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수사 드라마를 보면 인질을 잡고 있는 범인들과 협상을 하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그럴 때 협상은 고도의 심리 게임이다. 이런 협상을 전담하는 팀이 미국 FBI에 있다고 한다. 그 협상팀에서 다수의 실전을 경험한 협상 전문가가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협상에 관한 강의를 하면서 협상에 관한 책도 출판했다. 다음에 나오는 책이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협상 전문가이다. 그런 저자가 협상에 관한 책을 펴낸 이유는 범죄와 테러에 관련된 협상 이외에도 우리 삶에는 협상이라고 해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협상은 인생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행동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분명하고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며 각자가 상대에게 무엇인가를 원하는 거의 모든 상호작용을 포함한다. 살면서 어떤 순간에는 직업, 경제 사정, 평판, 결혼 생활, 나아가 자녀의 운명에 이르기까지 만사가 협상력에 좌우된다."
"이 책에서 말하는 협상은 결과가 존재하는 의사소통과 다름없다. 삶에서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건 타인으로부터, 그리고 타인과 함께 원하는 것을 얻는 일이다. 모든 관계에서 쌍방 간의 갈등은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손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원하는 바를 얻고자 한다면 그런 갈등에 대처하는 방법을 이해하는 것이 유용할 뿐만 아니라 필수적이다."
협상은 심리 게임인 만큼 심리학의 발견들을 많이 차용한다. 그리고 경제학에서도 그렇듯이 처음에는 인간을 합리적 행위자로 가정한 논리가 먼저 적용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행동이 합리적 행위자의 그것이 아님이 드러남에 따라 불가피하게 수정하게 되는데 거기에 큰 기여를 하는 것이 바로 행동경제학이다. 행동경제학이 발견한, 합리적 행위자이기만 한 것은 아닌 인간의 속성에 대한 사실들을 인용한다.
"(아모스) 트버스키와 (대니얼) 카너먼(행동경제학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은 감정이 사고의 한 형태임을 발견했다. 앞에서 봤듯이 1980년대에 하버드를 비롯한 여러 경영대학원이 협상을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는 그 절차를 간단한 경제 분석으로 나타냈다. 당시는 세계 최고 경제학자들이 인간은 모두 합리적 행위자라고 언명하던 시기였다. 따라서 이는 협상 수업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상대가 자기 입장을 극대화하기 위해 합리적이며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가정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다양한 계획에 대응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 목표였다. …… 수십 년에 걸쳐 트버스키와 함께 연구를 거듭한 카너먼은 모든 인간이 '인지 편향Cognitive Bias'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인지 편향이란 말 그대로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왜곡하는 무의식적이며 비합리적인 뇌 과정이다."
"이후 2011년에 카너먼은 연구 내용을 그의 책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에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카너먼은 인간의 사고 체계가 두 종류라고 주장했다. 먼저 시스템 1인 동물적 사고는 빠르고 본능적이며 감정적이다. 반면에 시스템2는 느리고 신중하며 논리적이다. 또한 시스템 1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발휘한다. 실제로 시스템 1은 인간의 이성적 사고를 이끌고 조종한다. 시스템 1에 속하는 초기 신념, 감정, 인상은 시스템 2에 속하는 확고한 선념과 신중한 선택을 좌우하는 주요 원천이다. 시스템 1은 강에 물을 공급하는 샘이다. 우리는 제안이나 문제에 감정적으로 반응(시스템 1)한다. 그 다음 시스템 1의 반응이 정보를 제공하고 실질적으로 시스템 2의 대응을 창출한다."
"인간이 내리는 비합리적인 결정의 원칙을 설명하는 최고의 이론은 단연 '전망 이론Prospect Theory'이다. 1979년에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가 창안한 이 이론은 사람들이 협상과 같이 위험을 수반하는 대안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을 설명한다. 전망 이론에서는 사람들이 기대효용이 더 높은 확실하지 않은 대안보다 확실한 대안을 선호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가리켜 '확실성 효과Certainty Effect'라고 한다. 그리고 사람은 이득을 얻고자 할 때보다 손해를 회피하기 위해 더 큰 위험을 감수한다. 이를 가리켜 '손실 회피Loss Aversion'라고 한다."
"극단적인 기준점에 얽매이게 되는 경향은 심리적 특성 중 하나로 '정박과 수정anchor and adjustment 효과'라고 불린다."
협상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세가지이다. 그리고 그 세가지를 적절하게 조율해야 한다. 저자의 언급은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 우리는 악기를 배우듯이 각 기술을 구축해왔다. 먼저 색소폰 수준의 미러링, 그 다음 콘트라베이스 수준의 명명을, 그리고 프렌치 호른을 불듯이 전술적 침묵을 배웠다. 그러나 실제 협상에서는 밴드가 전부 함께 연주해야 하므로 지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동일행동isopraxism이라고도 하는 미러링mirroring은 기본적으로 모방이다. 이는 인간을 비롯한 몇몇 동물들이 서로를 안심시키기 위해 상대의 행동을 따라 할 때 나타내는 신경행동 중 하나다. 미러링은 말투, 신체 언어, 어휘, 속도, 어조를 활용해 실행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미러링은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행동이다. 미러링이 일어나고 있을 때 이를 의식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이는 사람들이 유대하고 화합하고 있으며 신뢰로 이어지는 관계를 확립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징조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 심리학과 매튜 리버먼 Matthew Lieberman 교수는 한 뇌 영상법 연구에서 강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는 얼굴 사진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공포감을 생성하는 뇌 부위인 편도체의 활성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감정을 명명하라고 요청하면 활성은 이성적 사고를 관장하는 영역으로 옮겨 간다. 다시 말해 공포에 이성적인 단어를 적용하면, 즉 감정을 명명하면 원래 그 감정이 지니는 강도가 약화된다."
"그 반대가 전술적 공감tactical empathy이다. 나는 협상 강의를 할 때 학생들에게 공감이란 '상대의 관점을 인식하는 능력이자 그 인식의 표현'이라고 가르친다. 이는 공감이란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기분이 어떤지 물어보며 그 사람의 세계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일이라는 말을 학구적으로 나타낸 표현이다. …… 전술적 공감은 그 순간 상대의 감정과 태도를 이해한 후 우리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도록 그 감정 이면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에 주의를 기울이는 방법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협상 전략은 다음과 같다.
"협상 전략이나 접근법을 심사숙고할 때 사람들은 무엇을 말할지 또는 무엇을 할지에만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는 경향을 나타내지만 가장 실행하기 쉬우면서도 가장 즉각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방식은 처신 방법, 즉 전반적인 품행과 전달 태도다. 인간의 뇌는 타인의 행위와 말뿐만 아니라 감정과 의도, 행동과 감정에 내포된 사회적 의미도 처리하고 이해한다. 인간은 주로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생각이 아니라 상대가 무엇을 느끼는지 말 그대로 파악함으로써 타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 외에도 협상을 성공시키기 위해 필요한 부수적인 사항들도 이야기한다.
"'예'의 종류는 세 가지다. 바로 허위, 확인, 약속이다. 허위의 '예'는 '아니요'라고 할 생각이지만 '예'라고 하는 편이 빠져나가기 쉽거나 정보 수집이나 우위를 차지할 속셈으로 음흉하게 대화를 계속하고자 하는 경우다. 확인의 '예'는 대개 무심하며 단답형 질문을 했을 때 반사적으로 나오는 반응이다. 가끔씩 덫을 놓으려고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무런 행동도 약속하지 않는 단순한 긍정이다. 진정한 가치를 지니는 경우는 약속의 '예'다. 이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참된 합의이며 합의 석상에서 계약서 서명으로 이어지는 '예'이다. 약속의 '예'야말로 정말로 원하는 바이지만 이 세 가지 '예'는 거의 똑같이 들리므로 이를 알아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저자의 결론에 해당하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협상이 압도가 아니라 구슬리기이고, 물리치기가 아니라 끌어들이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엇보다도 협상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상대가 우리에게 유리하게 움직이도록 해야 하고 우리의 해결책을 상대가 직접 제시하도록 해 야 한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했다. 이렇게 하려면 우리 측이 실질적으로는 협상을 이끌어 나가면서도 상대가 자신이 통제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야 했다."
저자가 설명하는 협상 기술은 범죄나 테러와 같은 특수한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어서, 저자가 우리의 삶에 협상의 요소가 굉장히 많이 들어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 기술을 삶에서 부딪히는 협상에 적용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심리학을 바탕으로 협상의 기술을 설명하고 있는 만큼 도움이 되는 사실도 제법 된다. 그래서 이 책의 독서 추천은 '일독을 권함'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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