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a beautiful world!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를 기대하면서

독서

불평등의 재검토

thinknew 2016. 2. 6. 19:59
아마티아 센은 전작 '윤리학과 경제학'에서 주류 경제학이 합리적 선택이론을 바탕으로 수학적 정교화의 길을 가는데 대해, 윤리학을 경제학에 접목시켜야 한다고, 즉 인간의 이타적 본성을 경제학에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책에서는 그 범위를 좀 더 좁혀 불평등에 대해 재검토라는 형식을 빌어 그것이 완화되어야 함을 이야기한다. 불평등을 이야기한다고 하면 완전한 평등을 주장한다고 섣불리 단정하기 쉽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센은 먼저 인간의 다양성을 언급한다.
"인간은 철저하게 다양하다. 우리는 외부 특성(상속재산, 자연적, 사회적 생활환경)만이 아니라 개인별 특성(연령, 성별, 질병에 대한 약성, 물리적, 정신적 능력)에서 서로 다르다. 평등론을 평가하는 일은 이런 폭넓은 인간의 다양성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완전한 평등을 주장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모든 인간은 다 다르다'라는 명제에 바로 발목이 잡힌다. 그래서 다양성을 먼저 인정한 다음 불평등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논의한다.
"전통적으로 정치철학이나 사회철학 또는 경제철학에서 평등론은 특정 공간과 연결되기 때문에 주요 평등주의에서 자주 나타나는 것은 이런 공간들 하나 (이를테면 소득, , 효용) 평등이다."
"평등의 중요성은 종종 자유의 중요성과 비교된다. 사실상 평등과 자유의 같등에 대한 또는 그녀의 입장은 종종 정치철학과 정치경제학에 대한 그들의 일반적 견해를 보여주는 훌륭한 지표로 여겨졌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반평등주의자로여겨질 뿐만 아니라,정확히 자유에 대한 과도한 관심 때문에 반평등주의자로 규정되기도 한다."
"앞절의 논의에 비추어본다면 우리는 이렇게 자유와 평등의 관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해야 한다."
"개인의 복지는 존재의 [ 그대로 '좋음(wellness)'] 이해될 있다. 삶은 상호관련된 행위와 존재로 구성된 '기능' 집합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질 있다. 이런 측면에서 개인의 성취 수준은 개인의 기능 벡터로 여겨질 있다. 적절한 기능은 적절한 영양섭취,좋은 건강 유지, 나쁜 병에 걸리지 않는 것과 조기사망에서 벗어나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것에서 행복한 생활, 자기존중 확보, 공동체 생활에 참여하는 것과 같은 좀더 복잡한 성취수준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있다.  필자가 주장하는 바는 이러한 기능들이 개인의 존재를 구성하므로 이런 구성요소들을 평가하는 형태로 복지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정확히 어떤 기본구조를 선택하든 간에, 우리는 소득 중심에서 능력중심으로 방향 전환을 함으로써 빈곤 극복이 의미하는 바를 좀더 정확히 이해할 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빈곤구제책의 우선성에 대해 좀더 명확한 지침을 얻을 있으며 명백히 서로 다른 상황에서 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부유한 나라에서 빈곤이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 이해할 있다. 슬기롭게 자유의 결핍을 중심으로 빈곤을 이해하는 관점은 근본 관심사의 다양성과 논리적 상관성을 갖는다."

이런 주장을 통해 우리는 센이 불평등을 완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센은 불평등이란 불가피한 것이라고 판단해서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주류 경제학의 틈새에서 불평등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를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소중한 학자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센이 그런 주장을 함에 있어서 실증적 접근이 아닌 관념적 추론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관념적 추론의 허무함을 한번 보자.

"사람들이 기아와 말라리아가 없는 삶을 원한다면, 공공정책을 통한 이런 질병의 퇴치는 '그들이 원하는 삶을 선택할 있는 자유' 향상시킨다."
"실제로 우리가 이제 '말라리아 없는 상태'로부터의 자유를 성취했다고 말한다면 어리석은 짓이리라. 분명히 그렇다. 그러나 리석은 짓인가? 말라리아가 없는 상태는 부담이 아니며 설령 반사실적으로 우리에게 그런 선택이 주어지더라도 상태를 거부할, 대신에 말라리아를 선택할 특별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센도 그럴 이유가 없다고 인정하다시피 '말라이아 없는 삶'이란 선택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예도 한번 보자.
"설령 리치맨 씨가 소득이 높아서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있지만 온갖 기회를 놓쳐서 마침내 비참해졌다고 하더라도 그를 가난하다고 부르는 것은 이상할 것이다. 있고 결핍하지 않게 생활을 꾸려나갈 있는 수단을 갖고 있었지만 자신을 가난하게 만들었다고 해서 그를 가난한 사람으로 수는 없다."
"수단이 없기 때문에 굶어야 하는 사람과 수단을 갖고 있지만 단식을 선택한 사람이 여기에 해당된다. 사람 모두 마지막에는 굶어서 영양결핍 상태에 빠지게 되겠지만 단식하는 사람은 가난하지 않다는 의미에서 수단이 없는 사람- 적절하게 영양을 섭취할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 - 가난하다."
실증적으로 보면 앞에서 든 예들은 모두 관념적으로만 고려될 수 있는 내용들이다. 좋은 삶을 어떻게 정의하든 사람들이 '말라리아가 있는 삶'을 선택할 리 만무하며, 자신의 판단 잘못으로 인해 망한 사람을 들어 불평등이 문제라고 이야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먹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식하는 사람들이 영양결핍상태에 빠질 리도 만무하다.

물론 센이 관념적 추론에 의존하고 있다고 해서 불평등을 바라보는 센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관념적 추론으로는 불평등을 완화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수단을 이끌어내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불평등이 점점 문제가 되어 가고 있는 시대에 센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센에 기대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내가 이 책을 읽는데에 꽤 어려움이 있었다. 물론 그것은 내가 철학적 수사법에 정통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서양철학사를 다시 읽어 봐야 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왜냐하면 철학적 수사법에 익숙해지고 나서 이 책을 다시 읽더라도 결론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떠하든 인문학의 길로 이미 접어든 사람들이라면 학계 주류들의 수사법에 익숙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고, 그런 가운데 센의 생각을 좀 더 잘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 이 책도 독서 추천은 중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