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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죽음이란 무엇인가 - 샐리 케이건

thinknew 2016. 2. 27. 21:00

 

자살은 죽음의 하부 범주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읽었던 책이 '자살에 관한 모든 것'이었던 터라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 책에는 '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물론 원저에 있는 것은 아니고 번역서를 출판한 출판사가 붙인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저 할 수 있는 한 회피하려고 하는 것 정도이다. 그리고 이런 태도가 동서양을 통털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죽음을 진지하게 성찰한 이 책의 내용은 예일대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명강의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저자는 먼저 내세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한다. 물론 저자는 내세를 믿지 않는다. 그리고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다.
"뭔가를 믿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야 할 의무는 없다."

죽음에 대한 인식은 삶에 대한 인식과 동전의 양면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삶과 죽음을 함께 묶어서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을 정리한다.
"왜 죽음이 나쁜가? 죽으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존재는 왜 나쁜가? 삶이 선사하는 모든 좋은 것들을 누리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말은 누릴 것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죽음이 그다지 나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저자도 역시 자살을 죄악시하는 태도를 비판한다. 이는 '죽음에 관한 모든 것'에서 "사회가 개인에게 살만한 곳을 제공하지 못할 때 자살을 선택하는 개인을 비난할 수 없다"고 한 것과도 닿아있는 생각이다. 어느 미국 범죄 드라마에서도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죽음은 우리가 원할 때 오는 유일한 신이다."

저자는 삶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삶을 보다 가치있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삶은 전체적으로 나쁜 것이라는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인간은 도박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우리의 삶에 운이 깊이 개입해 있다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러 통찰에서 드러난다. 우리는 '운칠기삼'이라는 말을 알고 있다. 이게 노름판에만 통용되는 말이 아니라 고사성어에서 나오는 말이다. 삶에서 운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 세네카는 "운이란 준비가 기회를 만난 것"이라고 했다. 진화심리학에서도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 실험을 통해 보여주었다. 우리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은 결국 미래는 운의 영역이라는 말과도 같다.

삶과 죽음에 가치를 부여한 것은 인간 자신이다. 따라서 '삶과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또한 온전히 우리 자신의 몫이다. 저자도 언급하다시피 "과거에 신경쓰지 않는 데 반해 미래에 벌어질 일에 대해서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인간에게 각인된 매우 일반적인 성향"이긴 하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면 그것을 극복하는 길도 보이는 법이다.

죽음이란 주제는 현재로서는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법 자체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사변적 추론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과 죽음을 보는 철학자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명강의라는 말이 허명이 아니어서 누구나 한번 읽어 보기를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