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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 - 렌덜프 네스 & 조지 윌리엄스

thinknew 2017. 7. 18. 17:29

근대 과학이 정립되면서 의학도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그런데 의학은 먼저 증상을 다스려야 하는 기술의 속성 상 질병의 직접 원인을 찾는 것에 주력했다. 그러는 동안 생물학에서는 진화론과 다윈의 자연선택론이 정착되면서 "생물학은 진화론에 근거해야 이치에 맞다"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설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문제는 인간은 생물이면서도 여전히 차원이 다른 존재로 취급되고 있었기 때문에 정신 뿐만 아니라 인간의 몸과 질병을 다루는 의학도 다윈의 진화론에서 일정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이 인간의 정신도 뇌의 활동에 의해 드러난다는 점을 점점 더 분명하게 입증해 감에 따라 인간도 생물종의 확연한 일부임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말은 그 인간을 다루는 의학도 진화론적 고려를 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질병의 직접 원인 뿐만 아니라 진화론적 원인까지를 다루는 의학의 새로운 조류를 '다윈 의학'이라고 한다. 다음에 보일 책은 바로 이 다윈 의학의 필요성을 대중들에게 뿐만 아니라 의사들에게 강조한다.



저자 중 네스는 정신 의학자이고, 윌리엄스는 적응 이론으로 유명한 진화생물학자이다. 이 두사람이 협력하여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질병들과 여러 증상들에 대한 진화론적 해석을 전개한다.

저자들에 의하면 인간에게 질병이 존재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자연선택은 오랫 동안 건강하게 사는 생명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진화적 적응도를 극대화하는 생명체를 만들 뿐이다. 우리는 고통을 준다는 사실만으로 엄연한 방어 메커니즘을 결함으로 잘못 생각해 왔다."
이런 주장은 사람들의 오랜 직관에 반하기 때문에 수용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다윈 의학'은 질병의 직접 원인들만 다루는 전통 의학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을 설명하기 때문에 결국은 의학의 주류로 자리잡을 것이 분명하다.

저자들은 먼저 근접 원인과 진화적 원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근접 설명은 해부학적, 생리학적, 생화학적 특성들과 수정란 내의 DNA 정보에 의해 유전적으로 유도되어 성체로 발달하는 과정의 특성들을 설명한다. 진화적 설명이란 우선 왜 그 DNA가 그런 특성을 발현하는가, 또 왜 우리는 그 구조로만 발현하는 DNA를 가지게 되었는가에 관한 것이다."
"근접 설명이 구조와 메커니즘에 대한 '무엇이?'와 '어떻게?'라는 질문의 답이라면, 진화적 설명은 기원과 기능에 대한 '왜?'라는 질문의 답이다."


다윈 의학의 바탕이 되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은 지금까지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을 요구한다.
"우선 생존은 그 자체만으로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자연선택이 연어나 1년생 식물들과 같이 단 한 번 번식하고 죽어버리는 일부 생물들을 만들어낸 까닭도 바로 이것이다. 생존은 오직 번식을 증진시키는 한에서만 개체의 적응도를 높인다. 번식을 증진시키는 유전자는 설사 그것이 개체의 수명을 단축한다 할지라도 선택될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번식을 감소시켜는 유전자는 아무리 개체의 생존을 높인다 할지라도 자연선택을 통해 틀림없이 제거될 것이다."
"<이기적인 유전자Selfish Gene>의 저자인 영국의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개체란 단제 유전자 복제를 위해 만들어지고, 유전자가 더 이상 관계를 가질 필요가 없을 때는 버려지는 매체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견해는 진화가 건전하고, 조화롭고, 안정된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는 일반적인 관점을 뿌리째 뒤흔든다. 자연선택은 그런 세상을 창조하지 않는다. 우리는 삶이 당연히 행복하고 건강하리라고 생각하고 싶어하지만, 자연선택은 우리의 행복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다. 그리고 자연선택은 건강조차도 유전자에게 이득이 될 때만 북돋워준다."
"인간의 몸은 하나의 전체로서 어떤 복잡한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그(아리스토텔레스)의 확신은 옳았다. 고작 몇 십 년 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복잡한 활동이 바로 번식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뿐이다."


저자들은 일반 대중들을 향해서도 과학적 사고를 할 것을 요구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왜'라는 질문을 할 때, 그럴듯한 이야기에 쉽게 현혹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왜 인간의 코는 우뚝 솟아 있을까? 틀림없이 안경을 걸치기 위해서이다. 왜 아기들은 뚜렷한 아유도 없이 울어대는가? 틀림없이 허파를 단련시키기 위해서이다. 왜 우리는 100살쯤 되면 거의 다 죽게 되는가? 틀림없이 새로운 사람들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서이다. 거의 무엇이든지 이런 식으로 추측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쯤되면 그것은 과학이 아니다. 문제는 그런 질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제시된 해답을 적절히 탐구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러면서 인간의 신체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증상들의 진화론적 원인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저자들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병에 걸렸을 때 열이 나는 것, 인간의 심리 안에 고통과 공포가 존재하는 것, 임산부의 입덧, 노화 등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다. 그 중에서도 암에 대한 설명도 있다.
"처음에는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따로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재는 비정상적인 DNA 구조를 탐지하여 수정시키는 기능을 하는 정상 유전자가 손상되기 때문에 암이 유발된다고 생각한다."
"다른 많은 질병들처럼 암에 걸릴 가능성은 유전적이다."
"암이란 모든 종류의 비적응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조직 성장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암은 성장과 분열 능력을 잃지 않은 어떠한 세포에서도 일어날 수 있으며, 각 세포의 암은 갖가지 개시 요인들과 억제 메커니즘의 실패 등에 의해 일어난다."


그리고 의학에서도 진화론적 관점이 받아들여져야 함을 강조하면서 글을 맺는다.
"인간들은 바로 우리에게 해로운 것들을 원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환경에서 건강에 좋은 식생활을 한다는 것은 결코 자연스레 되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자신의 원초적인 갈망을 이겨내도록 머리와 의지를 사용해야 합니다."
"적어도 도브잔스키Dobzhansky가 깨달았던 종류의 의미까지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진화의 관점을 떠나서는 의학의 어떤 것도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이 책은 1994년에 출판되었다. 그 뒤로 지금까지 진화심리학에서는 큰 진전이 있었지만 다윈 의학은 그만큼 활발하게 연구된 것 같진 않다. 진화심리학이 그랬듯 다윈 의학도 의학의 주류로 등장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 책은 '강력 추천' 목록에 올려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