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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은 가장 널리 알려진 천재 물리학자 중 한명이며, 상대성이론도 이해의 여부와 관계없이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GPS의 원리가 상대성이론에 포함되어 있다든가, 아인슈타인이 노벨상을 받은 것은 상대성이론 때문이 아니라 광전효과란 것 때문이라는 것 등은 또 생소하다. 아무튼 뉴턴이 중력 이론으로 근대 과학을 열었다면, 상대성이론은 양자역학과 더불어 20세기의 또 다른 과학혁명을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상대성이론이 발표된지 어느듯100년이 지났고, 그에 대한 평가가 없을 수 없다. 물리학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예술과 광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상대성이론 100년이 지난 지금 각 분야에 미친 상대성이론의 영향을 엮은 책이 나왔다. 다음 책이다.


이 책은 모두 14명의 저자들이 쓴 글을 정재승 KAIST 교수가 엮은 것이다. 먼저 상대성이론의 등장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아인슈타인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05년 한 해 동안 중요한 논문 세 편을 차례로 발표하게 된다. 이들 논문은 모두 하나같이 19세기의 물리학자들이 수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해결인 채로 남겨져 있던 어려운 문제들을 파헤쳐 물리학 역사에 새로운 길을 열어준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나는 브라운 운동에 관한 이론으로서 분자의 존재와 분자의 열운동을 실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도록 이론적으로 계산하는 내용이었다. 다른 논문 한 편은 빛이 입자와 같은 성질을 지닌다는 광량자 가설을 서술한 논문이었는데, 1900년에 플랑크(M.K.E.L. Planck. 1858-1947)가 주창한 양자 가설을 더욱 발전시켜 양자 역학에의 길을 열어 준 계기가 되었으며 1921년 이 논문으로 노벨 물리학상까지 수상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가장 유명한 연구 업적이라 할 수 있는 특수상대성이론(Special theory of relativity)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그것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통념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대담한 가설이었다."

상대성이론이 바꾼 시간과 공간에 대한 통념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상대성이론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존재' 형식에 대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설명을 내놓았다. 우리 인간을 비롯한 삼라만상이 존재하는 세계는 1차원인 시간과 3차원인 공간이 따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울려 4차원인 시공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 이전에는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의 설명에 따라 시간과 공간을 각각 분리되어 서로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 절대적인 외부라고 인식했으나,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통해 시간과 시간, 시간과 공간, 공간과 공간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화하는 상대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관념을 근본적으로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었지만, 물리학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의 '상대성이론의 영향'이라는 주제는 좀 애매한 것이다. 그것은 영향이라기 보다는 상대성이론이 드러낸 그 관념의 변화가 다른 분야에서도 자연스럽게 등장했다고 표현해야 마땅할 것이다.
"피카소나 달리 같은 예술의 천재들이 4차원의 수학을 알았던 것일까? 다만 <아인슈타인, 피카소>라는 책을 쓴 과학철학자 아서 밀러의 말처럼, "눈에 보이는 것은 거짓"이라는 사실을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에서 피카소는 화폭 위에서 깨달은 것뿐이리라."

한 저자는 아인슈타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의 천재성에 대한 통념과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이 글을 통해 필자는 아인슈타인의 창의성이 보통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번득이는 영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10 년에 걸친 노력 그리고 같은 문제에 대한 고민, 창의성을 높게 사는 지적 분위기와 커뮤니티의 형성, 다양한 지적, 물질적 밑천들의 결합, 중심과 주변 간의 적절한 거리가 결합해서 분출된 것임을 지적했다."
말콤 글래드웰은 자신의 책 '아웃라이어'(이 블로그에 요약이 올라 있다)에서 1만 시간의 법칙을 논한 바 있다. 그리고 1만 시간은 하루 3시간씩 투입했을 때 대략 10년에 해당한다. 그리고 여러 심리학 책에서도 천재는 타고난 재능에 노력이 더해져서 드러남을 보여주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경우도 그 발견의 한 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저자는 이야기한 것이다.

또 다른 저자는 철학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철학은 과학의 경험적 방법으로서는 접근할 수 없는 초경험적인 세계를 다루므로 개별 과학의 성과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는 철학자들도 많았다. 이들은 과학기술은 물질 문명적인 것인데 비해 철학과 문학 등은 정신문화세 속하며, 정신문화가 물질문명보다 차원이 높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미술을 제외한 음악이나 사진, 애니메이션, 건축 등에서의 상대성이론의 등장의 의미를 연결하는 내용들은 좀 부실하다.
"사진은 사진적 사실성(photographic reality)이라는 엄격한 현실의 복제를 바탕으로 하여 사진가의 주관적 필터로 거른 인간과 세계에 대한 경험을 나눔으로서 삶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 갔다."
"비록 반음계주의에서 발전했으나, 온음과 반음을 완전히 동질시하는 무조음악은 마치 상대성이론의 시간과 공간의 동질성이나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와도 유사하다. 특히 쇤베르크가 도입한 작곡 기법인 역행과 전회는 작곡이라기 보다 작용(operation) 으로서, 시간 역행(time reversal) 등 상대성이론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개념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음악 분야의 저자는 상대성이론의 등장 의미와는 무관하게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한다.
"정립된 이론과 규칙성에 따라 작곡된 음악은 듣기에 좋든 귀에 거슬리든 간에 창작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경향을 보인다. 그 결과 대중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깊은 음악적 소양과 지식을 가진 사람만이 즐길 수 있는 음악들이 생기게 되니, 이러한 경향을 형식화(stylization)라고 한다. 이 형식화는 비단 음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어서, 예술이나 학문 전 분야에 걸쳐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음악이 형식화되면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고 그 결과 음악은 지식인의 전유물에 그치게 된다."


그에 비해 광고 분야에서는 아인슈타인이 어떻게 소비되는지를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아슈타인이 태어나서 정열적으로 활동한 시기가 바로 대중사회의 완숙기였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이후 일거리를 찾아 삼삼오오 도시로 모여들기 시작한 사람들이 몇 백 년에 걸쳐 오늘날과 같은 대중 사회를 이루기에 이르렀고 20세기 초엽 비약적으로 발전한 다양한 매스미디어는 만민 공통의 인기 스타를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 이러한 인기 스타 그룹에는 비단 연예인들만 해당되지 않았다. 정치인이든 경제인이든 그리고 과학자든 간에 그 출신성분(?)을 막론하고 세계인의 이목을 끈 사람이라면 누구나 만신전(萬神殿)에 오를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매스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대중사회의 속성이니 말이다."
"단지 광고는 오늘날 대중이 아인슈타인에 대해 품고 있는 이미지와 환상을 그려내는 데 충실할 뿐이다."


이 책은 상대성이론에 대해 물리학에 어두운 대중들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설명을 담고 있어서 독서 추천은 '일독을 권함'으로 할 말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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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은 과학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하나는 지금과 같은 거대한 물질 문명을 구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강력한 도구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모든 것은 과학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을 유물론적 존재로 격하시키는 것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사회가 견제하지 않으면 인간을 멸망으로 몰아넣을 위험한 것으로 다루려고 하는 태도이다. 당연하게도 과학자도 인간임에 분명하므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강점과 약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회가 과학에 대해 감시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과학 그 자체는 가치중립적이어서 인간의 가치를 바탕으로 과학의 발전을 억누느려는 시도는 언제나 성공하지 못할 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과학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과학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과학을 대중들의 눈높이에서 설명해주는 과학저술가들이 필요하다. 이제 소개할 이 책의 저자 에른스트 페터 피셔는 과학자이면서 대중들에게 과학을 잘 설명해 주는 저자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과학을 어렵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물론 정치학이나 경제학, 의학 분야의 전문적 표현들 중에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 그래서 이것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이 무지하다고 부끄러워 한다. 하지만 과학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청중에 책임을 묻는 아니라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과학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과학은 물질계를 다루는 것이라고 생각하므로 과학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것에 대해 자괴감을 느끼지 않지만 정신의 문제를 다루는 철학이나 형이상학은 몰라도 아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과학과 철학 둘 다 모르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사변적인 주제에 대해서는 언제나 자기 주장을 한다. 인간의 문제에 대해 과도한 자기 주장을 갖는 것과 과학을 어렵다고 기피하는 것, 둘 다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제목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양자역학에서의 사고실험으로 유명한 이야기이다. 양자역학은 어렵다. 그러나 노벨상을 2개나 받은 천재 과학자 리처드 파인만조차 "양자역학을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양자역학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다"라는 선문답 같은 이야기를 할 정도이므로 대중들이 양자역학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자책할 필요는 전혀 없다.

또 다른 과학에 대한 선입견은 '과학과 예술은 별개이다'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저자가 재인용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미국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Raymond Chandler 예술과 과학이라는 문화의 쌍이 얼마나 밀접하고 견고하게 맺어져 있는가를 1938 2 19 일자 일기에서 표현하고 있다. " 종류의 진리가 있다. 길을 가리키는 진리와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진리다. 번째 진리는 과학이고 번째는 예술이다. 가지는 서로 무관하지 않으며 어느 것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예술이 없다면 과학은 마치 매우 정교한 핀셋이 함석 세공장이의 손에 들려 있는 것처럼 쓸모가 없다. 과학이 없다면 예술도 감수성 풍부한 민요와 싸구려 노랫가락이 마구 뒤섞인 혼돈에 지나지 않는다. 예술의 진리는 과학이 비인간적으로 변하는 것을 막아 주고, 과학의 진리는 예술이 천박해지는 것을 막아준다."

현재 물질계를 주도하는 두개의 이론을 들라면 아원자(원자보다 크기가 작은) 입자들을 설명하기 위한 양자역학, 거시계를 설명하기 위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자가 양자역학이 성립되는 과정을 가장 먼저 이야기하기 위해 제목을 저처럼 붙였지만 그렇다고 양자역학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성이론을 거처 양자역학이 성립되는 과정, 전자기파 이론이 성립되는 과정, 수학에서의 발견들에 대한 이야기, 진화론이 성립되는 과정, 인간 본성을 알고자하는 심리학에서의 발견들에 관해 핵심적인 역할을 한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많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 중에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요소를 연구하면서 뵐러는 그것이 4가지 원소로 이루어졌음을 깨닫는다. 요소에는 탄소, 수소, 산소, 질소가 1 : 4 : 1 : 2 비율로 들어 있었다. 그를 흥분시킨 것은 이와 똑같은 결합이 유기체와는 전혀 무관한 재료에서도 발견된다는 사실이었다. ………… 다음과 같은 질문도 가능하다. 분자에 똑같은 원자들이 들어 있다면 둘의구조를 서로 뒤바꿀 수도있을까? 뵐러는1828 같은 실험을 실시하여 성공을 거둔다. ……… 뵐러의 실험이 갖는 의미는 매우 명확했다. 살아 있는 자연(유기물) 생명이 없는 자연(무기물)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실용적인 면에서 구분될 뿐이었다. 이로써 화학은 생명력의 특별함에 대한 거창한 생각을 한순간에 진부한 것으로 만들여 버렸고 전에 없이 흥미로운 분야로 떠올랐다."
인간의 문제도 유물론으로 수렴한다는 사고의 출발점이 될 만한 발견이다. '유물론'하면 공산주의의 이념적 바탕이 유물론이었다는 것 때문에 곧바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이 다수 있다. 여기서 유물론이란 인간의 정신도 뇌의 화학작용이라는 물질적 바탕 위에 존재하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다음과 같은 구절도 있다.
"19세기 생물학자들의 결정적인 공헌은 플라톤 이래로 2천년 이상 이어져온 고정관념을 사고과정에서 과감하게 걷어낸 있다. 플라톤은 일상에서 관찰되는 생명체의 가변적인 모습들은 비본질적인 것이며, 속에 자리 잡은 불변의 이데아만이 본질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요한 것은 눈앞에 보이는 말이 아니라 말의 이데아다. 이데아는 영원히 존재한다."
서양의 철학적 전통을 정면 비판한 것이 저자가 처음은 아니다. 그리고 과학이 발전할 수록 서양의 철학적 전통은 붕괴된다. 그 점은 신학도 마찬가지다. 전통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오랜 역사를 지닌 철학 사상적 기반에 대한 부정에 대해 무의식적인 반감을 가진다.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은 오랜 역사를 지닌 사상적 기반이 오류라고 밝혀진다고 해서 그것들이 무의미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때는 인간의 지식의 한계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과학이 많은 것을 밝혀낸 지금, 여전히 그 생각들을 추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과거를 황금시대로 생각하는 것도 역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에 대한 구절도 있다.
"우리는 답을 진보의 관념 속에서 찾을 있다. 베이컨이 등장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모든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자기들의 이전 시대가 좋았다고 생각했다. ("예전의 좋던 시절에는…") 고대 그리스인들은 오래 전에 지나가 버린 황금시대를 그리워했고, 르네상스 시대에는 접두 're' 말해주듯이 시선을 뒤로 향한 살았다. 베이컨은 같은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그에게 황금시대란 미래를 의미했다. 사람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하늘이 아닌 지상에서- 나은 삶을 누릴 있다. 그는 진보의 관념을 창조했다. '진보의 가능성' 이때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완전히 새로운 생각이었다."

이 책은 과학의 발전사를 서술하면서 자연스럽게 과거의 철학적 전통과 단절하는데,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이는 다음과 같이 언급함으로써 철학적 사유의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지은이는 책에서 현대 과학의 흐름을 고사성어 같은 표제어들로 제시한다. 지은이가 소개하는 현대과학의 흐름은 일종의 과학적 잠언과 같다. 과거의 관점에서 보면과학이 아니라 은유이며 상징이다."
"지은이의 놀라운 상상력은 과학과 예술을 결혼시킨다."
아마도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저자는 사람들이 딱딱하다고 생각하는 과학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독자로 하여금 웃게 만들 수 있는 몇 안되는 글솜씨를 지녔다. 당연히 이 책도 강력 추천 목록에 올린다. 저자의 다른 책들도 순차적으로 소개할 생각이다.


Posted by think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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