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a beautiful world!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를 기대하면서

독서

인간 불평등 기원론 - 장 자크 루소

thinknew 2017. 6. 17. 16:39

책 읽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 "고전을 읽어라"라는 주문은 빠지지 않고 나온다. 그런데 그 고전이라는 것이 인간의 정신은 물질과는 별개의 어떤 것이란 대전제 하에, 사변적 추론으로 '답이 없는 질문을 하는' 철학 관련 책들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과학적 심리학에서 인간의 정신이란 뇌의 작용이라는 것을 밝혀낸 지금, 대전제가 오류인데다 과학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사변적 추론에 머물고 있는 철학에 관한 책들은 이제 고전 목록에서 빠져야 할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독서에 관한 조언가들이 고전이라고 꼭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더 나아가서 책을 반드시 다 읽어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조언한다. 피에르 바야르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법'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교양이 있다는 것은 어떤 책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신속히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며,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책을 다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그런 능력이 뛰어날수록 문제의 책을 읽을 필요성이 덜해진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철학이 전혀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인간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 지적 동물이다. 그러니 옛날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없을 수가 없다. 그런 차원에서 오래 전에 사두고 읽지 않고 있던 책을 하나 읽어 보았다.



루소는 고전 목록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철학자이다. 그러나 사변적 추론에 머물러 있었던 철학자임도 분명하다. 루소가 활동했던 계몽시대는 현대 과학이 본격적으로 정립되던 시대이긴 하나 인간의 정신에 대해서는 아직 과학적 접근을 허용하지 않던 시대였다. 철학도 결국 인간에 대한 관찰에서 출발한다. 과학적 도구가 전혀 없으니 불가피하게 사변적 추론에 머물 수 밖에 없었겠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인간을 이미 완성된 모습으로 보는 방법 만을 가르쳐주는 학술 서적을 제쳐두고 인간 영혼의 최초이자 가장 단 순한 작용들에 관해 곰곰이 생각해 보면, 거기에 이성보다 앞 선 두 개의 원리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우리의 안락과 자기 보존에 대해 스스로 큰 관심을 갖는다는 원리이며, 다른 하나는 모든 감성적 존재, 주로 우리 동포가 죽거나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면 자연스럽게 혐오감을 느낀다는 원리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철학자를 인간으로 만들기 전에 인간을 철학자로 만들 필요는 전혀 없다. 타인에 대한 의무를 지혜의 가르침으로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인간은 동정심이라는 내적 충동을 억제하지 않는 한, 타인이나 어떤 감성적인 존재에게 결코 해를 입히지 못할 것이다. 자기 보존이 걸려 있어 스스로에게 우선권을 주어야 하는 정당한 경우는 제외하고 말이다."
"사실상 내가 동포에게 어딴 종류의 해도 입혀서는 안 된다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동포가 이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감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인 듯하다. 이 같은 특질은 동물과 인간에게 공통된 것이므로, 적어도 동물은 인간에 의해 불필요하게 학대받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모든 동물은 감각을 가지고 있으므로 관념 또한 가지고 있다. 어느 정도까지는 그 관념들을 조합하기도 한다. 이 점에서 인간과 동물은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한편, 저런 통찰력이 객관적 검증을 통과하지 않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지극히 주관적인 결론으로 흐른다.
"그리고 더욱 견디기 어려운 것은, 인류의 모든 진보가 인간을 끊임없이 원시 상태에서 멀어지게 하기 때문게 우리가 새 로운 지식을 축적할수록 모든 지식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획득하는 수단이 상실된다는 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을 연구했기 때문에 인간을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는 말이다."
"예컨대 물질, 정신, 실체, 양식, 형태, 운동이라는 단어들은 우리의 철학자들도 오래전부터 사용하고는 있었지만 이해하기 위해 매우 고심해왔던 것들이다. 그리고 이런 말들에 결부된 관념은 순전히 형이상학적인 것이어서 그 어떤 모델도 자연 속에서 발견할 수 없다."
"미개인들은 자연이 심어준 성욕을 따랐을 뿐이며, 자기가 자연에서 얻지 못한 취향은 따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미개인들에게는 여성이라면 누구라도 좋은 것이다."

이 책이,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이기도 하면서 또 벗어나길 원하는 '불평등'이라는 것을 다루고 있어서 독자들의 관심을 끌긴 하지만, 결국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것을 해제를 쓴 이의 다음과 같은 언급을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루소에게서 읽어온 외침으로서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 책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루소는 그에 대해 명시적으로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이 책과 더불어 <에밀>, <사회 계약론> 등에서 루소가 전개하는 글들의 행간을 잘 읽어보면 어떤 답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1789년 무렵 프랑스인들이 루소의 사상에서 혁명의 메시지를 읽었듯이 말이다. 21 세기라는 이 시점에서 루소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읽어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이 책은 부피도 적고 해서 '읽어야 할 고전'이라는 의무감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라면 사상사의 한 부분을 안다는 차원에서 한번쯤 읽어 볼만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독서 추천은 '중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