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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대륙의 딸들 - 장 융

thinknew 2017. 1. 4. 17:52


사람들이 흔히들 "옛날이 더 좋았다"라고 이야기한다. 심지어는 학문의 세계에서도 이상향은 저 먼 옛날 고대에 설정되어 있다. 중국 문명에서의 은, 주 시대가 그렇고, 서양 문명에서는 그리스 시대가 그렇다. 그러나 고인류학은 그런 시절의 인류의 삶은 지금 우리가 유인원이라고 칭하는 오랑우탄이나 침팬지 등이 살아가는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현대의 미디어의 발달로 도처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일들을 알게 될 때 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예전에는 목가적인 삶이 있었는데 지금은 삶이 황폐해졌다는 식으로 한탄한다. 이런 식의 생각은 결코 타당하지 않음을 많은 역사서들이 보여주고 있다.

한편, 우리는 막연하게 옛날을 그리워 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그 옛날에 근대 한국은 포함되지 않을 것이 뻔하다. 근대 한국에서의 사람들의 삶을 그린 책이라면 박경리의 '토지'나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토지는 아직 읽어 보지 못했고, 태백산맥은 오래 전에 읽었던 데다가 이념에 촛점을 맞추어 읽었던 기억이 나기 때문에 민중의 삶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딱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런데 중국의 근대를 여성 3대의 시선으로 본 장 융의 '대륙의 딸들'이라는 책을 읽게 되면서, 별다른 차이점이 없을 것이 뻔하긴 하지만 근대 한국의 민중들의 삶을 이야기한 '토지'나 '태백산맥'을 다시 한번 읽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자신의 외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삶을 자서전 형식으로 서술한다. 소설은 중국의 근대로 청 왕조는 무너지고 장개석의 국민당이 공산당과 이념 경쟁을 벌이던 시절, 군벌의 첩으로 들어가는 외할머니 이야기로 시작된다. 우리로서는 조선 말기에 해당된다. 여성의 관점에서 본 역사이므로 여성들의 수난사가 가득하다. 그렇다고 저자가 여성들만 괴로웠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 시절 전반적인 민중들의 삶이 척박했지만 그런 가운데도 여성들의 삶이 더욱 고단했다는 점을 이야기로 담담하게 풀어낸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저자의 외할머니는 자신의 뜻이 아니라 전적으로 부모의 뜻에 의해 군벌의 첩으로 들어가게 된다. 군벌의 첩이므로 외부적으로는 막강한 권세를 가진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 삶은 하인들 보다 못한 것이었다. 첩이 바람나면 남편은 첩을 중동의 명예살인 비슷하게 마음대로 처단할 권한을 가지고 있어다고 한다. 그 첩이 바람났는지 아닌지를 감시하는 것이 하인들이어서 어쩌다 한번씩 들러는 남편에게 나쁜 소리를 하지 못하게 하인들에게 조차 굽신거려야 했단다.

자신의 부모들은 공산당이 중국 대륙을 완전히 장악한 다음 고위 공산당 관료가 되었다. 부모들의 이야기를 하는 부분에서 그 시절의 사람들이 왜 공산당에 매료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런 묘사들 때문에 군사 독재 정권 하에서라면 이 책도 금서였을 게 뻔하다. 귀족 계층의 부패와 착취에 찌들은 민중들에게 공산당의 주장은 환상적일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부모들이 공산당이 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민중들에게 그렇게 매력적이었던 공산주의가 고려하지 못했던 심각한 결함은 바로 인간의 권력욕이었다. 민중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중국 대륙을 접수한 공산당도 마오쩌뚱의 권력욕은 어쩔 수 없었다. 마오의 독선 때문에 대약진 운동을 벌였다가 처참한 실패를 겪고 또 문화혁명을 사주하여 민중들의 삶을 다시 그 이전으로 되돌려 버린다. 이 와중에 골수 공산당원이자 사람들의 신망이 두터웠던 저자의 아버지는 마오를 비판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온갖 고초를 겪게 된다. 자신의 어머니도 마찬가지고. 그렇지만 어머니의 불만은 아버지와는 좀 달랐다. 아버지가 공산당의 절대 평등의 신념에 너무 매몰된 나머지 인간의 본성인 혈연에의 이끌림 마저도 부정해 버린다. 그래서 자신의 친족의 조그만 부탁도 모두 거절해 버려 친족으로 부터 거의 의절 상태로 지내고, 자신의 부인도 특별 대우를 하면 안된다고 해서 임신한 상태의 부인을 관용차에 태우지 않고 걸어가게 만들 정도였다. 그래서 저자의 어머니는 공산당의 신념을 여전히 존중하지만 아버지는 결코 용서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가지고 살게 된다. 그 아버지도 문화혁명이 끝나고 원상회복까지는 아니지만 적대계급이라는 딱지는 떼고 나서 자신이 어리석었다는 점을 인정하게 된다.

저자는 잠시 문화혁명기의 소녀 홍위병이 된다. 자신도 고백하듯 마오에 대한 충성은 절대적이었지만 문화혁명 기간 동안 일어났던 홍위병들의 무법천지에 가까운 폭력에 대해서는 결코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홍위병의 타이틀만 달고 있을 뿐 폭력에 거의 가담하지 않고 성장한다. 여러 행운이 겹쳐 대학을 가게 되고 거기서 영어 강사를 거쳐 중국 최소의 영국 유학생이 되기까지 그 중간중간에 자신의 부모와 자신이 겪은 고초를 서술하는 대목을 보면 '그 시절 민중들의 삶이 고단했구나'라는 한 구절로는 결코 끝낼 수 없는 깊은 여운을 남긴다.

문화의 차이를 제외하면 한반도의 민중들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책들을 보면 아무리 현재가 괴로워도 지난 시절에 비하면 나은 것이라는 위안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위안이 현재의 모순을 덮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래서 이 책과 더불어 '토지'와 '태백산맥'을 강력 추천 목록에 같이 올린다.