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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타주의'에 대한 검토이다.
"인간 이타주의의 진화론은 이타주의의 유형들이 대부분 궁극적으로 이기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 때문에 한층 더 복잡해진다."
"우리는 협동을 두 가지 기본 유형으로 구분해야만 한다. 먼저 이타적 충동은 타인을 향한 비합리적이고 일방적인 것일 수 있다. 즉 베푸는 자는 똑같은 보답을 바란다는 욕망을 결코 표현하지 않으며, 그런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그 어떤 무의식적 활동도 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 형태의 행동을 <맹목성 hardcore> 이타주의라고 불러 왔다....... 반면 <목적성 softcore> 이타주의는 궁극적으로 이기적이다. 이 〈이타주의자〉는 사회가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가장 가까운 친척들에게 보답해주기를 기대한다. ........ 목적성 이타주의는 인간에게서 극단까지 정교해져 왔다. 먼 친척 혹은 무관한 개인 사이에 이루어지는 보답은 인간 사회 구성의 열쇠이다. 사회 계약의 완성은 엄격한 친족 선택이 부과했던 고대 척추동물의 속박들을 깨뜨렸다. 탄력적이고 무한히 생산적인 언어 및 어구 분류의 재능과 결합된 보답의 관습을 통해, 인간은 문화와 문명을 건설할 수 있을 만큼 오래 기억되는 계약을 맺는다."
"왜냐하면 친족 선택에 바탕을 둔 순수한 맹목성 이타주의는 문명의 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검토에 대한 결론은 대략 다음과 같다.
"나는 인간 행동의 맹목성 대 목적성 이타주의의 상대적 비율을 낙관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간은 한없이 더 큰 조화와 사회적 항상성을 이룰 수 있을 만큼 계산적이고 또 충분히 이기적인 듯하다. 이 말은 자기 모순이 아니다. 포유동물 생물학의 속박에 복종하기만 한다면, 참된 이기주의는 거의 완벽한 사회 계약을 이룰 열쇠가 된다."

마지막으로 '종교'에 대한 검토이다.
"종교 신앙을 갖고자 하는 성향은 인간 정신 중 가장 복잡하고 강력한 힘이자, 아마 인간 본성 중에서 근절할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불가지론자인 에밀 뒤르캠은 종교 행위가 그 집단의 정화이자 사회의 핵심이라고 규정했다. 그것은 수렵 채집인 무리에서 사회주의 공화국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에 뚜렷이 나타나는 보편적인 사회적 행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 또한 생물학적 설명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비록 종교적 경험이 찬란하고 다면적이어서, 가장 세심한 정신분석학자들과 철학자들조차 그 미궁에서 헤멜 정도로 복잡하다고 할지라도, 나는 종교 행위들을 유전적 이득과 진화적 변화라는 이차원 상에서 측량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점에서 저자도 무신론자 대열에 끼일 법하다. 하지만 저자 자신은 무신론자라고 이야기하진 않는다.
"종교적 행동에 유물론적 근거가 있고, 그 근거가 전통 과학의 이해 범위 내에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해독하기란 쉽지 않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종교는 부인할 수 없는 인간 종 고유의 주요 행동 범주에 속한다. 기존의 집단생물학과 하등 동물의 실험 연구들로부터 이끌어낸 행동 진화의 원리들은 직접적인 방식으로는 종교에 적용할 수 없을 것 같다. 둘째, 핵심적인 학습 규칙들 및 그것들의 궁극적인 유전적 동기는 아마 자각하는 정신에게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란 무엇보다도 개인이 자신의 직접적인 사리사욕을 집단의 이익에 종속시키도록 설득당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자신이 과학자이자 무신론자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모든 존재는 외부의 그 어떤 통제도 필요 없는 물리 법칙에 복종한다고 여겨진다. 과학자들은 경제적인 설명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신성한 정신 같은 외부 관리자를 배척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가 생물학사의 중요 단계, 즉 종교 자체가 자연과학의 설명 대상이 되는 시점에 도달해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보여주고자 한 대로, 사회생물학은 유전적으로 진화하는 인간 뇌 속의 물질 구조에 작용하는 자연선택 원리를 통해, 신화의 근원 자체를 설명해 낼 수 있다."
무신론자 그룹의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리처드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에서, 오랫동안 기독교의 영향권 하에 있었던 서양 사회에서, 그리고 현대에는 특히 미국에서 무신론자들은 소수이기도 하고 많은 불이익를 받기 때문에 무신론자이면서도 무신론자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지 못한다고 한 바 있다. 저자도 그런 사회의 압력에서 자유롭지는 않은 것 같다.

마지막 장의 제목은 '희망'이라고 붙였다. 이는 인간 정신의 세 단계의 딜레마를 이야기하고 그런 딜레마를 진화론과 사회생물학을 바탕으로 극복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과학적 유물론이 인류의 마지막 대안이 될 것임을 암시한다.
"첫번째 딜레마는 전통 종교 신화와 그 세속적 대체물들, 특히 마르크스주의적 역사 해석에 바탕을 둔 주류 이데올로기들이 지닌 신화들이 숙명처럼 쇠퇴함으로써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들의 쇠퇴는 도덕적 합의의 상실, 인간 조건에 대한 심각한 무기력감, 자아와 미래에 대한 무관심 등을 낳았다. 첫번째 딜레마의 지적 해결책은 생물학의 발견들과 사회과학의 발견들이 결합된 인간 본성을 더 심층적이고 과감하게 연구함으로써 찾을 수 있다."
"이런 첫번째 딜레마의 해결책이 일부나마 옳다고 증명된다면, 그 해결책은 두번째 딜레마 즉 의식적 선택은 타고난 정신적 성향들 중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딜레마와 직결된다. 인간의 본성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란 어떤 다른 통로가 아닌 특정한 통로를 따라 발달하도록 사회적 행동을 인도하는 학습 규칙들, 감정 강화 요인들, 호르몬 되먹임 고리들이다."
"세번째이자 어쩌면 마지막이 될 정신적 딜레마 ........ 인간 종은 자신의 본성을 바꿀 수 있다. 인간 종은 무엇을 선택할까? 부분적으로 낡아버린 빙하기의 적응 양상과 통일한, 날림으로 지은 흔들거리는 토대 위에 그대로 남아 있을까? 아니면 더 많은 - 혹은 더 적은 - 감정적 반응 능력을 지닌 채 더 고도의 지성과 창조성을 향해 나아갈까?"
"진정한 프로메테우스적 과학정신은 인간에게 물리적 환경을 지배할 몇 가지 수단과 지식을 줌으로써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다른 단계, 새로운 시대에 그것은 또 과학적 유물론의 신화를 구축할 것이다."


이 책은 광범위한 논증을 하고 있어서 이 정도의 요약으로는 이 책의 내용을 전달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그러므로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반드시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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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회생물학을 제창한 에드워드 윌슨의 3부작 '곤충의 사회들', '사회생물학', '인간본성에 대하여'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 윌슨이 제시한 사회생물학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사회생물학은 대체로 사회성 생물 종들의 비교 연구를 토대로 하고 있다. 모든 생물은 진화 실험의 산물, 즉 수백만 년에 걸쳐 유전자와 환경 사이에 이루어진 상호작용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저자인데도 책 마다 정의가 조금씩 다른 것은 표현이 다른 것이지 정의 자체가 다른 것은 아니다. 서구의 학술적 전통에서는 자신의 글이라 하더라도 그대로 베끼는 것은 표절에 해당된다.

생물의 사회성을 연구함으로써 인간의 사회성도 진화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사회생물학은 남녀 간, 인종 간 차이를 선천적인 것이라고 함으로써 한동안 심각한 문제였던 차별을 정당화한다는 점 때문에 극심한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윌슨은 차별을 정당화한 것이 아니다. 근대 이후 차별의식때문에 많은 문제점이 드러남으로 해서 모든 차별은 부정되고 오직 환경의 영향 만이 중요하다고 인정되었다. 남녀의 차이도, 인종 간의 차이도 모두 부정되는 상황에서, 인간은 유전자와 환경의 영향을 같이 받는다고 이야기하기 위해서 유전자의 영향을 중요하게 거론한 것이 오해를 불러온 것이다. 저자는 이런 비판에 굴하지 않고 사회생물학을 지속적으로 주장하였으며, 진화심리학의 진전에 힘입어 신다윈주의 진화론으로 통합이 되어 가고 있다.

사회생물학 3부작 중 앞의 두 책은 생물의 사회성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에 주안점이 두어졌다면, 이 책은 인간의 본성이 생물학적으로 규명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논증을 주로 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언급은 인간도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여 인간 중심주의자들의 분노를 샀다.
"인간 본성의 일반 형질들은, 다른 모든 종들의 형질이라는 거대한 배경 앞에 놓고 보면 유한하며 특이해 보인다. 그러나 더 많은 증거들은 수많은 상투적인 형태의 인간 행동들이 일반 진화론에서 예측한 대로 포유동물의 것이며, 더 구체적으로는 영장류의 특정에 해당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구체적인 사회 생활과 정신적 특성을 볼 때, 침팬지는 이전에는 비교 자체가 부적당하다고 여겼던 영역들에서도 인간과 거의 같은 등급에 놓일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인간과 가깝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이 유전적 토대 위에 있다는 가설,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행동이 근연 관계에 있는 종들과 공유하고 있는 일부 유전자와 인간 종 고유의 유전자로 조직된다는 가설과 일치한다. 한편 이런 사실은 수 세대 동안 사회과학의 주류를 차지해 온 경쟁 관계에 있는 가설, 즉 인류가 전적으로 문화에 토대를 두는 수준까지 자신의 유전자로부터 탈출해 왔다는 가설과는 부합되지 않는다."

사유의 자연스러운 귀결이기도 하지만 인간 본성을 이야기하자면 '자유의지'라는 철학적 명제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저자도 그에 대해 명쾌하게 정리한다. 당연히 자유의지의 문제도 생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수 세기 동안 위대한 철학자와 심리학자들은 결정론 대 자유의지라는 커다란 역설을 붙잡고 씨름해 왔다. 이 역설을 생물학적 용어로 바꾸면 이렇게 될 것이다. 우리 유전자들이 유전되고, 우리의 환경이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작동하고 있었던 물리적 사건들의 인과 사슬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뇌 속에 진정한 독립 행위자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행위자 자체는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을 통해 창조된다. 그러므로 자유란 단지 자기 기만이 아닐까?"
"결정론과 자유 의지 사이의 역설은 이론적으로 해결이 가능할 뿐 아니라, 물리학과 생물학의 경험상의 문제로 환원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비록 정신의 토대가 정말로 기계론적이라고 해도 우리가 동전의 경로나 꿀벌의 비행을 한정된 범위까지만 도표화할 수 있듯이, 각 인간의 세세한 행위들을 예측해 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지성을 지닌 존재는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점을 염두에 두자. 정신은 매우 복잡한 구조이며, 인간의 다양한 사회 관계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그 정신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영향 하에 있는 개인이나 인간이 어느 한 사람의 구체적인 역사를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런 근원적인 의미에서 너와 나는 자유롭고 분별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부차적이고 더 약한 의미에서 볼 때, 우리의 행동이 부분적으로 결정되어 았다는 것도 사실이다. 행동 범주를 충분히 넓힌다면, 사건의 예측은 신뢰를 얻는다."


근친상간 금기, 의지의 문제 등도 거론하지만, 인간의 행동의 네가지 범주 즉, 공격성, , 이타주의, 종교에 각각 한 장씩을 할애하여 사회생물학적 이론의 토대위에 다시 검토한다.,

먼저 공격성에 대한 검토는 다음과 같다.
"인간의 공격성은 타고난 것일까? ……… 이 질문의 답은 <그렇다>이다."
이런 결론은 이 결론을 인정하는 집단과 인정하지 않는 집단 양방향에서 공격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저자는 신중한 논증을 전개한다.
"다른 수많은 행동이나 <본능>과 마찬가지로 명확히 정의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종의 공격성이란 사실상 신경계 내에서 각기 별도의 통제를 받는 서로 다른 반응들의 배열을 의미한다. 이 가운데 적어도 일곱 가지 범주는 구분이 가능하다. 영토의 방어와 정복, 잘 조직된 집단 내에서의 서열 찾기, 성적인 공격성, 젖을 떼기 위한 적대 행동, 먹이를 향한 공격성, 포식자에 대항하는 방어형 역공, 사회 규범을 강화하는 데 쓰이는 도덕적이고 훈육적인 공격성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개체 밀도 당 공격 행위의 빈도를 계산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비록 공격 성향이 뚜렷하다고는 해도 우리는 가장 폭력적인 동물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결론짖는다.
"인간의 공격 행동이 유전자와 환경 사이의 구조적이고 예측 가능한 상호작용 패턴이라는 관점은 진화론과 부합된다."

다음은 '인간의 성'에 관한 검토이다.
"성의 복잡성과 다의성은 성이 본래 번식용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나타난다."
"증식이 번식 행동의 유일한 목적이라면, 우리의 포유동물 조상들은 성없이 진화할 수도 있었다. 모든 인간은 성별 없이 무성 자궁의 표피 세포에서 싹렀을지도 모른다."
"쾌락은 기껏해야 동물들을 교미하게 만드는 장치이며, 다용도의 신경계를 지닌 생물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시간과 에너지 를 구혼, 성교, 양육에 대규모로 투자하도록 유인하는 수단일 뿐이다."
"더구나 성행위는 어떤 의미에서 보아도 불필요하거 낭비되는 위험한 활동이다."
"주된 해답은 성이 다양성을 창조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양성이란 부모가 예측할 수 없이 변화하는 환경을 놓고 양쪽에 돈을 거는 방법이다."
"다양성과 그 결과인 적응성은 왜 그렇게 많은 종류의 생물들이 유성생식이라는 수고를 하는지 설명해 준다. 장기적으로 보면, 직접적이고 간단한 성별이 없는 번식 방법에 의존하는 종에 비해 유성생식 종은 수적으로 크게 우세해 진다."


이상의 논증은 별로 논란 거리가 될 것이 없지만 다음과 같은 언급은 여성해방운동가들의 반발을 산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성적 상대의 교체가 대부분 수컷 주도로 이루어지는 온건한 일부다처제형이다."
"대체로 여성들은 남자들에 의해 한정된 자원 따라서 가치는 소유물로 취급되기 때문에, 상승혼, 즉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는 혼인 풍습의 수혜자가 된다. 일부다처제와 상승혼은 본질적으로 상보적인 전략이다. 다양한 사회에서 남성들은 추구하고 획득하는 반면 여성들은 보호되고 교환된다. 아들들은 난봉꾼이 되고 딸들은 유린당할 위험에 처한다. 성이 매매될 때 대개 구매자는 남성이 된다. 매춘부는 당연히 사회의 멸시 대상이 되기 쉽다."
"또 평균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기질에 차이가 있다는 것은 포유동물 생물학의 일반 원칙과도 부합된다. 집단으로서의 여성은 덜 단호하고 신체적으로도 공격성이 덜하다. 그 차이의 정도는 문화마다 다르다. 평등주의자들이 설정하는 사회처럼 단지 미미한 통계적인 차이만 있는 사회가 있는가 하면, 극단적인 일부다처제 사회처럼 여성이 사실상 노예 상태에 있는 사회도 있다. 그러나 그 차이가 어느 정도 있는가 보다는 여성들이 성격 면에서 이렇게 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 자체가 훨씬 더 중요하다."
"즉, 성별에 따른 적당한 유전적 차이가 존재하며, 행동 유전자들은 기존의 거의 모든 환경과 상호작용하여 심리 발달의 초기에 뚜렷한 분화를 낳고, 그 분화는 그 뒤의 심리 발달 과정에서 문화적 제재와 교육을 통해 거의 대부분 확대된다고 말이다."

그동안 남녀 차별이 문제가 되어 왔으므로 차별을 용인해서는 안되겠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남녀의 차이가 없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현명한 대응이 아니다. 그보다는 차별이 발생하는 구조적 요인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그것이 차별로 기능하지 않도록 억제책을 강구하는 것이 현명한 대응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인간의 성에 대한 검토의 결론은 대략 다음과 같다.
"유달리 빈번하게 행해지는 남녀의 성행위는 남녀의 결합을 확고하게 하는 주된 장치 역할을 했다. 또한 그것은 남성끼리의 공격성을 약화시켰다."
"이것들(인간의 성적 쾌락)은 번식과 거의 관련이 없다. 그것들은 모두 결속과 관련이 있다."


다음 글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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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회생물학 교과서라고 할 만하다. 다양한 동물들의 사회성에 대한 방대한 연구 결과들을 이 책에 포함시켜 놓아서 그렇다. 따라서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의 사고의 출발점을 사회생물학으로 잡으려는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에 의하면 사회생물학이란, "모든 사회행동의 생물학적 기초에 관해서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생물들의 사회성을 연구함으로써 인간이라는 생물종의 사회성도 진화의 결과로써 설명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인간의 사회성마저도 유전자 결정론에 종속시킨다는 우려때문에 대중들로 부터, 그리고 동료 진화론자로 부터도 극심한 비판을 받았다.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이 히틀러에 의해 크게 오용된 이래 유전자 결정론은 인간의 악이 선천적이라고 확인하는 것이라고 해서 기피 대상이었던 시기에 나온 것이어서 그렇다.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면 그런 오해를 살 만도 하다.
"사회는 무리bands에서 부족tribe을 거쳐 수장사회chiefdom와 국가 state로 발전해 감에 따라 결합의 일부 양식은 혈연 관계를 넘어 다른 종류의 동맹 내지는 경제적 협약에 까지 확장된다. 그것으로 조직망은 더욱 커지고 의사소통의 거리는 더욱 벌어지고 상호작용은 더 다양해짐으로써 모든 시스템은 엄청나게 훨씬 복잡해진다. 그러나 이 모든 배치의 바탕이 되는 도덕적 규범마저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즉, 보통 개개인들은 수렵채취사회 구성원을 지배하는 규범보다 별로 더 정교하지 않은 형식 규범 밑에서 여전히 행동하는 것이다."

아무튼 저자는 인간의 사회성도 결국은 자연선택, 혈연선택, 집단선택 등에 의해 진화해 온 특성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집단선택 모델은 저자가 제시한 것인데 현재의 진화론에서는 크게 지지를 받고 있지는 못하다.

책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자를 많이 사용하고 있어서 한자를 배운 세대인 나도 군데군데 한자때문에 막히는 경우가 있었는데 한자를 배우지 못한 세대들에게는 더욱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역자들이 모두 유럽에서 유학한 경력의 소유자들인데도 한자 사용을 고집했다는 점은 좀 의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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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물학은 1970년대 중반 에드워드 윌슨이 곤충들의 집단 행태의 연구를 바탕으로 인간도 생물계의 일원이라는 주장을 해서 큰 반향을 일으킨 학문 분과이다. 저자가 언급하는 사회생물학이란 다음과 같다.
"총괄하면 다음과 같이 간추릴 수 있다. 사회생물학은 '호혜적이타주의'와 '유전자의이기주의'를 모델로 하여 사회적 행동의 많은 현상들을 명쾌히 설명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말은 사회생물학이 절대적인 설명을 제시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지는 않다. 진화 내지 선택이라는 관점에서 사회적 행동을 연구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할 뿐아니라 발견의 기법이라는 측면에서도 대단히 의미가 깊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생물학과 뜻을 같이하면서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사회적 행동과 여러 양태들은 진화를 거치면서 생성되었고 생물은 일반적으로 집단을 형성함으로써 선택에 있어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그리고 계속 점하고 있다). 또한 집단 내에서의 (사회적) 행동에 수반되는 다양한 전략들(가령 이타적 행위 따위)은 개인과 집단 모두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일종의 생존 전략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저자는 사회생물학을 지지하면서 사회생물학이 불러일으킨 반향에 대한 쟁점들을 명쾌하게 정리한다.

사회생물학은 문화의 진화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전에 먼저 대두된 논쟁이다. 그래서 진화론 진영 내에서도 문화진화론자들과 환경주의자들로부터 유전자 결정론에 너무 경도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런 비판들에 대해 저자는 그 이후 이루어진 연구 결과들을 종합하여 결론을 내린다.
"동일한 근거를 가진 두개의 선택지 사이에서 하나를 택해야하는 어려움을우리는 딜레마라고 한다. 인간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우리에게는 하나의 딜레마다. 한편으로는 다른 생물들과 다를 바 없는 본능과 충동을 부여받고 있으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본능적 삶을 초월하여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사려할 줄 알뿐아니라, 자기 자신의 근본에 대해 묻기도하고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의식적으로) 반성하는 능력도 갖춘 존재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가장 간단한 그래서 우리의 느낌에 딱 맞아 떨어지는 대답은 이렇다. 인간의 도움없이 생겨나서인간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이 있기 전부터 존재해 온 모든 것이 자연에 포함될 수 있는 반면, 인간이 창출한 것, 인간의 모든 신체 외적인 표현물들을 전부 포괄하는 것이 문화다. 그러나 인간이 다른 생물과 다름없이 (생물학적) 진화를 거쳐 생성되었고 이 진화의 조건에서 신체적 발달을 이룩해 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문제는 명확하게 드러난다. 문화를 발달시키는 능력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생물학적 요인들에 의해서 결정되는가 하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생물학주의는 (주로 사회/문화적 영역에서 나타나는)제반 현상들을 생물학적 사실, 이론, 모델을 가지고 해석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에 반해 문화주의를 지탱하고 있는 신념은 이러하다. 사회적, 문화적 여러 현상은 생물적 요인들과 무관하며 인간은, 다 그런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대체적으로 사회문화적 요인들에 조건지어져 있기 때문에 생물학은 사회과학 내지 문화과학의 영역으로부터 배제되어 마땅하다."
"생물학주의와 문화주의가 제 나름대로 야기했던 실제적(정치적) 결과에 대해서는 일단 생각하지말자. 우리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유전인자/환경’, ‘생물학적 결정/사회문화적결정’을 둘러싼 논쟁의 결말은 결국 인간상의 분열일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자연이냐 아니면 문화냐, 이것이 문제였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둘 중의 하나만을 배타적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같다. 그러나 이러한 확신은 경험적 연구 결과보다는 이데올로기가 낳은 조급한 결론과 더 잘 어울린다.
  물론 인간상의 분열이란 것은 서구정신사가 자연과 정신, 몸과 마음, 그리고 자연과학과 인문과학 사이에 곧잘 그어놓던 경계선의 한 양상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구획 지음의 여파는 매우 심각한 것이었다. 이것 때문에 두개의 '하위문화'가 형성되었고, 이들 '하위문화'들은 결국 종합대학을 각 단과대학들로 정연히 구분하는 작업에 반영되었다. 세계는 이제 두 부분으로 나누어졌다.(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자연현상에 대한 진술은 자연과학이 담당했고,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은 인문과학의 몫으로 돌려지게 되었다”
"나는 포겔Vogel(1986)이 생명발생적 진화와 전통발생적 진화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생물체의 진화와 (사회) 문화적 진화 사이의 차이를 정말 명쾌하게 구별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포겔은 생물체의 진화나 사회문화적 진화나 다 같이 정보의 획득 및 저장과 전달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전제에서출발하면서도, 각각의 정보 전달방식에 따른 차이점만큼은 분명히 부각시키고 있다(Oeser1987, Wuketits 1988c, 1990 참조). 생명체 진화의 경우, DNA 형태의 유전자로 코드화된 정보는 생식과정을 통해 세대에서 세대로, 항상 한쪽 방향으로만(부모로부터자식에게) 전달된다(생명발생적 정보 전달). 사회문화적 진화의 경우에 정보는 사상이나 지식의 형태를 지니고 개인적으로 수집되어뇌 속에 저장되거나 어떤 물질적인 전달매체(토기나 책 등)에 기록됨으로써 다른 개인에게 전해지는 것이다(전통발생적 정보 전달). 따라서 사회문화적 진화에 있어서의 정보 전달은 생명체 진화의 경우보다 신속하게 이루어 질 수 있다. 왜냐하면 그때그때의 정보가 언어나 문자를 통해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개인에게 전달될 수 있기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영역에 있어서의 정보는 다방향으로 전달될 수 있는데, 그것은 매번 신세대가 구세대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이고배우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될 수 있기때문이다(Diettrich 1989)."


저자는 사회생물학이 논쟁의 한가운데 서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비판의 대상이 되는 논증들을 이데올로기적 배경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실에 근거를 두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생물학적으로 주어져 있는 조건을 고려하지 않는 윤리학은 따라서 공중누각에 불과하든지, 아니면 결국 자연에 대한 폭력을 초래할 것이라는 이유에서 매우 위험한 것일뿐이다."
"특정한 학문분과에서 얻어들인 우리의 본질에 관한 특정한 시각들이 무시되어서는 안되며 '절반의 진리'를 유일무이한 진리로 생각하고 그 위에 이데올로기를 구축해서도 안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저자는 사회생물학에 대해 윌슨이 사회생물학을 처음 주장할 때보다 훨씬 세련된 결론을 내린다.
"진화가 우연과 필연, 자유와 계획의 복합적인 교차 양상으로 나타난다는것이며(Riedl 1976, Wuketits1988c), 인간의 발전에 있어서 대략적으로나마 정해져 있는 것은 생물학적 한정조건일 뿐, 그 세부적인 발달 양상들은 아니라는 점이다. 자유라는 오래고 존귀한 이념이 다소라도 지켜질 가망이 있다면 바로 이런 이유때문일 것이다."
"유전자의 생존만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욕구의 다양성이 우리 삶을 특징짓는다면, 그럴수록 우리는 인간 존재의 어떤 속성들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물어보아야 한다. ………… 사회생물학은 이러한 생물학적 지식, 말하자면 우리 자신에 대한 생물학적 지식의 폭을 넓혀왔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확장해 나갈 것이다. 이러한 지식들은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의 본성 대신 유전자만을 그려 보여주는 환원주의적 인간상의 차원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사회생물학을 통해 생명발생적 진화와 전통발생적진화,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 사이와 상호관계를 밝히려고 노력한다면, 유전자를 퍼뜨리는 기계적 원리 '이상의것'이 있다는 사실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설사 인간의 특성이 유비를 통해서든 메타포를 통해서든 유전 기계로 그려질 수 있다 하더라도, 인간이 오로지 유전기계에 불과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 항상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인간은 복잡한 문화를 창조해 낸 존재다. 그것은 생물학적 토대 위에서만 가능한 일이었지만 인간을 생물계에서 유일무이한 존재로 만들기도 했다. 인간의 이러한 고유성과 독자성을 규명하는 작업은, 애초부터 인간 존재를 한 가지 측면으로만 환원시키기로 마음을 굳히는 것보다 확실히 더 중요하고 더 합목적적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사회생물학의 결론 뿐 아니라 인간의 진화의 문제에 대한 결론을 다음과 같이 내린다.
"호모사피엔스가 반드시 살아 남아야만 될 이유는 진화의 그 어느 곳에도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들 앞에 존재했던 수 많은 다른 종들처럼 그들 역시 얼마든지 멸종해버릴 수 있겠지만, 설사 그렇게 된다 해도 진화의 역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진화과정을 스스로 조정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은 비범하며 인간에게만 고유하게 주어져 있다. 결단은 우리 자신의 몫이다."

여기에 내가 인용한 것은 책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따라서 이 요약에 의존해서는 저자의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의 다른 책 '자유의지 - 그 환상의 진화'와 '도덕의 두 얼굴'과 함께 반드시 읽어보야할 책이다. 강력 추천 목록에 올려야 마땅한 책들이다.


Posted by think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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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아하자 2016.01.10 22: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솔직히 어려운 책일 것 같아요... ㅠㅠ

    • thinknew 2016.01.11 06: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과학 분야의 학술 서적이어서 진화론에 관한 예비 지식이 없으면 어렵습니다. 그래도 진화론에서 부터 출발하여 사회생물학 논쟁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틀을 근본적으로 바꾼 논쟁이어서 차근차근 따라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책을 직접 접하기가 어렵다면 다음 사이트에 이 글과 비슷한 방식으로 여러 책을 요약해 두었으므로 그걸 보고 책을 직접 읽어볼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http://www.egloos.com/think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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