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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데카르트의 아기 - 폴 블룸

thinknew 2016. 9. 24. 19:39


"Cogito, ergo sum."(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선언한 데카르트는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이 데카르트는 물리학자이기도 했다. 그 말은 오직 관념적으로만 사유한 것이 아니라 현상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려고 애쓴 학자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인간의 본성을 설명할 객관적 증거가 전혀 없던 시절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결과 서두와 같은 널리 회자되는 말을 하게 된다. 동물들과는 구분되는 고차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인간에게는 물질적 육체와 구분되는 정신(또는 영혼)이 존재함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정신-육체 이원론, 또는 데카르트 이원론이라고 불린다. 지금은 진화생물학, 신경생리학 등에 의해 인간의 의식조차도 뇌에서 파생되는 현상, 즉 정신과 육체는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하나의 기원을 가지고, 그 기원은 바로 육체적 기관인 뇌라는 점이 밝혀져 있다. 즉 데카르트 이원론은 오류이다. 아무튼 데카르트는 영혼이 없는 육체를 기계적 자동인형으로 생각했다. 아직 자의식이 없는 아기들은 데카르트가 생각한 자동인형에 가까운 존재이다. 아기들의 인지와 행동을 연구하는 발달심리학에서는 이 데카르트의 아기가 오류임을 보인다. 다음 책이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발달심리학자이다. 자의식이 구체화되지 않은 유아들을 연구함으로써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구현되는가를 연구한다. 데카르트가 여행할 때 늘 가지고 다녔다는 자동인형을 빗대어 책의 제목을 '데카르트의 아기'라고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오류임을 체계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인간은 타고난 이원론자라고 말한다.
"이 책은 우리 인간이 육체의 관점과 영혼의 관점이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원론자들이라는 사실을 기본 전제로 한다. 이러한 이원론의 직접적인 결과물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어 있다는 개념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자아 개념이니, 정체성이니, 사후세계니 하는,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개념들이 따라 나온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원론자임을 다시 이야기한다.
"불행히도 이러한 명료함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영혼이 존재한다는 견해가 있지만, 이들 영혼은 육체와 뇌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도덕적 입장에서 우리가 가장 관심을 갖는 특성들- 양심, 고통의 경험, 번영의 욕구 -은 두뇌 작용의 결과이며, 이러한 작용은 성장과 진화 과정 모두에서 점진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그것들이 나타나는 성장 단계의 일순간을 찾는다거나 갑작스런 진화상의 도약 단계를 찾는 것은 합리적이지가 않다."

저자는 아기들이 빈서판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며 타고나는 것이 꽤 많음을 이야기한다.
"어린아이들은 사람들이 대개 무엇을 믿는지, 사람들을 화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와 같은 생각의 내용물에 대해서는 학습이 필요한 반면, 사람들이 어떤 것을 알고 어떤 것을 원하며, 믿음과 정서, 그리고 욕구와 감정을 지닌다는 사실은 학습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다."

이어서 자폐증에 대한 연구 결과들, 본질주의에 대한 추론, 감정과 감정 전이, 공정성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도덕 감정, 혐오감이 진화한 이유, 유머에 대한 추론, 종교에 대한 추론 등을 거치면서 일원론을 체계적으로 주장한다.

그 과정에서 과학의 역할을 간략하게 언급한다.
"과학이 직접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말해 줄 수는 없지만, 도덕적인 의사 결정을 뒷받침해 줄 만한 적합한 배경 지식을 우리에게 알려 줄 수는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한다."
"누군가가 경험적인 증거에 휘둘려 귀신의 존재를 믿었다가 자신의 견해를 선뜻 테스트해 보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유령의 존재를 다시 부인하게 된다면 이것은 과학적 가설이다. 이러한 믿음이 강한 신념에 뿌리를 두고 있어 증거에 휘둘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종교다."
"자연선택의 원동력은 생존과 번식이지 진실이 아니다.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가짜보다는 진짜를 믿는 것이 낫다. 정확한 인식은 환상보다 나은 법이다."


그리고 저자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는다.
"물리학자가 아닌 우리 같은 사람들이 어느 모로 봐도 단단하기 만한 물체가 아주 작은 움직이는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받아 들이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비전문가들이라도 자아에 대한 우리의 직관이 틀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사는 법을 배우게 될지도 모른다."

이 책은 발달심리학의 관점에서 데카르트 이원론을 실증적으로 부정하는 과학책이다. 여러 부분에서 진화심리학과 중복되는 내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력 추천 목록에 올려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