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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과학한다는 것 - 에른스트 페터 피셔

thinknew 2016. 5. 19. 20:14

사람들은 과학을 어렵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과학은 어렵다. 왜냐하면 복잡한 자연현상을 수학적 언어로 간명하게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과학을 수학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전부 이해할 수 없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수학을 동원하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빼버리면 과학적 발견도 대중들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진화론을 이해하는데 수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상대성 이론도 마찬가지다. 상대성 이론 그 자체는 수학을 동원하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지만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GPS의 원리가 상대성이론에 바탕한 것이라는 것은 설명을 들으면 얼마든지 알 수 있다. 그래서 과학을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의 존재가 필요하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이다. 피셔는 학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생물학으로 옮겨간 뒤 과학사가가 된 사람이다. 글솜씨도 빼어나서 대중적인 과학 서적로 '슈레딩거의 고양이'와 '별 밤의 산책자'가 있다. 그런데 피셔는 과학사에 정통하면서도 데카르트적 이원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과학사만을 이야기할 때는 훌륭하나 과학의 이해를 예술을 이해하듯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분에서는 사변적 논의로 되돌아 가버린다. '과학을 배반하는 과학'에서 그런 점을 충분히 보여주었기 때문에 이 책, '과학한다는 것'은 3분의 1 정도만 건성으로 읽고 더 읽기를 그만두었다.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면 이 책도 읽을 필요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과학이 지난 수세기 동안 엄청난 진전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자연을 모두 설명할 수 없기는 하다. 그런데 저자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내가 보기에 오늘날 이런 괴리는 1960년대보다 깊어졌다. 다양한 과학적 작업에서 통일성을 찾기는 불가능하며, 그런 탐구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갖기는 더욱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저자는 예술과 과학을 계속 대비시킨다.
"예술적 감성이 없는 과학은 인간을 소외시키며 우리는 그런 과학을 신뢰할 없다. 우리가 과학을 신뢰하게 되는 것은 과학도 예술 작품과 마찬가지로 감성을 가진 인간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다."

이 정도는 그런대로 보아줄 만 하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언급을 보면 좀 황당해진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낡은 것을 배울 필요가있는데, 그래야만 그것이 어떻게 새로워질 있는지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낡았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예컨대 근대과학이 탄생하기 전에 존재하던 연금술과 점성술은 오늘날에도 배울 것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흥미진진한 영역이라고 있다."
"사람들이 점성술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 우주의 천문학적 기원을 찾을 있다는 점이다."

과학은 타당한 질문을 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그런데 저자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 번째 유형의 질문은 사실을 알기 위한 것이다. ……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정보 수집과 이론적 고찰을 통해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얻어지며 명쾌하다. 하지만 사실이 아닌 가치나 목적 등에 관한 질문도 있다. 어떤 인생을 것인가,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가끔 기분이 그렇게 좋을까 등등.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자연과학적으로 확정적인 답변을 없다. 낭만주의자들은 정치적, 사회적 질문들이 이런 종류의 질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구절은 이 책을 더 읽기를 포기하게 만든다.
"우리 인간을 낳은 것은 자연이다. 그리고 인간을 순수하게 객관적으로, 객체로 보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위배되는 일이다."

서두에도 언급하였다시피 이 책은 독서 추천 불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