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역시 기대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 모양이다. 남북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됨에 따라 한반도의 평화 분위기는 큰 진전을 이루었다. 여기에 쇄기를 박아 줄 것으로 기대했던 북미 정상회담이 삐걱거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분위기를 일거에 그 전으로 되돌리기엔 너무 많이 와버렸기 때문에 아무리 미국이라 하더라도 북미 회담을 파토내지는 못한다. 그러나 긍정적인 수사를 남발하면서 북미 회담 장소와 시간을 며칠 내로 발표할 것이라고 말하는 통에 기대감이 한껏 고조되었는데, 결국은 김이 새고 말았다. 그 기사를 보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5090502001&code=970100&nv=stand&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row1_thumb_2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8일(현지시간) 2차 방북 길에 올랐다. 북·미 정상회담 의제와 날짜, 장소를 확정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어제까지만 해도, 트럼프-시진핑 통화가 끝나면 북미 회담 장소와 날짜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 기사가 나오고 보면 그 시기는 좀 더 뒤로 미루어질 것이 분명하다. 서두에도 언급했다시피 이런저런 움직임들이 북미 회담의 결렬로 까지 이어지는 징후로 해석될 여지는 거의 없다. 그러나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큰 실망감으로 다가올 것이다.
'자칭 보수'들의 빨갱이 타령 또는 종북 놀이에 가려져 있어서 드러나지 않았지만, 한반도의 평화 분위기 정착을 위해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한 김대중 정부 이후로 가장 큰 걸림돌은 언제나 미국이었다. 그게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평창 동계올림픽 직전에 트럼프가 내세운, 전쟁 위기를 부추기는, 미치광이 전략이었다. 그때 미국은 중국과 무역 문제로 밀당을 하고 있었고 한국과는 사드 배치 문제를 빌미로 사드 비용 문제와 주한미군 분담금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양쪽에서 그런대로 괜찮을 결과를 도출해내고서야 트럼프는 미치광이 전략을 중단하고, 평창을 핑계로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지금 트럼프가 북미 회담을 파토낼 생각은 추호도 없으면서 뜸을 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미국이 관련되어 있는 상황들을 보면 추론이 가능하다. 미국은 지금 중국과 무역 전쟁에 사실상 돌입해 있는 상태다. 최근 므누신 장관이 북경을 직접 방문하여 협상을 진행하고도 빈 손으로 돌아왔다. 이란과의 핵 협정 탈퇴 문제도 있다. 한국과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도 여전히 협상 중이다. 이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다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이렇게 얽혀 있는 상황에서 북미 회담을 미국에 유리하게 활용하려는 의도는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이제 북미 회담 장소와 날짜는 폼페이오가 미국으로 돌아간 이후에 발표될 것이다. 속은 쓰리지만 우리보다 덩치가 훨씬 더 큰 미국을 상대로 협상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불가피하게 감수해야 할 일일것이다. 좀 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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