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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사회

천안함 장병들의 명예를 지키는 길은 무엇?

thinknew 2018. 7. 19. 10:45

곤란한 상황


천안함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 천안함 사건은 파장이 워낙 컷기에 영원히 묻힐 수 있는 그런 사안이 될 수는 없었다. 다만 '북한이 관련되어 있다'고 되어 있는 것이어서 색깔론이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는 어느 누구도 내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뿐이었다. 이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이 본격화된 지금, 그리고 직접 당사자들도 입을 열기 시작한 지금, 천안함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노력도 시작할 필요가 있다.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데 직접 당사자들의 증언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므로, 천안함 사건에서도 직접 당사자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은 피해자'라는 점만을 부각시키려고 한다면 그건 문제가 있다.

천안함 사건에서 논란의 핵심은 '북한 어뢰에 의해 침몰되었는가?'이다. 왜냐하면 이명박이 그것을 핑계로 남북 화해 분위기를 일거에 냉전 시대로 후퇴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남북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게 되고, 북미 관계로 전환되어버리는 바람에, 남북 정상이 만나 한반도 내부적으로는 분위기를 이명박 전의 좋았던 상황으로 급속하게 전환시켰지만, 그 분위기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대북 제재 해제와 종전 선언이 필요한데 그걸 얻어내기 위해서는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없는 상황이 되어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사건의 직접 당사자들이 진상 규명은 외면한 채, 아니 단지 외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상 왜곡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희생자 코스프레만 한다면 그건 자신들의 처지를 더욱 궁색하게 만드는 길일 뿐이다.

생존 장병 중 한명이 한겨레 기획 기사의 인터뷰에도 응했고, 어제는 노컷뉴스의 방송 인터뷰에도 응했다. 그 기사를 일단 보자.

http://www.nocutnews.co.kr/news/5002210 


"◇ 김현정> 알겠습니다. 그런데 소위 보수 진영에서는 '경계도 제대로 못 선 패잔병 취급'을 당하고. 진보 진영에서는 '북한 어뢰에 의한 폭침이라고 이용을 당한 사람들. 그러니까 진실을 숨긴 사람들'인 양 비난 받고. 사실은 양쪽에서 다 버림받은 느낌 같은 걸 받으셨을 것 같아요, 이 장병들? "
◆ 최광수> 그렇죠. 저희를 단순히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그런 것 때문에 저희도 모든 입을 닫아버린 상황이 있었는데. 지금 와서는 저 개인적으로는 후회도 되는 상황이에요. 그때 저희가 조금 나서서 얘기를 했더라면 그런 것들이 진심이 전해졌을까... 하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심하게 앓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선뜻 나서서 얘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배에 타고 있었던 사람이라고 배 사고의 원인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자신들의 직접 경험을 증언함으로서 진상 규명에 도움을 줄 수 있을 뿐이지. 천안함 승선 장병이었다는 최광수는 자신이 진상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인정했다. 그런데 이야기는 '폭침'이고 '피격'이라는 전제 하에 이루어진다. 군함이 펑하면 '전쟁났나?'라는 의문은 자연스럽게 들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느낌을 바탕으로 '이건 북한 짓이다'라고 단정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또 자신들은 이용당했다고 한다. '자칭 보수'들은 그들을 이용해 먹은 게 분명하다. 하나 진보 진영은 천안함의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그걸 '이용해 먹었다'라고 표현하면 곤란하다. 무엇보다도 자신들을 이용해 먹었다고 생각하는 '자칭 보수'들의 논리를 따르면 자신들이 패잔병이 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점이다. 아군의 군함이 군사 훈련 중에 적군의 어뢰에 맞아 침몰했다면 그걸'패잔병'말고 달리 어떤 표현이 가능하겠는가? 결국 최광수는 논리적 비약을 해 가며, 자신들을 '패잔병'으로 규정할 수 밖에 없는 그 논리를 강화하는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이 생존 장병들 뿐만이 아니다. 죽은 장병들의 유족들도 마찬가지다. 다음 기사를 보자.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3694 


"민주평통 기관지 통일시대 7월호에는 이성후 천안함46용사유족회장이 ‘국민여러분, 천안함 46용사의 명예만은 지켜주세요‘라는 반박기고를 실었다. 이 회장은 윤 교수의 글에 “터무니없는 주장이 여과없이 실림으로써 유가족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슬픔에 잠겨야했다“고 썼다."

이 기사는 직접 당사자들의 언행에 관한 것은 아니다. 윤태룡 교수가 "천안함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여, 만약 북한 소행이라는 것이 거짓으로 드러나면 북한에 사과해야한다"는 기고문때문에 평통위원직에서 사퇴한다는 내용이다. 너무나 원론적인 내용이어서 그게 문제가 되는 것 자체가 이상할 지경이다. 그런데도 '자칭 보수'들은 그동안 그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트집잡아 민주 개혁세력을 억압하는 데 이용해 먹었다. 그 색깔론의 망령이 아직도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라는 것은 윤교수의 평통위원직 사퇴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건 그렇다 치고, 기사 말미에 나오는 유족들의 반론이 기가 막힌다. '46용사의 명예'를 지켜달란다. 죽은 자기 가족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는 윤교수 기고문대로 천안함 사건의 진상이 규명되어서 그게 '적군의 어뢰에 피격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 밝혀져야 한다. '적군의 어뢰에 피격되었다'라는 논리를 지지하면서 어떻게 자기 가족들의 명예을 지켜달라는 것인가? 실제 전쟁 중이었다면, 패배했다고 해서 그게 불명예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게 나라를 지키겠다고 하는 군사 훈련 중에 일어난 사건이라면 패배의 원인을 엄밀하게 따져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 원인 규명은 무시한 채 그저 명예만 인정해 달라고?

생존자나 유족이나 스스로의 명예를 더럽히는 논리를 지지하면서도 '자신들은 희생자'라는 모순된 요구를 하고 있는 이 웃기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참으로 딱하다고 할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