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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타적 유전자 - 매튜 리들리

thinknew 2016. 11. 16. 20:10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을 출판했을 때 사회의 반향은 대단했다고 한다. 유전자는 오직 자신의 복제 만을 염두에 둔다는 점에서 이기적이라는 도킨스의 언급이 '인간은 본성적으로 이기적이다'라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타고난 이기주의자가 아니다'라는 반박이 다양한 경로로 부터 나왔다. 인간의 도덕 관념에 대해 오랫동안 숙고해 온 인문, 철학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과학계에서 조차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저항이 거셌다. 과학계에서의 비판은 인간 뿐만 아니라 사회성 곤충들에서도 이타성이 드러난다는 것에 있다. 말하자면 이기적 유전자가 어떻게 이타성이 나타나게 할 수 있는가이다. 물론 지금은 진화심리학에서 이타성의 문제를 대부분 정리해 둔 상태이지만, 도킨스의 책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이기적 유전자'론에 이의를 제기한 책이 바로 '이타적 유전자'이다. 


제목을 저렇게 붙였다고 해서 저자가 '이기적 유전자'론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 저자의 생각이 잘 드러난다.
"우리는 인간관계에 시달리기를 싫어하는 염세주의자 같은 측면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없이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
"유전자는 이기적이지만 때로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개체의 이타성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경우에도 이기적 개체와 집단 이익 사이의 갈등이 상존한다."


즉, 유전자 차원에서는 이기적일지라도 개체 차원에서는 이타성이 나타난다는 점을 저자는 분명하게 보여준다.
"따라서 벌의 사회는 세익스피어가 생각한 것처럼 위로부터 움직여지는 전제군주 국가가 아니다. 그것은 다수의 개개인이 가진 욕망이 각자의 이기주의를 억제하는 민주주의 사회이다."
"인간 사회가 부분들의 총합보다 위대한 것은 노동 분화 덕분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식한 사람은 애덤 스미스이다."
"생명체의 전체 시스템은, 세포들이 각자의 이기적인 야망을 충족시키려면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지 않을 수 없도록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저자도 개체 존재들은 대부분의 경우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관계가 지속되는 사회에서는 맞대응 전략이 더 좋다는 것을 보인다. 여기서 맞대응 전략이란 로버트 악셀로드가 시행한 전략 콘테스트에서 아나톨 라포포트라는 수학자가 제시한 아주 단순한 전략, 즉 tit-for-tat 전략을 말한다. 참고로 악셀로드의 책 '협력의 진화'에 대한 요약이 이 블로그에 있다. 아무튼 그 맞대응 전략이 좋은 이유를 저자 나름대로 정리했다.
"맞대응이 승리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호성과 보복성, 관용성과 투명성의 복합체라는 데에 있다. 우호성은 불필요한 분쟁에 휘말리는 것을 막는다. 보복성은 한번 배신을 시도한 상대편에게 다시는 배신을 꿈꾸지 못하게 한다. 관용성은 서로 적대 경험을 가진 상대와 다시 상호부조 관계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투명성은 위의 사실들을 다른 참가자들에게 명료하게 전달함으로써 다른 참가자들과의 장기적인 협력을 가능하게 한다."

저자는 이타성이 근원을 추론에 의존하지 않고, 심리학에서 밝혀낸 사실들을 바탕으로 설명한다.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 <정당한 분노>의 저자)프랭크에 따르면 감정이라는 것은 물질적 사리 추구라는 틀로는 설명될 수 없는 지극히 비합리적인 힘이다."
"감정이란 인간이라는 사회적 동물이 서로 호혜성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기 위한 정교한 도구이다."
"아마티아 센은 한치 앞을 보지 못하는 사리 추구형 인간을 '합리적 바보'라고 묘사했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인간의 본성 속에 내재된 이기심도 인정해야 하지만 이타성의 존재를 부인해서도 안된다고 주장한다.
"나의 주장은 교회가 존재하기 전에 도덕이 있었고 국가가 존재하기 전에 무역이, 화폐가 존재하기 전에 거래가, 홉스 이전에 사회 계약이, 인권 이전에 복지가, 바빌론 시대 이전에 문화가, 그리스 문명 이전에 사회가, 애덤 스미스 이전에 사리 추구가, 자본주의 이전에 탐욕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과학은 우리에게 유토피아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퍼트넘의 이탈리아 분석이 가르쳐 주는 것처럼 호혜성을 자리에서 밀어내고 권위가 들어서면 사라지는 것은 공동체 의식이다."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제도는 이 같은 본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그런 제도이다. 다시 말해 평등한 개인들 사이에 교환을 조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들 간에 우정을 쌓기 위한 최선의 처방이 교역이듯이, 해방되어 권력을 회복한 개인들 간에 협동을 조장하는 최선의 처방은 거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등한 개인 간의 사회적, 물질적 거래를 조장해야 한다. 신뢰는 거래를 통해 획득되고, 또한 신뢰는 미덕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이 어떻게 개체의 이기적 욕망과 집단 내에서 드러나는 이타성을 조화시키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이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상당 부분 규명해 둔 지금으로서는 이 책은 좀 철 지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독서 추천은 '일독을 권함'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