에 제시된 행위를 유발사키는 역할을 하고 이러한 행위가 집단을 적응 단위로 기능하도록 한다면 종교적 신념(신앙)은 적응으로 간주된다."
"통조림 따개나 심장의 경우처럼, 세부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관건이다. 칼뱅주의에 관한 나의 분석은 다분히 과학적인 것으로 비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 점은 특히 중요하다. 우리는 어떤 수치나 통계를 비교하지 않고 오로지 설명에만 의존하여 분석하고 있다. 물론 나는 수치와 통계의 비교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지는 않으나 그것들은 중요한 기초적 내용을 치밀하게 가다듬어주는 데 불과하다고 보아도 틀림없을 것이다. 나는 앞에서 전통적인 종교 연구의 성과는 다윈이 자신의 진화이론을 정립하기에 충분했던 박물학(자연사)에서 얻은 정보와 맞먹는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저자는 신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겠다고 나서지도 않고, 자신이 주장하는 집단 선택 이론이 개체 차원의 선택 이론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황당한 종교 옹호론자는 아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자신의 입장이 취약함을 인정하기도 한다.
"기독교와 그 밖의 거의 모든 종교들은 보편적인 인류애라는 고귀한 기준으로 판단해보면 미흡하기 짝이 없다."
"나는 지나친 이상에 사로잡힌 몽상가이지만 이 시점에서도 그런 낙관주의의 근거를 찾고 있다."


저자는 수렵, 채취인 집단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는 만민평등주의, 그리고 순수한 이타주의를 여러 차례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영성이 사라지면 무엇으로 그것을 대체할 것인가?'를 우려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신의 동료 진화론자들이 종교를 비판하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다루어진 연구가 '템플튼 재단'(명분은 종교와 과학의 융합을 촉진함이라고 내걸었지만 어쩔 수 없이 과학이 득세하는 시대에 종교의 생존 논리를 개발해 달라는 암묵적인 기대를 하는 단체)의 지원으로 이루어 진 것으로 보아 저자가 종교 비판의 관점을 몰랐다기 보다는 어떻게 하든 종교 옹호의 논리를 개발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의구심이 들기는 한다.

내 개인적으로는 종교를 옹호하고자 하는 문헌을 더 이상 읽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내심 종교를 옹호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나의 독후감이 마땅찮을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읽어 보고 나의 분석의 허점을 찾아 보면 좋을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강화하든 교정하든 할 것이고 나의 생각도 그에 따라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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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의 유혹 - 데이비드 슬론 윌슨

독서 2017. 5. 15. 17:03


러시아의 생물학자 도브잔스키는 "생물학에서는 진화론적 설명만이 이치에 맞다"라고 했다. 이때 생물학의 범위 안에 인간의 문제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런데 데이비드 슬론 윌슨은 인간의 문제(여기에는 종교를 포괄하는 문화도 포함된다)를 포함한 생물종 전체를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진화론을 물리학에서의 중력의 법칙과 같은 하나의 법칙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윌슨은 자신을 진화생물학자가 아닌 진화론자로 자처한다. 진화론이라는 이론에 입각하면 인간의 문화,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종교 등도 설명 가능하다는 것을 윌슨은 이 책에서 분명하게 보여준다. 먼저 이론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이론이란 세상을 이해하는 사고를 체계화하는 방법일 뿐이다. 그리고 과학적 방법은 그러한 이론에서 비롯된 주장을 거부하거나 옹호하는 수단일 뿐이다."

이론이 가설의 형태로 제시되고 검증되어서 이론으로 정립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은 비유로 표현한다.
"벽돌 한 장은 초라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는 거의 쓸모가 없는 물건이지만 다른 벽돌들과 합쳐지면 내구성이 강하고 매우 유용한 물건이 된다. 사실 또한 과학적 방법을 통해 증거가 쌓이면 이와 같이 된다."
당연히 여기서 비유로 표현한 벽돌은 개별 연구자들이 연구한 결과들을 의미한다.

진화론이 이론으로 정립되는 과정에서 오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윌슨은 그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진화론을 바라보는 균형잡힌 시각을 제공한다.
"이 문제의 핵심은 적응이라는 진화론적 개념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적응은 종국에 모든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근시안적인 이기심의 축소판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사실은 세상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 것도 아닐뿐더러 결코 그렇게 될 수도 없음을, 따라서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단지 위안거리에 불과한 망상임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매우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든 중요한 것은 진화론적 성공으로 가는 길에는 매우 상이한 두 개의 경로가 있다는 점이다. 하나는 이웃을 이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동의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이웃과 서로 협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경로가 진화론에서 선의 여지를 제공한다."


윌슨은 또 유전자의 영향과 환경의 영향에 관한 논쟁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정리한다.
"요컨대 환경은 생물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만 학습과 연관된 방식이 아니라 환경과 관련된 매우 구체적인 특징들(특정 화학물질의 유무)이 유전적으로 결정된 전략들을 작동시키는 스위치가 된다."

윌슨은 미학도 진화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공통점이라고 찾아보기 힘든 이러한 미에 대한 인식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것은 아름답다고도 여겨진다는 점이다."

그런 다음 선과 악이라는 도덕 감정, 사회성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을 제시한다.
"'선'과 연관된 특징들은 집단이 단일체로서 제 기능을 할 수 있게 기여하는 반면에 '악'과 연관된 특징들은 집단을 희생시키고 개별 구성원들의 이익에 기여한다."
"사회적 삶은 집단의 일부로서 원활하게 제 기능을 다하는 '건실한 이웃'과 집단 내부에서 건실한 이웃의 희생으로 자기 이득을 취하는 '사기꾼' 사이의 싸움과 다름없다."


윌슨은 또 인간의 진화가 생물학적 진화에서 점차 벗어나 문화적 진화로 이행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인간의 적응은 주로 유전자로부터 획득되는 행동 양식은 줄어들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획득되는 행동 양식은 늘어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바로 상징적 사고의 남다른 점이다. 파블로프 조건에서 정신적 연상 작용은 그 환경에 실제로 존재하는 연상물과 일치하지만 상징적 사고에서는 환경적 연상물과 분리됨으로써 그 자체의 생명력을 획득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없다. 윌슨은 이 책에 앞서 '종교는 진화한다'라는 책을 출판했다. 나의 독서 목록에도 포함되어 있는 그 책에서 윌슨은 기독교적 세계관은 진화론에 의해 붕괴되었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표현했지만 그래도 종교 일반의 유용성을 빌어 은연 중에 기독교를 옹호한다. 이 책에서도 종교에 대해 다른 부분보다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설명하는데 그 책에서 주장하는 것보다 많이 약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종교를 옹호하고자 하는 자신의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윌슨은 종교의 수평적 측면과 수직적 측면을 이야기한다. 수평적 측면은 종교인들의 상호간에 형성되는 집단 형성 기제를 의미하고, 수직적 측면은 신과 인간의 관계를 의미한다. 그런 다음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이야기하는데 이게 좀 묘하다.
"다시 말해서 종교적 믿음이 사람들의 행동을 유발한다는 점(궁극적 설명에 해당하는 종교의 수평적 측면)에서 보면 종교의 목표가 현실적인 이득이라는 내 주장이 맞을 수 있고, 그들의 종교적 경험이 자신이나 타인의 이득보다는 신과의 관계에 더 치중되어 있다는 점(근접적 설명에 해당하는 종교의 수직적 측면)에서 보면 그들의 주장이 맞을 수 있다."
집단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는 수평적 측면은 진화심리학에서 이미 인정되고 있다. 문제는 종교의 수직적 측면인데 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문제삼는 것이 바로 이 수직적 측면이다. 종교적 근본주의가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이 수직적 측면에 의해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윌슨은 수평적 측면에 대한 것과 수직적 측면에 대한 것을 등가로 비교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언급도 애매하긴 마찬가지다.
"혹시 사실적 현실주의에서 출발하면 수직적 측면만 강해지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바로 나의 딜레마이다. 종교적 믿음이 사실적 측면이 아니라 실용적 측면에서만 현실적일지 모른다는 가능성에 직면한 종교인들처럼 나에게는 바로 이 딜레마가 강하다."
신과의 수직적 관계가 강조되면 근본주의가 나타난다는 것을 윌슨도 인식은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모호한 언급을 통해 자신이 여전히 종교를 옹호하는 입장에 있음을 밝힌다.
"종교를 비판하는 사람과 도용된 종교에 대해 훨씬 더 심각하게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실패를 인정했고, 이는 올바른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실수를 지적하기만 하면 올바른 정신의 소유자들이 광명을 찾게 될 것이고 이로써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종교적 논의를 벗어나면 다시 과학자 본연의 자세로 돌아온다. 과학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를 다음과 같이 한다.
"사실적 지식은 최소한 세 가지 특성 때문에 좋은 것이 될 수도 있고 나쁜 것이 될 수도 있다. 첫 번째 문제점은 결과를 예측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은 처음 발명됐을때 명백하게 좋은 발명품 같았으며 누구도 플라스틱에서 유해한 호르몬이 나올지는 예측하지 못했다. 두 번째 문제점은 비윤리적인 사용이다. 실질적으로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발명품은 선한 목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지만 타인을 해치는 무기로 사용될 수도 있다. 세 번째 문제점은 도덕적 가치의 약화이다. 말라리아의 원인이 도덕성 부족이라는 주장은 비웃어도 무방하지만 앞에서 살펴봤듯이 도덕성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문제들도 있다."
"결과를 예측하기 불가능하다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알고 있는 지식을 과신하지 말고 새로운 기술을 신중하게 사용하고, 예즉 불가능한 결과를 추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식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보다 더 완벽한 지식을 얻는 것이다."
"비윤리적인 사용을 막으려면 다른 사람들에 의해 어떤 부분이 이기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방지하는 윤리적 사회 시스템을 만들면 된다. 사실적 지식은 그 자체로는 윤리적인 사용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윤리적 사회 시스템만 수립되면 사실적 지식을 한층 더 선한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도덕적 가치의 약화를 막으려면 실용적 현실주의와 사실적 현실주의의 관계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마지막 50여 페이지에서는 '누구나 과학자가 될 수 있다'라는 제목 하에 자신이 과학자가 되기 까지의 이력을 자서전 형식으로 서술한다. 자신의 자서전을 뜬금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어색하긴 하지만 저자의 글쏨씨가 그 어색함을 덮고도 남아서 읽기에 불편하지는 않다. 진화론이 자연법칙이라는 윌슨의 주장이 처음에는 지나치게 과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그 주장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 책은 강력 추천 목록에 올려도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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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탄생 - 마이클 루스

독서 2017. 5. 12. 17:52


“1844년, 로버트 체임버스가 ‘창조의 자연사가 남긴 흔적들’을 펴냈을 때에는 전문 과학 공동체에 속한 거의 어느 누구도 그 책의 중심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을 펴냈을 때에는 생물 기원에 관심을 가졌던 과학자들이 재빨리 진화론으로 마음을 돌렸다.”
“1859년, 영국의 이름 높은 자연사학자 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이 쓴 책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 또는 생존경쟁에서 유리한 종족의 보존에 관하여’가 나왔다.”

이 책은 저자가 위와 같이 언급한 것처럼, 그 시기 전후로 진화론이 정립되어 가는 과정에 영향을 미친 철학적, 종교적, 사회적 영향을 추적한 과학사이다.

다윈은 학문적 경력의 시작을 생물학에서 한 것이 아니라 지질학에서였다. 그리고 또 다윈은 진화론에 지대한 공을 세운 것이 아니라 앞선 세대의 진화론적인 생각에 ‘자연선택’을 도입하여 진화론이 체계적인 과학으로 자리잡는데 큰 공을 세움으로써 진화론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게 된 것이다.
“다윈은 자기 이론을 '변형이 따르는 유래descent with modification'라는 말로 쓰는 편이었으며 책의 맨 마지막 낱말이 진화되었다evolved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진화evolution'라는 낱말을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최초의 진화론자는 우리가 용불용설의 제창자로 알고 있는 라마르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가설들 즉, 용불용설과 획득 형질의 유전 가설은 이제는 완전히 폐기되었다.

다윈의 이력을 간략하게 보면 다음과 같다.
"찰스 다윈(1809-1882)은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친가 쪽 할아버지 이래즈머즈 다윈은 유명한 내과 의사였고, 미들랜즈 지방에서 손꼽히는 과학자였으며, 산업가들과 친구이기도 했고 생물 진화를 사색한 유명한(아마 악명 높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산문과 운문을 지은 사람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유명한 도공인 조사이어 웨지우드Josiah Wedgwood로, 깜짝 놀랄 만큼 성공을 거둔 신기술을 잉글랜드 도자기 업계에 소개한 사람이었다. 다윈의 어머니는 다윈이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 아버지 로버트 다윈은 할아버지 세대의 영광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잉글랜드의 농업 중심지 슈롭셔의 슈루즈베리에서 큰 성공을 거둔 의사였다.”
“1809년에 태어난 찰스 다윈은 처음에 에든버러 대학교를 다니다가 나중에 (1828년부터 1831년까지)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다녔고, 1831년부터 1836년까지는 자연사학자로 H.M.S. 비글호를 타고 전 세계를 주유하면서 보냈다. 영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금방- 아마 1837년 이른 봄이었을 것이다- 다윈은 진화론자가 되었고 1838년에는 생존경쟁에 의해 일어나는 자연선택 메커니즘을 생각해 냈다. 1842년에는 그 이론을 35쪽짜리 초안으로 작성했고, 1844 년에는 분량을 늘려 230쪽짜리 시론을 썼다”
“1844년, 로버트 체임버스가 ‘창조의 자연사가 남긴 흔적들’을 펴냈을 때에는 전문 과학 공동체에 속한 거의 어느 누구도 그 책의 중심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을 펴냈을 때에는 생물 기원에 관심을 가졌던 과학자들이 재빨리 진화론으로 마음을 돌렸다.”
“1859년, 영국의 이름 높은 자연사학자 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이 쓴 책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 또는 생존경쟁에서 유리한 종족의 보존에 관하여’가 나왔다.”


다윈주의 진화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가설은 자연선택인데 <종의 기원>에서 다윈이 직접 서술한 것은 다음과 같다.
“이렇게 유리한 변이는 보존하고 해로운 변이는 버리는 것을 일러 나는 자연선택이라 부른다(종의 기원, 1859. pp.80-81).”

다윈은 자연선택 개념을 정립하였으나 그 시대의 종교적 압력을 우려하여 발표를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독자적으로 자연선택 개념을 채택한 글을 적어 다윈에게 보인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였다. 월리스의 <시론>을 받아 본 다윈은 그 내용을 공동 명의로 린네학회에 발표하고 난 후, 서둘러서 자기 생각의 '개요'를 썼다.
“이 개요, 곧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 또는 생존경쟁에서 유리한 종족의 보존에 관하여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of Life)>가 1859년 11월에 출간되었다.”

진화론이 점점 세력을 넓혀가고 있던 시절에 성공회 주교인 윌버포스와 ‘다윈의 불독’이라 불린 헉슬리 사이에 벌어진 재미있는 논쟁이 있다. 1860년 옥스퍼드 대학에서 열린 <종의 기원> 찬반 토론에서 “그 원숭이는 할아버지 쪽인가, 할머니 쪽 조상인가”라는 옥스퍼드 주교 새뮤얼 윌버포스의 말에 헉슬리는 다음과 같이 응수했다고 이야기한다.
"불쌍한 유인원을 할아버지로 두겠느냐, 아니면 천부적으로 높은 자질을 타고 났으며 대단한 수완과 영향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중대한 과학 논의에서 고작 이 재능과 영향력을 비웃음이나 던질 요량으로 쓰는 자를 할아버지로 둘 것이냐는 물음을 받는다면, 저는 주저없이 유인원 쪽이 더 낫겠다고 말하겠습니다."

진화론에 관한 논란에서 스펜스가 주창한 사회진화론을 뺄 수가 없다.
“진화, 나아가 선택의 요소들까지 각별히 저잣거리 사람들 마음에 들게 했던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진화론적 시각을 가지면 사회의 본성과 발달에 대한 다양하고 서로 자주 충돌하기도 하는 논제들을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이 논제들은 '사회다윈주의social Darwinism'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을 수 있다.(Himmelfarb 1968, p535) 그래서 진화론을 반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왜냐하면 인간 사회가 발달한다는 뜻으로 읽어 내고 싶었던 일반적인 진보적 경향을 뒷받침해 주는 면을 진화에서 찾아냈기 때문이다. 또 같은 종에 속하는 것들끼리 벌이는 생존경쟁에 기초한 자연선택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왜냐하면 극단적인 자유방임 경제를 정당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조금도 제재를 받지 않고 치열하게 벌이는 장삿일이 생물학적으로 허용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다른 종들끼리 벌이는 생존 경쟁에 기초한 자연선택을 좋아한 사람도 있었다. 왜냐하면 다른 민족들을 군사력을 써서 제국주의적으로 밀어내는 것 같은 국가 차원의 통제를 옹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마다 생물학적 학설을 가진 진화론자들, 생물학으로 뒷받침된다고들 생각한 다양한 학설들, 이 둘의 실제 관계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일부 생물학자들을 비롯하여 사람들이 저마다 좋아하는 갖가지 사회 학설들을 뒷받침하려고 생물학을 쓰려 했다는 것이다.”
“다윈은 틈날 때마다 사회다윈주의적인 시각을 똑똑히 부정했다("힘이 곧 정의"임을 다윈이 증명했다면서, 따라서 나폴레옹은 정의로웠고, 사기치는 장사꾼도 모두 정의롭다는 단언을 듣고 다윈은 분통을 터뜨렸다.(F. Darwin 1887. 2:262) ….. 그리고 삶이 끝나갈 즈음 다윈은 자연선택이 문명의 진보를 거든다고 적었다. ….. 따라서 생물다윈주의와 사회다윈주의 사이는 결코 뚜렷하게 갈라지지 않는다. 스펜서가 가진 시각, 그리고 그 시각을 써서 뒷받침한 모든 사회적 학설들 사이도 마찬가지로 명확히 가를 수 없다.”


또, 1970년대에 에드워드 윌슨이 되살리려고 했던 집단선택 가설에 대해서도 다윈은 분명하게 개체 선택을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사람 아닌 것들의 세계를 말할 때에 다윈이 집단선택보다는 개체 선택을 단호하게 선호했음을 보았다. ……. 그럼에도 사람의 도덕 문제에 있어서 다윈은 일종의 집단 선택이 필요하리라 생각할 때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생물학에서의 다윈의 위치를 물리학에서의 뉴턴의 위치와 동급으로 보고 있다.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 그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16세기 폴란드 성직자였던 이 사람이 태양이 중심에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한 사람은 아니었다-그 영예는 기원전 3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사모스의 아리스타르코스에게 돌아간다. 코페르니쿠스가 세세한 것까지 다 맞았던 것은 아니다. 그 일은 후계자인 티코 브라헤(하늘 지도를 정확하게 그렸다)와 요하네스 케플러(행성 공전 궤도가 타원임을 알아냈다), 그리고 갈릴레오 갈릴레이 (망원경을 사용했다)의 몫이었다. 마지막으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쓴 코페르니쿠스는 자기 이론의 바탕에 깔린 인과적 메커니즘을 내놓지 않았다. 그 일은 아이작 뉴턴과 중력법칙의 몫이었다. 이 전체 과정은 족히 100년은 넘게 걸렸다(Kuhn 1957). 그래도 우리가 코페르니쿠스의 공을 존중하는 것은 정당하다. 코페르니쿠스는 참으로 위대한 과학자였으며, 그 연구는 그가 했던 연구를 까마득히 넘어선 의미를 담고 있었다. 다윈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연선택을 발견한 덕분에, 코페르니쿠스에게 뉴턴 같은 사람이 바로 다윈이었다.”

여기서 다 요약할 수는 없었지만 이 책에는 <종의 기원>이 발표되던 시점 전후의 약 50여년 동안 진행되었던 철학적, 종교적 논의들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는 만큼 진화과학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 볼 필요가 충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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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직관에 묻다 - 게르트 기가렌처

독서 2017. 5. 10. 17:00


오랫동안 사람의 생각을 이성과 감정으로 나누는 경향이 있었고, 감정은 좀 더 동물적인 것으로 저급한 것으로 인식했으며 이성이야 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믿어 왔다. 그러나 현대의 심리학과 뇌 생리학에서 밝혀낸 바에 의하면 관념은 여전히 이성의 영역이지만 사람의 삶을 구성하는 행동은 우리가 의식이라고 하는 것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의식에 앞서서 행동하게 만드는, 그렇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감정이라고 알아 온 것과는 좀 다른 뇌의 작용에 의해 지배를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의식에 앞서서 인간으로 하여금 행동하게 만드는 것을 직관이라고 한다.

이 책은 직관의 중요성을 재발견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역시 직관에 관한 내용을 담은 말콤 글래드웰의 '블링크'라는 책을 쓰도록 영감을 준 책으로도 알려져 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논리적 사고와, 그와 관련된 시스템은 너무나 오랫동안 서구 정신철학의 틀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논리는 이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유용한 도구 중 하나일 뿐이다." "직관은 놀랍도록 적은 정보에 의존한다. 자신도 모르게 다다익선을 신조로 삼아버린 우리의 자아 속에선 믿음이 가지 않는 주장이다. 하지만 실험들은 적은 시간과 정보가 오히려 양질의 결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결과를 토해낸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하게 인식해야 할 것은 '이성이 더 이상 쓸모없게 되었다'가 아니고 '오직 이성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사고에서 주된 역할을 담당한다'는 생각을 수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직관은 대충 때려잡는 사고가 아니라 훈련을 통해 누적된 뇌의 작동 메카니즘에 의해 발현된다. 따라서 직관이 합리적으로 작동하도록 훈련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생각과 관련된 것인 만큼 사람의 사고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도덕 감정이고 이에 대한 설명도 다수 있다.
"수많은 심리학자들은 감정과 이성을 대비시킨다. 하지만 나는 직관은 그 자체로 이성을 토대로 한 합리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직관과 도덕적 사고의 다른 점은 도덕적 직관을 뒷받침하는 이성이 대체로 무의식적이라는 사실이다.따라서 적절한 구분은 감정과 이성이 아닌, 무의식적 이성을 토대로 한 감정과 진지한 추론 사이에서 이뤄져야 한다."

도덕적 직관의 3원칙을 제시한다.
첫째 원칙은 사람은 종종 자신이 도덕적 행위를 하는 이유를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 있어서 진지한 추론은 도덕적 결정의 원인이라기 보다는 그것의 합리화를 위한것이다.
둘째 원칙은 동일한 어림셈법이 도덕적 행동과 도덕적으로 꾸며지지 않은 행위 모두에 잠재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원칙은 도덕적 행위를 떠받치는 메커니즘과 그 메커니즘을 조율하는 환경을 동시에 알 때 도덕적 재앙을 방지하거나 축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도덕은 공동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고 따라서 정치와도 관련이 있다. 대중들의 정치적 판단에 관한 저자의 언급은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판에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준다.
"필립 컨버스(Philip Converse)는 세미나 연구서 <대중의 신념 시스템의 본질(The Nature of Belief Systems in Mass Publics)>을 통해 미국 시민은 대체로 정치적 선택에 관해 잘못된 정보를 듣고 있으며 , 이슈에 따라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쏠리기 쉽다고 지적했다. 이는 대중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얘기다."
"이처럼 유권자는 정당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속적인 선호도를 형성한다."


결론적으로 직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배짱있는 직관은 완벽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어려석은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주장한 것처럼 직관은 두뇌의 진화적 능력을 이용하면서, 우리를 빠르면서도 가공할 정도로 정확하게 행동하도록 인도하는 어림셈법을 토대로 한다. 직관의 질은 특정 상황에서 의존해야 할규칙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도 아는 '무의식적 지능'에 그 뿌리를 둔다. 우리는 직관이 가장 정교한 추론과 계산 전략들의 허를 찌를 수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고,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며, 그것으로 어떻게 혼돈에 빠질 수 있는지 배웠다. 하지만 직관에 이르는 다른 방법은 없다. 우리는 직관이 없으면 이룰 수 있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두 문장은 번역이 이상한 것인지 저자의 서술이 이상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두 문장의 논리적 정합성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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