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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종교는 진화한다 - 데이비드 슬론 윌슨

thinknew 2017. 5. 16. 17:00


저자는 에드워드 윌슨과 함께 진화론에서 1960년대에 거의 폐기된 집단 선택 이론을 되살리려고 애쓰는 진화론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런 저자가 종교를 옹호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자도 종교 옹호론이 오락가락 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양자역학으로 신의 존재를 입증했다고 하는 논리만큼 황당하지는 않아서 끝까지 읽어보기는 했다.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 책의 목적은 종교 집단을 유기체로 보는 개념을 중요한 과학적 가설로 다루는 데 있다. 유기체는 자연선택(자연도태)의 산물이다."
이 말만 보면 저자가 종교를 과학적으로 검증하겠구나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이어지는 언급을 보면 저자의 의도가 드러난다.
"사람의 행동에 관한 진화 이론은 종종 상아탑 안팎에서 커다란 회의와 적의를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와 다양한 회의론자들 간에는 보통 정중하면서도 생산적인 대화가 오갔다."
여기서 회의론자들이란 진화론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 즉 종교를 옹호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나는, 순수한 이타주의와 도덕은 환상이므로 인간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이라는 주장을 믿지 않는다. 더불어 나는 석기시대에 돌에 새겨진 문양과 같이 인간의 본성이 유전적 진화를 거쳐 유전자에 새겨진 특성들로 모두 설명 될 수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 나는 문화라고 느슨하게 지칭되는 메커니즘을 통해서 급격하면서도 계속 진행되는 과정을 인간 진화로 간주한다. 여기서 문화란 좋은 뜻이든 나쁜 뜻이든 인간의 본성이 돌에 새겨진 것처럼 고정불변이 아님을 가리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헉슬리(1863)에서 도킨스(1998)에 이르기까지 많은 진화론자가 종교에 퍼부었던 적의에 공감하지 않는다."
즉 진화론적 무신론자들이 마땅찮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 사회가 자기 이익을 추구하기에 여념이 없는 개인들의 집합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그 자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여길 수 있는지 묻는 것이다."

저자는 신의 존재를 입증하겠다고 나서지는 않는다. 그러나 저자는 위의 언급에서 두가지를 동시에 노리고 있다. 문단의 앞 부분은 종교 옹호론자들이 우려하는 부분으로 인간이 이기적인 개인들의 집합체라고 진화론이 이야기한다는 것을 바로 잡겠다는 것이다. 또 뒷 부분은 인간 집단을 유기체로 봄으로써 집단 선택 가설을 되살리겠다는 뜻이다. 진화론의 가장 현대 버전인 진화심리학에서는 진화론이 인간 집단을 이기적 개인의 집합체로 보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해 두었을 뿐만 아니라 문화도 진화한다는 점도 밝혀 두었으므로 저자는 시작부터 이중의 오류를 바탕으로 출발하는 셈이다.

어쨎든 저자의 추론의 흐름은 이렇다. 인간 집단은 유기체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집단 선택이 작용할 것이다. 자연 선택은 적응(도태되지 않고 살아남는)의 문제이며 종교가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은 적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적응은 개체 차원의 적응이 아니라 집단 차원의 적응이다. 종교가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집단을 이롭게 하는 이타적 요인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므로 집단 선택으로 보아야 한다. 이 흐름만 보면 종교도 문화와 마찬가지로 진화한다는 것이어서 제목과 일치한다. 그런데 저자는 종교가 적응했다는 점을 들어 종교의 존재 이유가 있고 존재 이유가 있다면 종교를 비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라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종교를 옹호한다.

문제는 진화론적 무신론자들이 종교에는 아예 존재 의미가 없다거나 효용이 없기 때문에 종교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의 다음과 같은 언급을 보면 저자도 여타 종교 옹호론자들과 마찬가지로 비판론자들의 비판의 요지를 슬쩍 비켜감을 알 수 있다.
"종교는 부분적으로 영성을 존중하는 신념과 관습의 집합이다. 이러한 정의를 지지하는 과학적 이론이 종교에 완전히 적대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어온 여러 가지 가증스러운 일들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종교의 여러 모습들에 대해 솔직히 경탄을 금치 못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논증하는 내내 과학적 관점과 신학적 관점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종교는 모든 존재의 목적과 질서에 대한 신학적 설명으로서가 아니라, 종교 그 자체가 집단들에게 최소한 어느 정도까지는 적응 단위로 기능하게 만드는 진화의 산물로서 논의의 중심 무대로 돌아왔다."
"사회적 집단을 유기체로 보는 개념은 여러 면에서 다층선택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변화시켰다. 첫째로, 낮은 수준의 선택에 비해 높은수준의 선택이 언제나 미약하다는 논리가 사라져 버렸다. …… 둘째로, 높은 수준의 선택은 자기희생적인 이타주의와 연계되어 있으므로 항상 일어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져왔다. 그런데 사회적 통제 메커니즘은 집단의 이익과 개체의 희생 간의 교환을 부분적으로 늦추어 이러한 난점에 대한 인식을 제거해 버렸다. …... 셋째로, 높은 수준의 선택이 개개의 유기체들로 알려진 현재 수준에서 멈춘다고 가정할 수 없다. 사회적 집단 수준의 선택은 수천 종의 생물에서 진화의 지배적 요인이 될 수 없을지 모르나 적어도 중요한 원동력은 되는 듯하다."

이러다가 논의가 좀 더 진전되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함으로써 과학적 관점에서 완전히 벗어나 버린다.
"열린 마음으로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이라면, 종교 집단 내의 자유방임 (자기의지에 관한) 문제가 다른 집단과 연관된 집단 의지의 해명이라는 훨씬 더 큰 문제와 맞물려 있음을 명확하게 깨닫게 된다."
"어쩌다 잘못되어 버린 듯한 복잡한 세상을 사람들이 이해하려는 시도를 종교라 한다면 종교는 소박한 과학적 이론으로 치부될 수도 있을 것이다. ….... 무엇보다도 먼저 언급할 것은 가장 '원시적인' 문화를 비롯하여 모든 문화를 일궈낸 사람들은 과학적 사고의 기반 위에 서 있다는 점이다. …….... 다음으로 현대 문화에서 과학의 해명이 종교의 신념을 대치시켰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다. ……….. 과학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신(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종교 의식에 참여 한다(Stark and Finke, 2000)." "내가 이런 사실들을 언급하는 까닭은 현대 과학에 동원되는 정교한 장치나 특수한 질문 없이도 종교라는 주제에 관한 커다란 과학적 진보가 이룩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초기의 박물학자들이 진화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도 문제가 되지 않았듯이 종교학자들이 진화론의 관점을 반영하지 않았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십계명과 산상수훈(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마태복음 7:12)의 친숙한 훈계들은 너무나 명백해서 더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것처럼 비칠 것이나, 우리는 그런 친숙함에 파묻혀서는 안 된다. 내가 검증해보려는 가셜은 종교가 인간 집단을 적응 단위로 기능하게 한다는 점을 제시한다."
"우리가 다루는 문제의 경우, 종교는 믿는 사람들이 그들 집단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게 가르친다고 예측할 수 있는데, 이런 주장은 우리가 잘 아는 십계명과 산상수훈으로 뒷받침된다." "회의론자들은 흔히 위와 같은 구절로 표명된 흔들리지 않는 종교적 신념(신앙)을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신앙의 모든 내용을 증거의 불빛 아래서 살펴보려고 애쓰는 과학적 방법과 비교하면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종교적 신념 체계가 진화론적 관점에서 연구될 수 없다면, 그 체계들은 다른 적절한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만일 종교적 신념(신앙)이 <표 3.1>에 제시된 행위를 유발사키는 역할을 하고 이러한 행위가 집단을 적응 단위로 기능하도록 한다면 종교적 신념(신앙)은 적응으로 간주된다."
"통조림 따개나 심장의 경우처럼, 세부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관건이다. 칼뱅주의에 관한 나의 분석은 다분히 과학적인 것으로 비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 점은 특히 중요하다. 우리는 어떤 수치나 통계를 비교하지 않고 오로지 설명에만 의존하여 분석하고 있다. 물론 나는 수치와 통계의 비교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지는 않으나 그것들은 중요한 기초적 내용을 치밀하게 가다듬어주는 데 불과하다고 보아도 틀림없을 것이다. 나는 앞에서 전통적인 종교 연구의 성과는 다윈이 자신의 진화이론을 정립하기에 충분했던 박물학(자연사)에서 얻은 정보와 맞먹는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저자는 신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겠다고 나서지도 않고, 자신이 주장하는 집단 선택 이론이 개체 차원의 선택 이론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황당한 종교 옹호론자는 아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자신의 입장이 취약함을 인정하기도 한다.
"기독교와 그 밖의 거의 모든 종교들은 보편적인 인류애라는 고귀한 기준으로 판단해보면 미흡하기 짝이 없다."
"나는 지나친 이상에 사로잡힌 몽상가이지만 이 시점에서도 그런 낙관주의의 근거를 찾고 있다."


저자는 수렵, 채취인 집단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는 만민평등주의, 그리고 순수한 이타주의를 여러 차례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영성이 사라지면 무엇으로 그것을 대체할 것인가?'를 우려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신의 동료 진화론자들이 종교를 비판하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다루어진 연구가 '템플튼 재단'(명분은 종교와 과학의 융합을 촉진함이라고 내걸었지만 어쩔 수 없이 과학이 득세하는 시대에 종교의 생존 논리를 개발해 달라는 암묵적인 기대를 하는 단체)의 지원으로 이루어 진 것으로 보아 저자가 종교 비판의 관점을 몰랐다기 보다는 어떻게 하든 종교 옹호의 논리를 개발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의구심이 들기는 한다.

내 개인적으로는 종교를 옹호하고자 하는 문헌을 더 이상 읽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내심 종교를 옹호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나의 독후감이 마땅찮을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읽어 보고 나의 분석의 허점을 찾아 보면 좋을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강화하든 교정하든 할 것이고 나의 생각도 그에 따라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