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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2.22 부유한 노예 - 로버트 라이시



우리는 생활수준을 과거와 비교해 보았을 때, 확실히 잘 살게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또 삶이 더 팍팍하다고 느낀다. 게다가 '느린 삶'이라는 말이 화두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런 느낌은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문제여서 분석이 필요하다. 그 분석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나왔지만, 그 중에는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에서 고위 관료로 지내다 가족과의 시간을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직을 던진 로버트 라이시의 책도 있다.



이 책의 원 제목은 "The Future of Success" 즉 '성공의 미래'이다. 번역 제목보다 훨씬 더 가치중립적이지만 책의 내용을 보면 번역 제목도 상당히 타당함을 알 수 있다. 저자가 밝힌 이 책의 저술 목적을 보면 그렇다.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과 삶을 꾸려가는 것, 그리고 두가지를 병행하는 것이 왜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가에 관한 것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저자는 대량 생산 경제와 지역 경제로 표현되는 산업사회에서, 저자는 신경제로 표현하고 우리는 정보화사회로 알고 있는 그런 사회로 전환되면서 파생된 사회 변화를 분석한다.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는 경제 대공황이 극에 달했던 1930년, 다음과 같은 희망적인 예언을 한 바 있다. 앞으로 100년 후 영국은 경제적으로 여덟 배는 더 잘 살게 될 것이며, 따라서 원하는 사람은 1 주일에 15시간 정도만 일하면 될 것이라고 말이다. 물질적인 여러 욕구도 완벽하게 충족되기 때문에 돈을 좋아하는 것이 사회적인 지탄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첨단 기술로 인해 일자리가 없어지고 우리 대부분이 빈곤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신(新)러다이트주의자(Neo-Luddites)의 주장이 일부에서 나오고 있지만, 이는 틀릴 뿐만 아니라 어리석다고 할 수 있다. 커다란 장벽을 세우고 무역이나 이민을 줄여가는 고립주의자나 외국인 혐오주의자들의 생각은 잘못되었으며 때로는 위험한 것이다. 다국적 기업이나 국제적 자본 투자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편집증 환자 같은 주장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며,환각 상태에서 나온 말이라고 볼 수도 있다. 우리는(당신이나 나 그리고 거의 모든 미국인들은) 신경제의 커다란 혜택을 받고 있다."
"깜짝 놀랄 정도로 유리한 조건, 꿈도 꾸지 못했던 기회, 다시 말해 '우리가 원하는 바로 그것을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가장 유리한 가격에 원하는 즉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여기에 완전히 도달한 상태는 아니다. 아니, 완전히 도달하지 않는 분야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방향으로 가고 있음은 분명하고 그 속도도 더욱 빨라지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새로운 기술로 인해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더 좋은 조건으로의 이동이 쉬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판매자 간의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으며, 판매자들은 최상의 구매 조건을 제공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 살고 있다. 그 결과 선택의 폭은 더 넓어지고 선택의 조건 또한 더 좋아지고 있다. 구매 조건이 더 나아지고, 기회는 더 커지고, 가능성은 그 끝이 없어 보인다. 악순환이 아닌 선순환이다. 구매자로서의 우리는 이러한 순환의 혜택을 받고 있다."
"이것이 이야기의 전부라면, 이제 우리에게는 행복하게 살 일만 남았고 이 책은 아주 짧게 끝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삶에는 최상의 조건 외에 더 많은 것이 있다. 우리는 단순히 구매자나 투자자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 대부분이 생계를 위해 일해야만 한다. 또한 우리에게 중요한 관계, 우리가 누구이며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주는 관계가 있다. 바로 가족, 친구, 지역 사회가 그것이다. 신경제는 우리 삶의 이러한 면까지도 바꾸어 놓고 있다. 또한 일과 관계된 우리의 삶과 일 외적인 우리의 삶 모두 더 좋은 방향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구매자 천국의 시대'는 이렇게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문제를 수반한 채 우리를 찾아왔다. 바로 여기에 이 시대의 딜레마가 있다."


그 딜레마는 다음과 같다.
"일반적인 미국인들의 1년 근무시간을 보면 유럽인들에 비해 350시간이 더 길다. 일 많이 하기로 유명한 일본인보다 더 길다."
"신경제가 대단한 것만큼이나 우리는 삶의 일부를 신경제에게 빼앗기고 있다. 가족과의 삶, 우정, 지역 사회 그리고 우리 자신의 삶의 일부가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손실은 우리가 얻고 있는 혜택과 함께 발생하고 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전환도 마찬가지지만 산업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의 전환은 기술의 발전에 더욱 의존하고 있다. 그에 대해 저자는 기술의 발전을 수용할 수 밖에 없음을 이야기한다.
"기술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한, 결국 혁신의 정신은 미국 경제 전체, 더 나아가서는 전세계 경제 전반에 걸쳐 확대될 것이다. 더 좋은 조건의 거래를 원하는 구매자에게는 말할 나위 없이 좋은 소식이다. 그러나 앞으로 살펴볼 내용과 같이, 우리 삶의 다른 면에 있어서도 이 소식이 확실히 좋은 소식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기술은 앞으로의 발전 속도를 결정할수 있지만, 운명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경제를 사회적인 선택이란 맥락에서 말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전세계적인 첨단 기술 경제의 부상은 이제 누가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물론 미국은 선택하지 않았다. 최소한 직접 선택한 것은 아니다. 선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실제로 경제 시스템에 대한 모든 종류의 선택은 사회가 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선택인지를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다. '자유 시장'은 자연 상태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태초에 신이 만든 것도 아니며, 신의 의지에 따라 유지 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자유 시장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으로 개인의 권리와 책임에 대한 무수한 판단이 모두 합쳐져서 탄생한 것이다."
"논리나 분석만 가지고는 답을 찾을 수 없다. 문화나 시대에 따라 그 답은 다르게 나올 것이다. 답은 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치에 의해 내려진다. 사회의 결속, 경제 번영, 전통, 신앙심 등에 어느 정도 무게를 두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신경제 또는 정보화사회의 현재를 분석하면서 저자는 기크와 슈링크를 언급한다. 기크와 슈링크에 대한 저자의 개략적인 설명은 다음과 같다.
"기크는 기술, 과학, 시각 예술, 문학, 기호 체계와 같은 분야 나름의 규칙 및 상황에 끊임없는 매력을 느낀다. 반면에 슈링크는 사람들이 원하고 두려워 하는 것, 갈망하고 필요로 하는 것, 아직 검증이 안된 여러 가설 등에 끊임없는 매력을 느낀다. 슈링크가 다른 사람과의 교류 쪽이라면, 기크는 스스로 행하는 분석 쪽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크가 한 분야에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알고 있다면, 슈링크는 사람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저자는 기크와 슈링크가 모두 필요할 뿐 아니라 두 부류의 사람들이 협력해야 신경제에서 살아 남을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 외에도 정보화사회에서의 삶을 분석하면서 여러가지 이슈들에 대해 언급한다. 예를 들어, 고용 형태의 변화와 그로 인한 노조의 쇠퇴 문제, 소득 불평등의 문제, 결혼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 인맥의 중요성이 점점 강해지면서 학벌도 더욱 중요해 지는 추세, 가족의 축소와 붕괴 현상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런 다음, 우리의 대응 자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두 가지 극단적인 경우를 생각해 보자. 한쪽에는 신러다이트 주의를 받아들이는 사회가 있을 수 있다. …… 다른 한쪽에는 악셀레이터 페달에 발을 올려놓고 자가 질주하도록 한다. …… 두 극단 사이의 최선의 위치는 어디일까?"
"우리는 소비자로서 얻는 환상적인 조건에 대해 기뻐하면서 다국적 기업이나 무역, 이민자들이 마구 침입해 온다고 안달하며, 또 이와 동시에 일이 삶의 나머지 부분에서 개인적인 것을 많이 앗아가고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다소 모호한 결론으로 글을 맺는다.
"우리는 한 시민으로서 신경제를 우리의 필요에 맞게 조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또 그런 과정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쟁의 형태를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모든 사회는 더 큰 규모의 이러한 사회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 아니 실제로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시장은 이러한 사회적 선택에 의해 형태를 갖춰 나갈 것이다."
"그리고 가족과 각 지역 사회는 그 선택에 따라 기능을 해나갈 것이다. 각 개인은 그 선택 내에서 자신의 삶의 균형을 이룰 것이다. 전체적인 사회의 모습은 이러한 여러 결정을 통해 형성될 것이다. 어떻게든 선택은 이루어질 것이다. 선택을 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여러 선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열려진 공간에서 모두 함께할 것인지, 아니면 어두운 곳에서 혼자 그 선택과 씨름하고 있을지가 궁금하다."


과거 또는 현재를 분석하는 책에서 독자들이 유념해야 할 것은 그런 분석이 미래를 예측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 위의 저자의 결론의 모호함에서도 그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또 진보의 어려움도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미래을 알고 싶어하므로 과거 또는 현재의 분석을 통해 미래를 예측해 주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해 줄 수 있는 이야기가 모호하거나 '알 수 없다'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진보주의자들이 섣불리 예측을 시도하면 그 예측이 맞아 떨어질 확률이 그다지 높지 않기 때문에 보수주의자들의 비판의 표적이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기대때문 만은 아니더라도 미래을 구상하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에 현재를 분석한 책은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독서 추천은 '일독을 권함'으로 한다.


Posted by think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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