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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슈레딩거의 고양이 - 에른스트 페터 피셔

thinknew 2016. 4. 25. 20:59

대중들은 과학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하나는 지금과 같은 거대한 물질 문명을 구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강력한 도구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모든 것은 과학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을 유물론적 존재로 격하시키는 것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사회가 견제하지 않으면 인간을 멸망으로 몰아넣을 위험한 것으로 다루려고 하는 태도이다. 당연하게도 과학자도 인간임에 분명하므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강점과 약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회가 과학에 대해 감시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과학 그 자체는 가치중립적이어서 인간의 가치를 바탕으로 과학의 발전을 억누느려는 시도는 언제나 성공하지 못할 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과학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과학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과학을 대중들의 눈높이에서 설명해주는 과학저술가들이 필요하다. 이제 소개할 이 책의 저자 에른스트 페터 피셔는 과학자이면서 대중들에게 과학을 잘 설명해 주는 저자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과학을 어렵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물론 정치학이나 경제학, 의학 분야의 전문적 표현들 중에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 그래서 이것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이 무지하다고 부끄러워 한다. 하지만 과학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청중에 책임을 묻는 아니라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과학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과학은 물질계를 다루는 것이라고 생각하므로 과학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것에 대해 자괴감을 느끼지 않지만 정신의 문제를 다루는 철학이나 형이상학은 몰라도 아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과학과 철학 둘 다 모르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사변적인 주제에 대해서는 언제나 자기 주장을 한다. 인간의 문제에 대해 과도한 자기 주장을 갖는 것과 과학을 어렵다고 기피하는 것, 둘 다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제목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양자역학에서의 사고실험으로 유명한 이야기이다. 양자역학은 어렵다. 그러나 노벨상을 2개나 받은 천재 과학자 리처드 파인만조차 "양자역학을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양자역학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다"라는 선문답 같은 이야기를 할 정도이므로 대중들이 양자역학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자책할 필요는 전혀 없다.

또 다른 과학에 대한 선입견은 '과학과 예술은 별개이다'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저자가 재인용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미국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Raymond Chandler 예술과 과학이라는 문화의 쌍이 얼마나 밀접하고 견고하게 맺어져 있는가를 1938 2 19 일자 일기에서 표현하고 있다. " 종류의 진리가 있다. 길을 가리키는 진리와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진리다. 번째 진리는 과학이고 번째는 예술이다. 가지는 서로 무관하지 않으며 어느 것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예술이 없다면 과학은 마치 매우 정교한 핀셋이 함석 세공장이의 손에 들려 있는 것처럼 쓸모가 없다. 과학이 없다면 예술도 감수성 풍부한 민요와 싸구려 노랫가락이 마구 뒤섞인 혼돈에 지나지 않는다. 예술의 진리는 과학이 비인간적으로 변하는 것을 막아 주고, 과학의 진리는 예술이 천박해지는 것을 막아준다."

현재 물질계를 주도하는 두개의 이론을 들라면 아원자(원자보다 크기가 작은) 입자들을 설명하기 위한 양자역학, 거시계를 설명하기 위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자가 양자역학이 성립되는 과정을 가장 먼저 이야기하기 위해 제목을 저처럼 붙였지만 그렇다고 양자역학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성이론을 거처 양자역학이 성립되는 과정, 전자기파 이론이 성립되는 과정, 수학에서의 발견들에 대한 이야기, 진화론이 성립되는 과정, 인간 본성을 알고자하는 심리학에서의 발견들에 관해 핵심적인 역할을 한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많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 중에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요소를 연구하면서 뵐러는 그것이 4가지 원소로 이루어졌음을 깨닫는다. 요소에는 탄소, 수소, 산소, 질소가 1 : 4 : 1 : 2 비율로 들어 있었다. 그를 흥분시킨 것은 이와 똑같은 결합이 유기체와는 전혀 무관한 재료에서도 발견된다는 사실이었다. ………… 다음과 같은 질문도 가능하다. 분자에 똑같은 원자들이 들어 있다면 둘의구조를 서로 뒤바꿀 수도있을까? 뵐러는1828 같은 실험을 실시하여 성공을 거둔다. ……… 뵐러의 실험이 갖는 의미는 매우 명확했다. 살아 있는 자연(유기물) 생명이 없는 자연(무기물)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실용적인 면에서 구분될 뿐이었다. 이로써 화학은 생명력의 특별함에 대한 거창한 생각을 한순간에 진부한 것으로 만들여 버렸고 전에 없이 흥미로운 분야로 떠올랐다."
인간의 문제도 유물론으로 수렴한다는 사고의 출발점이 될 만한 발견이다. '유물론'하면 공산주의의 이념적 바탕이 유물론이었다는 것 때문에 곧바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이 다수 있다. 여기서 유물론이란 인간의 정신도 뇌의 화학작용이라는 물질적 바탕 위에 존재하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다음과 같은 구절도 있다.
"19세기 생물학자들의 결정적인 공헌은 플라톤 이래로 2천년 이상 이어져온 고정관념을 사고과정에서 과감하게 걷어낸 있다. 플라톤은 일상에서 관찰되는 생명체의 가변적인 모습들은 비본질적인 것이며, 속에 자리 잡은 불변의 이데아만이 본질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요한 것은 눈앞에 보이는 말이 아니라 말의 이데아다. 이데아는 영원히 존재한다."
서양의 철학적 전통을 정면 비판한 것이 저자가 처음은 아니다. 그리고 과학이 발전할 수록 서양의 철학적 전통은 붕괴된다. 그 점은 신학도 마찬가지다. 전통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오랜 역사를 지닌 철학 사상적 기반에 대한 부정에 대해 무의식적인 반감을 가진다.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은 오랜 역사를 지닌 사상적 기반이 오류라고 밝혀진다고 해서 그것들이 무의미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때는 인간의 지식의 한계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과학이 많은 것을 밝혀낸 지금, 여전히 그 생각들을 추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과거를 황금시대로 생각하는 것도 역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에 대한 구절도 있다.
"우리는 답을 진보의 관념 속에서 찾을 있다. 베이컨이 등장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모든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자기들의 이전 시대가 좋았다고 생각했다. ("예전의 좋던 시절에는…") 고대 그리스인들은 오래 전에 지나가 버린 황금시대를 그리워했고, 르네상스 시대에는 접두 're' 말해주듯이 시선을 뒤로 향한 살았다. 베이컨은 같은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그에게 황금시대란 미래를 의미했다. 사람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하늘이 아닌 지상에서- 나은 삶을 누릴 있다. 그는 진보의 관념을 창조했다. '진보의 가능성' 이때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완전히 새로운 생각이었다."

이 책은 과학의 발전사를 서술하면서 자연스럽게 과거의 철학적 전통과 단절하는데,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이는 다음과 같이 언급함으로써 철학적 사유의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지은이는 책에서 현대 과학의 흐름을 고사성어 같은 표제어들로 제시한다. 지은이가 소개하는 현대과학의 흐름은 일종의 과학적 잠언과 같다. 과거의 관점에서 보면과학이 아니라 은유이며 상징이다."
"지은이의 놀라운 상상력은 과학과 예술을 결혼시킨다."
아마도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저자는 사람들이 딱딱하다고 생각하는 과학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독자로 하여금 웃게 만들 수 있는 몇 안되는 글솜씨를 지녔다. 당연히 이 책도 강력 추천 목록에 올린다. 저자의 다른 책들도 순차적으로 소개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