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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만물은 서로 돕는다 - 크로포트킨

thinknew 2017. 1. 17. 19:46


고대 철학에서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선과 악을 기준으로 이해하려고 했다. 성선설과 성악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두 개념 모두 인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있는 풍부한 사례를 인간사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논쟁의 중심에 있였다. 다윈이 <종의 법칙>을 통해 '자연선택에 의한 생물의 진화'을 정립한 이래 진화론을 해석하는 방식에서도 저 대립이 지속된다. 다윈의 추종자였던 헉슬리 뿐만 아니라 진화론을 사회학에 접목시켜 '생존 경쟁'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 스펜스도 '생존 경쟁'이라는 용어에서 보듯 인간까지 포함한 생물의 진화가 투쟁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에 대해 진화는 투쟁이 아니라 상호 부조를 통해 진행된다는 반대 주장이 대두된다. 지금은 경쟁과 협력이 공히 진화에 기여한다고 정립되어 있지만 1900년대 초, '생존 경쟁'의 논리가 기세등등하던 때에 상호 부조를 통해서 진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었고 그 중심 인물이 크로포트킨이다. 그의 주장을 담은 책이 다음에 보이는 '만물은 서로 돕는다'이다.




저자는 상호부조를 진화의 중요한 법칙으로 내세우지만 생존 경쟁을 배제하고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투쟁을 통한 진화'의 개념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것을 우려하여 대립되는 개념을 좀 더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루소는 자신의 사상에서 부리와 발톱의 싸움을 배제하는 실수를 저질렀고, 헉슬리는 그와 정반대되는 실수를 저질렀다. 루소의 낙관주의도, 헉슬리의 비관주의도 자연을 공정하게 해석했다고 인정하기는 힘들다."
"내가 알고 있는 한, 다원을 따르는 과학자들 중에서 상호부조가 자연 법칙이자 진화의 으뜸가는 요인이라는 점을 제대로 이해 한 최초의 인물은 러시아의 저명한 동물학자이자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학장이었던 케슬러 교수였다."


진화론은 불가피하게 역사적 검증 방법을 사용할 수 밖에 없고, 그를 통해 상호부조가 진화의 중요한 법칙임을 주장하게 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사회생활이야말로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생존경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모든 다윈주의자들은 지적인 능력이 생존경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지속적인 진화의 가장 강력한 요인이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그들은 또 지능이 사회적 능력의 하나임이 분명하다는 점도 역시 인정할 것이다. 언어, 모방, 축적된 경험은 지능 발달에 꼭 필요한 요소이며 사회성이 없는 동물에게는 이런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
"동물학과 고민족학에서는 최초의 사회생활 형태가 가족이 아니라 집단이라고 보는 데서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고삐 풀린 개인주의는 근대의 산물이지 원시 인류의 특징이 아니다."


20세기 초는 아직 진화론이 유전학과도 결합되기 전이었다. 역사적 검증과 논증을 통해 진화에서 상호부조가 차지하는 역할을 추론해 내었다는 점에서 저자의 통찰력은 탁월했다고 볼 수 있으나 여전히 과학적 검증으로서는 불충분했다는 점도 아울러 이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 윤리 개념이 생물의 사회성에 있다는 통찰력을 보이면서도 결론은 논증의 형식으로 한다.
"상호부조가 우리의 윤리 개념의 참된 기반이 된다는 점은 아주 자명하다."
"우리는 진화의 최초 단계에서도 이미 상호부조의 관행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우리의 윤리적 개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확연히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인간의 윤리적 진보 과정에서 상호투쟁이 아니라 상호지원이 주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해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오늘날까지도 이런 원리를 넓게 확장해나가는 것이 앞으로 인류가 더 높은 단계로 진화하리라는 것을 가장 잘 보증해주는 일임을 잘 알고 있다."


이 책에는 생물들의 사회성과 상호부조에 대해 다양한 관찰 결과들이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 결과들은 지금은 이미 정설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그래서 이 책의 독서 추천은 '일독을 권함'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