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식'과 '수치심'이란 관념이 사회학의 주제로 대두된 것은 루스 베네딕트가 '국화와 칼'에서 일본의 문화를 수치의 문화로 분류하고, 그리스-기독교의 영향 하에 있는 서양을 죄의식의 문화로 분석한 것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수치심과 죄의식이란 개념을 베네딕트가 처음 제시한 것은 아니다. 죄의식은 그리스 비극의 중심 개념이라고 할 수 있고, 기독교도 죄의식에 바탕하고 있다. 한편 수치심은 심리학에서 감정의 한 종류로 분류하고, 사회심리학에서 명예의 문화를 분석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으로 인지적 근거를 가진 개념이다. 따라서 죄의식과 수치심을 대립 개념으로 놓고 분석하는 것은 논리적 근거가 없는 것이나 비교문화분석에서는 자주 등장한다. 명예의 문화와 관련하여 수치심이란 감정이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고, 또 죄의식이란 용어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익숙한 것이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고, 여기에 소개하는 임홍빈의 책도 제목이 '수치심과 죄의식'이다.
사회학을 요즘은 사회과학이라고 주로 칭한다. 사회학자들도 자신들을 사회과학자라고 불리기를 원한다. 이는 과학의 영향력이 전 학문의 영역에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일 것이다. 그러나 심리학이 과학의 영역에 완전히 정착한 것과는 달리 사회학은 아직 과학의 영역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는 경향이 크다. 저자도 마찬가지다. 관념적으로만 존재하는 '죄의식'을 감정의 하나로 명확하게 분류되는 '수치심'과 대비시킨 것에서, 저자가 분석에서 과학적 접근과는 거리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다.
다음과 같은 저자의 언급을 보면 그 점을 확실히 알 수 있다.
"20세기 철학에서는 하이데거나 셸러, 샤르트르 등을 제외한 다수의 철학자가 인식능력과 언어, 과학 등의 합리성을 중심으로 '철학의 과학화'라는 경향에 충실했다. 그 결과, 감정과 정서, 욕망 등은 별 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자유의 가능성을 그뿌리에서부터 뒤흔들고 있는 것은 단지 전통적인 유물론이나 오늘날 갈수록 그 영향력을 확대시켜 가고 있는 물리주의적 결정론만이 아니다."
저자는 책의 대부분을 '죄의식'과 '수치심'의 철학적 배경을 탐색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그래서 주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니체, 키에르케고르, 쇼펜하우어 등이다.
저자도 사회학을 사회과학이라고 주장하는 여러 학자들 중의 한명임을 보인다. 그래서 수치심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수치심의 감정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과 관련하는 인지 활동을 수반한다."
그러나 곧 이어 다음과 같이 언급함으로써 과학적인 분석을 할 생각이 없음을 보인다.
"이로써 수치 감정이나 죄책감의 이해에서 우리가 환원적인 자연주의나 개인심리학 혹은 배타적인 인지주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책의 주제에 대해서 사변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은 저자의 다음과 같은 언급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나는 이 책에서 죄와 수치의 감정이 그 어떤 다른 감정들보다 더 인상적인 방식으로 우리 안에 존재하는 '타자'의 존재를 말해 주고 있음을 주장하려고 한다. '내 안의 타자'는 직접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 속에서 그리고 상상의 공간 속에서 모두 체험된다. 우리는 자신의 내면 공간을 타자와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책의 목적을 역시 사변적인 어조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명예에 대한 집단 구성원들의 이해 방식 역시 다양할 수 있다. 소규모의 대면(faceto face) 공동체에서부터 근대화에 저항하는 대부분의 전통사회는 '명예사회'의 흔적들을 간직한다. 그리고 이 모든 사회에서 일관되게 수치와 모욕,'자긍심'은 긴밀한 연관을 구축한다. 그러나 근대의 원리가 확산될수록 '명예사회'는 존재론적 죄의 관념과 함께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대한민국 학술원에서 선정한 우수학술도서'로 지정된 책이다. 그 말은 사회학적 논의에서는 저자의 서술 방식이 일정 정도의 권위를 확보하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주류 사회학에서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을 더 잘 알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죄의식과 수치심이라는 것이 문화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어떤 현상을 이끌어 내는지에 대한 실증적인 지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굳이 읽어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