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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놀라운 가설 - 프랜시스 크릭

thinknew 2017. 2. 16. 16:53


정신과 육체는 별개의 존재라는 생각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계몽시대에 데카르트가 깊은 추론 끝에 내놓은 심신이원론은 의식을 다루는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대략 19세기 후반에 심리학이 실험과학이 되면서 의식도 과학적 연구 대상으로 편입된다. 여기에 신경생리학의 발전이 더해져서 결국 의식은 뇌의 작용이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심신일원론 또는 유물론으로 정립이 된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 과정이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다양한 분야에서의 연구 결과들을 종합하여 심신일원론을 주장하게 되는 초창기 저작 중의 하나가 다음에 요약할 프랜시스 크릭의 '놀라운 가설'이다.



저자는 DNA의 나선 분자 구조를 밣힌 공로로 노벨상을 받은 분자생물학자이다. 그런데 저자는 노벨상 수상 이후 분자생물학에는 거리를 두고, 의식의 문제를 깊이 탐구하게 된다. 이 책은 그런 연구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놀라운 가설이라는 제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놀라운 가설이란 바로 '여러분', 당신의 즐거움, 슬픔, 소중한 기억, 야망, 자존감, 자유의지 이 모든 것들이 실제로는 신경세포의 거대한 집합 또는 그 신경세포들과 연관된 분자들의 작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과학자 답게 과학의 기본은 '환원주의'임을 말한다.
"'환원주의'는 물리학, 화학, 분자 생물학의 발전을 이끈 주요한 이론적 방법인 것이다. 현대 과학의 눈부신 발전은 바로 이 방법론에 힘입은 바 크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접근 방식의 수정을 요구받게 되는 강력한 경험적 증거에 맞닥뜨리게 될 때까지, 우리의 방법을 밀고 나갈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저자가 환원주의 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의식의 생물학적 기반은 환원주의적 방법론에 의해 규명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의식을 모두 설명했다고 할 수는 없고, 뇌에서 일어나는 창발적 현상들을 이해해야 함도 언급한다.
"창발성의 과학적 의미란 -최소한 내가 사용하는 의미는 - 전체가 부분들의 단순한 산술적인 합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 최소한 이론상으로는 - 각각의 부분들의 특성과 움직임 '더하기' 그 부분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어서 뇌가 시각 이미지를 어떻게 형성하는지에 대한 것, 기억의 역할, 뉴런과 시냅스와 대뇌 피질 등의 작동 메카니즘 등에 관한 광범위한 연구 결과들을 종합한다.


저자는 의식을 연구한 과학자답게 단호한 무신론자이다.
"현대의 신경생물학자들은 인간을 비롯해서 다른 동물들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영혼이라는 종교적 개념에 의지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는다." "오랜 사고 습관은 여간해서 사라지기 힘들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하자면 인간이 신을 믿지 않을 수는 있지만 심리적인 측면에서는, 특히 일상적인 생활에서 사람들은 신자와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사고한다."
"사람의 가치를 과학적인 사실에서만 추론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과학적 지식이(또는 그 문제에 한해서 '비'과학적인 지식이) 우리가 자신의 가치를 형성하는 데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 것처럼 가장하는 것은 허황된 일이다."


이 책은 심신일원론으로의 종합에 관한 초창기 저술에 해당한다. 이후 의식의 규명에 대한 많은 진전이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최신의 연구 결과들을 이미 접한 사람들이라면 좀 엉성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리고 많은 내용을 다루다 보니 책의 구성이 좀 산만한 느낌도 있다. 그러나 의식에 대한 최신의 저작들을 아직 읽어 보지 않은 사람에게라면 심신일원론에 대한 입문서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독서 추천은 '일독을 권함'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