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경기가 나쁘면 킹콩 영화가 나온다고 했다. 잠시 동안이나마 눈 앞에서 펼쳐지는 위협에 몰두함으로써 현실의 어려움을 잊는다고 한다. 오늘 곡성을 보면서 그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영화는 잘 만들어진 미스터리 스릴러였다. 극적 긴장감이 끝날 때까지 유지되었고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다. 곡성이란 마을에서 의문의 연쇄 살인이 벌어지는데 이게 사람 짓인지 귀신 짓인지가 분명하지가 않다. 여기에 역시 미스터리한 세 명의 존재가 등장한다. 용한 무당으로 나오는 황정민, 산 속에 사는 기인으로 일본인으로 나오는 쿠니무라 준, 그리고 정체 불명의 천우희가 그들이다. 세 명 모두 영화가 끝날 때까지 정체가 밝혀지지는 않는다. 누가 귀신인지가 궁금한 사람들에게는 좀 실망스러운 결말일 수도 있다.
이 영화가 현실을 생각나게 하는 것은 거의 끝부분에서 천우희와 쿠니무라 준이 거의 비숫한 이야기를 한다. "믿어라, 그리고 의심하지 마라"이다. 주인공인 곽도원은 누구를 믿어야 할 지를 모르고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연쇄 살인의 희생자가 되면서 영화는 끝난다. 물론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 특히 전통적으로 새누리당을 지지해 왔던 사람들이 누구를 믿어야 할 지, 무엇을 믿어야 할 지에 대해 혼란 상태에 빠져 있는 듯하다.
박정희가 경제를 살렸다고 굳게 믿었는데, 그 딸 박근혜도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었는데 삶은 더 나아진 듯하면서도 상대적 박탈감은 더 커지고 있다. 부동산 경기만 회복되면 자신들도 부자 대열에 낄 수 있다고 믿고 있었던 사람들이 이명박을 뽑고, 박근혜를 뽑았지만 기대했던 부동산은 오른다는 말만 요란할 뿐 실질적인 상승은 강남3구에 제한되어 있는데다 그 마저도 여의치않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궁지에 몰려있다. 새누리당을 계속 찍자니 실적이 형편없고, 그렇다고 더불어민주당을 찍자니 확신이 안선다.
기성세대 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들도 마찬가지다. 경기는 안좋고, 취업문은 점점 좁아지는데 인공지능이네, 로봇이네 하면서 자신들의 자리를 위협해 오고, 무엇을 해야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안개 속에 가려있다. 뭔가가 삶을 조여오는데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는 너무도 불분명한 현실에서 느끼는 불안을 이 영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해소하려는 심리가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 것도 그렇고, 영화를 감상하는 것도 역시 그러하듯 감상은 온전히 관객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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