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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스피노자의 뇌 - 안토니오 다마지오 I

thinknew 2016. 12. 5. 19:15


뇌의 존재는 오래 전부터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고대의 철학자들은 마음은 심장에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곧 생각은 뇌로 부터 나온다는 점은 이른 시기에도 알고 있었다. 문제는 뇌가 육체의 일부인 것은 분명한데 이 뇌로부터 나오는 생각이라는 것이 물질로서의 뇌의 연장인지 아니면 생각 자체는 뇌와는 별개의 존재인지 여부였다. 고대 그리스 시대 그 이전부터 데카르트까지 수많은 철학자들의 숙고 끝에 철학에서는 마음은 물질과는 별개의 어떤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근대과학은 마음도 물질적 뇌의 연장선 상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거의 확정지었다.

한편, 과학자들도 그리스 시대로부터 이어지는 지적 전통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과학적 연구 결과는 '마음과 몸은 하나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마음과 몸은 별개'라는 지적 전통으로 부터 완전히 벗어나지를 못하는 과학자들이 다수 있다. 일부는 여전히 종교를 옹호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또 일부는 신을 옹호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과학적 결과를 지적 전통의 연장선 상에서 해석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근대 이전의 철학자들도 과학적 통찰력을 보여주는 경우가 흔히 있다. 그러나 과학적 검증없이 통찰력 만으로 추론을 계속하다보니 결론은 엉뚱한 곳에 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과학적 발견을 그런 철학적 통찰과 연결시키려고 하면 추론에 불연속성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 포스트에서 요약할 책의 제목이 '스피노자의 뇌'이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신경생리학자이다. 양전자 단층 촬영 장치를 이용해 뇌를 직접 관찰하여 지금은 진화심리학으로 통합된 진화생물학의 근거를 제공한 과학자이기도 하다. 저자가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뭉뚱거려 감정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의 생물학적 근거이다. 그 부분을 먼저 요약하자.

감정의 생물학적 근거가 규명되는 것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다가올 미래의 인간관은 현재의 인간관보다 더욱 명확할 것이며, 사회과학과 인지과학과 생물학의 진보를 반영하게 될 것이다. 그와 같은 인간관이 어떤 실용적인 쓰임새가 있는지 의심스러운가? 인류의 흥망성쇠는 상당 부분 새롭게 정립된 인간관이 민중과 민중의 삶을 통치하는 원리와 정책 속에 어떻게 구현되는가 하는 점에 달려 있다 그리고 정서와 느낌의 신경생물학을 이해하는 것은 인간의 고통을 줄이고 행복을 증진할 수 있는 원리와 정책을 만들어 내는 데 핵심적인 요소이다. 실제로 이 새로운 지식은 인간 존재에 대한 종교적 해석과 세속적 해석 사이의 해결되지 않은 긴장을 다루는 방식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런 저자의 생각을 바탕으로 신경생물학을 통해 밝혀낸 감정의 실체를 보자.
"정서는 생명체의 생존을 촉진하고 그럼으로써 진화 과정에서 우세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간단한 반응에서 비롯되었다."
"생물은 반사적, 자동적으로 정형화된 방식으로 반응한다."
"나는 협의의 정서를 배경 정서(background emotion), 일차적 정서 (primary emotion), 사회적 정서 (social emotion)의 세 층으로 분류하는 것이 편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간의 감정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체계

"배경 정서는, 동시에 일어나는 몇 가지 조절 과정들이 생명체라는 거대한 운동장에서 만나 벌이는 경기의 예측할 수 없는 결과라고 나는 상상한다."
"일차적(또는 기본적) 정서는 좀 더 규정하기 쉽다. 왜냐하면 두드러진 특정 정서들을 이 범주에 묶어 두는 전통이 확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종종 열거되는 항목들은 두려움, 분노, 혐오, 놀람, 슬픔, 행복 등이다. 우리가 정서라고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정서들이 바로 이 범주에 해당된다. 이와 같은 정서들이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 정서들은 모든 문화에 걸쳐서 인간에게서 쉽게 식별할 수 있으며 인간이 아닌 다른 종의 동물들에게서 도 찾아볼 수 있다. 정서를 일으키는 상황과 정서를 규정하는 행동 유형 역시 모든 문화와 종에 걸쳐 상당한 정도의 일관성을 보인다. 그러므로 정서의 신경생물학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대부분 이 일차적 정서에 대한 연구에서 얻어 낸 것이다."
"사회적 정서는 동정, 당혹감, 수치, 가책, 긍지, 질투, 부러움, 감사, 동경, 분노, 경멸 등을 포함한다."
"협의의 정서는 욕구에 영향을 주고, 욕구는 협의의 정서에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공포라는 정서는 식욕이나 성욕을 억 제한다. 슬픔이나 혐오도 마찬가지이다. 반면 행복은 식욕과 성욕을 모두 촉진한다. 한편 충동- 예컨대, 배고픔, 목마름, 성욕 -의 충족은 행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와 같은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분노, 절망, 슬픔 등을 일으킬 수 있다."
"정서적 상태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정서 촉발 부위의 활동이 신경 연결을 통해서 정서 실행 부위로 전달되어야 한다."
"내가 볼 때 느낌의 본질을 구성하는 지각의 기원은 분명하다. 신체라는 일반적인 대상과 그 대상의 각 부분은 끊임없이 뇌의 여러 구조에 지도화된다. 지각의 내용 역시 명확하다. 가능한 일정 범위 내에서 신체를 표상하는 지도에 따라 그려진 신체의 상태가 바로 그 내용이다."
"지도화되는 대상들은 느낌의 주체인 살아 있는 생명체의 일부이자 상태이다."
"느낌이 생겨난 것은 신체 상태를 표상하는 뇌의 지도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지도가 생길 수 있었던 것은 뇌의 신체 조절을 위해 신체 상태의 지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신체 조절이란 정서적 반응이 전개되는 동안에 신체 상태에 수정을 가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느낌이 단순히 신체, 그리고 신체를 표상할 수 있는 뇌의 존재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뇌의 생명 조절 기구의 존재, 정서나 욕구와 같은 반응을 일으키는 메커니즘의 존재에 의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명 조절 절차가 효율적이고 최적이며, 자유롭고 매끄럽고 편안하게 이루어지는 생명의 상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가설이 아니라 굳게 정립된 생리학적 사실이다. 그와 같이 생리학적으로 도움이 되는 상태에 동반하는 느낌은 '긍정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통증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쾌락과 관련된 느낌을 그 특징으로 한다. 또한 생명 절차가 균형을 이루기 위해 분투하고 때로는 혼란스러울 만큼 통제되지 않는 생명체의 상태 역시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상태에 동반하는 느낌은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단순히 쾌락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통증과 관련된 느낌을 그 특징으로 한다."
"그렇다면 느낌은 생물의 내부를 탐색하는 심적 감지기이자 진행 중인 생명 활동을 증거하는 목격자라고 할 수 있다. 느낌은 또한 우리의 파수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느낌은 덧없고 제한된 우리의 의식적 자아로 하여금 짧은 기간 동안의 우리 생명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알 수 있도록 해 준다. 느낌은 균형과 조화, 또는 불균형과 부조화의 심적 현시(manifestation)이다. 느낌은 바깥세상의 조화나 부조화를 나타낸다기보다는 우리 몸 깊은 곳의 조화나 부조화를 나타낸다. 기쁨과 슬픔 및 다른 감정들은 우리를 최적의 상태로 생존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절차에서 갖게 되는, 우리 신체에 대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약물이나 우울증 때문에 그 충실성이 훼손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기쁨과 슬픔은 생명 절차의 상태를 드러내 준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우울증이 야기하는 병적 상태가 진실한 생명 상태를 정확하게 드러내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앞의 요약은 개체 단위에서 작용하는 감정의 작동 메카니즘에 관한 것이었다. 한편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어서 사회적 차원에서의 감정의 작동 메카니즘에 관한 요약은 다음과 같다.
"한편 피험자들에게 협력자와 배반자를 효과적으로 가려낼 수 있는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실험을 수행하도록 하고 기능적 뇌 영상 연구를 실시했을 때, 정상인들이 협동 전략을 사용하는 데에는 복내측 전두엽 영역이 관여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최근 연구에서 협력 행동이 도파민을 분비하고 쾌락 행동에 관여하는 뇌 영역의 활성화를 이끌어 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것은 '덕행은 그 자체가 보상이다'라는 말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어떻게든 사회적 행동에 대한 사실적 지식이 정상적으로 발현되기 위해서는 정서와 느낌이라는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훌륭한 정서와 칭찬할 만한, 적응성 있는 이타주의는 집단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하나 또는 몇 개의 윤리 중추라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심지어 복내측 전전두엽 피질 역시도 중추로 간주해서 안된다. 뿐만 아니라 윤리적 행동을 뒷받침하는 시스템은 아마도 윤리만을 전담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시스템들은 생물학적 조절, 기억, 의사 결정, 창의력 등에도 관여한다. 윤리적 행동은 그러한 다른 활동의 놀랍고도 유용한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뇌에 윤리 중추라든가 심지어 윤리 시스템이라고 하는 것은 발견되지 않는다."
"인간의 삶은 일차적으로 대사의 균형, 욕구, 정서 등과 같은 자연적이고 자동적인 항상성 기구를 통해 조절된다."
"우리의 삶은 우리 자신의 욕망과 느낌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습과 윤리적 행동 규범의 형태로 표현된 다른 이들의 욕망과 느낌에 대한 배려를 통해 조절되어야 한다. 그와 같은 관습과 규율, 또한 그것을 실행시키는 사회적 제도- 종교, 사법, 정치, 사회 조직 -는 사회 집단 수준에서 항상성을 유지시켜 주는 메커니즘이 되었다. 또한 과학이나 기술과 같은 활동 역시 사회적 항상성 메커니즘을 돕는다."
"우리는 물론 유전자에 따른 타고난 행동 기구 없이 살아 갈 수 없다. 그러나 농경이 시작된 이후 1만 년이나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인간의 사회가 점점 복잡해짐에 따라 인간의 생존과 안녕은 분명히 사회 및 문화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또 다른 종류의 비자동적인 통제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일반적인 추론이나 의사 결정의 자유에 관련된 것이다. 요지는, 우리 인간은 단순히 보노보나 다른 종의 동물들처럼 고통스러워하는 동료에게 연민을 보일 뿐만 아니라 우리는 우리가 연민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 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