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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극한의 협상, 찰나의 설득 - 케빈 더튼

thinknew 2016. 12. 9. 19:55


생물계의 자연 현상에서 위장술, 기만술 이런 용어들이 흔히 등장한다. 이는 상대의 의도를 무력화시키거나 자신의 의도를 달성하거나 그 둘 모두를 위해 생물들이 행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인간 사회에는 '거짓'이라는 용어도 흔히 사용된다. 이는 앞의 두 용어와 유사한 기능을 한다. 진화론에서는 인간을 포함하는 생물들이 생존을 위해 기만술을 진화시켰다는 점을 합리적으로 설명한다. 한편 '협상'과 '설득'은 자신의 의도를 달성하기 위한 적극적 행위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거짓 또는 위장이 개입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이 모두를 합쳐 협상이라고 했을 때, 고차 지향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당연히 이 협상을 잘 할 수 있는 기술이 궁금해진다.

저자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런 가능성이 개인에게는 별로 없다. 그런 기술은 모두 인간의 사고가 지닌 오류를 이해함으로써 습득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그런 오류를 이해하는 과정이란 것이 모두 확률론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협상의 기술이라는 것은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세일즈맨이나 컨설턴트들에게는 요긴할 수 있으나 개인은 그런 지식을 통해 설득 당하는 확률을 줄일 수 있을 뿐이다.

그래도 저자는 협상의 기술을 설명함에 있어 철저하게 심리학에서 발견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상당 부분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간이 본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오류와 편견의 경향에 관한 발견들과 중복된다. 그리고 특히 설득의 심리학이라는 베스트 셀러를 저술한 로버트 치알디니가 정리한 설득에 관한 6개 법칙과도 중복된다. 그 법칙은 다음과 같다.
"희귀성 원리: 뭔가가 적을수록 더 원하게 된다.
호혜주의: 우리는 남의 호의에 보답해야 할 의무를 느낀다.
약속과 일관성: 우리는 말한 것을 지키려고 한다.
권위: 우리는 힘있는 사람을 존경한다.
호감: 우리는 좋아하는사람 말을 더 잘들어준다.
사회적 증거: 우리는 스스로 확실치 않을 때는 남들하는 것을 본다.

한편, 사이코패스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다른 책에서는 찾기가 쉽지 않으므로 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과는 달리 사이코패스가 다 폭력적인 것은 아니다. 그와는 거리가 멀다. 인정사정 없고 겁없는 것은 사실일 수 있지만 폭력 성향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길로 사이코패스가 가는 길과 만날 수도 있지만 전혀 만나지 않고 따로 나갈 때도 많이 있다."
"사이코패스라고 해서 다 범죄자가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무조건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또 연쇄 살인범이 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사이코패스 중 많은 이들은 자기들이 감옥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남들을 잡아넣는 일을 하고 있다."
"어떤 기준으로 사이코패스를 측정해도 중요한 특성으로 나오는 것이 설득 능력, 남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능력이다. 정말 이상한 것은 같은 기준이 공감능력 측정에도 사용된다는 사실이다. 공감능력은 없는 사람이 사교능력은 어떻게 그렇게 좋을 수가 있는건지 궁금했다. 사이코패스들은 어떤 것이 상대에게 통하는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로 인정받고 있다. 남의 마음속, 머릿속에 들어갈 줄 아는 것이다."
"사이코패스의 공감능력 유무 문제는 실제로는 '어떤' 공감능력을 말하느냐에 달려 있다. 거기에는 '뜨거운' 공감과 '차가운' 공감이라는 두 종류가 있다. 뜨거운 공감은 감정이 들어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을 보며 느끼는 공감으로 우리 자신이 그 일을 할 때 작동되는 체성감각 두뇌 회로를 전용하며 감정처리 두뇌부위인 편도체도 사용한다. 반면에 차가운 공감은 계산적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냉정하게 지적으로 측정하는 능력으로, 사용하는 신경회로도 완전히 다르다. 두 공감은 완전히 반대이며 그 차이 역시 하늘과 땅이다. 차가운 공감은 온갖 기호가 들어가 있자만 그 의미를 전혀 느낄 수 없는 상세한 지도나 마찬가지다. 지도를 읽고 돌아다닐 수는 있지만 아무런 느낌은 없는 것이다."
"사이코패스들의 얼음 같은 머리와 탁월한 신경 조절능력은 공감능력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이는 자신감에도 큰 몫을 한다. …… 법조계나 금융업계, 군대, 언론계 등에서 남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이 있다. 한가지 간단한 이유는 그 사람들은 남들 같으면 견디지 못할 압박을 받아도 자신감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사이코패스를 괴물로 여긴다. 강간범, 연쇄살인범 아니면 테러리스트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믿음과는 달리 사이코패스 중 많은 이들은 전혀 범법행위를 하지 않는다. …… 어떤 압력을 받아도 냉정함을 잃지 않는 우수한 에어컨 같은 신경구조는 사이코패스들에게 완벽한 설득장치이다."


도덕철학에서 딜레마로 통하는 기차길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신경생리학에서 뇌의 직접 관찰을 통해 규명해 놓았다. 그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도 들어볼 만하다.
"영국 철학가 필리파 풋이 처음 제시한 다음 시나리오(Case 1): 두 기차길이 있는데 하나에는 다섯명이 묶여 있고 다른 길에는 한명이 묶여 있다. 선로 조작을 해야 하는 사람이 기차를 어느 선로로 들어가게 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
"미국 도덕 철학자 주디스 톰슨이 제시한 두 번째 시나리오(Case 2): 기차길에 다섯명이 묶여 있는 것은 시나리오 1과 같으나 기차를 멈추게 하기 위해서 육교 위에서 한 사람을 밀어서 떨어뜨리는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
"첫 번째 경우는 당사자와 직접 관련이 없는 도덕적 난제로 전전두엽, 후두정엽 등 주로 사리분별 및 이성적 사고를 담당하는 두뇌 부위와 관련이 있다고 했다. 바로 차가운 공감능력 회로이다. 반면 두 번째 경우는 개인적 도덕 딜레마로 두뇌의 감정중추인 편도체, 뜨거운 공감능력 회로가 담당한다."


위에서 요약한 두 주제외에도 심리학에서 발견한, 우리가 가진 오류나 편견의 생물학적 근거에 대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서술이 꽤 산만하다. 그래서 인간이 본성적으로 가진 오류나 편견 등에 관한 다양한 에피소드에 흥미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그다지 추천할만한 책은 아니다. 그렇지만 심리학적 발견들에 대해 여러가지를 언급하고 있으므로 독서 추천은 그냥 '일독을 권함'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