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심리학에서는 인간은 타고난 이원론자라고 말한다. 뇌의 인지 쳬계가 사람을 볼 때와 사물을 볼 때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대 과학이 성립되고도 여전히 사물의 본성을 다루는 물리학과 생명의 본성을 다루는 생물학은 별개이고, 생물학도 동식물들 만이 대상이었을 뿐 인간, 특히 인간의 마음은 철학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한편, 뉴턴 이래로 물리적 우주의 강력한 법칙을 정립한 물리학은 과학의 근본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일까? 물리학의 법칙성에 경도된 사람들, 심지어 학자들조차 생물학은 법칙으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는 물리과학을 설명하는데에는 탁월한 글재주를 지닌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인간의 마음의 영역으로 들어오면 철학에 그것을 떠 넘겨 버린다. 진화생물학에서 출발하여 진화심리학에 이르기까지 이루어진 인간의 본성에 대한 많은 발견들에 대해 피셔는 무시한다. 그것은 그가 데카르트적 이원론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서양의 지적 전통에서도 벗어날 생각이 없는 사람임을 의미한다.
저자는 책의 시작을 다음과 같은 구절로 한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러므로 인간이 완성되는 외적, 내적인 과정을 경험해 보고 과학적 지식을 통해 이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 될 것이다."
저자도 일단 진화론은 인정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변화가 없는 인간 혹은 생명은 생각할 수 없다. 사실 인간은 존재한다기 보다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이어지는 언급은 앞으로의 논의가 사변적으로 흐를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결핍된 존재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등의 문장에서 술어 '…… 이다'가 뜻하는 것과 같은 고정적 대상으로서의 인간은 없다."
진화론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은 물리과학의 법칙성과는 다름을 이야기한다.
"다윈(Charies Darwin. 1809~82)의 철저한 진화론이나 맨델(Gregor Mendel, 1822~84)의 유전법칙은 모두 통계학적 특성에 따라 완전히 우연성의 지배를 받는 것으로서 결정론적인 만고불변의 법칙성과는 전혀 다르다."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면 저자는 진화심리학에서의 많은 발견들을 모를 뿐더러 알 생각도 없음을 알게 된다.
"여기서 '발생학적genetic'이란 말은 오늘날의 유전자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괴테의 맥락에서 아해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학문와 발생학적 방법이란 것도 발생학 또는 유전학와 어떤 특정한 방법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완성된 구조보다는 구조를 이루어 가는 완성과정에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생물학의 일반적인 과제를 뜻한다."
여기까지 읽고 그만두었다. 이어지는 논의가 뻔하기 때문이다. 물리과학에 관한 정교한 설명으로 출발하여 인간의 본성에 대한 사변적 논의로 흐르는 일관된 패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피셔는 물리과학을 설명하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그래서 이 책은 독서 추천 불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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