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이룩한 문명을 보면 경탄스럽기 그지 없다. 그래서 인간이 신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근거없는 주장이 현대에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먹혀들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위대해 보이는 인간들이 하는 짓을 보면 또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이러한 인간의 양면성을 이해하기 위해 철학자들이 수천년 간 고심했지만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저 추론만 할 뿐. 여기에 설명의 실마리를 제공한 것이 심리학이었다. 심리학도 초창기에는 정신과 육체는 별개라는 전제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혼돈 속에 있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인간의 의식이라는 것이 육체와 별개의 것이 아니라 뇌의 작용이라는 것을 점점 알아감에 따라 뇌의 작용을 이해함으로써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가 실질적으로 깊어지게 되었다.
인간은 지금과 같은 문명을 이룰 수 있었을 만큼 지능이 뛰어남과 더불어 황당한 일을 벌일 수도 있을 만큼 뇌의 작동 메카니즘이 문제가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 문제는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그 부분에 촛점을 맞춘 연구들이 충분히 진행되어 이제는 깊이있는 차원까지 설명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마인드 버그'는 바로 그런 책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오작동을 할 때 그 원인을 버그라고 한다. 인간의 뇌도 마치 컴퓨터 프로그램이 오작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현상을 보인다고 해서 책의 제목을 '마인드 버그'라고 붙였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오작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뇌가 구축된 방식 그 자체에 문제를 같이 안고 있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오작동처럼 보이는 뇌의 작용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 보자.
"25년 전,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은 인간 행동이 주로 의식적인 사고와 감정에 따라 나타난다고 믿었다. 오늘날에는 인간의 판단과 행동 대부분이 의식적 사고가 거의 일어나지 않을 때 이루어진다는 데 많은 심리학자들이 기꺼이 동의할 것이다."
"이 경험만큼이나 당혹스러운 것은 그것이 정신의 신호 전달 속성을 여실히 보여 준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정신 작용의 거의 대부분은 자동으로, 무의식적으로, 무심결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 마인드 버그를 '소급적 간섭retroactive irrterference'라고 부른다. 쉽게 말하면 경험 후 정보가 기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로프터스는 이것을 '오정보 효과misinformation effect'라는 좀 더 기억할 만한 이름으로 불렀다. 요점은 언어에 조금만 변화를 줘도 기억되는 내용이 크게 달라질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목격자가 잘못된 정보에 의존해 잘못된 증언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상호작용이라는 기어가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일상적인 사회생활에서는 윤활유로서 어느 정도의 거짓이 반복적으로 요구되고, 대부분의 사람을은 이를 따른다. 안타깝게도 사회생활에는 아주 효과적인 것이 과학의 발전에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론을 수립하고 연구를 수행할 목적으로 정신을 특징짓는 두가지 체계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그것은 바로 '반성적reflective 체계'와 '자동적automatic 체계'이다."
"이러한 정신 체계의 균열(의식적으로는 게이를 차별하지 않는다면서도 무의식적으로는 차별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심리학자들이 사용하는 단어가 '분열dissociation'이다. 이 단어는 심리학에서 가장 강력한 개념들 순위에 들 정도로 수 많은 인간의 모순된 태도와 행동을 아우른다. '분열'의 정의는 이렇다. '분열이란 하나의 동일한 정신에서 상호 일관되지 않은 여러 생각이 서로 격리된 상태로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조화와 관련해 잘 알려진 한 심리학 이론은 그 영향력이 너무 커서 주류 언어이자 문화로 편입됐을 정도다. 명석한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가 1980년대 중반에 세운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는 이론은, 믿음과 행동의 충돌 또는 동시에 공존하는 두 믿음의 충돌을 인식하는 것은 정신적 조화, 즉 화음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의 본성에 위배됨을 말해 준다."
"우리가 신체 기능의 작용을 모두 알고 있어야 한다는 기대는 없지만, 정신 속에 있는 내용물에는 접근할 수 있는 우월한 권한이 있다고 또는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기억에 관한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컬럼비아 대학교의 신경과학자 에릭 캔들Eric Kandel은 한때 정신 작용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지 말해야 하는 압박에 시달렸다. 그가 제시한 수치는 80-90 퍼센트였다. 예일대학교의 심리학자 존 바그John Bargh는 더 나아가 그 수치가 99.44퍼센트에 달한다고 주저없이 밝히고 나섰다. 실제로 수치는 중요하지 않다. 사실 수치를 계산한다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요점은 의식적으로 정신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상당히 낮다는 데 전문가들이 동의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자기 통찰에 대한 겸손은 제대로 된 반응이다."
저자가 정신의 오류를 이렇게 길게 설명하는 것이 인간의 문제에 답이 없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줄곧 무의식적 정신이 지닌 강한 힘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를 전개 했지만, 그 힘을 극복할 수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변화를 모색하는데, 인간에게만 있는 고유한 특경인 뇌의 반성적이고 의식적인 측면은 필요한 일 이상의 것을 해낼 수 있다. 그 힘은 스스로를 관찰하고 그 관찰을 바탕으로 의식적인 행동을 이끌어 나가는 능력에서 나온다."
이어서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편견에 대한 설명을 계속한다.
"고든 올포드가 1954년에 펴낸 <편견의 본질The Nature of Prejudice>는 오늘날 고정관념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인정받고 있다. 올포드는 여기서 "인간의 정신은 범주의 도움을 받아 생각해야 한다. …… 일단 형성된 범주는 일반적인 예단의 근거가 된다. 우리는 이 과정을 결코 피할 수 없다. 이 과정이 바탕이 되어야 질서 있는 삶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사실 사회적 범주에 따라 고정관념을 형성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특징이라고 인정해도 될 만큼 널리 행해지고 있다. …… 과학자들은 적응성 또는 유용성이라는 개념의 관점에서 보편적 특징들을 이해한다. 보편적 특징이란 곧 적응할 수 있는 특징이나 곧 적응할 수 있는 다른 특징의 원치 않은 부산물, 또는 이전에는 적응할 수 있었지만 더 이상 적응할 수 없는 특징의 귀찮은 흔적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정관념은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작동한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고정관념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작동하며, 이를 억제하는 데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애초에 고정관념적 사고가 포함되어 있는 일반적 정신 과정의 가치 때문에 고정관념을 억제하기란 쉽지 않다. 고정관념은 대상을 적절하게 지각하고 분류하게 해 주고, 뭔가를 배우고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하며, 사물을 발견하고 인식하게 해 준다. 그러나 바로 그 정신 능력이 우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다."
"물론 우리는 긍정적 특성과 부정적 특성을 지닌 사회적 동물로 진화해 왔다. 갈등과 폭력만큼이나 강력한 협력과 이타심의 정신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같은 인간을 향해 자행된 장구한 핏빛 폭력의 역사가 보여 주듯이, 우리는 집단끼리 전쟁을 벌이기 위해 어떤 비용이라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겨우 성혼이나 계급을 이유로 종교, 인종, 지리 등 임의적인 경계로 나누어진 집단끼리 전쟁을 벌인다. 우리는 집단 간 폭력을 음모하고, 획책하고, 계획하는데, 이 모두가 고도로 의식적이고 반성적인 적대 행위를 나타낸다."
저자는 내집단과 외집단을 구분하는 인간의 성향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 다음 결론에 해당할 수 있는 질문과 답을 한다.
"분석적이고 반성적인 두뇌가 속임수를 사용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자동적이고 반사적인 사고를 막을 수 있을까?"
"애초에 우리는 개선될 필요가 있는 연상 작용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에 걸쳐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실험 결과들은 숨은 편향에 따른 마인드 버그가 비교적 간단한 조정을 통해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물론 이 답처럼 간단하지는 않다는 점도 저자는 책에서 밝혀놓고 있다.
이 책은 인간 사고의 오류와 인간이 흔히 가지는 편견에 대해 쉬운 언어로 잘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 강력 추천 목록에 올리지 않을 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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