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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합리적 보수를 찾습니다 - 로저 스크러튼

thinknew 2017. 4. 3. 17:33


대부분의 철학적 개념이 그러하듯, 보수주의라는 것도 단순하게 '현재를 지키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지만 무엇을 지킬 것인가로 들어가면 대단히 복잡해진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해가는데 무엇인가를 지키고자 함은 필연적으로 변화에 대한 저항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주의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은 것은 사람의 심리 자체에 변화에 대한 저항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변화라는 게 꼭 바람직한 방향으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보니 상대적으로 현재 상태를 지키는 것에 더 끌릴 수도 있다. 그러나 보수주의는 문제가 많다. 변화가 항상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주진 않다 하더라도 의도적이든 아니든 사회는 변해가기 마련인데 그 변화에 저항하려다 보면 우스운 형태가 되기 쉽다. 대한민국에서도 그런 모습이 심심치않게 보인다. 왕조 시대의 풍습을 미풍양속이라는 이름으로 지켜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또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려는 세력들이 진보들인데 그들과 대립하기 위해 보수의 탈을 둘러쓰는 경우도 있다. 지금 현재 대한민국에서 자칭, 타칭으로 보수라 칭하는 집단들의 행태를 보면, 그 지키고자 하는 것이 모호한 정도를 넘어서 가치전도된 경우가 허다하다. 아무튼 이런 모호한 보수주의를 주장하는 지식인들도 있다. 다음 책에서다.



저자는 영국 옥스포드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지식인이다. 그리고 제목에서 보듯 자신을 보수주의자로 인식하고 더 나아가 합리적 보수를 추구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보수주의란 다음과 같다.
"어떤 종교를 믿고 어떤 개인적 신념을 갖고 있든 간에 우리는 탁월하고 진귀한 유산을 함께 물려받은 사람들이다. 우리의 정치생활에는 하나의 최우선인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탁월하고 진귀한 유산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고이 간수하는 것이다."
"보수주의는 애착의 철학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에 연연하고 그것의 쇠락을 막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영원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한편 우리는 그것이 겪기 마련인 변화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여기서 저자가 주장하는 '탁월하고 진귀한 유산'은 기독교와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저자가 유럽중심주의자라는 것이다. 물론 유럽중심주의자라는 것이 문제일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진귀한 유산을 지키자는 보수주의로 연결시키는 논의는 모호하기 짝이 없다. 다음 구절을 보자.
"서구 문명의 뿌리는 기독교에 있다. 그리고 세계를 뒤흔든 거대한 변화를 내가 수용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본 덕분이다. 수용은 희생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우리 문화의 여러 인상적인 작품에 담긴 메시지다. 그리고 기독교 전통에서 희생의 1차적인 행위는 고백과 용서다. 고백하는 사람은 자존심을 버린다. 용서하는 사람은 분노를 버림으로써 자기에게 중요했던 무언가를 단념한다. 고백과 용서는 우리 문명이 존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용서는 특정 조건에서만 가능하다. 용서의 문화는 그런 조건을 개인의 영혼 속에 심어주는 문화다. 당신은 당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잘못을 인정할 때만 그들을 용서할 수 있다. 잘못의 인정은 '예, 맞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완수되지 않는다. 인정에는 참회와 속죄가 필요하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자신을 낮주는 행위를 통해 피해자 앞에 나서고, 용서가 가능한 도덕적 평등 관계를 재확립한다."
"중요한 사회적 전통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었을 수도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는 임의적 관습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지식이다."

듣기에만 그럴듯할 뿐 논리적 비약으로 일관하고 있다. 게다가 무엇을 지키자는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이런 것이 전통적인 철학에서 흔히 등장하는 사변적인 논의이다.

저자가 보수주의가 퇴색했다고 생각하는 근거로 드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자.
"국가 이익은 기득권 세력, 다시 말해 노동조합, 특권계급, 산업계의 거물들에게 자리를 빼앗겼다."
"그리고 평등의 이념으로 사회를 통제하려는 그런 욕구가 바로 내가 동유럽에서 마주친 인간의 자유에 대한 모욕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물론 사회라는 것은 존재하지만 사회는 개인들로 구성된다. 그리고 개인들은 자유로워야 한다. 개인들의 자유란 그들을 재설계하려는 자들의 오만한 요구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보면 저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보수의 범주에 드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배척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가주의는 종교가 비워놓은 공간을 차지해 독실한 신봉자에게 국민 개념을 흠모하도록 독려하고 국민 개념이 제공하지 못하는 것(삶의 궁극적 목적, 즉 우리의 모든 비애를 위로하고 만회해 줄 수 있는 방법)을 국민 개념의 범위 안에서 모색하도록 부추긴다."
"사회주의자들은 깊은 의미에서 볼 때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부여받는 혜택의 측면에서 볼 때 사람들이 대우받는 방식을 통해 평등이 드러나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평등한 대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저자도 보수도 긍정적인 결과들을 도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는 한다.
"신뢰할 만한 보수주의는 자신의 힘으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확대하는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방법을 제시하는 다른 집단에 대한 비판으로 일관한다.
"공산주의 체제의 시민은 합리적 이기심에 따라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의도를 실현하고자 하는 완벽한 경제적 인간이어야 했다."
"그들은 빈자들이 부자들의 재산 덕분에 혜택을 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 그들이 볼 때 불의는 불평등에 의해 최종적으로 입증된다. 따라서 부유층의 존재만으로 부유층의 자산을 패자들에게 재분배하려는 계획이 정당화된다."

그러면서도 자본주의를 옹호하는데 그 논리도 사변적이다.
"자본주의에 담긴 진실(자유교환 법칙 하의 사유재산이 낯선 사람들의 사회에서 경제적 협력을 관리하는 유일한 수단이다)은, 자유경제를 겨냥하는 대신에 패자들의 분노와 불신을 야기하는 자유경제 내부의 왜곡현상을 표적으로 삼아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응답하지 않는다."

이 책은 3분의 1 밖에 읽지 않았다. 이어지는 논의들이 모두 위에 요약해 둔 것처럼 사변적이거나 논리적 비약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이 '보수'여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제목 만보고 찾아 읽어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책의 독서 추천는 '불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