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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오래된 연장통 - 전중환

thinknew 2016. 6. 28. 17:48

진화심리학은 최신의 학문 분야이다. 당연히 국내에도 아주 생소한 분야이다. 그런데 진화심리학의 주창자 중의 한 사람인 데이비드 버스에게서 수학한 학자가 국내에 있었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에 있는 전중환이 바로 그이다. 어떤 학문 분야에서 전문가라도 그걸 대중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는 기술은 또 다른 것이다. 그런데 전중환 교수는 대중들에게 진화심리학에 대해 알기 쉽게 전달하는 과학 저술가이기도 하다. 진화심리학에 대한 국내 학자의 글이 바로 여기 소개하는 '오래된 연장통'이다. 인간의 뇌는 기능별로 모듈화되어 있다고 밝혀져 있다. 그 모듈을 뺀찌, 드라이버 같은 연장으로 비유하고, 그 연장들이 모인 통인 연장통이 바로 사람의 뇌라는 뜻이다. 국내 학자의 글인 만큼 여기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에 한국의 이야기가 꽤 된다. 그래서 읽기에 편한 뿐더러 저자의 글쏨씨도 상당하다. 학술서가 아니어서 깊이있는 분석은 없지만 적어도 대중들에게 진화심리학을 알려주는 책으로는 훌륭하다. 책의 요약을 보자.


저자는 진화심리학이 처음부터 직면한 의구심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과연 진화 이론이 인간의 심리와 행동도 잘 설명해 줄까? 본능에 지배되는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합리적인 이성을 토대로 문화를 창조하고 전승하는 존재라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분자생물학, 신경생리학 등의 지원을 받아 확립한 뇌의 작동 메카니즘은 개별 기능을 중심으로 모듈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현대 심리학을 기초한 것으로 알려진 윌리엄 제임스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제임스는 생물 종의 오랜 진화 과정을 통해 그 종에 속한 모든 구성원들에게 보편적으로 장착된 특수화된 신경 회로를 '본능'이라 정의했다. '인간 본성human nature'이란 우리 인간 종이 얻게 된 이러한 본능들의 집합이다."

여타 진화심리학 책에서도 빠지지 않는 것이 남-녀 성차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진화론에서 자연선택과 더불어 성선택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러한 성차에 대해 아주 간력하게 요약해 두었다.
"많은 심리학 연구들이 다양한 성차의 존재를 입증했다. 남성은 되도록 많은 이성과 자유롭게 성관계를 맺으려는 욕망이 여성보다 훨씬 더 강하다. 여성의 언어 능력은 남성보다 더 뛰어나다. 말할 때 "에, 음, 뭐지……" 등의 불필요한 잡소리가들어가는 빈도를 되새겨 보라.. 남성은 폭력에 의존하여 갈등을 해결하려는 성향이 더 높다.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더 끈끈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한다. 남성은 지위나 돈, 사회적 인정을 얻으려고 경제적, 신체적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 성향이 더 높다."
"로또를 잔뜩 사는 이들은 주로 남성이다. 여성은 갓난아기의 울음소리에 남성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수학 문제를 풀 때 남성은 수학적 추론 문제에 더 강하지만 여성은 복잡한 계산문제에 더 강하다."
"비교적 넓고 낯선 장소에서 이리저리 내빼는 사냥감을 부랴부랴 쫓아가서 잡는 일은 친숙한 주변 장소에서 어딘가에 숨겨진 식물성 음식을 찬찬히 찾아내는 일과 전혀 다르다. …… 그래서 남성들은 주변 풍경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머릿속에서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회전시키면서 길을 찾는 능력이 발달하였다. 평균적으로 남성들은 여성들보다 지도를 더 잘 읽고, 낯선 곳에서 길을 더 잘 찾는다."
"반면에 여성들은 채집에 관련된 공간 탐지 능력에 일가견이 있다.(공간 탐지 능력이라면 뭐든지 남성이 더 뛰어나다는 속설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 실제로 최근의 연구들은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갖가지 사물을 판별하고 그 위치를 기억하는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보고하고 있다."
"최근의 한 연구에 따르면, 남녀 모두 자신의 애인이 '뛰어난 유머 감각'을 지니고 있기를 바라지만, 여기서 '뛰어난 유머 감각'이 의미하는 바는 서로 정반대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남성은 남을 잘 웃기는 여성보다 자신이 던지는 유머(객관적으로 보면 심히 썰렁할 지 언정)를 잘 이해하여 즉시즉시 큰 웃음을 터뜨려 주는 여성을 배우자로서 선호한다. 반면에 여성은 자신이 던지는 유머에 잘 반응해 주는 남성보다 무조건 자신을 잘 웃겨 주는 남성을 배우자로서 선호한다."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도 설명한다.
"진화생물학자 코리 핀처Corey Fincher 와 그 동료는 집단주의가 병원체의 침입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준다고 제안했다. 집단주의를 개인주의와 구별짓는 두 가지 특징은 첫째, 내집단과 외집단의 엄격한 차별과 둘째, 권위와 전통에 대한 순응conformity이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학문인 만큼 도덕성에 대한 논의가 없을 수가 없다. 저자가 설명하는 인간 종의 도덕 감정은 다음과 같다.
"도덕 본능으로 다시 돌아가자. 도덕심리학자 조나단 하이트Jonathan Haidt에 따르면 도덕 본능, 즉 도덕 판단에 관여하는 심리적 적응은 크게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왠지 동물적이고 원초적이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그동안 홀대받았던 도덕적 정서(분노, 감사, 죄책감, 동정)에 의해 작동되는 도덕적 직관moral intuition이다. 도덕적 직관은 불확실하고 위험한 세계에서 살아남고자 어떤 사건의 옳고 그름에 대해 빠르고 즉각적인 판결을 내린다. …… 다른 하나는 정서의 개입이 거의 없이 합리적 이성에 의해 결론에 도달하는 도덕적 추론moral reasoning이다."
"하이트는 직관이 추론에 우선한다고 주장한다. 즉, 대부분은 도덕적 정서가 어떤 행동의 정당성에 대해 재빨리 최종 판결을 내린다. 이성에 의한 도덕적 추론은 이렇게 정서에 의해 주어진 결론을 사후에 합리화하는 조연에 불과하다."

종교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신이나 사건이 실제로 존재하거나 일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종교는 자연선택이 인간의 마음을 세속적인 생존과 번식상의 문제들을 해결하게끔 설계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떠안아야 했던 부대 비용이었다. 인터넷 쇼핑몰의 배송비가 사라지지 않듯, 인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종교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주류 진화심리학자들은 문화의 독자적인 진화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종교를 진화 과정의 부수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도킨스-블랙모어로 이어지는 문화 복제자(밈)를 인정하는 그룹에서는 종교가 문화 복제자의 진화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문제이긴 하나 나의 짧은 생각에는 문화 복제자를 인정하는 것이 더 타당한 것 같다.

최근에 국내에서 반향을 불러 일으킨 동성애에 관한 설명도 있다.
"첫째, 동성애를 만드는 데 부분적으로 관여하는 유전적 토대가 실제로 존재하는 듯하다. …… 둘째, 현대 서구 사회에서 남녀 동성애자들은 실제로 이성애자 들보다 더 적은 수의 자식들을 길러 낸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 셋째, 동성애자가 현대 서구 사회에서 차지하는 빈도는 대략 1〜10퍼센트로 보고 되는데, 이는 동성애를 그냥 자연적으로 생기는 해로운 돌연변이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높은 수치다."
이 말은 아직 완전히 설명할 수 없긴 하지만 동성애도 진화적 적응일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서두에도 언급했지만 국내 학자의 글로, 그리고 글쏨씨도 상당한 이 책은 진화심리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꼭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진화심리학에 바탕 지식이 좀 있다 하더라도 저자마다 다루는 주제며 에피소드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분명히 얻을 것이 있을 그런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