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영문학을 전공한 작가가 진화심리학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작가가 직접 경험하고, 발품을 팔아 알아낸 지식들을 소설 형식으로 매끄럽게 풀어 놓았다.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작가가 과학적 방법론을 동원하여 밝혀낸 진화심리학 지식을 하나 하나 깨달아 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게다가 이 책은 '자신이 무식한 줄도 모르는 무식한 유사 일베들'을 위한 교육 자료로 삼아도 훌륭하다. (그런데 자신들을 위한 훌륭한 교육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을까?)
저자는 자신의 과학과의 인연을 다음과 같이 서술해 두었다.
"12살이 될 무렵 과학에 대해 품었던 일말의 친근감은 공포와 뒤섞인 무관심으로 변해버렸다. 수학과 과학을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영문학 전공 뒤에 숨어 과학을 피해 버렸고, 대학에 다닐 때는 가장 기초적인 수준의 천문학 수업조차 간신히 통과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경험을 한번쯤 했음직하다. 우리나라는 인문계를 더 선호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저렇게 느끼지는 못한 사람들도 다수 있겠지만 아무튼 하기 어려운 수학, 물리를 피해 인문계를 택한 사람들도 꽤 될 것이다.
이런 저자가 어느날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게 된다.
"머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머리를 쓰는 일로 먹고 살기를 바라는 거야?"
이런 의문을 품은 이후로 저자는 자신의 뇌에 대해 알기 위해 심리학 실험에도 자청해서 참여하고, 자신을 대상으로 중독 실험도 직접하고, 진화심리학자들과의 토론도 하면서 자신의 뇌의 작동 방식에 대해 점차 알아간다. 저자 자신이 과학에 문외한에서 과학 지식을 점차 습득해 나갔으므로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지식들은 사람들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지식을 습득해 가는 과정을 그대로 따라가기만 해도 우리는 진화심리학이 밝혀놓은 우리 의식의 비밀을 꽤 많이 알 수 있다. 모두 다는 아니지만 대략 몇 개만이라도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17세기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과학학회라고 할 수 있는 영국왕립학회가 우리를 속였다. 학회의 회원들은 교회와 마찰을 피하려고 의도적으로 마음이나 영혼에 대한 문제들을 회피했다. 그 결과 과학은 마음의 물리적 측면을 탐험하려는 시도를 늘 피해갔다. 한편 교회는 영혼이 초월적이고 비물질적이라는자신들의 견해를 강요해 왔다."
"예일대학교 발달심리학자이자 <데카르트의 아기>라는 책의 저자인 폴 블룸Paul Bloom은 다른 이론을 내놓았다. 그는 우리가 모두 '상식적 이원론자'라고 주장한다.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마음과 몸을 분리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은 두 가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물리적 세계에 대한 사고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세계에 대한 사고방식이다.각각의 사고방식은 진화론적 이점이 있으나 두 기능은 서로 분리되어 있고 적어도 양립할 수 없다. 사회적 뇌는 물리적 뇌를 이해할 수 없고, 따라서 사회적 사고 활동이 일어나는 동안 물리적 뇌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고 만다."
여기서 언급한 폴 블룸은 내가 이미 요약해 둔 '선악의 진화심리학'의 저자이다.
"숨쉬기와 같은 기본적인 기능을 관장하는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뇌간, 운동 기능에 필수적인 꾸불꾸불한 소뇌, 주의, 언어, 의사 결정과 같은 고차원적 기능을 수행하는 주름진 대뇌를 보여주었다. 다음에 뇌 반구를가지고서 뇌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의 감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른바 변연계라는 곳도 보여 주었다."
"진화심리학은이원시적인두뇌('처음 읽는 진화심리학'에서 언급한 '사바나 원칙': 인간의 두뇌는 인류 초창기 환경에는존재하지않았던개체와상황을파악하고대처하는데어려움을겪는다.)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아 내려고 노력할 뿐 아니라 그 지식을 사람들이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에 대해 적용하려는 학문이다."
"우리의 선사시대의 뇌는 학습 능력에 한계가 있으며, 그 한계는 대부분 스스로 부과한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무의식적으로 배우기 편한 대상을 선택한다. 따라서 어렵다거나 쉽다는 건 학습하고자 하는 대상의 외부적 특성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빚은 결과인 셈이다."
"흥분하기는 쉽다. 흥분은 우리 뇌가 하고 싶어하는 일이다. 그래서 흥분 상태를 '우세한prepotent' 반응이라고 부른다. 반면 흥분을 억제하는 데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발적 주의'의 경우 뇌는 이중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즉 한 경로의 정보를 처리하면서 다른 경로는 억제해야 한다."
"우리 몸은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의 조절을 받는다. 이 두 체계는 심장 박동, 혈액 흐름, 호흡과 같은 신체 기능을 흥분시키거나 억제한다."
"편도체는 정서적 가치와 연관된 모든 자극에 관여한다. 연구자들은 포르노 사진이나 유명인의 사진부터 곡물 시리얼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다양한 자극을 동원해 편도체의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편도체는 무엇보다도 공포 반응에 관여하는 역할로 널리 알려졌다. 우리가 흔히 '투쟁 또는 도피'라고 부르는 스트레스 반응 말이다."
"우리는 어떤 것을 원하지 않아도 좋아할 수 있다. ……… 우리는 또한 어떤 걸 좋아하지 않아도 원할 수 있다."
"'좋아하기'와 '원하기'의 차이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설명은 이렇다. 가장 큰 보상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는데 좀 더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 두 가지 측면이 서로 떨어져 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원하기'는 "선택을 놓고 경쟁하는 음식, 섹스, 그 밖에 다른 보상을 서로 비교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종의 '자극 현저성'들의 신경학적 공통 화폐와 같은 것"을 만들어내도록 진화되었다. 다시 말해서 '좋아하기'는 어떤 하나의 자극이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반면,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자극을 비교하려면 '원하기'라는 요소가 필요하다. 결국 이것은 '수프, 아니면 샐러드?'의 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원하기'는 우리로 하여금 어떤 것이 좋은지 나쁜지를 반드시 알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추구하도록 진화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심리적 반응에 기초한 '좋아하기'와 달리 '원하기'의 경우 숙고가 가능하다. 그뿐아니라 '원하기'는 꼭 합리적이거나 경험에 의해 좌우될 필요도 없다. 어쩌면 뉴욕은 내가 돈을 벌기에 좋은 곳인지도 모른다. 비록 내게 적합한 도시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유전자는 영화 대본과 같다. 바꿀 수 없는 기본적인 줄거리 요소도 있고, 반드시 들어가야 할 장면도있다. 그런데 그 대본으로부터 제작되는 영화는 다양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같은 대본을 각기 다른 감독과 배우에게 맡기면 매번 전혀 다른 영화가 나온다."
"알코올은 확실히 뇌에 해롭다. 뇌의 생리적 측면과 뇌의 화학적 측면에 전반적으로 해를 준다. 만성적 알코올 남용은 전반적인 뇌의 수축, 신경세포의 위축과 뇌, 특히 피질의 생리적 대사 감소를 가져온다."
"중독이라면 우리는 범인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지목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지난 20년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뇌를 특정 자극에 반응하도록 길들이며 살아왔다. 와인 한 잔이나 라스베이거스의하룻밤이 나를 망치지야 않겠지만, 그것은 미묘한 방식으로 다른 가능성을 지워버린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도박을 하고,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면서 보냈던 시간은 나로 하여금 독서나 악기를 배운다거나 그 밖의 유익한 다른 활동을 추구할 시간을 모두 빼앗아 버렸다."
"뇌를 기계에 비유하자면 일종의 학습과 기억의 기계라고 할 수 있다. 기억이라고 하면 나는 언제나 신경과학자들이소위 '자서전적 기억autobiologicalmemory'이라고 부르는 기억만을 생각했다. 어떤 사건에 대한 명백한 기억 말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기억에는 훨씬 더 넓은 범주가 있다고 본다. 예컨대 내 주의력 문제 중 일부는 단기 기억 또는 작업 기억의 결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편 공포의 조건화 실험에서 내 뉴런들이 학습한 것은 일종의 암묵적 기억imlicit memory으로 간주할 수 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뇌의 특정 부분이 나이를 먹더라도 새로운 뉴런을 성장시킬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자신이 직접 피실험자가 되어 자신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알아가던 저자는 그 자체로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토로한다.
"다른 신경과학에 대한 대중 서적들은 대개 그런 식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저자들은 뇌의 구조와 절차를 차갑게 해부해 나간 다음에 마지막에는 박애적이거나 인간적인 마무리로 독자의 마음을 위로하려 언제나 희망적이거나 보상이 될 만한 이야기, 미래에 답을 얻어야 할 질문을 던지는 식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설사 뇌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 삶엔 통제해야 할 게 너무나 많다. 나는 오언(저자의 아들)을 위해 뭐든지 할 작정이다. 언제나 그를 사랑하고, 지지하고, 도울 것이다. 하지만 뇌에 관해서라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오언의 몫이다."
이 책은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이공계를 전공했다 하더라도 진화심리학에 밝지 않은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그런 책이다. 소설 형식으로 서술해 놓아서, 학술서에서 느낄 수 있는 딱딱함이 없어서 읽기가 아주 편하다. 당연히 이 책도 강력 추천 목록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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