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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사람들은 왜 이상한 것을 믿는가? - 마이클 셔머

thinknew 2016. 4. 9. 17:52


우리는 많은 것을 믿으며 산다. 심지어 수학조차도 출발은 믿음이다. 기하학에 '평행선 공리'라는 것이 있다. '평행선은 영원히 만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아무도 평행선 끝까지 가 볼 수 없으니 그것을 직접 증명할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인정하는 것, 그것을 '공리'라고 한다. 그래서 '평행선은 끝에 가면 만난다'라는 공리도 존재할 수 있다. 그런 공리를 바탕으로 한 기하학을 '비유클리트 기하학'이라고 한다. 수학과 과학은 그런 공리에서 출발하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반증을 통해 그것이 객관적임을 증명해 낸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믿는다. 하지만 모든 믿음이 이렇게 형성된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결코 객관성을 확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증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빙자하여 어떤 것을 믿거나 타인들로 하여금 믿게 하는 것들이 많다. 신, 영생, 심령, 내세 등등 우리 일상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많은 믿음들이 과학에 의해 부정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그것들을 믿으며 산다. 단지 믿음에 집착할 뿐 아니라 그 믿음을 부정하는 과학을 도리어 부정하는 상황도 흔히 발생한다.


이 책의 저자 마이클 셔머는 사람들이 왜 이상한 것들을 믿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이상한 믿음들의 근거 없음을 밝혀낸다. 먼저 왜 인류는 믿음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을까에 대한 저자의 설명의 보자.
"삶이란 우연적이고 불확실한 것들로 가득하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두려운 것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식의 죽음이 훨씬 견디기 어려운 두려움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겪은 부모들은 '심령술사들' 말에 특히 취약하다. 현실이 견딜 없게 압박해 오면, 우리는 쉽게 미혹되어, 점술가와 손금쟁이, 점성술사와 심령술사에게서 확신을 보장받으려 한다."
"이 인간의 오래된 욕구에 해당한다. 다음 끼니를 장담 못할 만큼 삶이란 불확실했던 세상을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사후 세계와 영적 세계에 대한 믿음을 개발했다."
"회의주의자들이든 믿는 자들이든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앞에 무릎 끓게 하고, 물리적 세상 속에서 영적인 의미를 추구하게 하고, 불멸을 욕망하게 하고, 영원에 대한 바람이 충족될 것이라 기대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희망이다."

이런 믿음들 중에는 문제있는 것들이 꽤 된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가 잘못된 믿음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회의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회의주의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원칙적으로 회의주의자는 폐쇄적이지도 않고 냉소적이지도 않다. 내가 회의주의자라는 말로 뜻하는 것은, 어떤 특정 주장에 대해 진위를 증명할 있는 증거를 요구함으로써 주장의 타당성을 묻는 사람이다."
그리고 회의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과학적 합리성으로 무장할 필요성이 있다.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자.
"영성주의자, 독실한 종교적 신자, 뉴에이지 신봉자, 심령술사 뿐만 아니라, 유물론자, 무신론자, 과학자, 심지어 회의주의자에게도 희망은 끊임없이 샘솟는다. 다만 어디서 희망을 찾느냐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전자의 무리는 편할 때면 과학과 합리성을 이용하다가, 필요 없으면 던져 버린다."

과학은 과학자들 조차도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긴 하지만 저자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과학에서 회의는 지극히 중요한 일부이다. 나는 과학을 이렇게 정의한다. 과거나 현재에 관찰되거나 추론된 현상을 기술하고 해석하기 위해 고안되었고, 반박과 확증에 모두 열려 있는 시험 가능한 지식 체계를 구축할 목적을 가진 방법들의 집합. 달리 말해서 과학이란 주장들을 시험할 목적으로 정보를 분석하는 특유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무얼 하는 것과 그걸 말로 설명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과학적 사고에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귀납: 현재 있는 데이터에서 일반적인 결론을 끌어내어 가설을 만드는 .
연역: 가설을 기초로 특정 예측을 하는 .
관찰: 자연에서우리가 찾아야 것이 무엇인지 가설들이 지시하는 바에 따라 데이터를 수집하는 .
검증: 많은 관찰을 토대로 초기 가설이 타당한지 예측을 시험하는 ."
"과학이 진보적인 까닭은 과학적 패러다임이 실험, 확증, 반증을 통한 지식의 누적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사이비 과학, 비과학, 미신, 신화, 종교, 예술이 진보적이지 않은 까닭은 과거를 토대로 지식의 축적을 허용하는 목표나 메커니즘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정의를 바탕으로 저자는 여러 잘못된 믿음들 중에서도 사회적 영향력이 큰 것들을 선택하여 하나의 장을 할애하여, 그 믿음의 근거없음을 파헤친다. 그 중 첫째는 창조과학을 주장하는 자들의 진화론에 대한 부정이고 다음은 아인 랜드의 객관주의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인종 말살, 즉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자들의 믿음들을 자세하게 파헤친다. 물론 이것들만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근거없는 믿음들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저자는 믿음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잘못된 믿음들이 가져오는 폐해를 먼저 지적하고, 다음으로 대안을 제시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이 무한하고, 보살핌이 없고, 무목적적인 우주를 제시하면서 오직 차갑고 잔인한 논리만 내놓는다고 생각한다. 반면 사이비 과학, 미신, 신화, 마술, 종교는 도덕과 의미에 대해 단순하고 즉각적이고 위안이 되는 규범을 제공한다."
"이는 인간이 본성적으로 언제나 나은 수준의 행복과 만족을 찾아 앞날을 내다보는 종이라는 나의 확신을 담고 있다. 불행하게도 결과는, 보다 나은 삶에 대한 비현실적인 약속을 붙들려 하거나, 오로지 불관용과 무지를 고집함으로써, 오로지 타인의 삶을 가벼이 생각함으로써 나은 삶을 획득 있다고 믿는 경우가 너무 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따금, 다가올 미래의 삶에만 집착한 나머지, 지금의 삶에서 우리가 가진 것을 놓쳐 버린다는 것이다. 희망의 다른 원천도 있다."
"원천이 다르더라도 희망은 희망이다. 인간의 지적인 능력이 측은지심과 더불어서 무수히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각자의 삶의 질을 높일 있으리라는 희망, 역사의 진보가 계속 이어져 보다 자유를 향해 나아갈 것이며, 모든 사람들을 보듬어 것이라는 희망, 사랑과 공감과 아울러 이성과 과학도 우리가 우주를 이해하고, 세계를 이해하고, 우리 자신 이해하는 도움을 있을 거라는 희망이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글을 마무리짓는다.
"사람은 패턴을 찾는 동물이다. 복잡하고, 변덕스럽고, 우연적인 세계에서 우리는 의미를 찾아다닌다. 그런데 우리는 또한 이야기를 짓는 동물이기도 하다. 수천 동안 신화와 종교는 우리에게 의미있는 패턴들, 신들과 하느님, 초자연적인 존재들과 신비로운 힘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조물주와의 관계, 우주 우리 자리에 대한 이야기들을 주었다. 사람들이 줄기차게 마술적으로 사고하는 이유의 하나는, 현대 과학적 사고방식의 역사가 년밖에 되지 않은 반면, 인류는 십만 동안 존재했기 때문이다."

한편 역자 후기에 보면 이 책을 번역한 번역자조차도 아직 불완전한 믿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짐작케 하는 구절이 있다. 다음과 같다.
"과학자라면 이성을 자연선택을 거친 오랜 진화의 산물로 여기겠고,종교인이라면 저마다의 신이 내린 선물로 여길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내내 과학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무의미한 믿음들을 파헤치는데 그 행위의 가장 강력한 도구인 '이성'에 대해 과학자와 종교인의 관점을 병치시키고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일상생활에서 무의식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몇가지 믿음들을 버려야 한다고, 명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누구든 이 책을 한번 읽어 볼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