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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사회

언론의 자아 비판

thinknew 2017. 11. 13. 08:49

후방 감시견


우리나라 사람들을 포함해서 보편적인 인간들의 정서 속에 '동업자 윤리'란 게 있다.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끼리는 속사정을 잘 아는 만큼 웬만해선 문제를 지적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말한다. 우리나라만의 특별한 현상이 아니어서, 민주정은 권력의 상호견제 장치를 만들어 두었다. 이 중 유일하게 공적인 선발 시스템을 거치지 않았으면서도 상호 견제하는 권력의 한 축으로 된 게 언론이다. 그러나 상호견제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주로 비판은 언론으로 부터 권력의 중심을 향해 이루어진다. 그러니 언론은 내부적인 자정 기능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견제 세력의 부재로 인해 너무나도 쉽게 특정인이나 특정 세력의 부역자로 전락하기 쉽다. 군부 독재 시절의 언론이 한 역할, 그리고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언론이 한 역할들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이명박이 정권을 잡고 제일 먼저 한 일이 언론 장악이었던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언론은 다른 어느 집단들 보다 '동업자 윤리'라는 틀을 깨부숴야 한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참여정부 시절 전북대 언론학부 교수 강준만이 '실명 비판'이라는 이름으로, 꼭 언론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지만 '동업자 윤리'를 깨려고 시도했다. 꼭 필요한 일이었지만 그 당시 여론은 그런 노력에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제 아주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나서야 비로소 언론에 대한 직접 비판이 등장했다. 비록 칼럼이라는 틀 안에서 이긴 하지만 언론의 직무유기를 분명하게 지적한 기사가 나왔다. 일단 보자.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9723 


"2017년 11월, 대통령 한 명은 파면당한 뒤 구속수사를 받고 있고 다른 대통령 한 명은 포토라인에 서는 것이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하지만 대통령의 불행은 국민에게도 불행이다. 왜 이런 현실이 됐을까."
"흥분하기 전에 정확한 현실진단에 따른 대책이 나와야 이런 역사의 비극을 막을 수 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불행은 주연급 조연들의 합작품이다. 이제와서 대통령 개인에게 손가락을 겨누지만 내용을 알면 꼭 그렇지 않다."
"가장 먼저 대통령을 망치는데 앞장 선 조연은 당시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 등 측근들이었다."
"두 번째 조연은 국정원장이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의 몰락을 가져온 세 번째 조연은 언론이었다."


나라의 민주주의가 30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주연급 조연'들 중 하나로 언론을 분명하게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도 부족하다. '실명 비판'이 다시금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래서 '조폭의 의리'를 닮은 '동업자 윤리'라는 정서가 언론계를 지배해서는 안된다.

그와 더불어 언론에 부여된 '제4의 권력'이라는 타이틀도 시민들이 '환수'해야 한다. 감시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만고의 진리를 거듭거듭 되새겨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