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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은 종교적 수련에서 출발했지만 현대인들의 마음의 평안을 얻는 방법 중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수행자들이 경험적으로 알게 된 지식을 신경생리학은 확인해 준다. 매튜 리버먼의 '사회적 뇌 - 인류 성공의 비밀'에서 "명상을 통해 얻는 마음의 평온은 뇌와 신체에서 일어나는 생화학적이고 신경인지적인 과정들의 결과이다."라고 밝혀 놓고 있다.

과학은 명상의 효과를 확인시켜 주지만, 실제로 명상을 수행하는 수련자들은 '인간의 본성의 추구'라는 증명되지 않은 무언가를 향해 있다. 그리고 불교와 힌두교 계통의 신비주의 종교에서 득도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종교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명상을 권유하는 사람들이 그 효과의 근원을 종교에서 찾는 경우가 흔히 있다. 바로 여기에 옆길로 샐 가능성이 존재한다.

수행자들이 하는 만큼, 명상을 고도로 수련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 답은 명상 상태가 보편적으로 되었을 때 어떤 상태가 될 것인지를 추론해 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모든 사람이 명상 수련을 고도로 행하면 개개인은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사회성을 바탕으로 한 인류의 문명은 붕괴될 것이고, 그 끝은 인류라는 생물종의 멸망이다. 불교에서는 세속의 인연을 끊어내는 것을 수행의 목표로 삼지만 그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수행자가 수련하는 동안 누군가는 밥을 해 주어야 한다. 생리 현상도 해결해야 한다. 사회성을 완전 차단한 상태라면 들판에서 홀로 살아가는 어떤 동물을 가정할 수 있지만, 사람이 그런 상태에 놓이면 명상 수련 자체를 할 수가 없다. 그러니 명상이란 정신 건강에 좋은 것임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알 수 없는 무엇인가를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은 오류다. 다음 책은 바로 이 과정을 보여준다.


저자는 심리상담사이다. 명상 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람이기도 하다. 물론 그 깨달음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다. 그런 저자도 명상 효과의 근원을 불교로 보고 있다.
"불교가 마음의 본질에 대해 보편적 진실을 밝혀냈기 때문일 겁니다."
"불교에서는 자아가 왜곡된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데 가장 큰 가치를 둡니다. 이로써 지혜가 구현되고, 지혜야말로 불편한 정서와 건강하지 못한 마음을 해독할 열쇠니까요."


저자가 명상을 통해 경험적으로 알게 된, 다음과 같은 내용은 크게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가 현실의 본성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이나 사물, 사건 심지어 사고와 감정까지 모두 제각기 독립적이라고 여긴다는 겁니다. 거듭 말하지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고통의 원인이 되는 세 가지 파괴적인 정서를 설명했습니다. 반감, 집착, 무지가 그 세 가지죠. 이 세 가지 정서는 다시 … 세 가지 조건 즉, 육체적인 고통은 피할 수 없다는 것, 삶은 변화의 연속이며 예측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현실의 진짜 본성을 모른다는 것과 연결됩니다."


현대 심리학은 과학의 한 분과로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심리학을 언급하면서도 과학 이전의 심리학에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심신이원론'에 의존해서 설명을 시도한다.
"즉, 생명체는 '형체 또는 몸'과 '마음'이라는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졌을 뿐이라는 것이지요. 마음은 비원자적, 비물질적이 어서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으며 냄새를 맡거나 만지거나 맛을 볼 수도 없습니다. 또한 마음은 정서, 느낌, 생각, 환상, 꿈, 심사숙고, 기분, 그리고 의식과 무의식 전부를 포함합니다. 우리는 수많은 의식적 생각을 갖고 있고 그 생각들이 흔히 우리의 '자아'를 이룹니다. 그러나 지각 아래에 있는 무의식의 영역에도 무수한 인상과 평가가 존재하며, 이것들 역시 통제할 수는 없지만 의식과 마찬가지로 '마음 속에' 있습니다. 감각은 끊임없이 인상을 만들어내며, 우리가 의식하는 것은 그중 일부입니다. 이런 '마음'을 규정하는 방법 중 하나는 마음을 '모든 경험의 주체'라고 보는 것입니다." "'내면 어딘가' 또는 '온몸에 걸쳐서'라는 흔한 말 빼고는 마음의 위치를 정확히 가리킬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형체없는 인식을 몸과 동일시할 수는 더욱 없습니다."

저자는 가끔 과학적 심리학의 연구 결과를 언급하기도 한다.
"최근의 연구에서는 뇌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유연하며, 실제로 뇌의 신경회로가 새로 연결되기도 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 말은 마음 훈련을 신경회로의 변경 및 재배치라는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게 합니다."
"윤리와 도덕은 자연스레 정신 건강과 함께 갑니다. 이 말은 '옳은' 행동인지에 대한 확신은 자신의 심리에 대한 이해에서 옵니다. 윤리적인 행동이라면 자신과 다른 사람의 정신 건강에 보템이 되기 마련이니까요."


명상 효과를 심리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저자의 시도는 '정신은 육체와는 별개'라는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그다지 유용하지는 않지만, 명상 효과는 분명한 것이므로 저자가 제시한 다음과 같은 방법론은 관심을 가진 만하다.
언제 어디서나 하루 10분 마음 훈련
1. 하루 일과 시작하기 전에: 하나부터 열까지 숫자 세기
2. 내 마음 구경하기: 아이가 초원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듯이
3. 차 안에서: 신호대기 때마다 대상 관찰하기
4. 메모하기: 한 시간 동안 내가 느낀 모든 것
5. 꽉 막힌 도로에서: 눈앞의 현실 '해체'하기
6. 실험: 스스로 불편해짐으로 '정신 근육' 단련하기
7. 여유로운 시간에: 나는 어디서 왔나?
8. 잠자리 들기 전에: 하루의 내 모습들에 이름표 붙이기
9. 동요하는 마음에 숨은 것: 사소한 것을 좇는 마음 깨닫기.
10. 측은지심 기르기: 시선을 타인과 세상으로


종교는 믿는 자들에게 위안을 준다는 분명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게 절대화되면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마음의 평안을 얻는데 명상이 유용하긴 하지만, 저자는 그 효과의 근원을 불교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로 하여금 명상을 수련의 수단으로 오도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이 책의 독서 추천은 중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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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성공과 자기계발에 관해 조언하는 책이 널리 읽힌 적이 있었다. 지금도 좀 뜸하긴 하나 여전히 인기가 좋은 책들에 포함된다. 성공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이 줄어들지 않는 한 이런 류의 책들은 여전히 인기를 얻을 것이다. 그것들은 거의 반드시 심리학이라는 포장을 동원한다. 요즘은 심리학이 과학의 한 분야로 정착한 상태여서 과학의 권위에 은근슬쩍 묻어가려는 상술이 개입한 결과이다. 문제는 그 심리학이 오직 이미 성공한 사람들의 경우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성공 및 자기계발에 대한 조언이 오직 희망만을 전해준다면 그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장미빛 희망에만 취해 있기에는 삶이란 그렇게 녹록치가 않다. 장미빛 희망을 주는 것도 심리학이지만 현실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도 역시 심리학이 담당할 수 밖에 없다.


이 책의 저자는 심리학자이다. 그러므로 심리학 전체를 엉터리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심리학으로 포장된 성공 및 자기계발에 동원된 논리들이 엉터리라는 것이다. 저자의 언급을 보자.

"모든 자기 계발서의주요한 장점이기도 하면서 사실상 독자를 가장 그릇된 길로 이끄는 단점이 바로 이것이다. 여러 가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건들과 그에 따른 복합적인 감정들을 단순화해서 소화할 있다는 신화이다. 물론 이런 일이 정말 가능하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인간은 복잡하고, 인간의 삶도 복잡하며, 인간이 헤쳐 가려고 노력하는 사회적 환경 역시 복잡하기 그지없다. 심지어 가장 단순하다고 있는 인간의 행동조차 헤아릴 없이 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그러니 일시적으로 고통을 경감시킨다는 이유만으로 잘못된 희망을 부여잡고 있기보다는 우리 앞에 어떤 문제가 펼쳐져 있는지 명확하게 판단하고 심리학이나 자기 계발이라는 영역의 학문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 있는지 냉철하게 평가해 필요가 있다."

심리학자들이 과학적 방법론을 동원하여 밝혀낸 현실은 어떠할까?
"언제 어디서나 자기 감정에 진실해야 한다는 통념에는 감정이란 것이 자발적으로 일어나며 사람에 대한 진실이 드러나는 기준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감정을 조절하며 살아가는 거라기보다는 사회가 우리의 감정을 조종하는 측면이 훨씬 강하다는 것이다."
"15세기에도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권력의 심리학을 이해하며,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방식은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방식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어떤 행동을 하는지가 아니라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를 연구하는 사람은 자신을 보존하기 보다는 몰락하는 길을 배우게 것이다.""
"소설가 로즈 매콜리는 한때 이렇게 불평한 있다. "대화를 하고 나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가 저지르는 가장 흔한 착각 하나이다.""
"인간의 삶이란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것이므로 이것을 철저하게 통제하려는 노력 자체가 헛된 것이라는 뜻이다."

저자도 과학이 사람들을 허무로 이끄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과학은 분명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 또한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희망을 허물어뜨린다면 나는 정말 형편없는 심리학자일 것이다. …… 그러니 장에서 조목조목 엉터리 심리학 이론에 대해 비판하긴 하였으나 이론이 만약 불치병에 걸린 환자에게 마지막 희망을 품게 해준다면 어느 정도 장점은 갖고 있다고 평가하고 싶다."
"인간이 불안정한 이유는 무수히 많다. 그러니 그런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는 우리가 불안과 두려움에 떠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리고 원초적 두려움을 상쇄하기 위해 우리는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에 매달린다. 비록 무작위적인 사건에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라고 해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여러 현인들이 통찰하였듯이 인생에 있어서 운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저자도 역시 동의한다.
"에드 스미스가 주장했듯이, 우연은 삶에서 우리가 인정하고싶은 것보다 훨씬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는 자신이 통제권을 쥐고 있어야 스스로의 행복을 만들어갈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지만, 현명한 철학자 에픽테토스가 수백 전에 지적했듯이 "행복으로 가는 길은 하나 뿐이며,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의지력의 범주를 벗어나는 일에 대한 걱정을 멈추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철학이 추구했던 가치와 목적론이 앞서는 관념을 바탕으로 삶을 이해하는 태도는 문제가 많다.
"' 안의 진정한 자아'라는 것은 단지 신기루에 불과하다. 필사적으로 진정한 자아에 매달리려고 하다가는 인간으로서 자신의 진정한 잠재력을 함양하기는 커녕, 정말로 숨이 막혀버릴지 모른다."
"우선, 우리가 행복을 추구할수록 오히려 행복이 우리를 피해가는 경향이 있다는 증거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가끔씩 즐거움의 진가를 알아보기 위해 괴로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기도 한다."
"인본주의적 상담의 전통에서 치료사의 주된 임무는 로저스의 유명한 표현대로 '무조건적인 긍정적 관심' 표현하는 것이다. 남을 비판하려 하는 치료사는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동정심은 실제로 강력한 치유의 힘이 된다. 그러나 심리학이 문제에 대해 언제나 스위스처럼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사람들이 삶에 대한 조언을 추구하는 이유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삶은 때때로 풍요롭고 놀라울 있지만, 동시에 매우 복잡하기도 하다. 결과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난간 위로 고개를 내밀고 "나를 따르라! 내가 길을 알고 있다" 외칠 있다면 매우 용감한(혹은 바보 같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어떻게 흘러갈지 없는 변수, 여러 선택지, 우연 혹은 신비하게 가지를 치면서 알게 되는 사람과 사건들 등등으로 구성된 삶은 자체가 안고 있는 특징 때문에 미래를 예측하기가 너무나 어렵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복잡한 인간의 삶이라는 미로를 빠져나갈 있도록 지침을 제시해 주는 자신감 있는 목소리를 갈구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런 상태를 계속 용인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것은 변한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변화가 또다시 우리 가까이 다가와 있다. 과학의 진정한 가치는 우리에게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확실하게 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금 일깨워주는 데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가지 분명해 보이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은 결점이 있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토록 열정적으로 스스로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사실을 인식하고 자신에게 약간의 연민을 느끼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위험을 무릅써야 할지도 모른다. 누가 알겠는가? 언제나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많은 즐거움을 가져다 있을지를. 사랑하는사람과 함께 보낼 있는 시간이 조금 많아질 있을지를. 긴장을 풀고 담소를 나누며, 그저 즐길 있는 시간, 혹은 당신이 조금 가식적인 것을 선호한다면, 그저 '멋진 미스터리 안으로 표류해 들어 ' 시간이 많아진다고 상상해보라. 기대되지 않는가?"

저자는 심리학에 너무 의존하지 말 것을 권한다.
"심리학은 특정한 경우 일부 사람들을 치료해 수도 있지만, 당신이 어떤 사람이 것인가 하는 문제의 전문가는 당신 사람 뿐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로 글을 마무리짓는다.
"드제너러스는 2009 뉴올리언스 툴레인 대학의 졸업식 연설에서졸업생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조언을 하지 마세요. 결국 화가 되어 여러분에게 돌아갈 겁니다. 따라서 제가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조언은 자신에게 충실하면 모든 일이 거라는 겁니다.""

진화심리학이 밝혀놓은 인간의 본성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우리가 추구했던 삶에 대한 태도를 대폭 수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치를 앞세우는 사람들이 이런 태도를 허무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을 우리는 거부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실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삶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않을까? 그래서 이 책을 강력 추천 목록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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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리버먼의 '사회적 뇌'에 보면, 무식한 유사 일베들이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자.
"데닛의 예가 시사하는 것처럼 인간은 다른 사람이 틀린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있다. 그러나 이런 능력은 타고난 것이 아니다."
"작업기억이란 여러 정보 조각들을 정신적으로 그대로 보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수시로 갱신하는 심리적 과정을 가리킨다. 예컨대 컴퓨터 화면에 일곱 자리 숫자를 띄워 보여 다음 그것이 화면에서 사라지고 10초가 지난 뒤에 숫자들을 기억해 보라고 했을 , 마음 속에 숫자들이 생생하게 남아 있도록 작용하는 것이 바로 작업기억이다."
"당신이 문장의 끝에 도달했을 즈음에 문장 전체 의미를 이해할 있는 까닭은 당신이 작업기억을 사용해 문장의 처음을 마음속에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식한 유사 일베들은 자신들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글에 대해서는 작업 기억을 동원하지 않는다. 그런 성향에 대해 리버먼은 이녀석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제공한다.
" 연구에 비추어 심리화 체계는 대부분의 맥락에서 의식적인 노력이 수반되어야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중요한 데, 왜냐하면 사람들은 노력하기를 싫어하므로 일상생활에서 심리화 체계의 사용을 게을리하는 경우가 종종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부분 노력을 피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것이다. 마찬가지로 힘든 작업을 피할 있는 정신적 요령이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 대부분은 길을 택할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요령을 가리켜 '약식 발견술heuristics'이라고 부르는데, 우리는 이런 방법을 시용해 신속한 의사결정을 하곤 한다. 이런 발견술이 진화한 까닭은 이것이 대다수 상황에서 충분히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며 정확성과 노력의 적당한 절충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때문에 때때로 곤란해질 수도 있다."
"성인들은 심리화 작업을 잘할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연구가 보여주는 것처럼 능력을 일관되게 사용하지는 않는다. 이유는 아마도 정확한 심리화 작업을 지원하는 부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노력이 필요한 반면, 우리는 기회만 있으면 정신적인 게으름을 피우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심리화 작업을 매우 잘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언제나 그렇게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학습을 통해 심리화 작업을 잘할 수도 있다."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일반적인 성향이라고 해도 그 결과는 자신의 발등 찍기로 나타난다는 것을 무식한 유사 일베들은 무엇보다 유념해야 한다.

다음과 같은 구절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세계는 우리 자신 또는 도덕성이나 바람직한 삶이 어떤 것인지에 관해, 수많은 신념들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의 작동 방식에 현혹되어 마치 우리 스스로 이런 신념들을 갖게 것처럼, 다시 말해 마치 우리 내면의 목소리에 따라 이런 신념들이 형성된 것처럼 행동한다."

뇌에 대한 이야기여서 정치적인 언급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했다.
"미국의 지도자들은 정서적으로 이란이 핵으로 무장했을 경우, 그것의 어마어마한 파급력과 서아시아에서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이스라엘에 미칠 영향력에 대한 공포에 휩싸여 있다. 그런가 하면 전략적으로 민주당과 공화당은 서로 미국의 이란 정책을 둘러싼 수사학적 다툼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해 다음 선거에서 상대방을 약화시키거나 곤경에 빠뜨리길 원한다."
정치 선진국이라는 미국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타국의 상황을 마음대로 이용해 먹는다. 우리의 경우는 북한과 직접 전쟁을 한 쓰라린 역사가 있어서 정치인들이 북한의 상황을 국내 정치에 이용해 먹기 더 좋다. 그리고 지금 새누리당은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선거에 적절하게 이용해 먹는 중이다. 문제는 여기 무식한 유사 일베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새누리당의 저런 행태에 대해 손뼉을 마주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위협을 과장하는 집단들은 '북한의 위협'이란 것이 정치적인 수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무식한 유사 일베들은 그게 자신의 신념인 것처럼 행동한다. 바로 앞의 구절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긴, 언제는 정보가 부족해서 자신들을 되돌아보지 못한 것은 아닐 것이다. 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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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데이터가아깝다 2016.04.01 22: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나 잘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