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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연을 쫓는 아이 - 할레드 호세이니

thinknew 2017. 6. 28. 17:00

문학작품, 그 중에서도 소설이 독자들에게 전해 주는 것은 삶의 다양한 단면들을 이야기로 들려 줌으로서 간접 경험을 확대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간접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들은 읽는 사람들마다 다 다를 것이다.


이 소설은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기 몇 년 전에 12살을 맞은 두 아이 아미르와 하산에 대한 배신과 속죄와 용서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미르는 하산이 위기에 처했을 때 두려움때문에 그것을 외면한 사실에 대해 평생 죄의식을 가지고 산다. 성인이 될 때까지 그것을 잊었다고 생각했으나 어떤 계기로 그 죄의식이 되살아나고 그에 대한 속죄 의식으로 하산의 아들을 찾으러 탈레반이 지배하는 아프간으로 간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를 찾아서 데리고 미국으로 오지만 아이는 충격 속에 자폐아 비슷한 상태가 되나, 아미르와 하산이 어릴 때 같이 놀았던 연놀이를 통해 아이를 다시 회복시킨다.

긴 이야기 중간 중간에 나에게 와닿은 몇 구절들이 있다.
"나는 그해 여름, 선생님이 이란인들에 관해서 했던 얘기를 떠올렸다. 선생님은 그들이 실실 웃으며 부드럽게 얘기를 하면서 한 손으로는 등을 두드려주고 다른 손으로는 호주머니를 턴다고 했다."
차별을 할 때 특수한 상황을 일반화시켜 그 차별을 합리화하는 과정은 세계 공통이라고 봐도 되겠다.

다음과 같은 구절들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은 선이, 진짜 선이 네 아버지의 죄책감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때때로 나는 그가 했던 일을 생각해 본다. 네 아버지는 거리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고아원을 세우고 어려운 친구들에게 돈을 줬다. 그 모든 것이 속죄하고자 하는 그 나름의 방식이었다. 내 생각에는 그게 진짜 구원이다. 죄책감이 선으로 이어지는 것 말이다."
"라힘 칸의 말이 머릿속에서 멤을 돌았다. “아미르, 너는 그가 물려받은 재산과 죄를 짓고도 무사할 수 있는 특권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머리가 온갖 상념으로 끝없이 복잡할 때, 그 상황을 크고 넓게 보는 것은 사치에 불과했다."
"결국 인생은 인도 영화가 아니다. 아프간 사람들은 ‘젠다기 미그자라'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인생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시작과 끝, 캄야브(행)와 나캄(불행), 위기 혹은 카타르시스에 상관없이 인생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용서는 그렇게 싹트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서는 화려한 깨달음이 아니라 고통이 자기 물건들을 챙기고 짐을 꾸려 한밤중에 예고 없이 빠져나가는 것과 함께 시작되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서두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소설은 읽는 사람마다 깨닫는 부분들이 다 다를 것이므로 내용이 '좋다 또는 나쁘다'는 내가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무거운 이야기여서 재미있다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한번 잡으면 끝까지 읽게 된다. 그러니 읽을 것인지 말것인지는 스스로 판단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