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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아인슈타인과 피카소가 만나 영화관에 가다 - 에른스트 페터 피셔

thinknew 2016. 4. 29. 20:15
과학과 예술은 서로 접점이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예술도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여러 시도들이 이루어졌고 성과도 꽤 있다. '괴델, 에셔, 바흐'에서 더글라스 호프스테터는 수학자 괴델, 화가 에셔, 작곡가 바흐를 교차 분석하면서 음악, 미술, 수학이 서로 통함을 보여주었다. 대한민국의 통계물리학자 김범준도 '세상 물정의 물리학'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예술 작품에서 우리가 느끼는 아름다움이 작품의 작은 구성 요소 하나하나로 환원될 없는 것이라면, 결국 아름다움은 구성 요소들 사이의 '관계맺음' 문제이다. ………… 예술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선택하고 요소들 사이의 관계를 치밀하게 조정하는 , 그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바로 내가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는 예술가들이다."


과학을 대중들에게 소개하는 글쓰기로 유명한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이 책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피카소의 입체주의 회화를 대비시킨다.


먼저 저자 자신도 과학을 대중들에게 소개하는 작업이 어려움을 인정한다.
"대중에게 과학을 이해시키는 일은,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려운 문제이다. 상대성 이론처럼 복잡한 이론은 더더욱 그렇다. 현대 과학의 도구로 사용되는 수식의 난해함이 대중이 과학을 이해하는 장애물이 된다. 과학자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4차원의 시공간이나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해 문외한에게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예술을 통해 과학을 이해시킬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과학 지식에 대한 이해가 목적이라면, 다른 길을 통해서 그것을 달성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런 하나는 예술을 통해 열린다."
"예술 작품의 중요한 특성은 개별적인 것을 시시콜콜하게 이해하지 않아도 전체를 파악할 있다는 것이다. 과학 지식이라고 그렇게 이해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저자가 위와 같이 주장할 수 있는 논거는 다음과 같다.
"사람들은 대개, 예술 작품은 아무리 어려운 것이라도 이해할 있다고 생각하면서, 과학 지식은-가장 간단한 조차-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예술의 이해를 통해 과학을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오류이다. 앞의 구절에서 저자도 언급했다시피 사람들은 예술을 이해한다고 생각할 뿐이지 실제로 이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술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고, 과학은 처음부터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서 이해하려 들지 않는 것이다.

아무튼 저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피카소의 입체주의 회화를 교차 분석한다. 뉴턴 역학은 직선적으로 흐르는 절대 시간에서 3차원 공간에서의 물체의 운동을 기술하는데,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에서 이 시공간을 4차원으로 통합한다. 피카소의 입체주의 회화에서도 시간 개념이 공간에 통합된다. 저자는 입체주의 회화가 나타날 수 있는 생물학적 근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현대 신경 생물학에 의하면, 우리 두뇌 속의 시각 기구는 눈으로 관찰한 장면들을 , 고리, , 모서리 등의 기하학적 형상들로 쪼갠다. 원래 우리는 '분석적, 입체주의적'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저자는 예술의 이해를 통해 과학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예술의 이해' 영역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게 '미학'으로서 사변적 논의에 의해 주로 전개된다. 저자의 '미학'에 대한 언급을 한번 보자.
"자연주의자들의 견해는 정말이지 조형 예술에 적용되고, 조형 예술의 이해를 촉진시킨다. 유전적인 메커니즘을 도구로 추론은 심지어 회화를 종류로 구분시킨다. 번째는 보이는 대상을 '실재(현실) 표준'으로 변화시키는 것이고, 번째는 생각이 개입하기 전에 어떤 사물을 눈에 보이는 대로 묘사하는 것이다. 생물학의 언어로는 쉽게 표현할수 있는 차이를 가능하면 적확하게 표현하고자 한다면 무엇인가를 '보는 ' '생각하는 '으로서 그릴 있다고 말할 있다. '보는 ' 망막에 나타나고,'생각하는 ' 어딘가 신경 조직에 숨어 있다. '생각' 나중에 이루어진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눈에 보이는 대로, 혹은 머릿속에서 찾아지는 대로 그릴 있다는 것이다. 방법은 미술의 역사에서 모두 도되었고, 입체주의로 이르는 역사적인 길에서 발견된다."
"인상주의자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고 후기 인상파 화가들은 '생각하는 ' 그렸다."
이런 미학적 설명이 과학을 이해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저자 자신도  다음과 같이 글을 마무리한다.
"빛의 본질은 물질의 본질과 다르다.그러나둘은 같이 신비롭게 느껴진다. 물리학이 이룬 진보 덕분에 더욱 신비하게 느껴진다. 아인슈타인 이전에는 아주 명확해 보였던 것이 이제는 불명확하게 보인다. 물리학은 그들의 일을 했다. 이제 빛과 물질의 본질에 관한 물음은 철학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저자의 글솜씨는 빼어나지만 이 책의 서두에서 저자가 의도했던 바, 즉 예술의 이해를 통해 과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넗히겠다는 의도는 전혀 충족되지 않았다. 게다가 형이상학적 논의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이라면 읽기가 쉽지 않을 듯 하다. 그래서 이 책의 독서 추천은 중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