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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사회

가족주의의 폐혜

thinknew 2016. 12. 1. 21:07


그놈의 전통이라는 게 사람 여럿 잡는다. '노인을 공경하라' 해 놓으니 '어버이연합'이라는 꼴통들이 등장하여 분탕질을 치질 않나, '모성은 위대하다' 해 놓으니 '엄마 부대'라는 꼴통들이 등장하여 어버이연합의 뒤를 이어 분탕질을 치고 있다. 집단 뿐만 아니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가족은 소중하다' 해 놓으니 가족의 이름으로 제 마음대로 하려는 인간들이 저 '가족주의'를 떠드는 불상사가 생긴다. 거기에 야권 제2위의 대권 주자 이재명 성남시장이 엮여 곤욕을 치르는 중이다. 기사를 보자.

http://www.ytn.co.kr/_ln/0101_201612011800566437_005

"대선에서 이재명이 유리할 경우 더불어민주당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겠다. 왼쪽엔 욕쟁이, 오른쪽에는 거짓말쟁이라 쓰고 공중파에 나가서 욕을 하겠다."
"어제 오후 SNS에 이재명 성남시장을 겨냥한 이런 글이 올라왔습니다. 글을 올린 사람은 다름 아닌 이 시장의 친형 이재선씨입니다."
"형(재선)이 시정에 간섭하려 해 이를 차단했고, 어머니에게 폭언한 것을 항의하는 과정에서 일부를 악의적으로 녹음해 공개했다는 겁니다."
"동생(재명)의 대선 행보가 더욱 빨라진 어제, 형 재선씨는 박근혜 대통령 지지모임인 박사모 성남지부장을 맡아 화제가 됐습니다."


그 전에 자기 아들이 로또에 당첨되었는데 그 돈을 자기 성에 차지 않게 준다고 시청 앞에서 자기 아들을 성토하는 일인 시위를 하는 노인네가 있었다. 그 훨씬 전에도 유학까지 갔다와서 대학교수하는 자기 아들이 자신을 제대로 봉양하지 않는다고 학교까지 찾아가서 자기 아들을 성토하는 노인네도 있었다. 이들은 가족의 이름으로 이것저것 요구를 하지만 그 요구가 타당하든 않든 수용되지 않으면 자신들의 손으로 그 가족주의를 헌신짝처럼 내버린다.

이재명 시장의 형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형제간에 우애가 두터워야 하고 대부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주변을 보면 우애가 두터운 형제 간은 그리 흔치 않다. 그래서 형제 간에 감정 다툼이 있을 수는 있다. 문제는 그렇다고 자신의 친동생이 야권의 대선 주자인데 그 동생이 타도하려는 박근혜의 편에 선 것이다. 시정에 간섭하려 했다는 것은 자신의 동생이 시장이니 자신은 시장의 형이라고 생각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 자신에게 제약을 걸고 나서니 스스로 가족주의를 내팽개치고 동생을 적으로 본다는 뜻이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 노대통령은 "청탁을 하면 패가망신할 각오를 하라"고 말했었다. 내 지인 중 한명의 육촌 형이 그 노무현 정부 비서관을 하고 있었다. 그 지인의 아들이 군대에 가게 생겼다. 당연히 자신의 육촌 형이 대통령 비서관이니 거기다 청탁을 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 형이 청탁을 거절했다. 그러자 이 지인은 격분하여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면제시켜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좀 편한 보직으로 배치되도록 해 달라는 건데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친척의 그 정도 부탁도 들어주지 못한다니 나는 그 인간을 소새끼로 본다."

이런 인간들이 그런 부당한 요구를 아무런 꺼리낌없이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사회가 마르고 닳도록 강조하는 가족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가족을 강조하면 할수록 이런 황당한 인간들이 많아진다. 어떤 순진한 (또는 교활한) 사람들은 사회가 가족을 강조하지 않으면 마치 가족이 해체되는 것처럼 우려한다. 하지만 사회가 가족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가족이 지금보다 더 해체될 수는 없다. 핵가족화되어 가는 것은 사회의 변화의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 가족주의를 강조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러니 저런 황당한 인간들은 만들어내는 가족주의 이데올로기를 이제는 버릴 때가 되었다. 때가 지나도 한참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