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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플라톤 구글에 가다 - 레베카 골드스타인

thinknew 2016. 8. 6. 16:15


서양의 지적 전통은 그리스 시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부터 출발한다는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들은 관념론에서 탁월한 통찰력을 발휘하였으나 과학적 발견들로 인해 유물론이 주류가 된 지금은 그 통찰력이라는게 대부분 부정되거나 희미해져 버렸다. 그런데도 그들을 현대에 되살리려는 시도가 여러 각도에서 다양하게 시도되었다. 자신의 생각을 입증할 수단을 전혀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오직 사변적 추론으로만 전개했던 그들의 통찰력은 과학이 발전되기 전에는 그 영향력을 유지했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은 그 영향력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지금은 인간의 본성, 도덕감정, 종교 등을 그들의 통찰력에 기대지 않고 증거에 입각하여 독자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생각을 현대에 되살리려는 시도는 부질없는 일일 뿐이다. 아래에 나오는 이 책도 그런 부질없는 시도의 하나이다. 


플라톤은 정치학, 윤리학, 미학 등 철학의 거의 모든 영역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래서 저자는 플라톤을 자신의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러면서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플라톤도 오류가 가득했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특정한 철학자 한 사람을 다루는 책은 그 철학자가 모든 것을 올바르게 이해했다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플라톤에게는 이 말이 해당되지 않는 것 같다. 2400년 전에 살았던 철학자 플라톤은 우리 예상대로 많은 것을 잘못 이해했다. 그렇지 않다면 철학은 우리의 지식을 조금도 증진시키지 못한 쓸모없는 학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철학이 쓸모없는 학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플라톤이 잘못 생각했거나 정확하게 알지 못한 것이 그토록 많다는 사실에 수시로 놀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저자는 플라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거의 모든 철학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저자의 추론이 비논리적인 것이, 플라톤이 많은 것을 잘못 이해했다는 것이 철학이 유용한 학문임을 보여준다고 한다. 아마도 저자는 플라톤이 모든 것을 바로 알았다면 철학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말하려고 하는 것 같다. 이는 진리, 본질 등 뭐라 불리든 간에 영원히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고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철학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진리라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면? 진화론은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해 간다는 것을 입증해 놓았다. 따라서 영원히 변치 않는 본질이란 없다. 이 말이 여전히 철학을 붙들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대담하게 보이겠지만 이것은 사변적 추론의 결과물이 아니라 300년 넘게 축적된 입증된 과학적 발견의 결과물이다. 

저자도 철학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 철학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철학자들은 대답을 들을 방법은 전혀 준비해 놓지 않고 오로지 묻고 또 묻기만 한다. …… 달리 말하면 철학은 과학이 처리해 줄 때까지 질문을 보관하는 냉동 창고이다. 다르게 비유하면 당황스러울 정도로 빨리 질문을 제기하는 철학자들은 너무 빨리 사정하는 바람에 생식 능력을 무의미하게 낭비하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과학이 이런 냉동창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학이 철학으로부터 차용하는 것은 용어가 전부이다. 초창기 과학이 철학의 개념을 끌어들였을 때는 과학도 길을 읽고 헤매기 일수였다. 목적론에서 벗어나지 못한 과학자들이 내놓았다 지금은 폐기된 이론들이 수두룩하다.

저자 자신이 사변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구절들이 여러개 있다.
"진리는 철학이라는 격렬한 활동, 즉 우리 각자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벌어지는 드라마를 통해 이해된다."
"추상적인 것은 시공간 세계의 물질로 환원될 수도 없지만, 시공간 세계의 물질과 떨어져 존재할 수도 없다. 추상적 개념(특히 수학적인 개념)은 끊임없는 변화 속에 존재하는 영속성이다."
"아름다움이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은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어리석은 질문도 한다.
"플라톤의 끈질긴 영향력은 플라톤 자신과 그의 평판을 위해서는 아주 잘된 일이겠지만 철학에는 조금도 보탬이 되는 듯싶지 않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이렇다. 만일 철학이 발전하고 있다면 플라톤은 왜 이토록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사라지지 않는가?"
그것은 저자와 같이 지적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되살려 내기 때문이다.

이어서 저자는 플라톤이 '대화'에서 했던 것과 비슷하게 플라톤이 구글을 방문한 것으로 가정하고 구글 직원과 플라톤을 구글에 안내한 사람, 그리고 플라톤의 삼자 대화를 길게 써 놓았다. 서두 부분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언급은 이 책이 사변적 추론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우리가 마침내 진리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는지, 아니면 반대편에서 제기하는 주장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 궁금할 때 언제나 그 자리에는 플라톤이 있다."
"우리가 쓰는 도구를 알지 못하면 그 도구를 위한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플라톤이 말했어. 내가 볼 때 아주 예리한 관찰이었지."
"당신은 그 또는 그녀가 그렇게 살아야 하거나 그렇게 살지 말아야 하는 삶의 방식이 있다는 데 동의합니까?"


여기까지 읽고 더 읽기를 그만두었다. 저자의 글은 권위자의 글이라고 인정하고 읽으면 뭔가 그럴듯해 보이지만 권위를 벗겨버리고 읽으면 바로 위에서 인용한 것과 같은 공허한 논의들만 가득하다. 그래서 이 책도 읽다가 만 책 중에 하나가 되었으며, 독서 추천도 불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