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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살인 - 마틴 데일리 & 마고 윌슨 II

thinknew 2016. 7. 30. 15:44


지난 글에 이어 '살인'이라는 행위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도덕감정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한 언급들을 좀 더 살펴보자.


저자는 사회과학이 생물학을 바탕으로 해야 함을 역설한다.
"생물학이 모든 생명과학을 아우른다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이 다른 학문을 아우르는 개념적 틀을 제공하며 사회과학이 그것을 무시하면 불리하다는 것이다. 생물학이라고 불리는 학문에 딸린 모든 하위 분야는 진화론적 통찰을 바탕으로 발전했으며, 대부분은 선택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발전했다."
"사회과학에서는 흔히 갈등은 악이고 조화는 선이라는 전제(도덕적 입장으로서는 괜찮지만 사회에 대한 과학적 연구와는 관계가 없는 것 같다)를, 좋은 것이란 자연적인 것이고 나쁜 것이란 인위적인 것이라는 일종의 '자연주의적 오류'와 결합시킨다. 그렇게 하면, 갈등은 어떤 근대적이고 인위적인 악(예를 들면 자본주의나 가부장제)의 산물로 설명되는 반면, 고결한 야만인이라는 낭만적인 이상은 깨지지 않고, 이때 고결함은 성적 소유욕을 포함해 갈등을 일으키는 모든 동기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살인' 행위와 그와 관련된 도덕 감정에 있어서의 남녀 차이에 대한 생물학적 바탕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언급한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극적인 차이는 여성의 후뇌량 정맥이 남성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다(acoste-Utamsing & Holloway, 1982). 이것은 출생 전부터 명백하게 나타나는 형태적 차이이며, 여성의 뇌에서 좌우 대뇌반구 간의 소통이 더 잘되는 반면 남성의 피질 기능은 좌반구 또는 우반구 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증거를 통해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던 사실이다(McGlone, 1980)."

'살인' 행위를 유발하는 요인 중에 '복수'라는 것이 있다. 1800년대까지도 사적인 복수가 용인되었지만 점차 사적인 복수는 국가의 사법제도의 틀 속으로 옮겨감에 따라 집단의 안정성이 증대되었다. 저자는 이점을 설명한다.
"어쨌거나 복수는 신성한 의무에서 부끄러운 충동으로 추락했다! 이것은 기존의 가치를 완전히 뒤집는 것으로, 형사 사법제도가 피해 당사자들의 권리를 점차적으로 박탈해온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왜 우리가 살인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다루는지(즉 현대적인 의미의 책임, 부과 되는 형량, 피해자의 친족들이 나설 여지가 없는 것 등)를 알고 싶다면, 법의 목적에 관한 어떤 일관된 도덕 이론의 토대가 되는 제1원리들로부터 현재의 관행과 가치를 연역하려고 해서는 그 대답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보다는 살인에 대한 현대 사회의 법적 대응들을, 상충하는 이해관계와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이 변천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역사적 산물로써 설명해야 한다."
"수준 높은 문명이 원시적인 무법천지의 악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켰다는 것은 국가가 있는 현대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자만이지만, 이러한 시각에도 일리는 있다. 피해를 당하고 복수하는 사람의 역할을 국가가 가져갈 수 있었던 주된 이유는 이 역할이 권리보다는 짐이 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복수의 의무를 포기하는 것에 안도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을 대신해 적을 처벌하고 향후의 불법행위를 억지하는 국가 기구를 신뢰할 수 있을 때의 일이다."

저자는 도덕 철학이 오랫동안 설명하지 못했던 문제를 진화심리학이 설명할 수 있음을 보인다.
"'죄가 있는가'는 비난받을 만한가, 응분의 벌을 받아야 하는가를 따지는 도덕적 쟁점이다."
"처벌의 도덕적 정당성을 둘러싼 철학 논쟁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이 쟁점에 대한 다양한 입장들을 크게 응보주의와 공리주의로 나눌 수 있다.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처벌은 이익이 더 많을 경우 정당화된다. …… 공리주의자들은 보복을 위한 보복은 '원시적' 혹은 '야만적'인 욕구로서,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응보주의자들은 노골 적인 공리주의는 무서운 것이라고 답한다. 이익이 된다는 이유로 사소한 잘못에 대한 지나친 처벌을 정당화하거나, 심지어는 무고한 사람을 처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덕성은 특별히 복잡한 사회적 세계에서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특별히 복잡한 인지 능력을 지닌 동물이 갖고 있는 장치다."
"누가 잘못했고 누가 옳은지 가려내기 위해서는 이해관계의 충돌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부분도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도덕적 판단이 불필요하고 도덕성을 내세워 타인들을 조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덕성을 내세우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익뿐 아니라 타인들의 이익까지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이 선택한 행동과 동기를 정당화할 수 있다."
"처벌에 관한 철학 문헌을 보면 유독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는데, 잘못에 대한 처벌이 어떤 의미에서 불균형한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라는 주장에 대한 논의다(이 논의에는 보통 약간의 이념이 가미된다). 이런 주장에 따르 면, 우리가 처벌을 해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그른 것을 섬멸하고 옳은 것을 분명하게 나타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Bradley, 1927, p. 28). 거의 신비주의에 가깝고 근원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도덕적 명령은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진화한 심리 기제가 만들어낸 결과로서 확실한 적응 기능을 갖고 있다. 그 기능이란 바로 사회계약을 위반한 사람들이 그 위반으로부터 어떤 이익도 얻지 못하도록 재판하고 처벌하는 것이다. 속죄니, 참회니, 신성한 정의니 하는 신비주의적이고 종교적인 난해한 말들은, 실제로는 일상적이고 실용적인 문제를 고차원적이고 초연한 권위의 문제로 돌린다. 그 실용적인 문제란 물론, 이기적인 경쟁 행위로부터 아무런 이익을 얻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그러한 행위를 시도하려는 마음을 아예 단념시키는 것이다."
"고차원적인 도덕철학은 형제를 사랑하듯이 적을 사랑하라고 주장하지만, 당연히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의 목숨을 공평하게 평가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거듭 주장했듯이, 사람들은 타인의 가치를 평가할 때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과의 근연도에 따라 이기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왜 익명 사회의 구성원들이 살인자에게 적절한 형량이 내려져야 한다는 강력한 주장을 펴는 걸까? 왜 우리가 목격하지 않은 사건들에 대한 도덕적 분개가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까? 그것은 사회 계약을 유지하는 일에 우리 모두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 모두는 신중하게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고, 부당이익을 취하는 사람을 처벌하겠다고 약속했다. 피해자와도 살인자와도 안면이 없는 일반 대중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무거운 벌을 받아야 하는 살인은 사리사욕을 위해 낯선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결론적으로 착시를 일으키는 사회 현상에도 불구하고 현대가 과거보다 더 안전함을 이야기한다.
"어느 시대나 말세를 한탄하는 연설을 불황이 없었다."
"사실 국가있는 사회들의 살인율은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역사시대 내내 감소해 왔던 것같고, 잔존하는 부족 사회들에 관한 자료를 보면 국가 이전 사회들의 상황은 '고귀한 야만인설'에도 불구하고 한층 더 나빴던 것 같다. …… 따라서 오늘날 산업국가의 남성은 그 어떤 조상들보다 자기 침대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살인'과 같은 유쾌하지 않은 주제에 대해 진화심리학적 분석을 통하여 그 바탕에 깔린 심리적 기제를 밝혀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진화심리학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래서 진화심리학에 관한 여러 책에서 이 책을 참고문헌으로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은 학술서이긴 하지만 읽기에 어렵지 않다. 물론 논의를 입증하는 여러 통계 수치가 나오긴 하지만, 중요한 참고 문헌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 분석은 타당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따라서 통계 수치를 분석한 부분은 건너 뛰고 읽더라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그래서 학술서임에도 불구하고 일독을 강력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