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묘한 존재이다. 일단 여러 신체 기관 중의 하나이다. 그 말은 우리가 육체라고 이야기할 때의 그 육체의 한 부분이라는 뜻이다. 또한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 육체와 정신은 별개의 것이라고 믿는 이원론자들에게는 뇌는 정말 이상한 존재이다. 과학은 이런 뇌의 속성을 하나씩 하나씩 파헤쳐 육체와 별개의 것으로서의 정신이란 없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존재에 대한 논의는 유물론으로 수렴하고 있다.
이 책은 뇌 과학자가 지금까지 밝혀진 뇌에 관한 지식의 대부분을 정리해 놓은 것이다. 학술서적이어서 읽기가 쉽지는 않지만 수고해서 읽으면 뇌와 정신의 관계를 상당히 많이 알 수 있다.
저자는 먼저 대중들의 뇌에 대한 인식을 언급한다.
"문제는 마음이 뇌에 있고 마음은 대단한 성취이므로, 뇌의 설계와 기능 역시 틀림없이 정밀하고 효율적일 것이라는 가정이다."
그러나 과학이 알려주는 뇌는 그렇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표현을 사용하자면 뇌는 일종의 '클루지kludge', 즉 비효율적이고 엉성하고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 어쨌든 작동하는 장치다. 군사사가 잭슨 그랜홈의 말을 빌려 보다 실감나게 정의하자면 클루지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부품들이 잡다하게 모여 하나의 엉성한 전체를 이룬 것"이다."
뇌 과학자의 책이어서 용어와 기능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듣게 되는 뇌와 관련된 용어들 중 가장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 저자의 정리를 통해 보자.
"주요 원칙 2. 뇌는 아이스크림콘처럼 쌓아 올려졌다(인간의 뇌는 제일 많이 쌓아 올려졌다). 진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고위 기능이 추가될 때마다 새 아이스크림 한국자가 위에 더해졌지만 아래쪽은 크게 변하지 않고 보존되었다. 이 때문에 인간의 뇌간, 소뇌, 중뇌는 전체 도면이 개구리의 그것과 거의 다르지 않다. 개구리는 뇌간, 소뇌, 중뇌 위에 단지 기초적인 고위 영역들만 추가했다(한 국자를 간신히 넘는다). 시상하부, 시상, 변연계 같은 구조물들은 인간과 쥐가 크게 다르지 않다(쥐는 두 국자). 그러나 쥐의 피질은 작고 단순한 반면에 인간의 피질은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엄청나게 크고 정교하다(인간은 세 국자). 새로운 고위 기능이 추가되었을 때 진화는 뇌 전체를 밑바닥부터 다시 설계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덩어리를 위에 더했을 뿐이다."
뇌가 진화의 산물임을 알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놀랍게도 거의 예외없이 벌레의 뉴런과 신경아교세포는 인간의 것과 실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예쁜 꼬마선충은 그 과정을 유도할 수 있는 약 1만 9,000개의 유전자를 DNA에 암호화하여 갖고 있다." (인간은 23,000개 정도이다.)
물론 이것은 저자의 책에서 언급한 것들이다. 이 외에도 인간의 뇌에서 신경전달물질로 기능하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을 지렁이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있다.
인간의 개성이나 성격이 선천적인 것이냐 후천적인 것이냐를 따지는 것을 '본성-양육 논쟁'이라고 한다. 여기에 대해 저자는 본성과 양육이 모두 영향을 미친다는 최신의 견해를 지지한다.
"즉 유전자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포괄적인 의미에서 환경 역시 뇌세포의 유전자 기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안다. 다시 말해 양육이 본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본성이 양육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뇌에서 인과관계는 쌍방향 도로다."
정신-육체 이원론은 과학 내부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많은 철학자들과 인지과학자들은지각이 완전히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한다. 그들은 지각이 때때로 감정을 촉발시킬 수 있지만 지각으로부터 감정을 제거하고 완전히 무감정하게 지각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 지각/감정 이분법은 서양 문화의 전통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의학에서 가장 분명하게 볼 수 있는데, 서양 의학에는 뇌 질환을 치료하는 분야가 둘로 나뉘어 있다. 신경과neurology는 주로 지각, 운동, 인지 문제를 다루는 반면에 정신과psychiatry는 주로 감정적,사회적 문제를 다룬다."
대중들에게 통념처럼 받아들여지는 것 중에는 오류들이 많다.
"1997년, <초기 뇌 발생에 관한 백악관 회의>에서 나온 한 보고서 ...... 이것은 어린 아이들, 특히 유아들과 걸음마하는 아이들이 생물학적으로 학습하기에 가장 좋은 조건에 있으며, 이 시기에 학습을 위한 유일무이한 기회의 창 또는 최적기의 창이 열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 백악관 회의의 일반적 주장에도 문제가 있다. 첫째, 정상적인 3~10세의 뇌 활성이 2.5배 높다는 것을 입증하는 실질적인 증거는 없다. 둘째, 비록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것이 학습의 유일무이한 기회임을 뜻한다고 믿을 만한 구체적 이유는 전혀 없다."
"이 장에서 내가 여러분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감각은 매우 믿을 만하고 독자적인 보고자라고 믿는 이 느낌이 아무리 강력하고 뿌리 깊더라도 결코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과학의 최상위 영역에서 성공을 보장하는 단 하나의 인지 전략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각하는 것은 물이 흐르는 것처럼 연속적으로 느껴지치만 사실 그것은 하나의 일관된 감각적 줄거리를 창조하기 위해 우리의 뇌가 적극적으로 구성해 낸 이야기인 것이다."
'사랑에 빠지면 눈이 먼다'라는 속설이 사실이라는 것도 밝히고 있다.
"사권 지 얼마 안 된 연인들은 복측피개vemral tegmental 영역에서 강한 활성을 보였다. 이것이 특별히 흥미로운 것은 복측피개 영역은 강렬한 쾌락 감각을 책임지는 뇌의 보상 중추이기 때문이다. 복측피개 영역은 헤로인이나 코카인으로 활성화되는 핵심 영역 중 하나다. 헤로인이나 코카인 이용자들처럼 새로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판단력이 종종 흐려지고, 특히 애정의 대상에 대해서는 매우 형편없는 판단력을 보인다."
종교 집단들의 진화론에 대한 거부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진화는 이론이다. 그것은 쥐라기에 속하는 원인hominid 해골 같은 특정한 발견으로 반증할 수 있다. 그러나 지적 설계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반증을 위한 실험이나 관찰을 거부하는 주관적 추론에 의존한다. 여러 종교 집단과 정치 집단으로부터 엄청난 기금이 쏟아지는데도 지적 설계 운동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어떤 현지 조사나 실험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책을 저술하고 논문을 제출하고 발표하며 심지어 수학 가설까지 고안한다. 거기에는 과학의 모든 장신구들이 매달려 있지만 핵심에 과학은 없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대장균, 꼬마선충, 쥐, 원숭이 이런 동물들을 연구하여 인간의 정신 작용을 밝히겠다는 시도에 코빵귀를 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도 생물학적으로는 다른 동물들의 연장선상에 있으므로 앞에서 언급한 시도들이 과학을 발전시키는데 기여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다음에 어느 멍청한 국회의원이 입에 거품을 물고 "상아탑에 틀어 박힌 지식인들이 토끼에게 눈 깜박임을 학습시키는 방법을 연구하는 데 우리의 귀중한 세금을 쓰고 있다"라고 소리를 지르면, 여러분은 그에게 항의하는 이메일을 보 내 이런 종류의 연구가 인식과 기억장애의 분자학적 기초를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다음 시대의 위대한 과학의 첨단 지대를 정복하는 한 걸음이다."
뇌와 그 기능에 대해 체계적으로 알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볼 필요가 있다. 학술서적이어서 읽기가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독서 추천은 강력 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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