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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사회

천안함 사건의 후유증

thinknew 2018. 7. 16. 10:31


천안함 사건의 생존 장병들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그들에 관한 이야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남북 고위급 회담하러 김영철이 방남했을 때 '천안함 사건의 주범'이라며 방남을 막아야 한다고 시위를 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기사의 내용이 좀 다르다. 생존 장병들의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일단 그 기사부터 보자.

http://v.media.daum.net/v/20180716050612832?rcmd=rn


"우리 현대사에는 사건만 남고 그 속의 사람들이 잊히는 일이 종종 있다. 2010년 천안함이 캄캄한 서해로 가라앉은 사건도 그중 하나다."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한 천안함 생존 장병들은 ‘유령’처럼 살고 있었다. 그들의 고통을 단순히 피해의식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일 수 있다. “보수는 저희를 이용할 뿐이었어요. 진보? 그쪽은 저희를 아예 찾지도 않았고요.” 더는 ‘천안함’이라는 주홍글씨를 이고 살 수 없어 망명하듯 프랑스로 떠난 최광수(30) 병장의 말이다.


이제야 비로소 언론이 '천안함 침몰 사건'을 '북한 어뢰에 의한 폭침'이라고 전제하지 않고도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국가 안보를 위해 '오뉴월에 개 끌려가듯'이라든가 '신의 아들, 사람의 아들'이라는 과장이 섞이긴 했지만 결코 거짓이라고는 할 수 없는 말들이 회자되는 상황에서 군 복무를 하는 장병들이, 배가 가라앉아 수십명의 동료들이 죽은 사건에서 살아남았을 때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없으면 그게 이상할 것이다. 그들에게 국가와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마땅하다. 그런 점에서 한겨레의 이번 기사 기획 의도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이는 원론적인 이야기일 뿐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관심을 받지 못하고 사회로 부터 외면받은 것은, 여러가지의 마찬가지로 마땅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사 내용에 들어갈 것도 없이 요약에서 그 이유들이 거의 다 드러난다. 먼저 기사 요약부터 보자.

25%는 지난 1년간 ‘자살 시도’
외상 후스트레스장애 87.5%로
걸프전 포로 군인의 2배 가까워 몸으로도 나타나는 질병들
고통 벗어나려 술에 의존해 손 내밀어주지 않는 사회
보수는 우릴 이용, 진보는 무시


첫번째 의문. 이명박은 왜 '천안함 침몰'이 '북한 어뢰에 의한 폭침'이라고 우겨놓고, 그러면서도 천안함 함장 이하 생존 장병들에게 징계를 내리지는 않았으면서도 자신의 임기 동안 생존 장병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상황에 눈꼽만큼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까? 이명박을 계승한 박근혜 정권 하에서는 왜 그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까? 생존 장병들은 사회로 부터 잊혀진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상황을 정권의 입맛에 맞게 마음대로 규정한 그 정권으로 부터 잊혀진 것이다.

두번째 의문. 불행의 정도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긴 하다. 그러나 전쟁 포로 상황을 겪은 병사들과 천안함 침몰같은 원인을 모른 채 배가 가라앉은 사건에서의 생존 장병들 중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정도가 어느 쪽이 더 클 것인가는 굳이 설명이 필요치 않다. 당연히 전쟁 포로 상황이 더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천안함 사건 생존 장병들의 장애 정도가 두 배나 더 높다는 사실은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조사 결과가 이상하다는 것이 아니다. 다른 이유가 개입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반정부 시위가 빈번하던 시절, 시위와 관련하여 감옥에 간 사람들에 대한 분석이 있었다. 시위 주동자로 잡혀간 사람들은 비교적 감옥 생활에 잘 적응했지만, 가장 적응을 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은 시위를 할 생각이 없었는데 우연히 현장에 있었다는 것때문에 억울하게 잡혀 온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 시절, 시위를 주동한다는 것은 '인생을 망칠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으로는 반정부 성향을 가지고 있어도 시위를 주동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러니 각오를 한 사람들은 당연히 당할 일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때문에 감옥 생활을 담담하게 견딜 수 있지만 감옥행의 두려움때문에 시위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던 사람이 우연히 엮이게 되면 억울한 생각이 머리 속을 온통 지배하기 때문에 감옥 생활을 못견뎌한다는 것이다.

천안함 생존 장병들도 침몰의 정확한 원인을 모르긴 외부 사람들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이 희생자라는 점은 분명하다. 군 복무 중 발생한 사건때문에 정신적인 상처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형식적인 보상으로 때워버리고는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시민 사회는 '천한함 침몰 사건'의 그 무수한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느라 생존 장병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런 상황이 생존 장병들에게는 '무시'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천안함 사건의 침몰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지만, 논란이 되는 것은 그것이 '북한 어뢰에 의한 것이었느냐'이다. 이명박 정권은 핵심 증거들은 감추어 둔 채 몇몇 웃기는 물품들을 제시하면서 '그렇다'라고 어거지를 부리지만, 생존 장병들은 '그게 아니다'라고 할 수 있는 정황을 분명히 알고 있다. 자신들이 직접 겪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에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생존 장병들은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게다가 그냥 침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권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행동들을 했다. 그러면 정말 자신들이 '패잔병'이 됨에도 불구하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천안함 사건의 진실이 명명백백히 밝혀 져야만, 그래서 결론이 '적군의 공격에 당한 것'이 아니라 '단순 사고'였다는 것으로 밝혀지는 것만이 자신들이 지고 있는 '패잔병'이란 억울함을 풀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우화를 생존 장병들은 잘 생각해 볼 일이다. 계속 '패잔병들'이라는 멍에를 지고 갈 것인지, 아니면 사고의 피해자로서 정당하게 대접받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