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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런, 이게 바로 나야 - 더글라스 호프스테드 & 데니얼 데닛

thinknew 2017. 7. 8. 17:43



이 책은 번역 제목만 보면 '자아'에 관한 가벼운 읽을거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은 가볍지 않다. 원 제목은 'The Mind's I'이다. 이에 대한 저자들의 설명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 책의 원제인 <마인즈 아이 Mind' s I>는 소유격으로 간주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Who am I?(나는 누구인가)>와 <Who is me?(누가 나인가)>라는 두 가지 물음에 대한 답변을 한 마디로 축약시킨 것에 해당할 수도 있다."

85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여러 철학자들, SF 소설가들, 그리고 과학자들의 마음에 관한 논의들에 대해 공동 저자인 더글라스 호프스테드와 데니얼 데닛이 해설 또는 반론을 깊이 있게 전개하는 꽤 무거운 주제를 다룬 책이다.

저자들의 의문은 다음과 같은 서문의 구절에 잘 나타나 있다.
"나는 지금, 이 책의 11쪽을 읽고 있다. 나는 살아 있고, 나는 눈을 뜨고 있고, 나는 이 11쪽의 단어 하나하나를 내 눈으로 보고 있다. 나는, 지금 내가 이 책을 손에 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내게는 두 개의 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손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보 같은 질문이다. 내 두 손은 나의 팔에 단단히 붙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나의 신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은 내가 내 신체를 제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신체를 소유하고 있는 것일까?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다. 그것은 내 것이어서 내 맘대로 다룰 수 있다. 적어도 내가 타인을 해치지 않는 한에서는 말이다. 이것은 일종의 법률상 소유권이기도 하다. 즉 내가 살아 있는 한 내 신체를 합법적으로 타인에게 판매할 수 없지만, 일단 죽은 다음에는 내 신체의 소유권을 합법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의과대학에 기증할 수 있다.
    만약 내가 이 신체를 소유하고 있다면, 나는 이 신체 이외의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는 내 신체를 '소유하고' 있다I own my body>라고 말할 때, 그것은 〈그 신체가 스스로를 소유하고 있다〉라는 뜻의 의미 없는 주장은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타인에 의해 소유되지 않는 모든 것은 그 자신을 소유하고 있다는 말인가? 과연 달은 누군가에게 소속되어 있는 것인가,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달 자신에게 속해 있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모든 것의 소유자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모든 것의 소유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내 신체는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 중 하나에 불과하다. 어쨌든 나와 나의 신체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둘은 서로 별개의 것이다. 나는 제어자이며, 나의 신체는 제어 받는 대상이다.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다."


마음에 대한 과학적 접근은 생물학에서 마음에 관한 설명을 시도함으로써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19세기 이전에 데카르트Descartes 철학의 중심이었던 심신이원론(심신二元論)은 사람의 마음을 생물학의 영역 밖에 두려는 경향을 띠었다. 그 후 진화론자들이 우리에게 <원숭이의 특징 apeness>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인간은 생물학의 연구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심리학이 마음을 다루는 과학으로 자리잡기까지 물리학과 생물학 사이에서의 관점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생물학과 물리학 사이에서 벌어진 역할 역전 때문에 오늘날의 심리학자들은 모호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생물학의 관점에 따르면, 심리학자란 원자나 분자로 이루어진 초현미경적 세계라는 객관적 확실성의 중심에서 훨씬 떨어진 현상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물리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본질적이면서 동시에 불가해하고 아직까지 정의내려지지 않은 <마음>이라는 개념을 다루는 것이 심리학자이다. 분명한 사실은 어느 쪽 견해도 얼마간의 진리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행동과학의 토대를 넓히고 확충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과제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이제 심리학, 생물학, 물리학이라는 세 가지 큰 분야의 관점을 하나로 통합할 시간이 되었다. 각기 다른 관점의 대변인들인 세이건, 크릭, 그리고 위그너의 입장을 결합함으로써 우리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전체상을 얻게 된다.
    첫째, 의식과 반성적 사고를 포함하는 사람의 마음은 중추 신경계의 활동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중추 신경의 활동은 생물학적인 구조와 생리학적인 체계의 기능으로 환원할 수 있다. 둘째, 모든 수준에서의 생물학적 현상은 원자물리학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탄소와 질소 산소 등의 구성 원소에 의한 작용과 상호 작용에 의해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오늘날 양자역학에 의해 충분히 이해된 원자물리학은 그 체계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인 마음으로 공식화되지 않으면 안된다."

또한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
"개체들로 이루어지는 체계의 집합적인 행동이 수많은 놀라운 성질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위와 같은 특성들 때문에 의식은 뇌라는 물리적 실체와는 별개라는 생각들이 현대에도 여전히 통용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다양한 집합체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풍경에서도, 의식을 가진 가상의 개미 군집에서도, 뇌에서도 조직은 계층화되어 있다. 풍경에서의 수준은 다른 가지에 매달려 있는 가지의 다양한 수준에 상응하고, 최고 수준의 가지의 공간적 배열은 풍경 상태의 전체적 특성의 간결하고 추상적인 개요를 표상한다. 또한 수천(수만?) 개나 되는 흔들리는 개별적인 방울들의 성질은 완전히 혼란스럽고 반직관적이지만, 그 풍경 상태의 구체적이고 국소적인 기술을 제공한다. 개미 군집의 경우에는 개미, 팀, 그리고 신호라는 다양한 수준이 있으며, 마지막에 카스트 분포 또는 <군집 상태>라고 불리는 것이 있다. 여기에서도 이 <군집 상태>가 군집에 대한 가장 통찰력 있는, 그러나 추상적인 관점을 제공한다. 아킬레스가 놀랐듯이 그것은 너무도 추상적이어서 개미 한 마리 한 마리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을 정도이다! 뇌의 경우 우리는 아직 뇌 속에 쌓인 신념을 우리말로 표현하는 식의 고차 수준 구조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뇌의 주인에게 그 또는 그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묻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단지 우리는 이러한 사상이 어디에 어떻게 코드화되어 있는지를 물리적으로 결정할 방법을 알지 못할 뿐이다.
    이 세 가지 체계 속에는 다양한 반(半)자율적인 하위 체계가 존재한다. 그 각각의 하위 체계는 하나의 개념을 표상하고 있으며, 다양한 입력 자극이 특정 개념 또는 심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이러한 견해에서 모든 활동을 감시하교 그 체계를 <느끼는> 이른바 <내면의 눈inner eye>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 대신 체계 상태 자체가 이러한 <느낌>을 표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동 저자 중 한명인 데닛은 '철학자란 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철학자로서 아직은 완전하게 답할 수 없는 마음의 본질에 대해서, 다양한 논증을 통해 그 본질을 밝히려고 시도한다. 그리고 그 논증은 생각만으로 구성된 그동안의 철학적 논증과는 다르게 과학적 실증을 바탕으로 한 논증을 전개하므로 우리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에 대해 보다 사실에 가까운 그림을 그려볼 수 있게 해 준다. 가볍지 않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수고를 해서 읽어볼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