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가 신경생물학자여서 신경생물학에서 밝혀낸 감정의 생물학적 근원을 지난 포스트에서 요약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저자가 어떻게 서양의 지적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를 보자.
스피노자 이전에도 현대 진화심리학에서 밝혀낸 인간의 본성에 근접한 통찰력을 보여준 철학자들이 많다. 흄도 감정의 역할을 강조했고, 아담 스미스도 '도덕감정론'이라는 책에서 도덕 감정의 역할에 대해 언급했다. 그런데 저자가 굳이 스피노자를 거론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현대 생물학의 영향 아래에서 싹트고 있는 인간 본성에 대한 개념이 인간 본성에 대한 스피노자의 개념과 어느 정도 겹쳐지기 때문이다."
스피노자가 통찰력을 보였다 하더라도 스피노자는 과학적 검증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결론은 전혀 엉뚱한 곳에 가 있다. 아담 스미스는 경제학의 아버지로 널리 인정된다. 경제학의 초창기에 스미스가 보인 통찰력은 탁월한 것이었지만 현대 경제학에서 스미스의 기여도는 이미 희미해져 버렸다. 그럼에도 현대 경제학을 설명하면서 아담 스미스를 계속 언급한다면 그 설명은 오락가락할 것이 분명하다. 지금 저자가 그런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책에서 신경생물학에서의 발견을 설명하는 부분과는 별개로 스피노자의 평전이라고 해도 좋을 부분이 400 페이지 이상 되는 책의 3분의 1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그 연결고리는 오직 스피노자가 현대의 신경생물학에서의 발견에 근접하는 통찰력을 보였다는 것 뿐이다.
저자가 철학적 논의에서 어떻게 오락가락하는지를 보자.
"활달하고 밝은 영혼을 지닌 사람들조차 온갖 종류의 고통- 그것이 미리 막을 수 있는 것이든 피치 못할 것이든 -을 그토록 빈번하게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이 우주에서 우리는 어떻게 행복한 결말에 도달할 수 있을까? 이미 그 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종교적 신념이나 어떤 슬픔도 꿰뚫고 들어올 수 없는 단단한 보호막과 같은 것이 그 답이다. 그러나 그 밖의 사람들, 그러한 자원을 지니고 있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의 솔직한 대답은,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모르겠다"이다."
"나는 종교적 경험을 신경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하겠다. 특히 그 시도가 신에 해당되는 뇌의 중추를 찾아낸다거나 신이나 종교를 뇌 주사 사진과 연관시켜 정당화하고자 하는 것과 관련될 경우에는 말이다. 그러나 종교적인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영적 경험은 일종의 심적 절차이다. 이러한 경험은 최고도로 복잡한 생물학적 절차이다."
"나는 영적 경험을 느낌의 신경생물학과 연결 지음으로써 숭고한 것을 물질적인 것으로 축소시켜 그 위엄을 망가뜨리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의 목적은 영적 현상의 숭고함이 생물학의 숭고함에 구현되어 있으며, 우리는 그 절차를 생물학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로서의 자세를 완전히 잃지는 않는다. 다음과 같은 언급을 보면 알 수 있다.
" 그러나 과연 생물학적 측면에서 볼 때, 생명체에 대한 의식적 마음의 필수불가결한 기여는 무엇일까? …… 그동안은 마음은 수많은 뇌의 영역들의 공동 작업의 산물로서 출현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어느 정도 합리적이다."
"과거의 사회공학(social engineering)적 실험들이 실패한 것은 부분적으로는 계획 자체가 우둔했고 실행 과정에서 타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실패와 원인은 그와 같은 시도의 기반이 된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잘못된 이해로 인해 여러 가지 부정적 결과가 초래되었다. 그 중 하나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달성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것인 희생을 요구한 것이다."
이 책에서 신경생리학에서의 발견을 바탕으로 인간의 감정의 생물학적 근원에 대해 설명한 부분은 훌륭하다. 한편 그것과는 전혀 관계없는 스피노자 평전도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철학적 논의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불필요한 부분이 지나치게 많다. 그래서 독서 추천은 중립이다.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설명에 관한 다른 책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라면 추천할 필요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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