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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것이 생물학이다 - 에른스트 마이어

thinknew 2016. 6. 4. 09:46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는데 일각에서는 '인문학'이 죽어가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면 열풍이 불고 있는 '인문학'은 무엇이고, 죽어가고 있는 '인문학'은 무엇인가? '인문학'은 르네상스('고전의 부활'이라는 의미) 시대에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확립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고대 세계의 문헌에서 그 답을 찾으려는 노력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인문학이나 신 중심의 세계관이 서 있었던 공통의 기반은 인간, 특히 인간의 정신은 물질 세계와는 별개의 존재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을 '비과학'과 동일시 하는 경향이 아주 강하다. 이 때문에 앞에서 언급한 모순이 발생한다. 열풍이 불고 있는 '인문학'은 과학, 기술 문명이 안정적인 발전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본성을 좀 더 잘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과학, 기술 세계 외부의 어떤 것에서 그 답을 얻고자 하는 노력이다. 그래서 인문학 강좌를 들어보면 고전을 이야기하고, 예술을 이야기한다. 한편, 죽어가는 인문학은 철학이 안고 있는 딜레마, 즉 오랜 논의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일관성있는 설명을 하지 못함으로써 그 효용 가치가 점점 퇴색되어 가고 있는 그 인문학을 말한다.

생물학이 과학의 한 분야로 확고하게 자리잡고, 진화론이 생물계의 법칙으로서의 위치를 구축해 감에 따라 생물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연스럽게 '인간의 본성'을 해명하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신경생리학, 분자생물학, 진화심리학 등이 발전함에 이제 "인간 정신의 신비는 풀렸다"라고 주장할 수 있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인문학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를 열망한다면 '비과학'에서 그 답을 찾을 것이 아니라 바로 '과학'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인문학'이 '비과학'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오류이다. '인간의 본성'을 규명하는 것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평가되는 진화심리학은 그 설명을 서구의 지적 전통에 전혀 기대지 않고 독자적으로 설명을 전개한다.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소위 말하는 '인문학자'들은 과학을 단지 학문의 한 분과로 치부하고 자신들은 수천년 동안 공허한 논쟁만 이어 온 그 지적 전통에 여전히 매달리고 있다. 진화론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진화는 최선의 경로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말을 바탕으로 앞의 상황을 유추해 보면, 과학적 접근을 거부하는 인문학이 당장 죽진 않을 것이며, 어쩌면 생각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인문학은 내내 사회를 향하여 자신들을 살려달라는 읍소를 계속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야기할 이 책'이것이 생물학이다'는 앞서 소개했던 에릭 캠벨의 '기억을 찾아서'에서 생물학이 어떻게 인간의 본성을 규명해 가는지에 대해서 한 이야기의 초기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에른스트 마이어도 여기에서 생물학이 어떻게 인간의 본성을 규명하는데 근접하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먼저 생물학이 거쳐온 과정을 이야기한다.
"17세기의 과학혁명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한참 후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과학이란 '정확한' 과학을 의미했다. 물리학, 화학, 역학, 천문학 등 주로 수학을 사용하여 보편적인 법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과학 분야만을 생각했다. 이 시기에는 물리학이 과학의 전형으로 받아들여졌다. 반면, 생물계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열등한 분야로 취급됐다."
"복잡한 생명계의 모든 속성들이 최소의 구성요소들(분자, 유전자 등)만 연구하면 설명할 수 있다는 주장은 한마디로 말도 되지 않는다. 생물은 분자, 세포, 그리고 조직으로부터 생명체 전체, 개체군, 그리고 종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으로 점점 더 복잡한 체계를 구성한다. 한 단계씩 오를 때마다 구성요소들에 관한 지식만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특성들이 나타난다."
"생물학은 사실 개체군적 사고, 확률, 우연성, 다원주의, 창발성, 역사적 담론들로 이뤄져 있다. 생물학과 물리학을 비롯하여 모든 과학 분야의 연구방법들을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과학철학이 필요했다."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물학이 인간의 본성을 아직은 완전하게 규명하지는 못했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더할 수 없이 중요한 또 다른 분야인 정신세계를 다루는 생물학에 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아직 극히 일부만을 이해했을 뿐이고, 폭넓은 분석을 하기에는 신경생물학과 심리학에 대한 나의 지식이 너무나 짧다."

그리고 이 시대의 '교양'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진화, 생물다양성, 경쟁, 멸종, 적응, 자연선택, 번식, 발생은 물론 이 책에서 논의되고 있는 다른 주제들을 비롯한 기본적인 생물학적 개념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구증가, 환경 파괴, 도시문제 등은 기술의 발전이나 문학 또는 역사학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문제들의 생물학적 뿌리에 대한 이해에 기초를 둔 노력만이 풀 수 있는 문제들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말했던 "너 자신을 알라"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자신의 생물학적 기원을 알아야 한다."

생물학이 어떻게 인간의 본성에 접근했는가는 다음 글에서 요약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인문학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보자.
"사실의 추구와 발견은 확실히 과학의 영역이지만 그 외에는 상당한 부분이 서로 겹친다. 과학자들은 과학의 영역을 이론화하고, 일반화하고, 개념틀을 세우는 일을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의 부분으로 인정한다. 실제로 이러한 작업을 통해 진정한 과학자가 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과학철학자들이 이론화와 개념 형성은 철학의 영역이라고 느낀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이런 노력의 대부분은 과학자들에게 넘어갔다. 생물학자들이 발전시킨 기본적인 개념의 상당 부분은 철학자들에 의해 흡수되어 철학의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불화는 흔히 과학자들이 연구에 있어 '인간적 요소'를 받아들이는 데 실패한 탓으로 돌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 과학, 특히 진화생물학, 행동과학, 인간발달, 체질인류학의 발견들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은 대부분 인문학에 필수불가결하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인문학자들이 그런 지식을 얻는 데 실패해 자신의 저술에 그런 주제와 관련된 당혹스러운 무지를 드러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말로 과학에 대한 자신의 빈약한 이해를 변명한다. "나는 수학에 재능이 없다." 실제로 인문학자들이 가장 익숙해야 할 생물학 분야에는 수학적인 것이 별로 없다."
"인문학자가 지구의 인구과잉, 전염병의 확산, 회복할 수 없는 자원 고갈, 해로운 기상 변화,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농업 수요, 자연서식지의 파괴, 범죄행위의 증가, 교육제도의 실패와 같은 정치적 문제에 직면할 때, 생물학 성과에 대한 무지는 특히 위험하다. 이런 문제들은 과학의 성과, 특히 생물학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만족할 만한 답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너무나 자주 정치가들은 무지 속에서 정책을 편다."

다음 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