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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세상 물정의 물리학 - 김범준

thinknew 2016. 3. 27. 17:10


우리나라에서 대중들의 눈높이 맞춘 글쓰기를 하는 과학자로는 카이스트의 정재승 교수가 거의 유일하다고 알고 있었다. 여기에 이 책의 저자 김범준도 포함시켜야 마땅하다. 제목을 세상 물정의 물리학이라고 붙인 이유를 저자의 입을 빌어 들어보자.

"'물리학자'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속으로는 '세상물정 모르는 이상한 괴짜' 떠올린다. 이런 물리학자의 상이 아주 잘못된 것은 아닌 이유가 있다. 물리학은 특성상 보편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런 저자가 과학자로서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사회학적 질문의 대상이 되는 인간과 물리학의 질문의 대상이 되는 인간은 서로 다르지 않다. 인간은 동일하다. 단지 분과 학문이 동일한 대상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방법과 질문을 풀어가는 과정만이 서로 다를 뿐이다."
"통계물리학이라는 분야가 있다. 전통적인 통계물리학의 주제는 수많은 입자들로 이루어진 기체나 고체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은, 마찬가지로 많은 수의 무엇인가로 이루어진 커다란 시스템으로 있는 사회, 경제, 그리고 생명 현상 등으로 연구의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

저자는 통계물리학을 바탕으로 사회 현상을 재미있게 설명한다. 단지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깊은 통찰도 포함되어 있다.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집단에서의 의사 결정 구조에 관한 것이다. 보스의 지시가 아래로 일사불란하게 전달되는 상명하복 구조와 계층을 넘나들며 의사소통과 토론이 가능한 구조를 비교한다.
"먼저 상명하복의 계층 구조는 장점이 있다. 최상위층에서 정한 내용을 엄청나게 빠른 시간 안에 모든 구성원에게 까지 전달할 있다. 그러나 문제도 있다. 최상위층의 결정이 전체 사회를 위해바른 것이 아닌 경우에도 결정이 사회 전체에 파급돼 모든 구성원이 잘못된 결정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반면 계층을 넘나드는 의사소통과 토론이 가능한 구조의 경우에는 최상위층의 결정이 올바른 것이 아니라도 구성원의 의견 교환을 통해 다른 의견으로 합의할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시간은 훨씬 오래 걸리지만. 민주주의는 길고 토론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고통스럽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고나 할까."
"상명하복 계층 구조를 넘어서는 정도의 때맞음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의사소통 채널의 다양성을 '상당히' 보장해야 한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대충대충 '무늬만'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는 상명하복의 계층 구조만도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통계물리학을 하는 과학자가 민주주의의 핵심을 짚어준다. 다원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 구성원들간의 의사소통과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집단이 엉뚱한 길로 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겉으로 보기에 소란스러워 보이는 과정들을 참아내야 한다는 점 등을 말이다.

다음과 같은 내용도 있다.
"논문의 결과 내가 특히 인상 깊게 기억하는 것은 출구가 어디인지에 대한 올바른 정보의 중요성이었다.정말 그대로 한치 앞도 없는 상황에서 빨리 탈출해야 한다면 사람들은 공황 상태에 빠진다. 이런 재난적인 상황에서 누군가 출구가 어디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정보를 다른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있다면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사람들이 재난이 발생한 방에서 탈출할 있음을 논문의 전산 시뮬레이션 결과는 알려주었다."
"집단적인 공황을 극복할 있게 해주는 것은 바로 옳은 정보의 투명한 공개다. 정보의 공개가 공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비공개가 공황을 만든다."
천암함도 그렇고 세월호도 그렇고 정권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혼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앞의 내용과 연결지워 생각해 보면, 권위주의적인데다 비밀주의를 고수하는 새누리당에게 정권을 맡기는 것은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위험천만한 일인데도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또 다음과 같은 내용도 있다.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처럼, 다른 사람들의 말에 비판적인 사고 없이 고개만 끄덕이다가는 무엇이든 순식간에 사회 전체로 파급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봐서 다수가 합의하는 해결책이 주어진 문제의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일컫는 , 집단지성. 그런데 만약 집단 구성원들이 서로 너무 눈치를 본다면 대중의 지혜가 제대로 발현되지 못한다. 집단 목소리 소수의 영향이 너무 커져서 이들이 목소리 작은 다수를 억압하게 되면 집단 전체가 생각해낼 있는 해결책의 폭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참여하는 대중은 자체로 지혜롭지만, 구성원들 두가 목소리를 내는 '비판적인 대중' 지혜롭다는 말이다."

이 외에도 야구팀이 Home-and-away 방식으로 경기를 진행하면서 각 팀들이 이동해야 하는 거리의 불평등, 집단지성이 효율적으로 달성되기 위한 조건, 마당발 이야기, 협력의 문제 등도 통계물리학을 바탕으로 거론한다. 물론 수식을 잔뜩 동원하여 하는 설명이 아니다. 수식이 전혀 없진 않지만 일반 대중들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게 깊이 있으면서도 재미있게 이야기한다.

이런 사실들도 전해준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은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위성항법장치 GPS 기술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적 기반이다."
얼마 전에 소개한 책 "똑똑한 바보들"에 나오는 보수주의자들의 싱크탱크 역할을 한다는 '컨서버피디아'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부정하는 내용들이 잔뜩 들어있다고 한다. 이념을 사실에 앞세우는 보수주의자들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작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또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한다. 예전에는 뉴턴이 정립한 운동법칙을 '만유인력'으로 불렀으나 지금은 '보편중력'으로 부른다는 점을 언급하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상에서 거의 쓰지 않는 '만유'라는 표현이 들어 있는 한자어를 사용하면서 이를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고 학생들에게 한자 교육을 많이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예술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저자는 예술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예술 작품에서 우리가 느끼는 아름다움이 작품의 작은 구성 요소 하나하나로 환원될 없는 것이라면,결국 아름다움은 구성 요소들 사이의 '관계맺음' 문제이다. ………… 예술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선택하고 요소들 사이의 관계를 치밀하 조정하는 , 그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바로 내가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는 예술가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격언 '열명의 친구를 만드는 것보다 한명의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도 통계물리학적으로 설명하고, 대뇌생리학에서 통곔물리학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도 이야기하고,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던바의 수'도 이야기한다.

물리학자가 세상사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데 이게 아주 재미있다. 부피도 크지 않고 해서 과학에 대한 이해도 넓힐 겸, 직접 읽어보면 아주 좋다. 강력 추천 목록에 올린다. 그러고 보니 국내 저자의 책을 강력 추천 목록에 올린게 처음이다.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