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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은유로 본 기억의 역사

thinknew 2016. 3. 7. 20:51

[북리뷰] 은유로 본 기억의 역사 

이 책의 저자는 심리학과 철학을 전공했다고 나온다. 그리고 이 책은 심리학의 역사에 대해 기억과 관련된 부분을 중심으로 기술한다. 그런데 글을 이끌어 가는 핵심은 제목에서도 나타나다시피 '은유'이다. 비유법으로서의 '은유'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사용하는 것이지만 철학에서는 흔히 그러듯이 이 '은유'를 정의하고 그 정의로 부터 다른 무엇인가가 추론된다. 과학적 발견들은 실험과 관찰 결과가 충분하지 못할 때는 이론이나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비유법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고, 그 비유의 근원은 철학에서 정의해 둔 것에 의존한다. 이 책의 저자는 바로 이런 상황을 이용하여 심리학에서의 과학적 발견에 대한 역사를 기술하면서도 글의 중심은 과학적 발견에 두지 않고 '은유'라는 것에 둔다.

저자는 서구의 지적 전통에 충실한 사람이다. 그래서 심리학이 과학의 한 분과로 완전히 자리잡은 상황에서, 그 심리학을 다루면서도 정신은 육체와 분리된 어떤 것이라는 데카르트적 이원론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실험적, 계량적 연구는 기억 연구의 오랜 역사에서 보면 비교적 최근에 나타난 경향이지만, 1885 이후 지배적인 위치에 오르면서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연구자들이 실험을 선택적 도구로 여기지 않게 되면서 과거의 연구들이 기억 연구의 역사에서 사라진 것이다."
"1860년대에 시작돼 20 동안 유행한 이러한 연구 경향은 국재화 연구에 풍성한 결실을 가져다주었다. 가운데 가장 알려진 사람은 '정신생리학'이라는 용어를 만든 영국인 월리엄 카펜터 William Carpenter 헨리 모즐리 Henry Maudsley, 사람 모두 의사였다. '정신생리학자' 정신 기능을 물질적으로 해석할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었다."
"에빙하우스는 심리학을 자연과학으로 여겼다. 거의 모든 정신 과정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난다는 주장은 계량적 연구의 출발점으로는 그다지 유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지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므로 과학에서 설명을 위해 동원하는 도구로서의 '은유'에 대해 능동성을 부여한다.
"은유는 언어와 이미지라는 겹이 합쳐진 도구이다."
"은유가 통상적인문맥에서 새로운 문맥으로 말의 의미를 전이시킨다는 점은 문학 연구들이 유일하게 합의한 부분이다."
"은유가 때때로 중요한 견을 낳기도 한다. 아직은 불완전한 과학인 심리학에서는 정신 기능을 이해하기 위해 은유가 절대적으로 팔요하다. 어떤 것을 있기 전에는 그것에 대해 상상할 있어야 한다."
이렇게 은유에 능동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가능해진다.
"멘델레예프D. I. Mendeleyev 원소 주기율표를 만들기 3 전인 1866, 영국의 화학자 뉴랜즈J.A. R. Newlands 피아노 건반에서 유추한 원소 법칙을 정리한 있다. 뉴랜즈는 여덟 단위로 묶은 원소들의 목록을 만들고 이를 옥타브(음계) 비유했다. 여덟 번째의 원소가 번째 원소를 반복했기(비슷한 특성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뉴랜즈는 이를 화학의 옥타브 법칙이라 명명했다. 이처럼 뉴랜즈는 옥타브 배열의 의미장을 화학 원소 배열에 투사함으로써 멘델레예프의 법칙을 앞서 발견했다."
과학자들은 원자들이 주기적으로 비슷한 성질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았다. 그 주기가 우연히 8음계와 맞아 떨어져서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 뿐인데 은유가 발견에 앞선다는 식으로 표현한다. 이런 경우는 과학사에서 흔하다. 뉴턴이 무지개 색을 7가지로 분류한 것은 그 시대에 7이라는 숫자가 중요했기 때문에 색을 7가지로 나눈 것이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무지개 색을 4가지로도, 5가지로도 분류한다.

저자가 은유를 중심으로 글을 전개한다는 것을 알고 나면 실제 이 책의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기억과 관련된 기술의 발달사이다. 기억이란 뇌가 외부 자극을 정보의 형태로 저장하고 필요한 순간에 그것을 불러내는 현상을 말한다. 고대에는 기억을 오직 뇌(그 시절에는 정신)에 의존하였으므로 기억술이란 이름으로 느리게 전해져 왔다. 그러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기억을 보조하는 수단들이 나타났다. 소리를 저장하는 축음기, 시각 이미지를 저장하는 사진, 홀로그램, 컴퓨터, 신경망 그리고 인공지능으로 이어지는 인공기억의 역사를 길게 서술한다. 이런 과학적 발견들을 정리해 놓고도 마무리글에 해당하는 에필로그는 다시 데카르트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표현 방식과 비유 대상을 불문하고 도대체 물리적 흔적이 어떻게 의식으로 흡수되는가 하는 근본적인 호문쿨루스 문제에 관해서라면, 컴퓨터 은유도 축음기 은유나 심지어 플라톤의 밀랍판 은유 같은 과거의 은유보다 나을 것이 없다. 정신-육체 문제와 자발적 기억의 순환성이라는 데카르트의 가지 수수께끼는 컴퓨터 은유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의 출판년도가 1995년인데 그때면 진화심리학이 상당한 진전을 보인 시기여서 저자가 여전히 데카프트적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은 심리학에서 이루어진 과학적 발견들을 있는 그대로 추적한 것이 아니라 서구의 지적 전통의 연장선상에서 그 발견들을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설명들이 단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비트겐슈타인L. Wittgenstein '게임' 개념을 토대로 문제를 논한 적이 있지만,당장 ''처럼 간단해 보이는 범주로도 문제를 보여줄 있다. 예컨대 있는 능력은 새를 규정하는 적절한 기준이 아니다. 타조를 보더라도 모든 새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박쥐를 예로 들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새인 것도 아니다. 깃털 유무( 뽑힌 닭은 새인가) 알을 낳는지 여부 (오리너구리는 새가 아니다) 역시 비슷한 문제에 부딪히지 않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복잡한 정의와 기준을 뛰어넘어 어떻게든 우리 마음 속에 범주를 형성한다."

근대과학의 초창기에는 과학자들도 설명을 위해 불가피하게 철학적 개념들을 동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설명은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런 철학적 개념들은 이원론에 바탕해 있고, 정신 현상에는 능동성을 부여해 놓았기 때문에 과학적 발견에 대한 설명은 필연적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리처드 도킨스가 말한  '이기적 유전자'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유전자는 이기적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타적이라고 할 수 없다. 도킨스도 그런 뜻으로 이 말을 사용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생존에 더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해 가는 유전자를 묘사할 수 있는 적당한 말이 없다. 그래서 이기적이라는 용어를 차용해서 유전자의 진화를 설명했는데 진화론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기적이라는 용어 자체에 주목한다. 지금은 많은 과학자들이 새로운 과학적 발견들을 설명할 새로운 용어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은 용이한 작업이 아니어서 이런 혼란은 불가피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기술 발달사에 대한 에피소드를 얻을 목적이라면 얻을 게 좀 있다. 그러나 그런 기술 발달사는 다른 책에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으므로 굳이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