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a beautiful world!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를 기대하면서

독서

오만한 제국 - 하워드 진 I

thinknew 2016. 10. 7. 17:57


미국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그것을 알려면 우리는 과거 미국이 국제 무대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 그리고 우리의 역사에 어떻게 개입했는지를 보면 된다. 우리는 그 역사를 모두 알고 있다. 물론 해석은 여러 갈래일지라도.

또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학은 심리학과 유사한 경로를 거쳐 과학의 영역으로 편입되고 있다. 심리학이 처음에는 정신의 영역을 탐구하는 학문이었다가 정신이 결국은 물질적 육체의 연장선 상의 것이라는 것이 점차 밝혀지면서 과학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사실을 알려주는 학문이었던 역사는 그게 결국은 해석의 문제임이 서서히 드러난다. 그리고 진화론에서, 기록을 남기기 전의 상황을 해석해야만 현재의 상황을 보다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드러남으로써 역사는 필수적인 도구가 되었고, 그 역사는 과학의 한 분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다만 심리학은 완전히 과학의 영역으로 편입된 반면 역사학은 아직 반쯤 걸치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진화심리학에 의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의 문제가 일원론적으로 해석되는 지금도 사회 현상은 생물학적 근원을 가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데에 과학자들이 동의한다. 현실의 사회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역사가 필요하고, 그 역사의 해석은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미국이라는, 가장 최근에 등장한 제국의 문제를 과학적 역사학을 동원하여 분석, 비판한 책이 다음의 것이다. 

저자는 정치학자이다. 그동안 정치학은 현재의 문제를 다루는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동, 서양할 것 없이 지적 전통에 의존해서 논의를 전개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경향을 단호하게 배격한다. 그리고 역사도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함을 강조한다.

"플라톤이나 마키아벨리, 루소, 마르크스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했던 바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학계에서는 끊임없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 나는 20년 동안이나 정치이론을 가르쳐왔지만 그 같은 문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내가 이 사상가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다만 그들의 생각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는 점, 그래서 문제를 명확히 밝히는 데 소용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 우리가 할 일은 위대한 사상가들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역사는 증명한다.." 누군가 이런 식으로 말하면서 역사적 사실들을 인용하려 들 때는 일단 조심해야 한다. 역사에서는 (골라낼 재료들 이 얼마든지 있기에) 인간 행동에 관한 한 어떤 종류의 특성도 증명해 줄 만한 사실들을 언제든지 뽑아낼 수 있다. 똑같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비열하고 공격적이었던 행동의 예만 뽑으면 그 사람의 천성적인 비열함과 공격성을 증명할 수 있고 - 친절하고 다정했던 행동의 예만 뽑으면 천성적인 선함을 증명하게도 되는 것이다."
"비록 그것에 얽매이지는 않더라도 '과학적' 관찰을 하는 과학자들조차 그들의 위치에 따라 관찰되는 바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설령 우리의 생각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모를 정보라 해도 숨기지 않는 것, 사실을 사실대로 우리가 보는 대로 말하는 것, 이런 의미의 객관성이라면 우리는 진정 객관적이길 원한다. 그렇지만 그 어떤 의견이 우리 시대의 사회적인 투쟁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든가, 투쟁의 어느편에도 가담해 있지 않은 듯 행세하는 것이 객관이라면, 우리는 전혀 객관적이고 싶지 않다."
"실제로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미 부와 권력이 특정한 방법으로 분배되고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세계 속에서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현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한다. 전쟁 대 평화, 국수주의 대 국제주의, 평등 대 탐욕, 민주주의 대 엘리트주의 등 여러 이해관계들이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중립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못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른바 전문가들에 대해서는 두 가지 잘못된 가정이 존재한다. 하나는 전문가는 일반 시민보다 문제를 더 명확하게 보고 더 현명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렇지 못하다. 또 하나는, 전문가들이 일반 시민들과 똑같은 이해관계(interests)를 가지고 있으며 똑같은 것을 원하고 똑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 모두를 대변해 결정할 수 있도록 맡겨두어도 좋다는 생각이다."


저자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세계의 경찰국가라고 대외적으로 구축해 놓은 이미지와는 달리, 지금까지 오면서 역사적으로 얼마나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었고, 그것을 극복해 왔으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먼저 마키아밸리즘이라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는 정치론을 비판한다.
"마키아벨리는 공동의 이해관계를 내세워 가장하지 않았다. 그는 '군주에게 필요한' 것을 이야기했다. …… 유배생활 동안 메디치가를 위한 조언서를 쓰면서, 마키아벨리는 도시로 불려가 다시 권력의 중심그룹에 끼게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는 오직 군주를 위해 일하고 싶을 따름이었다."
"우리 시대의 위선은 그보다 한술 더 뜬다. 우리의 마키아벨리들, 대통령 보좌관, 국가안전보장 담당 보좌관, 장관 등은 자신들이 '국가이익'과 '국가의 안전보장' '국방'을 위해 일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문구들은 나라 안의 모든 국민을 한이불자락 아래로 몰아넣음으로써 정부 운영자와 일반시민들 사이에 놓여 있는 이해(利害)차이를 위장해 버린다."


이어서 저자는 폭력과 인간 본성이라는 장에서 공격성에 관한 진화생물학에서의 발견을 적절하게 인용한다.
"이로써 우리는 심리학이든 생물학이든 그 자체의 증거로는 공격본능이라는 주장을 충분히 뒷받침할 수 없으며 그래서 이 저명한 사가들이 역사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격성을 주관하는 유전자라고 밝혀진 것은 아직 없다. 실제로 인간의 어떤 평범한 행위에 대해서도 그것을 주관하는 유전자가 밝혀진 바는 없다. (나는 뇌의 유전적인 결함이 사람을 폭력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이 결함이라는 사실은 곧 그것이 정상적인 특성이 아님을 의미한다.)"
"로렌츠의 글은 종종 인간 내면의 공격적인 본능이 동물들의 행동에서 보여지는 진화론적 기원에서 유래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인용된다. 그러나 로렌츠는 그렇게 확신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이른바 본능이라 불리는 것 중 그 어느 것도 "문화적 가치관에 대한 감정적인 충성"만큼 위험하지는 않다고 말한 바 있다."

참고로 인간 이외에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에 대한 보충 설명에 해당하는 구절도 있다.
"인간 이외의 동물들은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 동물은 추상적인 어떤 것을 위해 조직화된 폭력에 가담하는 일이 없다. 그것은 발달된 두뇌와 문화를 가진 생물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재능이다. 동물은 먹이와 자기방어라는 분명하고 가시적인 이유가 있을 때만 폭력을 행사한다."
"인간이 폭력에 대해 무한한 수용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은 친절을 베풀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 또한 가지고 있다. 상상력이라는 인간의 특별한 능력은 이상주의, 즉 이제까지 존재해 본 적이 없는 보다 나은 세상을 그려보는 일에 막대한 힘을 제공한다. 그 힘은 젊은이들을 전쟁으로 내모는 용도로 오용되어 왔다. 그러나 이상주의의 힘은 정의를 실현하고 전쟁이라는 대규모 폭력을 종식시키는 데 또한 이용될 수 있는 것이다."


'역사의 이용과 오용'이라는 장에서는 미국 역사에서 일어난 많은 사건들을 소개함으로써, 역사가 과거의 사실을 전달해 준다는 생각을 비판한다. 
"객관성이라는 가면은 모든 역사가 과거를 되살리는 일이긴 하지만 현재의 어떤 이해관계를 위해 일한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정당한 전쟁, 부당한 전쟁'이라는 장에서는 1, 2차 세계 대전, 베트남 전쟁 등을 깊게 분석함으로써 정당한 전쟁이라는 용어 자체가 허구라는 것을 보여준다.

'법과 정의'라는 장에서는 '시민불복종'에 대하여 광범위하게 고찰한다. 
"지배이데올로기는 법을 준수해야 할 의무에 있어서 이성적인 대처라든지 인도적 차원의 판별 등은 허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엄격하고도 절대적이다. 그것은 파시스트든, 공산주의든, 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든지 간에 모든 정치권력의 확고부동한 규칙이다."
"법과 정의는 따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게 전통적인 관념이다. 하지만 어떤 법이든 무조건 복종하는 것은 정의를 침해하게 되며, 빠르든 늦든 거대한 무질서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인간에 의한 통치 아래서는 억압자들이 드러난다. 그래서 농민 반란군은 영주를 몰아내고, 노예는 플랜테이션 농장주를 죽이고 혁명가는 국왕을 암살하였다. 하지만 기업적인 관료제와 대의제 국회, 법의 통치가존재하는 시대의 적은 파악하기가 어렵고 식별이 불가능하다."
"법이 정당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판가름하는 시금석은 적법성이 아니라 도덕성인 것이다."
"내 생각에 시민불복종의 원칙은, 우리가 법에 대한 모든 불복종 행위를 참아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법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을 거부하는 데 있다. 법이 아니라 정의(justice)가 궁극적인 잣대가 되어야 한다."
"진실은 우리가 고개를 충분히 돌려 살펴보지 않으면 볼 수 없을 정도로 우리 문화가 우리에게 가르쳐온 바와는 정반대일 때가 많다. 분명 금세기에 우리가 겪은 끔찍한 폭력은 애국심에 호소하면서 전쟁을 요구해 온 정부에 복종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반면에 대체로 비폭력적이었던 양심적인 시민들의 불복종운동은 전쟁의 폭력을 중단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다음 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